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3일 화요일

요한복음 3:1-36 니고데모와의 대화 - 중생,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니고데모와의 대화 - 중생
요한복음 3:1-36

1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2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9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11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12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22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23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24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25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나의 말한 바 나
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29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30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31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33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34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5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36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1.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중생의 도리를 물어 봄

물(말씀)과 성령으로 중생했음

본문 1-2절에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관원이라고 했는데, 이는 70인 공회원이라는 뜻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국회의원입니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께 왔습니다. 관원
의 위치에 있으면서 낮에 오면 다른 사람들에게 걸릴까 봐 몰래 온 것입니다. 여기서 ‘랍비라는 말은 선생님, 이라는 뜻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로서 온 그리스도인 줄을 믿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단도직입적으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며 거듭나는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즉, 다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본문 4절에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어떻게 다시 날 수 있습니까? 사람이 늙어서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날 수가 있습니까? 여기서 다시 난다는 것은 거듭난다, 는 뜻인데 그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본문 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난다는 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육신의 것이 아닙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에베소서 5:26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영이 다시 난다는 것입니다. 즉,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예수 믿기 전의 영혼은 다 죽은 영혼입니다. 죽은 영혼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내세도 알지 못하고 구주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려 놓으시면 다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알 수 있고 구주도 알 수 있고 하늘나라도 알 수 있고, 영적 문제도 알 수 있습니다. 물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베드로전서 1장에 확실히 증거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23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되었다, 고 하였는데 씨는 무엇입니까? 씨는 항상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거듭났다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1:18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으로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을 말씀이라고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물을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는데 거기에서 빼어낸 물이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회개하는 눈물이다, 세례의 물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칼빈은 “정화다”라고 했습니다. 물을 정화라고 한다든지 세례 받는 물, 회개의 눈물,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난 물,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다 옳지 않습니다.
세례 받는 물이라고 하면 세례를 못 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갈 수가 없고, 눈물이라고 하면 눈물을 안 흘린 사람은 하늘나라에 못 가야 하고, 정화라고 하면 말씀의 씨가 들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물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야 합니다. 성경 여러 곳에 말씀으로 중생했다고 하였으므로 말씀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 다음에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다시 나게 하셨습니다. 모태에서 육신이 났고 이제는 우리의 영이 성령으로 다시 난 것입니다. 영이 다시 난다는 것은 믿기 전의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중생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곧 말씀과 성령으로 새 생명이 시작 된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다시 난 사람들, 새 생명을 받은 사람들,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사람들이 바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음

다시 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새로 난 것이기 때문에 깨끗한 것이고 거룩한 것이며 털끝만큼도 죄가 없는 것입니다. 새 생명이므로 다시 타락하지 않습니다. 중생한 영은 다시 타락하지 않고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한 번 중생한 사람도 범죄하면 다시 지옥에 간다고 믿는 교단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한 번 중생한 사람은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는다’라고 믿습니다. 칼빈주의 즉, 장로교 교리는 한 번 중생한 사람은 다시 타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교, 루터파, 알미니안주의는 한 번 중생한 사람도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고 얘기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새로 만드셨는데, 진리의 말씀의 씨로 성령께서 만들어 놓으셨는데 어떻게 지옥에 갈 수 있겠습니까? 한 번 중생한 사람은 타락하여 지옥에 갈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믿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은 새 생명이며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고 범죄 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박윤선 목사의 요한일서 주석에 보면, 새로 거듭난, 새 사람은 범죄할 가능성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맞습니다. 새 생명이 어떻게 범죄하겠습니까? 범죄하는 것은 우리 인간 속에 있는 부패성, 그 부패성이 저지르는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새 사람인데, 옛 사람이 또 있습니다. 옛 사람은 부패성이고, 새사람은 중생한 영입니다. 우리는 중생한 영을 받았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았는데, 그것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영입니다.

중생한 증거는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지는 것임

‘내가 중생 했느냐, 안 했느냐’는 것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요한일서 5:1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중생한 것입니다. 중생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예수가 구주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지면 그것은 중생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지면 중생한 것이고, 안 믿어지면 중생하지 못한 것입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하면 예수님이 우리 속에 쏙 들어 옵니다. 예수님의 영이 들어오고 양자의 영이 들어오고 우리에게 새 생명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습니다, 믿습니다”하는 것은 상당히 좋은 것입니다. “믿습니다”, 한 마디만 해도 모든 것을 다 받은 것입니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양자의 영이 들어오는 것이고 하늘나라의 호적에 올라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이 상당한 보배입니다. 요한일서 5:18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였고, 요한일서 3:9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범죄치 아니한다고 하였고,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중생한 영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기 때문에 죄를 짓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씨는 죄가 털끝만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씨로 중생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씨는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시고 살려 놓았기 때문에 다시 범죄하지 아니하고 의(義)만 좋아합니다. 털끝만큼도 죄가 없습니다. 악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 속에 중생한 영혼만 있는 것이 아니고 육신의 부패성도 있습니다. 즉, 옛 사람과 새 사람 둘입니다. 육신의 부패성은 옛 사람이고 새 사람은 중생한 영입니다. 내 마음과 몸이 중생한 영을 따라 살면 의를 행하고, 부패성을 따라 살면 죄를 짓게 됩니다. 속에 부패성이 있으므로 그것을 따라 살면 죄를 짓고 중생한 영을 따라 살면 의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중생한 영을 따라 살면 의의 병기(兵器)가 되는 것이고 부패성을 따라 살면 죄악의 병기, 불의한 병기가 되는 것입니다.

중생은 하나님의 단독적인 역사임

본문 8절에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역사로 중생 시키신다는 뜻입니다.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와 같이 됩니다. 자기도 알지 못합니다. 중생은 하나님의 단독적인 역사입니다. 협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협력해서 중생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단독적인 역사로 살려 놓는 것입니다. 

살려 놓을 때에 어떤 사람은 거꾸러져서 회개하기도 하고, 또 살려놓았지만 자기도 알지 못하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그러다 얼마 후에 중생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은 당장에 중생한 것이 나타났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예수님께서 물으실 때 “주여 뉘시오니이까”하며 바울이 당장에 거꾸러져서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중생을 해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언제 중생했는지 몰라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면 그것은 중생한 것입니다. 안 믿어지는 것은 중생한 것이 아닙니다. 

믿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믿음을 주셔서 예수가 구주인 것을 믿어지게 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죽은 영혼이 아니고 산 영혼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그 영혼이 죽은 영혼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려 놓으셨는데, ‘나’라는 인간 속에 중생한 영도 있고 부패성도 있습니다. 

중생한 새 사람과 육체의 부패성인 옛 사람이 싸움

한 사람 가운데 중생한 영인 새 사람과 부패성인 옛 사람이 있습니다. 새 사람과 옛 사람이 싸웁니다. 로마서 7장에 선을 행하고자 하지만 악이 함께 하고 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한다, 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중생한 영이 있기 때문에 새 사람이지만, 또 부패성이 있기 때문에 옛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옛 사람으로 살지 말고 새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중생한 영으로 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십니다. 중생한 영 속에는 말씀이 내재해 계시고, 성령께서 내재해 계십니다. 또, 외부에서도 말씀과 성령이 감동을 시키십니다. 중생한 영의 안에서 성령과 말씀이 내재하심으로 역사하시고, 또 영 밖에서도 성령께서 감동을 시키시고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부패성은 마귀가 함께 합니다. 우리 속의 부패성은 마귀가 충동을 시켜서 죄를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패성은 죄를 짓자는 것이고 중생한 영은 성령과 합하여 의를 행하자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겠는데, 중생한 영은 성령과 합하여 의를 행하자는 것이고 부패성은 마귀와 합하여 죄를 짓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따라가야 하겠습니까? ‘나’라는 사람, 그 마음과 육체가 어느 것을 따라가야 하겠습니까? 중생한 영을 따라가면 그것은 의를 행하고 부패성을 따라가면 그것은 마귀를 따라가는 것이 되어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이 장성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옛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옛 사람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죄악입니다.

갈라디아서 5:19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옛 사람의 첫째가 음행입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好色)은 모두 성적인 죄입니다. 그리고 우상 숭배, 원수 맺는 것, 술 취하는
것 등 모두 19가지입니다. 술 한 잔 마시는 것도 옛 사람입니다. 새 사람은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고 성령을 따라 살게 됩니다. 옛 사람은 마귀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이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나야 함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바른 복음을 전해 주었는데, 아직도 젖이나 먹고 밥을 먹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3:1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고린도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지만 그들은 자라나지 못했습니다. 중생한 영이 자라나서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하겠는데, 아직 어린아이의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중생할 때는 어린 영의 상태이며, 점점 자라나야 합니다. 장성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중생시켜 놓았으니 이제는 자라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그에게까지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까지 자라나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처음에는 어린아이로 중생했지만 점점 자라나야 합니다. 어디까지 자라나야 할까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은 왜 자라지 못했습니까? 그들은 육신에 속했기 때문에 자라나지 못했습니다. 시기와 분쟁으로 육신에 속했기 때문에 자라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물욕과 정욕과 사욕, 시기와 분쟁, 이러한 것들 때문에 자라나지 못하고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했습니다. 자라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과 성령으로 새 생명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분명히 새 생명을 받았지요? 받았으면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자라나지 못하고 내내 그대로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매우 죄송스러운 일입니다. 자라나야 합니다. 자
라나려면 육에 속한 모든 것을 다 제거해야 합니다. 옛 사람을 죽이고, 쳐서 복종을 시켜야 합니다. 이기주의, 욕심의 사람, 정욕의 사람, 물욕의 사람, 이러한 것들을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과 말씀의 인도를 받아서 자라나야 합니다. 자라나서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장성한 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송스러운 일입니까?

어느 집에 아이가 여럿인데, 하나는 자라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겨우 뒤집기나 합니다. 아이들이 여덟 달이면 걸어 다녀야 합니다. 저는 창광교회 아이들을 보면 몇 달이나 되었느냐, 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여덟 달에 걷지 못하면 책망을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보통은 여덟 달이면 걸어 다녀야 합니다. 그런데 걷지도 못하고 세 살 나도 굴러다니고 열 살 나도 굴러다니고 스무 살 나도 굴러다니고 마흔 살 나도 굴러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자신은 자라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무엇이 틀렸다고 폄론을 하기도 합니다. 자기는 아직도 굴러다니면서 말입니다.

넉 달 난 것도 굴러다니고 한 살 난 것도 굴러다니고 열 살 난 것도 굴러다니고 마흔 살 난 것도 굴러다니면, 그 부모가 얼마나 걱정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 지금 말한 이 상황보다 조금이라도 낫게 보실 것 같습니까? 우리는 몇 살 났습니까? 신앙의 연령이 몇 살입니까? 잘 걸어 다니십니까? 달음박질 잘하세요? 몇 십 년 되었어도 아직도 걸어 다니지 못하고 자라나지 못한 아이의 상태로 있는 사람, 큰일 났습니다. 신앙의 연령이 스무 살, 마흔 살이 되었는
데 아직 일어서지도 못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걱정하시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기도원이 이곳으로 옮겨 온 지가 금년이 13년째입니다. 그 전에 고천기도원에서 18년을 보냈으니 이제까지 31년입니다. 또, 그 전에 삼각산, 관악산 다 합하면 신앙 연령이 40~50세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40~50세 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라났는가, 보면 자라나지 못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처럼 육신의 소욕이 있기 때문에 자라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젖이나 먹여야 잘 먹지, 단단한 음식은 먹일 수가 없어서 먹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자라나려면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또, 자라나면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젖이나 먹고는 건강 유지를 할 수 없습니다.
어렸을 때는 젖만 먹어도 괜찮습니다. 잘 자라납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나이가 들어가면 젖만 먹여서는 안 됩니다. 이유식을 먹이다가 그 다음에는 단단한 식물인 밥이나 빵 같은 것을 먹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라나려면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단단한 식물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5:12-14에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교
역자들은 교인들에게 신, 구약 성경을 단단한 식물로 먹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라납니다. 또, 자라난 사람은 그것을 먹어야 합니다. 젖이나 먹어 가지고서는 안 됩니다. 신, 구약 성경을 초보적인 교리로 가르치는 것이 젖으로 먹이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믿으면 된다, 믿으면 된다”, 여기까지만 인도하는 것이 젖으로 먹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단한 식물은 거기서 좀 더 진보하여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해석과 신령한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깊이 해석하여 신령한 뜻으로 먹어야 자기 영이 힘을 얻고 자라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젖이나 먹어서는 안 됩니다. 교역자들도 밤낮 초보적인 것만 하지 말고 단단한 식물을 먹여야 성도들이 자라납니다. 

‘노아의 방주’를 젖으로 먹이려면 “예수 믿는 사람은 다 방주에 탄 것이다”라고 하면 됩니다. 그러나 단단한 식물로 먹이려면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를 만들어야 한다, 인격을 만드는 것이 방주 짓는 일이다, 예수를 믿고 예수의 형상대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 방주 짓는 일이다”,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홍수는 환난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자기 실력을 만들어 나가야 앞으로 환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단단한 식물을 먹이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 말씀을 단단한 식물로 먹일 수 있고 또, 젖으로 먹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라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나이가 얼마나 되었기에 아직도 자라나지 못하고 아이 상태로 있습니까? 작년보다 조금 자라났습니까? 자라나야 합니다. 자라나지 못하는 것은 육의 사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즉, 영의 사람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자라나지 못한 것입니다. 중생한 영을 써서 영의 양식과 단단한 식물을 먹고 소화 시키어, 그러한 노력으로 점점 자라나서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와서 이루어지고 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자라나고 의가 자라나고 지식이 자라나고 영이 자라나야 합니다.

2.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 받을 자가 없음

본문 9절에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중생의 도리가 땅의 일입니다. 왜 땅의 일인가, 하면 땅에 있는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일은 신령한 일 즉,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신 일 등이 해당됩니다.

본문 13절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인자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온 자이고 또, 예수님 밖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 한 분만 하늘에 가셨는데, 가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와 있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다 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 가는 배가 하나 밖에 없다고 합시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하고 보니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와 있습니다. 어떻게 왔습니까? 한 척 뿐이지만, 그 배를 탄 사람은 다 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갑니다. 밖에서는 못 갑니다. 이것은 천하인간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 받을 자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본문 14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뱀에게 물려 많이 죽었는데, 모세가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았을 때에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실 것인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다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신, 구약 성경의 요절입니다. 

본문 17-21절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빛 가운데로 나오면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워서 빛을 미워하고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좇는 자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하기 때문에 빛을 좋아합니다.

3.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함

본문 22-24절에 “이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한 때입니다.

본문 25-30절에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신랑이고 성도들은 신부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잡이로 온 사람이며, 예수님의 신부는 예수님께 다 돌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즉, 예수님은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는 것입니다. 자기가 쇠하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가 흥하여야 하겠고, 나도 흥하여야 하겠다”, 즉, 예수님도 흥하고 자기도 흥하면 어떻습니까? 둘 다 흥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러면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가 흥해지려면 자기가 쇠해져야 합니다. 둘 다 흥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나, 예수’로 ‘나’ 다음에 ‘예수’를 놓습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 나’, 그 다음에는 ‘나’는 없어지고 ‘예수’만 남게 됩니다. ‘나, 예수’는 틀렸습니다. 또, ‘예수, 나’도 틀렸습니다. 나는 없어지고 예수님만 남아야 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신부가 신랑에게 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신부의 친구들은 들러리를 섰다가 신부를 신랑에게 잘 인도하면 됩니다. 자기는 아무 것도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잘 한 것입니다. 그
러나 그 들러리가 신부를 신랑에게 인도하고, 자기도 조금 붙잡으려고 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 흥하고 진리만 흥하고 교회만 흥하고 하나님의 영광만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 하나님의 일만 잘되고 교회만 잘되고 복음 운동만 잘되고 예수님이 하시는 구원역사만 잘되고 참 교회를 세우는 일만 잘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잘 되어야겠다’ 는 태도가 바른 신앙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되겠고 나도 흥하여야 되겠다’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면 그는 흥하고 나는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라며 신랑에게 다 돌려보내야 합니다. 신랑에게 모두 돌려보내고 자기는 빈털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만 잘되면 나는 쇠해도 좋다, 교회만 잘되면 나는 쇠해도 좋다, 복음운동만 잘되면 나는 쇠해도 좋다’, 이러한 신앙이 바른 신앙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 예수’는 안 됩니다. 나, 다음에 예수를 갖다놓으면 안 됩니다. ‘나’ 다음에 ‘예수’를 갖다 놓고 ‘나’ 다음에 ‘교회’를 갖다 놓고 ‘나’ 다음에 ‘복음운동’을 갖다 놓고 ‘나’ 다음에 ‘교단’을 갖다 놓으면 안 됩니다. 나는 쇠해지고 그만 흥해지도록 하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둘 다 잘될 수는 없습니다. 영도 잘되고 육도 잘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육이 죽어야 영이 잘 되겠는데, 어떻게 둘 다 잘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는 죽어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는 것을 배워가지고 나가면 큰 일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둘 다 흥하여야 하겠다는 것은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적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본문 31-32절에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위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부터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시지만 그 증거를 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본문 33-36절에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주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한량없이 와서 역사 하신다는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살아있는 영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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