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6일 금요일

요한복음 6:26-35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요한복음 6:26-35

26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28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30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33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1.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자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다 썩어지고 없어지고 맙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영원히 생명체로 남아있고 영생체로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하시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표적의 참 뜻을 모르고 떡을 먹으려고 따라오는 자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 먹이신 후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다 먹은 일을 얘기했습니다. ‘우리가 다 그 떡을 먹고 왔다’고 선전하므로, 그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모여서 왔습니다. 자기도 떡 한번 얻어 먹어보려는 사람, ‘어떻게 그런 큰 이적이 나타날 수 있는가?’하며 이적을 보기 위해 온 사람, 호기심으로 온 사람 등, 여러 사람이 많이 모여왔습니다. 그런데 전날에 오천 명이 왔으니까 다음날은 몇 만 명이 모여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이 몰려온 것을 보고 반가워하시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많은 사람이 자기를 따라오면 반가워하고 좋아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26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나를 찾아왔다”하시며, “어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였으니까 오늘 또 떡 먹여줄 줄 알고 너희가 찾아온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찾아온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기에,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도록 하라고 바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2에 보면,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고 했습니다. 큰 무리가 따라왔는데 병인에게 행하신 표적을 보고 따라왔다고 했습니다. 본문 26절에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고 하십니다. 본문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고 그랬고, 요한 6:2에는 ‘표적을 보고 따라왔다’고 그랬습니다. 두절이 모순이 되는 것 같습니다. 6:2에는 ‘표적을 봤기 때문에 따라왔다’고 그랬고, 본문 26절에는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다’라고 그랬는데, 지금 본문에 모인 사람들은 그 전날 5000명을 먹이신 표적을 보고 따라왔던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표적을 본 까닭에 따라온 것이 아니요 떡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왔다”라고 했습니다. 

표적은 영을 살리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표적, 이적,기사는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서 한 표적들이고,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떡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온 것은, 표적의 참 뜻은 모르고 외부적인 면, 물질적인 면, 육체적인 면만 본 것입니다. 떡 먹고 배부른 면, 그런 면만 보고 따라왔다는 뜻입니다. 그게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도 표적의 참 뜻을 보고 따라가는 사람도 있지만, 외부적인 면, 육체적인 면, 물질적인 면, 이런 면만 보고 따라가는 교회와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예수님께서 책망한 것입니다. 영이 살아서 예수님을 따라가느냐? 참으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그 살과 피에 의해서 따라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어떤 다른 면, 육체적인 면, 세상적인 면, 물질적인 면, 그런 면을 보고 따라가느냐. 그런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육체적인 ‘떡’을 먹고자 오는 자는 썩는 양식을 먹는 것임

오늘날 교회들에 이런 물질 면을 보고 따라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다. 전도하는 데에도 물질공세를 해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한 사람 나오면 그 사람에게다가 많은 선물을 줍니다. 그렇게 많이 줘가지고 물질로 이끌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유년부 아이들도 육체적으로 즐겁게, 교회 가서 육신이 좋아하는 노래 부르는 것과 향락주의, 방탕, 교회 와서 그런 것을 많이 하고 성경은 몇 마디만 가르쳐줍니다. 노는 게 70-80% 되고, 성경 한 구절만 20%나 30% 가르쳐줍니다. 이렇게
하면서 교인들, 학생들도 많이 먹는 것을 위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오는 것과 같고, 병 낫기 위해서 따라온 것이나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병 고쳐주어서 따라왔다’고 했는데, 그런 것은 다 육체적인 면 아닙니까? ‘육신의 병이 나았다’, ‘이적을 행했다’고 하는데, 이적도 외부적인 것입니다. ‘병 고치려고 따라왔다’는 것이 다 표적을 본 까닭에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나가면 복 받는다’고 합니다. 복 이라는 건 이 세상 물질적인 면을 말하고 있는데, ‘교회 나가면 돈 잘 번다’, ‘사업 잘 된다’, ‘교회 나가면 결혼 잘 한다’는 이런 면을 말합니다. ‘교회 나가면 친구가 많이 생긴다’, ‘봐주는 사람이 많다’, 또 ‘교회서 도와준다’는 이것을 보고 따라오는 사람들은 전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또 ‘교회 나가면 출세한다’고 하는데, 그 무슨 국회의원들은 교회 나가면 표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교인들 표 얻으려고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런 게 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교회 나가면 좋은 데 취직시켜준다’고도 하는데, 믿는 사람 중에 사업체가 많으면 좋은 데 취직시켜준다는 것이 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교회 나가면 집사 된다, 장로 된다, 한자리 한다’는 것들은, 한마디로 말하면 전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여간 육체적인 면은 전부 ‘떡’입니다. 세상적인 면이 전부 ‘떡’입니다. 물질적인 면이 전부 ‘떡’입니다. 그런 것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다 썩는 양식입니다. 전부 썩는 양식이니까 얼마가면 전부 썩어지고 맙니다.

자기네 고향사람이라며 그것을 따라간다고 고향사람들끼리 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 잘못된 것입니다. 함경도사람들끼리 모인 교회가 시청 앞에 하나있고, 노량진에도 하나있습니다. 또 이북사람끼리 모인교회, 전라도 사람끼리 모인교회, 경상도사람끼리 모인 교회, 그런 교회가 더러 있는데 전부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네 고향 친척 따라가는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니까 전부다 ‘떡’입니다. 영이 아닌 건 전부 육이고 세상입니다. 영이 아닌 건 다 떡입니다. 떡을 먹고 배 부르려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자기 욕망 채우려고, 배부르고자 하는 욕망 채우려고, 허욕 채우려고, 자기 소원 성취하는 것이 전부 ‘배부르고자 하는 까닭으로 쫒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소원 성취한다’는 그런 것이 다 떡입니다. ‘좋은 학교 들어간다’는 것도 떡입니다. ‘사업 잘된다’는 것 다 떡입니다. 

2.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자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그러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뭔가? 그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요한복은 6:53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 6:56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 이것은 한번 먹으면 영생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아니하고, 계속 먹으면 영생의 생명으로 자라납니다. 그럼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영생하도록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믿는 것이 먹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29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것, “믿습니다!”하고 믿는 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 요한 6:56에 예수 안에 거하는 자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시게 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그로 인하여 사는 것’입니다. 요한 6:57에,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는 생활’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 그분 때문에 사는 것, 그가 주시는 힘과 생명으로 사는 생활, 그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

그럼, 예수님의 살을 먹는다는 것의 첫째는 도성인신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믿습니다”하는 것, 도성인신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모든 고난을 다 당하시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신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죽기까지 복종해서 생명을 저희에게 주신 것을 믿는것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입니다. ‘피를 먹는다’는 건, “내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피 흘려 준 것을 믿습니다”하는 겁니다. 내가 죽어야 할 대신, 내 죄로 인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이적 행하신 근본목적은 이것입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주려고 이적을 행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근본목적을 모르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 왔다는 겁니다.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도, 거기서 먹이신 떡은 ‘예수님을 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오천조각 몇 만 조각으로 찢어서 많은 사람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주실 것을 가리키는 겁니다. 

떡을 나눠줄 때에 예수님의 살을 나눠주실 것을 믿어야 할 텐데, 그건 믿지 않고 떡만 먹고 가는 것입니다. 소경이 눈 뜬 것도 영적 소경을 눈 뜨게 하시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것입니다. 그저 눈만 뜨면 안 되고, 영의 눈이 떠져야 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것도 영의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걸 알려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벙어리 고치심도, 영적인 병을 고쳐주시려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신 면도 있습니다. 문둥병자를 고쳐주신 것도 죄로 인하여 썩어
져가는 영적상태를 고쳐주심을 알게 하시려고 고쳐준 겁니다. 

영이 사는 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임

우리에게 향하는 모든 것을 다 예수님과 결부시켜야 됩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결부되어서, 이걸 통해서 예수님을 더 가까이 하고, 더 알고 더 회개하고 더 살고, 바로서고 영이 사는 이런 자리에 나아가야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다시 말하면 ‘영이 사는 것’입니다. 영이 사는 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 나와 상관이 없다”고 그러시면서 떡을 안주고 책망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달아났습니다. 따르던 제자들이 많이 물러갔습니다. 떡은 안주고 자기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니까 다 달아난 것입니다(요 6:66). 

결국 열두 제자만 남았습니다. 다 달아나고 열두제자만 남았는데, “너희도 가려느냐?”시며 가려면 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두제자들을 붙들고 사정하려는 게 아닙니다. ‘너희까지 가면 어떡하냐’고 사정하시는 게 아니라, 열두제자만 남았을 때 너희도 가려면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시몬베드로가 뭐랬습니까?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 6:68)”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진짜입니다. 영생 때문에 따라온 것입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온 것이 아닙니다. 말씀 때문에, 영생 때문에 따라왔다는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요한복음 6:63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고 한 것은, 영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고 육의 것은 무익하다는 것, 썩는 양식은 다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다 썩고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영이 사는 것만 영생하도록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교회 다닌다면 영이 살아야합니다. 영이 살기 위해서 교회 나와야 합니다. ‘육은 무익하다’고 했는데, 육신적인 것과 육신의 모든 것은 무익하다는 말입니다. 육신의 병 낫는 이적행하는 것이나 육신적으로 잘되는 것이 전부다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명륜 교회에서 교회에 잘나오는 믿음이 좋은 처녀가 있었는데 약혼을 했습니다. 심방을 가니까 윤 할머니가 그 처녀보고 좋은 남자랑 약혼했다고 복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방 끝난 다음에 나오면서“뭘 복 받았다고 그랬느냐?”하니까, “좋은 신랑 만나서 복 받았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에 뭐라고 했느냐? 영이 잘되어야 복 받은 거지, 육신이 잘되는 것이 뭐가 복 받은 거냐? 앞으로 그런 소리하면 심방 안 데리고 다닌다”고 했었습니다. 

좋은 데 취직했다는 것이나 좋은 학교에 들어갔다는 것이 복 받은 게 아닙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이 됐다’, ‘의사시험에 합격했다’는 게 무슨 복입니까? 조금 있으면 다 썩어져 없어집니다. 또 ‘죽었다 살아났다’고 하는데, 나사로도 죽었다 살아났지만 다시 죽었습니다. 그것도 육의 것입니다. 죽었다 살아나는 바람에 영이 살게 되면 괜찮습니다. 그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 됩니다. 영은 살지 못하고, 육신만 죽었다 살아났다고 한다면 그건 무익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의 것이냐? 육의 것이냐? 세상적인 것이냐? 영적인 것이냐? 물질적인 것이냐? 신령한 거냐?”하는 이걸 분별할 줄 알아야합니다. 그런데 분별할 줄 모르겠으면 “영이 살아야한다”는 것이 진짜인줄 알아야합니다. 

교회 나와서 영이 살아야 됩니다. 좋은 말 듣고 가는 거 다 쓸데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락교회 갔다 왔는데, 한경직 목사가 설교 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슨 말 했냐고 물었더니 모릅니다. 영이 살았다면 그런 말 하지 않습니다. 영이 사는 것 하고 사람 귀에 근사하게 잘하는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지식이 많은 것처럼 백날 해도, 영이 살지 못하면 아무 쓸모없습니다. 

설교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도 영만 살려 놓으면 대성공입니다. 최권능 목사는 설교 잘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예수천당!” 한마디 하니까, 영혼이 펄쩍 살아난 모양입니다. 한번은 최권능 목사가 새벽에 지나가려니까, 부엌문 떡 열어놓고 있는 집이 있길래 들여다 보니까 젊은 여자가 조반에 놓을 쌀을 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가 ‘예수천당’ 갑자기 했는데, 그러는 바람에 이 여자가 놀래 가지고 쌀바가지를 다 뒤집어엎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쌀바가지는 뒤집어엎어도, 예수바가지는 뒤집어엎지 마시오”하고 도망왔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교회를 갔답니다. 그 여자가 강단에 나와 인사하더랍니다. 젊은 여자가 누군지 모르겠어서 모른다고 하니까 자기가 쌀바가지 뒤집은 여자라고 했답니다. “목사님께서 한마디 해 준 바람에 정신이 버뜩나서 회개하고 예수 믿는다”고 했답니다. 그와 같이 생명을 살려놓은 것이 중요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육신의 썩는 양식은 다 무익합니다.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갑니다. 남는 것은 영이 산 것만 남습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만 남습니다. 요한 6:63에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는 말씀, 이게 중요한 말입니다. 즉, 말씀이 생명이란 것입니다. 

말씀으로 영이 살기 위해 기도전념

그러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어떻게 먹어야 합니까? 말씀으로 먹어야 됩니다. 말씀을 생명으로 받고 영으로 받으면 그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건 믿는 거라고 했습니다. 살과 피를 믿는 것,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것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이 사는 것,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을 가지고 영이 살고 생명이 살아야 됩니다. 

또한 말씀과 성령이 합해서 역사합니다. 그 둘이 합해서 영을 살리는 역사를 해나간단 말입니다. 영이 살면 다른 데로 가라고 해도 못갑니다. 말씀으로 생명이 살아났으면 그 말씀을 죽어도 못 떠납니다. 가라고 해도, 베드로가 “영생하도록 있는 말씀이 주께 있사오매 우리가 어디로 가오리까”한 것처럼 됩니다. 

말씀으로 영이 살려면 기도 많이 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하고, 말씀을 생명으로 삼아야 합니다. 말씀을 배워서 생명으로 삼아야 됩니다. 기도 많이 하는 게 중요합니다. 한 30년 쯤 전에 일본에 처음으로갔었는데, 그때 김정근 목사가 가는 곳이 있다고 해서 선교대회 있다는 데에 따라갔습니다. ‘치바’라는 변두리 쪽에 있는 곳인데, 거기 어떤 교회에 갔는데 ‘야마따’라는 목사가 담임목사입니다. 새벽에 그곳의 사람들이 새벽기도를 하는데, 청년들 6~7명 모여서 책상하나 놓고 둘러앉아서 기도를 하는데 오랫동안 기도를 합니다. 그렇게 같이 한 2시간씩 한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둘러앉아가지고 기도를 하던데, 들어 보니까 그 학생들을 사당에 보내가지고 교회를 세운다고 합니다. 
 
기도 많이 하고 성경말씀을 가르쳐주면 생명이 살아납니다. 생명이 살아나면 다른데 가서 교회 세울 수 있습니다. 사는 게 중요한데, 우리 신학생들도 기도 많이 하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많이 배우고, 영으로 배우고 생명으로 배우고, 그렇게 하면 자기 영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먹어가지고 영이 살아납니다. 계속 먹어나가야 됩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뭐라고 했습니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63절에 나왔듯이 말씀입니다. ‘말씀을 먹는 것’이 영생하
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또 영으로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명의 양식 으로 해서 먹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이 자기에게 생명이 되고, 힘이 되고, 말씀의 힘에 의지해서 걸어가는 사람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먹고 순종하고, 말씀을 먹으니까 순종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영이 살아나가는 양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고,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참으로 하나님으로 사는, 생명의 길을 걸어 나가는 저희가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