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5일 목요일

요한복음 5:10-47 병 나은 자의 신앙생활,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병 나은 자의 신앙생활
요한복음 5:10-47

10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12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15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17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19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21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 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28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30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31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32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 인줄 아노라 33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34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35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36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37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38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40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
로 오면 영접하리라 44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45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그라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1.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심

38년 된 병자 고친 날은 안식일이 되기 때문에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간다고 핍박이 들어왔습니다. 

본문 10절에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 날은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안식일에 네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1절에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라고 하였습니다. 병 나은 사람이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본문 12-13절에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주의로 안식일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을 건져내는 일,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안식일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유대인들은 율법주의에 치우쳐서 선한 일도 알지 못하고 정죄하였습니다. 그러면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되겠습니까? 안식일이 오늘날 주일로 변경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토요일이 안식일인데 신약시대에는 주일로 변경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4:7에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너희 마음을 강팍케 말라 하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을 다른 날로 정했다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이 토요일이었는데 주일로 변경되었습니다.

히브리서 7:18에는 “전에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페하였다는 것은 구약시대의 계명은 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날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주일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부활로 인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안식을 주신 날(요 20:19), 유월절 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행 2:1-4), 성부께서 계시 주시던 날(계 1:10)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날입니다.

그러면 안식일(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요새도 율법주의자가 있고, 폐법주의자가 있고, 율법을 바로 이용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 가지 종류입니다. 폐법주의는 율법을 다 없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무엇을 사도 괜찮다고 합니다.

율법주의는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주의도 아니고, 폐법주의자도 아닙니다. 율법을 바로 지키자는 주의입니다. 율법을 바로 지켜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율법을 폐했다고 하면 십계명을 다 버려야 됩니다. 즉 십계명을 범해도 괜찮다고 해야 됩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20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율법을 다 철폐하면 무엇으로 죄를 깨닫겠습니까? 예수님은 내가 율법을 폐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러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신앙에서 떠난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해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했고, 또 한 가지는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므로 영의 양식이 되어서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다 폐지하면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안식일을 주신 목적은 엿새 동안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안식하셨으므로 너희도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하다가, 제 칠일에 가서는 다 쉬라는 것입니다. 소나 양이나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자녀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다 쉬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날입니다. 또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받는 것이 주일입니다. 주일을 지켜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벌써 구원을 받았습니다. 안식일은 하나
님이 주신 안식을 받는 날이므로 주일에 영적안식을 받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왜 주일을 지키라고 했는가? 주일을 지키므로 영이 자라나고, 구원을 이루어 나갑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장차 너희에게 영원한 안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안식하는 때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4:9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일을 지키면서 하나님이 앞으로 영원한 안식을 줄 것을 바라보며 나가는 것입니다. 즉 천년 왕국, 영원한 안식, 이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 대해서 우리가 율법주의대로 나가면 안 됩니다. 율법주의는 주일에 아무것도 하면 안 됩니다. 율법주의는 주일에 무엇을 하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즉 주일 날 병을 고쳐도 안 되고,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해방시켜도 안 되고, 또 5리 이상 가면 안 되고, 주일에 길가로 가다가 풀밭으로 가면 안 되는 것 등 세밀한 법칙을 가지고 유대인들이 지켰습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자입니다.

그와 반대로 오늘날 폐법주의자가 많은데 폐법주의자는 안식일을 안 지킵니다. 주일날 사는 것, 파는 것, 일하는 것 등 다합니다. 또 어떤 교회들은 토요일에 노는 사람들을 흡수하려고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을 다른 날로 고치려고 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주일에 대한 개념들이 다 없어졌습니다. 새벽예배 때에 “연보만 하고 가면 된다, 또 토요일에 와서 연보만 하고 가면 된다”는 식입니다. 이것이 폐법주의자들입니다. 이 다음에 하나님이 무엇을 가지고 심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바로 이용하여 안식일을 바로 지켜서, 율법의 근본 정신되는 죄를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것이 첫째입니다.

그 다음에 주일을 지키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을 받는 것이 주일을 지키는 큰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을 받아서 7일간 그 안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영적 안식도 되고, 육신의 안식도 됩니다. 또한 주일을 지키므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일을 해야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됩니다. 안식일의 궁극적인 목적은 장차 오는 안식으로, 천년왕국을 통과해서 영원한 안식이 있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적 안식을 받는 동시에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또 죄를 깨달아 회개하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정신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예수님이 병을 고치셨다고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잘한 것입니다. 또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식일의 근본정신입니다.

2. 병 나은 자의 생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본문 14절에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였는데 이 사람이 병난 것은 죄 때문에 병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8장에서도 간음하다 잡혀 온 여자에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다시는 죄를 범치 않아야 됩니다. 끊어 버려야 됩니다. 죄는 완전히 다 떠나야 됩니다.

예수님을 증거함

본문 15절에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고 증거 했습니다. 핍박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가서 나를 고친 분은 예수님이라고 증거 했습니다. 핍박이 두려워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핍박이 무서워서 전도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어떠한 핍박이 와도 우리가 가서 전할 것은 전해야 합니다.

3.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본문 16-17절에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이 세상일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병 고치는 일, 마귀 좇아 내는 일, 사람을 구원하는 일 등 이런 일을 아버지께서 일하시므로 예수님께서도 일한다는 것입니다. 주일에 사람을 살려내는 일, 마귀를 쫓아내는 일, 구렁텅이에서 건져내는 일, 불쌍한 사람을 구원해 내는 일 등을 아버지께서 하시기 때문에 예수님도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친아버지라고 한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 핍박했습니다. 

본문 19절에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한다고 했는데 우리도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대로 하면 됩니다. 그러면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무엇을 하든지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대로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이 만능으로 붙드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하십니다.

본문 20-22절에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죽은 자를 살리는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께 맡겼습니다. 또 심판하는 권세도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맡겼습니다. 

본문 23-24절에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4절이 중요한 구절입니다. “내(예수님)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이미 얻었음)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하였습니다. 

“내 말을 듣고”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또 “나 보내신 이”란 하나님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새로 번역한 바른성경에서는 요한복음 5:24의 말씀이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의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하였습니다. 바른 성경이 더 확실합니다. 기존의 성경에는 “나 보내신 이
를 믿는 자”라고 하였는데, 바른 성경에서는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라로 여기 “분”이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말합니다. 이제 새로 번역한 성경이 금년 말(2007년 말)에 나올 예정인데, 원문대로 번역이 잘 되어 나올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다음에 누구를 믿으라고 하였습니까? 보내신 분, 즉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이 다음에 얻습니까? “얻었고”는 과거사로 벌써 영생을 얻었습니다.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다음에 옮기는 것이 아니고 벌써 옮겨 놓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사람은 영생을 벌써 얻었다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영원히 사는 영생이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영생을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도 영생이고, 또 중생한 영이 날마다 살아 나가는 것이 영생입니다.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였는데 벌써 옮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벌써 영생을 얻어 놓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지옥 가려고 해도 못갑니다. 죽으려고 해도 못 죽습니다. 죽지 않는 생명으로 중생시켜 놓았기 때문에 한 번 중생한 영혼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구원을 벌써 얻었습니다. 구원을 얻으려고 믿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세례문답 할 때에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어 봅니다. 그 때 “천당 가려고 믿습니다”로 답변하면 “천당 가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렇다고 해서 압니다”라고 답변하면, “그럼 목사님이 못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다시 물으십니다. 그 때는 입이 딱 막힙니다.
예수을 믿는 것은 구원받으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받아 놓았으므로 그래서 믿는 것입니다. 천당은 벌써 가 놓은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떼어 놓은 당상입니다. 하늘나라는 우리의 공로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로 거저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저 먹는 것입니다. 천당에 가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우리를 대속해 주었기 때문이며, 또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새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공로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노력한 공로는 영혼이 자라나는 것, 하늘나라에 가서 상 받는 것입니다. “행하는 것”은 행함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데 관계가 있습니다. 즉 하늘나라에 가서 상 받는 것에 관계가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권세와 관계가 있고, 하늘 나라의 면류관과 관계가 있습니다. 

본문 25절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자란 영혼이 죽은 자를 말합니다. 안 믿는 사람은 다 영혼이 죽은 자로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는 때가 오는데 곧 지금 왔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믿으면 살아납니다.

4.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본문 26-29절에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두 가지 부활이 있습니다.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습니다. 즉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예수 믿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선과 의를 받았으므로 생명의 부활로 영생에 들어갑니다. 악을 행한 사람은 안 믿는 사람으로 심판의 부활로 지옥에 갑니다. 믿는 사람은 부활해서 천당에 가고, 안 믿는 사람은 부활해서 지옥에 갑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법관 앞에 섰을 때에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다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믿는 사람의 부활은 예수님이 공중 재림하실 때에부활하고, 안 믿는 사람의 부활은 천년왕국이 다 지난 후에 마지막에 가서 심판의 부활을 합니다.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 사이가 천년 이상입니다. 천년세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구약에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을 한꺼번에 말을 했는데 어떻게 그 가운데 천년이 있느냐?”고 하며 반대합니다. 한꺼번에 말했다고 해도 몇 천년 간격이 있
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 회당에서 읽으신 누가복음 4:18에 “눌린 자를 해방한다(살려 놓는다), 은혜의 해를 전한다”고 하였고 이사야 61:1에 심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4:18-19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61:1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 61:1에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
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은혜의 해 전파하는 것은 예수님의 때에 이루어진 것이고, 신원의 해는 마지막 심판입니다. 이천년 이상 차이가 있습니다. 한 절에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을 한꺼번에 말했다고 해도, 그 가운데 몇 천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년 왕국이 다 지난 후에 악한 자가 부활 할 수 있습니다.

본문 30절에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 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자기 원대로 하지 않고, 아버지의 원하는 대로 하면 그것은 참된 것으로 하나님이 한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5. 켜서 비취는 등불

본문 31-37절에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 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 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 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 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 하는 것이요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 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고 하였습니다. 등속의 불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성령이시고, 요한은 빛을 내보내는 등불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보다 더 큰 빛입니다. 예수님은 빛 자체이시고, 요한은 그 빛을 비취어 내어 보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큰 증거라고 했습니다. 등이 빛을 잘 비취어 내어 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빛이 있는데, 등이 빛을 잘 비취어 내어 보내려면 시커먼 것이 묻어 있으면 안됩니다. 등의 유리에 무엇이 묻으면 빛을 잘 비취어 내어 보내지 못합니다. 깨끗하게 닦아서 투명한 유리가 되어야만 잘 비취어 나갑니다. 거기에 더러운 것이 와서 묻어 놓으면 잘 비추어 나가지 못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아무것도 묻지 않은 깨끗하고 맑은, 투명적인 그런 자리에 있어야 그리스도의 빛이 잘 비추어 나갈 수 있습니다. 

6. 성경에서 영생을 얻음

본문 38-39절에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영생이 있는 줄 알고, 늘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되고, 성경에서 자기의 갈 길을 찾아야 되고, 성경에서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하루 10장
이상씩 성경을 읽는 것이 참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하루에 몇 십장씩 읽는 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7. 자기 영광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라

본문 40-44절에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서로 영광을 취하므로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영광만 취해야 되겠는데 인위적인 영광, 자기 수단 방법으로 해서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다 악한 일이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45-47절에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고소한다는 것은 모세오경이 너희를 정죄한다는 뜻입니다. 즉 율법이 정죄한다는 것입니다. 모세오경에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다 있습니다. 창세기 3:15과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운다 너희는 그 말을 들으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온다는 것 입니다. 또 소나 양을 잡아서 제사하는 것도 그리스도가 와서 너희를 위해서 속죄 제사 드려줄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모세오경은 다 그리스도를 예언했습니다. 또 유월절, 초막절, 안식 일, 안식년과 같은 절기도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입니다. 모세오경에 전부 그리스도를 예언해 놓았는데 너희가 모세를 믿었다면 나를 믿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오경을 안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약과 구약이 같은 것입니다. 구약 에서 신약이 나왔습니다. 신약을 알려면 구약을 알아야 됩니다. 구약을 폐지한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신약이 나왔기 때문에 구약에 신약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구약 속에 신약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오경을 믿었다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모세오경을 신앙의 모체로 가지고 거기서 신앙의 진리를 찾아내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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