사마리아 여인을불러서 믿게 하심
요한복음 4:6-30
요한복음 4:6-30
6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육시쯤 되었더라 7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1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12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17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지니라 25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27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28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1.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심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 하심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를 불러서 믿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촌으로 들러서 가시게 됐습니다. 유다로부터 떠나서 갈릴리로 가는 도중에 유다는 남쪽이고 갈릴리는 북쪽인데 가운데 사마리아라는 지방이 있습니다. 유다를 떠나서 북쪽 갈릴리로 가는데 사마리아를 통과해야만 가게 됩니다. 사마리아를 들러서 갔는데 거기 수가라 하는 동네가 있었는데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우물의 이름이 ‘야곱의 우물’이라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피곤하셔서 우물곁에 앉아 계셨습니다.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그랬는데 제 육시는 요새로 말하면 낮 12시입니다. 성경 유대나라의 시간에다가 여섯 시간을 더해야 우리 시간이 나옵니다.
본문 7절에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우물곁에 앉았는데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사마리아 지방은 고원지대라서 우물이 많지 않습니다. 샘하나 얻기가 아주 힘듭니다. 옛날 야곱이 판 우물이라고 하는데 그 우물에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보고 ‘물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전도할 때 ‘물 좀 달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말 같습니다. 자연스러운 말부터 해서 대화가 되어야만 전도가 될 수 있습니다. 무조건 예수 믿어라 하는 것 보단 ‘물 좀 달라’하는 대화가 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진실성
1) 어찌하여 저와 상종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물 좀 달라’ 하시니까 사마리아 여자가, 본문 9절에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합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는 상종치 않는 때라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보고는 사마리아 여자가 주께서 유대인 인줄 알았습니다. 말 사투리를 보고 알 수 도 있고, 의복을 보고 알 수 도 있고, 여러 면으로 유대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
다. 그래서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은 상종치 않은 줄 알았는데 “사마리아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합니다.
다. 그래서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은 상종치 않은 줄 알았는데 “사마리아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합니다.
2) 당신이 야곱보다 큽니까?
그러니까, 본문 10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라고 하시니까, 본문 11-12절에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하고 말했습니다. ‘당신을 보니까 물, 길을 그릇도 없는 사람이고, 또 이 우물을 깊은데 어디서 물을 얻겠습니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물은 70척, 20m 이상 되는 깊은 우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 야곱이 이 우물을 파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에게 먹였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크니이까 하고 여자가 말을 한 것입니다.
여자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양심을 써서 진실하고 참된 말을 했습니다. 허탄하게 말한 것이 없습니다. 진실하게 허탄한 말 하지 아니하고 양심대로 바로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농담으로 허탄한 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를 받을 수 없고, 농담으로 전하는 사람은 그 전도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진실하고 참된 말을 하는 버릇을 길러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진실하고 참된 말을 해야 됩니다. 양심대로 해야 되고 이치에 바른 말을 해야 됩니다.
2.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를 주시고자 하심
예수님의 생수는 영생하는 역사
본문 13-1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그랬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물을 길어다 먹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은 한 번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고 또 그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을 여자가 들으니까 참 좋은 물입니다. 한 번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또 속에서 샘이 솟아 나와서 계속 생수가 솟아 나오는 물, 아주 참 좋은 물인 줄을 알고, 여자가 말하기를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하고 솔직하게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좋은 물이 있으면 날 좀 달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먹고 다시는 목마르지 않고, 또 우물이 멀어서 늘 물 길기가 힘이 드는데 다시는 이 우물에
물 길러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그랬습니다.
이 얼마나 솔직합니까? 본문 16-18절에 보면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그랬습니다. 여자가 생수를 달라고 하니까 남편을 불러 오라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진리와 영감으로 하는 생명의 역사가 생수 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이 물, 생명의 역사는 한 번 먹으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은 한 번 받으면 고갈함이 없고, 또 속에서 샘이 터져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고 그랬습니다. 계속 생명의 역사가 솟아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마셔도 다시 목마른 세상의 물
이 얼마나 좋은 물입니까? ‘이 물을 먹는 자는 다시 목마르다’라는 말은, ‘사마리아 물을 먹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다’, 또는 ‘물질이 주는 해갈은 다시 목마르다’라는 것입니다. 세상 우물, 세상 물질, 세상 것으로 해갈함을 받는 사람은 다시 목마릅니다.
세상 것은 처음에는 먹을 때는 시원하지만 조금 있으면 다시 목마릅니다. 세상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무엇에 목이 말라 돌아가던 사람이 한번 물을 먹으면 목마르지 않는다고 해도 그 물을 먹고는 얼마 안가서 다시 목마릅니다. 생수를 먹으면 목마르지 않습니다. 세상 물질과 세상 사람이 주는 모든 것은 처음에는 생수 먹은 것처럼 시원하고, 아주 목마른 게 다 없어지고 만족하지만 얼마 지나가면 목마른 것이 ‘세상 것’입니다. 세상 것은 처음에 먹으면 시원하고 목이 해갈이 됩니다. 물도 그렇습니다. 목마를 때 물을 먹으면 시원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조금 있으면 다시 목마릅니다.
물질에 목이 말라서 ‘물질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며 목마르게 ‘얼마만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처음에 물질을 좀 얻으면 해갈이 되지만, 얼마 가면 다시 목이 마릅니다. 또 결혼하는 사람들도 ‘결혼하면 좋겠다’고 합니다. 결혼해서 처음에는 해갈이 됩니다. 그러나 얼마가면 또 시시해져서 서로 싸우고 다투고 ‘괜히 시집왔다. 괜히 결혼했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또 자동차나 무슨 시계 같은 좋은 것 하나 있으면 좋겠다며 목이 말라가지고 있다가 원하던 것을 얻으면,
처음엔 너무 좋아서 상당히 아끼며 돌아다니다가 얼마가면 시시해집니다. 그 다음엔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해갈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 물질이 주는 것은 절대 해갈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목마를 때 소금을 먹는 것과 같다고 그랬습니다. 세상물질이나 세상 것으로 행복을 찾아보려는 사람 기쁨과 위안과 목마름을 해결해 보려고 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잠깐 시원하고 잠깐 즐겁고 괜찮지만 조금가면 다시 목말라가지고 나중엔 그거 먹으나 마나라는 것입니다. 세상 것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음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그 속에서 샘통이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받은 사람 예수님께서 주시는 진리와 영감으로 받은 생명의 역사는 완전 해갈입니다. 다시 목마른 것이 없고, 또 속에서 샘이 터져 나와 생명의 역사가 계속 솟아 올라오는 것입니다. 기쁘고 즐거움이 올라오고 시원하고 상쾌함이 올라오고 하늘의 기쁨이 솟아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고 항상 기뻐하고 항상 만족하고 항상 충만하고 다시 목마르지 않는 이 물을 예수님께서 주시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 한번 먹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마리아 여인이 그 물을 좀 달라고 하니까 뭐라고 그랬습니까? “네 남편을 불러 오너라” 그랬습니다.
3. 네 남편을 불러오라
남편 불러오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전도하시다가 처음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다른데서는 이 말씀을 하지 않으셨는데, 이 여자는 남편에 대해서 죄를 많이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없다고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네가 전에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니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남편이 없다하는 말이 옳다”고 그랬습니다. 여자는 전에 남편 다섯을 데리고 산 여자입니다. 다섯 번 죽고 얻었는지, 이혼하고 또 얻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불의한 관계로 다섯 명하고 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간 지금 있는 네 남편이 아니라는 말을 보면 현재 자기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닌 사람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통 여자 같으면 이 말을 듣고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당신이 봤습니까? 증거를 대세요. 처음 만나가지고 점잖은 양반이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그랬겠는데 여자는 이 말을 듣고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는 본문 17절에 보면,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라고 합니다. “선지자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말이 딱 맞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죄를 먼저 회개시키고자 하심
그런데 왜 남편을 불러오라고 했는지 그것이 중요한데 이것은, 네가 죄를 깨닫고 병든 줄을 알고 회개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기 때문에 남편을 불러오라고 한 것입니다. 죄를 그냥 두어두면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죄를 회개해야만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죄를 회개 시키려는데, 이 여자의 죄는 그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지적해 줘야 죄를 회개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적해 준 것입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하나 쓸데가 없고 병든 사람에게만 쓸데가 있는 것입니다. 이 여자가 병든 것을 알게 해 줘야만 의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12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그러니까 병든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필요하게 됩니다. 병든 것을 모르면 그리스도가 필요 없습니다. 의사가 필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병든 것을 고쳐주시고 죽은 것을 살리시고 생명 없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는데, 모든 것을 바로 세우려고 오셨는데, 병든 것을 모르면 예수님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한 것입니다.
자기 병을 알아야 함
“네 병을 알아라. 그래야 네가 이 생수를 먹을 수가 있다. 네 병든 것을 알고 회개하라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라 그래야 네가 이 생수를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자기 병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이 여자는 남편에 대해 병들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다른 병들 많이 있습니다. 도적질 한 것, 싸우고 다툰 것, 남을 미워한 것, 여러 가지 병든 것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고 상한 심령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예수님이 아니시면 영영 멸망 받을 줄 알고 자기의 병든 것을 깨닫고 나와야 됩니다.
그러면, 그런 남편에 대해서 지은 죄가 없이 정당하게 산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그러나 그 사람도 병이 있는 줄 알아야 됩니다. 정당하게 결혼해서 정당하게 부부생활 했어도 병이 있는 줄 알아야 됩니다. 무슨 병입니까? 마음으로 지은 죄를 깨달아야 됩니다. 마음으로 지은 병든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는 이미 마음으로 간음하였느니라(마 5:28)”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마음으로 지은 죄에 대해서 병든 줄을 알아야 되고, 또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속에 있는 부패성을 들여다 보고 병든 줄을 알아야 됩니다.
외부적인 죄, 마음의 죄, 우리 속에 가득한 여러 가지 죄
병든 줄을 알아야 되는 것은 세 가지 단계인데, 외부적으로는 이성문제나 도덕적인 문제로 죄 지은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실제로 범죄 하진 않았지만 마음으로 지은 죄, 남을 미워한 죄 또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죄입니다. 마음으로 지은 죄들이 많습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또 좀 더 한 계단 더 들어가서 무슨 병이든 줄 알아야 되느냐? 속의 부패성, 다른 사람의 죄는 티와 같다고 그랬고 네 눈에 있는 것은 무엇과 같다고 그랬습니까? ‘들보’인데, 자기 속에 있는 부패성은 들보와 같은 것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는 죄는 티와 같이 작은 죄가 나타난다고 그랬습니다.
다들 속의 큰 것들이 있는데 나타날 때는 조금씩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 속에는 큰 것이 있는 줄 알아야 됩니다. 다른 사람이 도적질 했다고 비방하는 것보다 자기 속에 더 큰 도적이 있는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왜 남편을 불러오라고 했습니까? “네가 병든 것을 알라”는 그것입니다. 병든 것을 알아라, 이 여자에게는 남편 때문에 병든 것을 알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건 지금 외부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는 “도둑질 한 것 때문에 병든 줄 알아라”, 또 다른 사람에겐 “남을 미워하고 싸운 것 때문에 병든 것을 알아라”고 하십니다.
그런 것은 외부적인 것에 있지만, 한 계단 더 들어가서 “외부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지은 죄에 대해서 병든 줄을 알아라”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계단 더 들어가면, 도둑질 한 것, 음란 등, 속의 부패성이 가득합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여러 가지 죄가 속에 있습니다. 속에 있는 것이 많이 있는데 그것이 병든 것인 줄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21-23)”고 합니다. 이것이 속의 부패성입니다. 악한 생각, 음란, 도적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광
패 등 전부 몇 가지입니까? 13가지입니다.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며 나오라
속의 병든 것을 언제나 알고 예수님이 나오실 때는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야 됩니다. 온전한 사람으로 나오지 말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교인처럼 잘 한 것 몇 개 가지고 와서 잘했다고 하지 말고, 속에 있는 죄를 붙들고 회개해야 됩니다.
바리새교인은 몇 가지 잘 한 것 가지고 나와서 감사하다고 그랬습니다. 잘한 것 무엇입니까?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십일조 드리고, 음란하지 아니하고 토색하지 아니하고, 간음하지 아니하고 세리와 같지 아니한 그 몇 가지 잘 한 것 가지고 나와서 감사했는데, 그것은 겉 껍데기 외부의 것만 아는 사람이고, 그 속의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속의 마음으로 지은 죄, 더 한 계단 더 깊이 들어가서 부패성, 이걸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은혜 받을 수 있습니까? 바리새인이 은혜 받았습니까? 예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물론 외부에 있는 죄들도 늘 회개해야 합니다. 깊은 속에 있는 부패성을 가지고 나오고, 마음으로 지은 죄를 가지고 찾아야 되고, 속의 있는 죄악성, 부패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야 되고, 자신이 깨져야 됩니다. 거꾸러져야 됩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자기가 죄인인 줄 알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거꾸러지고 깨져서 나와야 된다는 말입니다. 깨지고 상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께 필요합니다.
4.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참 예배의 장소를 찾는 사마리아 여자
그렇기 때문에, 사마리아 여자에게 그것을 깨뜨려야 되겠으니까 외부적인 것만을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지금 상한 심령을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이고 사마리아 여인을 깨뜨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병든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자인 줄 알고, 자기는 죄 값으로 멸망 받을 줄 알고, 마땅히 죽을 자인 줄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면 구원 받을 길이 절대 없는 줄을 알고, 나와서 거꾸러져서 회개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선지자로소이다’ 하고 예배 할 곳에 대해서 물어 봤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됩니까? 그리심 산에서 예배해야 합니까?”하며 참 예배를 찾으려고 애를 쓰는 정신, 사마리아 여자는 좋은 여자입니다. ‘어떻게 하면 참 예배를 드려볼까?’ 하는 그런 마음을 늘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솔직하고, 그리스도를 늘 사모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늘 기다리고 있었던 여자라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
본문 23-24절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고 그랬습니다.
‘예배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루살렘에서 해야 되느냐? 그리심 산에서 해야 되느냐?’하는데,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이 사마리아 여자는 의식적인 예배 장소를 초월해서 신령한 예배, 진정한 예배를 드려야 될 것을 배웠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솔직하고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참 예배를 찾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네가 참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려면 영적인 예배를 드려라. 신령한 예배를 드려라. 그리고 진정한 예배를 드려라”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진정’이라는 말은 ‘진리’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진리대로 예배를 드려라” 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상한 심령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오고 예수님 앞에 우리가 모든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이 아니면 살길이 없는 줄을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습니다. 나를 위해서 피 흘리셔서 대속해 주신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습니다.” 해야 되고, 그런 다음에는 영적인 예배를 드리려고 해야 됩니다.
또 참 진리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어떻게 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을까? 형식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그런 교인이 되지 말고, 또 “그리심산에서 했다. 예루살렘에서 예배 드렸다”하는 이런 것에 만족하지 말고, 참 예배를 어떻게 드릴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것은 신령한 예배인 것을 알고,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신령이라는 말은 중생한 영이 성령을 힘입어서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는 것인데,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되겠습니다. 또한, 진정이라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바로 배워서 진리의 말씀대로 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끝까지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자신을 회개를 시켜서 상한 심령을 가지고 자신을 깨뜨려 내버리는 자리로 가야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예배하라
그 다음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구속을 믿고, 참 예배를 드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참 예배는 무엇입니까? 신령과 진정인데,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형식적으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에 맞는 예배, 성경을 지키면서 순종하면서 드리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경을 어기면서 드리는 것은 참 예배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떤 곳에서는 1부 예배를 7시에 시작해서 한 시간 한다고 합니다. 1부 예배를 드리고 일 볼 사람들은 가고, 어디 갈 사람들은 가라고 한답니다. 어떤 목사가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1부 예배를 7에 나와서 8시까지 드리고 연보도 하고, 그 다음에는 놀러 갈 사람들 가고 일하러 갈 사람 가고 또 직장에 갈 사람 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옳습니까?”하고 어떤 사람이 저에게 물어봅니다. 그것은 주일 범하는 것을 허가 내주는 것입니다. 주일날 하루 종일 하나님 앞에 하루 종일 예배드려야 되는데, 하나님의 날인데, 주일날 예배당 아침에 왔다가 돌아가서는 자기 볼 장 다 보고 다니면, 그것은 주일 범하는 것을 허가 내어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그랬습니다. 성경에 맞는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안 맞는 것은 죄입니다.
예배에 모든 전심을 다하라
또한 형식적으로 나왔다 하지 말고,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신령한 예배를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회개부터 해야 됩니다. 죄를 짓고도 죄인 줄 알지 못하고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 이것을 회개하지 아니하면 신령한 세계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죄가 없다’라며, 죄 없다고 하는 사람은 외부적으로 보면 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 여자처럼 여러 남편을 얻은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속에는 마음으로 지은 죄가 다 있습니다. 마음으로 지은 죄 밑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부패성이 다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악하게 나왔기 때문에 죄악성이 다 있습니다. 이것을 회개 하면서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피가 아니면 구원받을 길이 없는 줄을 알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엎드려야 됩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십자가의 구속을 받아 들여야 됩니다.
그런 다음에 이제 영적예배를 드리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성경에 맞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요새는 성경을 다 내 버리고 예수 믿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경 다 지키라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말합니다. 주일날 지키라고 하면, “성경 다른 것은 다 범하면서 그것만 지키라고 하느냐? 다 키지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예수님이 성경말씀대로 예배드리라고 하셨으면 “예”하고 순종을 해야지, 다 못하니까 이것도 못한다고 하고, 다른 것을 못하니까 이것
도 못한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다른 것 못해도 이것부턴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것도 해야 합니다. 못하는 것을 옳다고 인정하면 안 됩니다.
예배드릴 때 신령과 진정으로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기도 많이 하고 나와야 합니다. 정성을 드려야 합니다. 힘을 써야 됩니다. 일심전력을 기울여야 됩니다. 예수 믿는데 그저 예배시간 한 시간 나왔다가 들어가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일심전력을 기울여서 믿는 일 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데 모든 정성을 다 해야 합니다.
5. 그리스도를 만난 뒤 물동이 버리고 전하러 간 여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시니까 이 여자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본문 25절에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라고 합니다. 그 말에 예수님께서 “네게 말하는 내가 그다. 내가 그리스도다(본문 26절)”하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을 볼 때, 그리스도를 고대하는 마음이 이 여자에게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언제 오실까?”하며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고대하는 신앙, 우리도 이러한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내가 그로라”하고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 여자가 믿었습니다. 믿고 그 다음에 본문 28-29절에 보니까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그 동네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여자가 물 길러 나왔는데, 물이나 좀 길어 가지고 갔다 두고서 그 다음에 전도하면 될 텐데, 그 여자가 물을 길어 갔습니까? 물 길러 나왔으니까 물 좀 길어가지고 가서 그리스도가 오셨다고 해도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물동이를 버려두고 갔습니까? 그 여자 마음엔 ‘아, 그리스도를 만났는데, 하나님을 만났는데 언제 물길을 시간이 있느냐’ 한 것입니다. 물동이 버려두고 가서, “그리스도가 오셨다”고, 또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보라”고 했습니다.
보통사람은 자기의 것을 가리기 마련인데, 자기의 행한 모든 것을 말했다는 것을 보면 솔직합니다. 가린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이 많이 와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전도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참으로 발견 했으면 전해야지 안전할 수 있습니까? 참으로 그리스도를 발견했는데 너무 기쁜 소식이니까 빨리 가서 전해야 됩니다. 물 길러 나갔다가, 통일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물 다 길은 뒤에 전하러 가겠습니까? ‘통일 되었으니까, 야! 이거 빨리 전해야 되겠다’고 할 것입니다. 또, 1945년 해방 되었다고 할 때, 이제는 일본이 항복을 하고 대동아전쟁이 끝나고 해방이라고 했을 때, 언제 물 길러 가겠습니까? 너무 기뻐서 해방되었다면서 만세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냥 걸어가며 다른 것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발견 한 것은 너무 큰일이기 때문에 물 길러 나왔지만 물동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다 버리고 가서 이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참으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가서 전하는 이 모든 일에 우선적으로 가서 전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되겠습니다. 전하는 일이 제일 첫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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