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5일 목요일

요한복음 6:5-14 떡 다섯과 물고기 둘을 바친 아이의 신앙,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떡 다섯과 물고기 둘을바친 아이의 신앙
요한복음 6:5-14

5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7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10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12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침

그것을 가져오라

예수님께서 “그것을 가져오라”할 때에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바쳤습니다. 모든 사람을 앉게 하고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니 오천명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복음에 보면 먹은 사람이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자와 아이를 합하면 만 명이 넘을 것입니다. 

갈릴리 벳세다 들판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시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와서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 하니 빌립이 각 사람으로 조금씩 먹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은 지금으로 말하면 한 이천만원 정도 됩니다. 빌립이 이천만원 정도의 떡을 사서 준다고 해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천만원어치의 떡을 사오라 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너희에게 얼마나 있느냐?고 물어 보시고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바친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

아이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치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찾아가신 것이 은혜입니다. 즉 예수님이 거기에 가서 말씀을 가르쳐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또 아이가 거기에 참여한 것이 은혜입니다. 그 다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고, 굶어서 돌아갈 수 없는 환경을 만난 것이 은혜입니다. 또 떡을 주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는 그런 상황을 만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먹을 것을 주어야 될 환경, 주지 않으면 안 될 환경, 또 바쳐야 될 환경, 바치지 않으면 안 될 환경을 만나게 된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이가 점심 먹으려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싸가지고 갔던 것이 분명한데 예수님이 그것을 “가져오라”고 한 것이 큰 은혜입니다. 즉 바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종자 심는 것과 같고 하나님께 꾸이는 것과 같음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주는 것이며 하늘나라에 쌓아놓는 것입니다. 또 이다음에 상급으로 베풀어 주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바쳐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아이가 자기가 먹을 것을 생각하고 안 바칠 수 있습니다. “먹고 남은 것이 있으면 바칠 수 있지만, 남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바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자기 개인의 생각을 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 순종해서 다 바쳤습니다. 절반만 바친 것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은 “절반만 가져오라”고 한 것이 아니고, “다 가져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절반만 가져와도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이적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없다고 해서 오천 명을 먹일 수 없겠습니까? 구약 시대에 만나를 내려서 육십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십 년간 먹게 한 것을 보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없어도 오천 명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육십만 명을 사십년간 먹였는데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또 절반 가져와도 오천 명을 다 먹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그 때 아이는 예수님의 말씀에 “가져오라”고 하였으니 “참 감사합니다” 하고 다 갖다가 바쳤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종자 심는 것과 같고 하나님께 꾸이는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9:10에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라고 하였고, 잠언 19:17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또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종자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종자 하나를 심으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가 맺힙니다. 또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일은 큰 복입니다. 또 바칠 환경을 주신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남아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하나님이 상급으로 갚아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바친 후에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면 먹고, 안 주시면 안 먹을 예산을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 바치는 것이 제일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아이가 다 바쳤습니다. 이것이 큰 믿음입니다. 자기 재산 전체를 다 바친 것입니다. 과부가 엽전 두 푼 바칠 때에 예수님이 많은 부자보다 많이 바쳤다고 칭찬 했는데 그것은 자기의 재산 전체를 다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부가 많이 바쳤다고 하신 것입니다. 또 이 아이도 가져온 것 전체를 다 바쳤으므로 많이 바쳤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칠 기회를 주시고, 또 바칠 일감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것을 가지고 일하시려고 하는 때에 바치는 것이 큰 은혜입니다. 이때 안 바치면 하나님이 모든 역사를 나타내시려고 주신 것을 다 잃어버립니다. 이제 큰 역사를 나타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2. 인간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역사

빌립이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야만 된다고 하였습니다. 빌립은 계산을 잘합니다. 빌립의 신앙은 타산적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계산이 들어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회계법에는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한 것이 없으시고 모든 것을 다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빌립은 그것이 아니고 타산적입니다. 하나에 하나 더하면 둘, 둘에 하나 더하면 셋, 이렇게 계산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계산법

하나님의 계산법은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산법은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하나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또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열을 만드시는 하나님이시고, 열에다 하나를 더하면 백을 만드는 하나님이시고, 백에다 하나를 더하면 천을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일자에 0자 하나를 두면 10이 아닙니까? 또 거기에 0자 하나를 두면 100입니다. 하나님의 숫자는 이것보다도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그런 결과가 나타납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을 보면 얼마나 큰 역사입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위대합니다. 미련한 자를 지혜롭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드는 하나님이시고, 무식한 자를 유식한 자보다 더 능하게 만드는 하나님이시고,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능
력은 한없습니다. 빌립을 시험코자 하신 것은 빌립의 타산적인 신앙을 버리게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축사하시고 오천명을 먹이심

아이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치므로 빌립의 타산적인 신앙이 깨어져 나갔습니다. 오병이어를 바친 아이의 신앙이 빌립의 신앙을 바로 세웠습니다. 오병이어를 바칠 때에 주님이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또 자기도 기뻤을 것입니다. 오병이어라 함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말합니다. 자기가 먹는 것보다 예수님께 바치는 것이 얼마나 더 기쁩니까? “예수님이 이것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실 것이다, 무슨 일을 하시나 보자, 예수님이 공연히 떡 다섯 개를 바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잡수시려고 한 것도 아니고, 또 누구에게 주려고 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려고 이것을 바치라고 했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하나 보자”하고 바치고 기다렸는데 예수님이 떡을 가지시고 축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떡을 가지고 축복 하실때에 축복이 임했습니다. 떡 바친 아이에게도 축복이 임했습니다. 오천명에게도 임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크게도 하시고 많게도 하시고, 몇 천개도 만드시고 몇 만개도 만드시는 이런 큰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떡 다섯 개 가지고 떼어주면 또 나오고, 떼어주면 또 나아옵니다. 물고기도 떼어주면 또 나오고 떼어주면 또 나옵니다. 그래서 아이가 바친 것으로 오천 명이 잘 먹었습니다. 지금 말하면 오천명 굶어 죽을 것을 살려 놓았습니다.

얼마를 가지고 살려 놓았습니까? 오병이어를 바침으로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다 배불리 먹고 만족했습니다. 떡 바친 아이는 안먹었겠습니까? 아이도 먹었습니다. 아마 먼저 주었을지 모릅니다. “네가 바쳤지? 먼저 받아 먹어라”했을지 모릅니다. 안 바치고 먹은 것보다 아마 더 많이 먹었을 것입니다. 떡 다섯 개 가지고 무엇을 하겠습니가? 물고기도 멸치보다 약간 큰 것 같았을 것인데 그것 먹어봐야 얼마큼 먹겠습니까? 또 떡도 조그마한 것 얼마큼 먹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 바치니 먹고 또 먹고 더 먹을 수 있습니다. 열 개도 먹을 수 있습니다. 아이의 신앙의 결과로 자기도 살고, 많은 사람을 살리고, 많은 사람에게 만족을 주고, 자기도 만족을 얻는 이런큰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3. 하늘나라에 행한 일이 따라감

그리고 하늘나라에 이것이 쌓여졌습니다. 오병이어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쌓여진 것입니다.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친 것이 남아 있습니다.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면 이 아이가 하늘나라 가 있을텐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따라다닐 것 같습니다. 어떤 아이냐? “이전에 벳세다 들판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친 아이다, 아 그런가”하며 다 우러러 볼 것 같습니다. 어떤 아이가 바쳤는지 한 번 보면 좋겠습니
다. 우리는 말만 듣고 보지는 못했지만 한 번 보면 “아! 저분이 오천 명을 살린 분이로구나, 저분이 몇 만명을 살린 분이구나”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 “하늘나라에 갈 때에 행한 일이 따라 간다”고 하였습니다. 

당나귀 바친 사람에게는 당나귀가 따라가고, 다락방을 바친 마가 요한은 다락방이 따라가고, 또 독자를 바친 아브라함에게는 독자를 바친 것이 따라갑니다. “저 분이 독자 바친 분이다, 저 분이 다락방 바친 분이다, 저 분이 당나귀 바친 분이다, 저 분이 오병이어 바친 분이다” 다 따라갑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아이대로 있겠는가? 어른대로 있겠는가?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면 서른 한 살이나 서른 세 살쯤으로 다 변화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너무 늙었다고 걱정할 것 없습니다. “다리 아프다, 또 어디가 아프다” 하지만 그 때에 가서는 아픈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일시에 다 낫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삼십 일 세나 삼십 삼세쯤 되겠는데 그 때 “저 사람이 오병이어를 바쳤다, 저 사람이 바친 것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살아났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다,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타났다, 저 사람이 바친 것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구주로 알게 되었다”라고 할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란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아이가 오병이어 바친 결과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 것이 확실히 증거가 된 것입니다. 즉 전도가 잘 된 것입니다. 몇 만 명에게 전도가 된 것입니다. 얼마 안되지만 그것을 가지고 많은 사람에게 예수께서 그리스도인 것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역사입니까? 

4. 오병이어 표적의 참 뜻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가리킴

보리떡이라도 바치면 큰 역사가 나타남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이적을 행하신 표적의 참 뜻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떡은 예수님의 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리떡은 떡 가운데 제일 하급 떡입니다. 보리떡은 맛도 없습니다. 또 보기도 좋지 않고, 색깔도 좋지 않고, 값도 쌉니다. 떡 가운데 하급 떡이지만 이것을 바치면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나타내서 많은 사람을 살려나가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 이것은 보리떡과 같은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바치면 그것을 가지고 큰 역사를 하나님이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바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바치기만 하면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지난 금요일에 대구 은산교회에 입당 예배를 했습니다. 교인은 열두 명인데 예배당은 아주 잘 지어 놓았습니다. 열두 명이 돈도 없는데 전세대금 육천만원을 빼어 일억 팔천만 원 짜리 큰 예배당을 지어 잘 놓았습니다. 그 목사가 하나님께 바치는 정신이 있습니다. 자기 몸을 바치고, 생명 전체를 바쳐놓고 나가는 정신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큰 역사를 나타내셨습니다. 아무리 보리떡과 같은 사람이라도 몸을 바치고, 생명을 바쳐놓고 순종해서 나가면 하나님이 그것을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축복해서 크게도 하시고, 많게도 하셔서 큰 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하나님이 받으시고, 하나님의 일에 쓰십니다. 또 당진에 송전교회라고 있는데 작년에 예배당을 짓고 입당예배를 했습니다. 그 교회가 돈이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 목사가 아이 대학 공부시키려고 오천만원 저축해 놓았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다 바쳤습니다. 교인들도 목사가 다 바치니까 다 바쳤습니다. 농촌이라도 예배당을 잘 지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이 받으시고 큰 역사를 이루어 놓으십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증거한 오병이어 표적

오병이어의 궁극적인 표적의 참 뜻은 떡은 예수님의 살을 상징하는데 예수님의 살을 몇 억만 조각 찢어가지고 많은 사람을 살려나가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이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쳤는데 그것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증거하게 되었습니다.요한복음 6:53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오병이어의 이적은 예수님의 살을 몇 만 조각, 몇 억 조각, 몇 조 조각, 몇 경 조각, 몇 해조각까지 많은 사람에게 찢어서 생명의 양식으로 준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오병이어를 바칠 때에는 “예수님이 바치라”고 하여서 바친 것입니다. 또 바쳐야 될 환경을 주었기 때문에 좋은 때를 만난 것입니다. 바쳐야 될 환경과, 상황 또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 이것이 있을 때에는 큰 복이 임한 것입니다. 그 때에는 순종만 하면 복이 떨어집니다. 당장에 복이 떨어져서 자기가 그것을 다 먹은 것 보다 몇 배나 더 먹을 수 있고, 또 많은 사람을 살리고, 그 다음에 하늘나라에 쌓여지고,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이 증거가 되고, 하나님의 큰 능력이 많은 사람에게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인 것을 증거하게 되었고, 하늘나라에 가면 일생동안 그것이 따라 다닙니다. 

마태복음 10:42에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 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연보해야 될 환경, 연보해야 될 상황이 닥쳤을 때 바치는 것이 은혜입니다. 

자기 먹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바쳤지만 더 많이 먹게 되었고, 많은 사람을 살리게 되었고, 하늘나라에 쌓이게 되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는 일생동안 따라 다닙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일생동안이라면 몇 년 이나 되겠습니까? 그것은 영원토록입니다. 아이 볼 때 마다 “아, 저 사람이 오병이어를 바쳐서 많은 사람을 살린 사람이구나, 저 사람이 오병이어를 바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인 것을 증거한 사람이로구나, 하나님의 큰 능력을 나타내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게 한 사람이로구나, 저 사람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많은 사람에게 증거한 사람이로구나”하는 것이 항상 따라 다닙니다. 참 영광스러운 가운데 들어간 것입니다. 하늘나라 가면 영원한 자기 인격이 되는 것이고, 자기가 자라나는 것이고, 자기 믿음을 거기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영원토
록 따라 다니고 하나님의 상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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