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의 살과 피를 먹으라
요한복음 6:26-40, 53-59
요한복음 6:26-40, 53-59
26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28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30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33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38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5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57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58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1. 믿음으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라
인자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인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53절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고 한 것을 보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만 우리 속에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어떻게 먹을 수가 있겠는가? 이게 어려운 문제인데, 그걸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를 믿는 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고,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떡 먹고 배부르고자 예수님께 옴
본문 26-27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인과 아이 외에 5천명이나 먹이셨습니다. 여기에 보면 5천명을 먹였다고 했는데, 여인과 아이 합하면 만 명이 훨씬 넘을 것입니다.
그 다음날은 더 많은 무리가 따라왔습니다. 소문이 많이 나서, “아,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난 부스러기를 주우니까 12바구니에 찼다”는 소문이 각 처에 퍼졌기 때문에, 그 다음날은 그 떡 얻어먹으려고, 그리고 이적을 한 번 보려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그 사람들에게 다시 떡을 해 먹이실 수도 있었지만, 이적으로 떡을 먹여 주실 수 있지만, 그렇게 먹이지 않으시고 그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시며, 그들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왔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 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표적의 참 뜻을 보고 온 것이 아닙니다.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라는 말은 오병이어의 참 뜻은 깨닫지 못 하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너희가 따라 온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에게 “썩는 양식을 위해서 왜 일하려고 하느냐?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너희가 일하라!”고 바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면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 왔다는 것은 그 무슨 뜻인가? 그 5천명은 떡 먹이실 때 와서 배가 불렀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물질적인 만족, 물질적인 충족, 만족이 된 것인데, 이것을 위해서 너희가 따라왔고 욕망을 채우려고 따라왔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볼 때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물질적인 만족이나, 육신적인 만족, 그런 것을 위해서 따라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 썩어질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썩는 양식임
기독교는 물질적인 만족, 감정의 만족, 혹은 육신의 만족, 지식의 만족, 인간요구의 만족, 그런 것을 주는 종교가 아닙니다. 인간 요구의 만족, 육신 욕망의 만족, 감정의 만족, 이런 것을 주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큰 이적을 보고 놀라서 따라 오는 것도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 오는 것이고, 썩는 양식을 위하여 따라 오는 것입니다. “큰 이적을 봤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는 큰 이적을 봤다. 그러니까 따라가자!”는 그건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 가는 것입니다. 또, “병을 고쳤다. 병을 고쳐 주었다.”는 병을 고쳐 주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병 나음을 받은 사람이 병이 나았기 때문에 따라왔다는 것도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따라 오는 것이고, 그건 썩는
양식입니다. 또는, “하나님의 큰 역사를 봤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적으로 살아났다. 죽을게 살아났다.”, 또는 “학교 붙었다. 하나님의 이적으로!”, 또 “직장에 취직했다. 사업이 잘 되었다. 하나님의 이적으로! 하나님께서 도와서!”이러는 것도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인 것이고 썩는 양식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건 다 지나가고 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다는 것, “앉은뱅이가 낳았다. 내가 앉은뱅이였는데 일어났다.”, “소경이었는데 눈 떴다”라고 하지만, 그것도 그 사람이 죽고 나면 다 도로 눈 감을 것입니다. 결국 다 썩어질 것입니다. 소경이 눈 떴어도 그 사람이 죽으면 눈 감을 게 아닙니까? 죽으면 썩어질 거 아닙니까. 그것을 위하는 것도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이적을 봤다는 것, 복이 따라온다는 것, 그것들이 다 떡을 먹고 배부
른 까닭에 따라 오는 것이고, 육신의 만족 때문에 따라 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따라 온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 썩어질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추풍령에 기도하러 다녀오는데 아침에 버스타고 왔습니다. 그런데 버스에 사람들이 많이 탔었는데 할머니들이 여러 사람 타서 말하기를, 아 희한한 능력이 나타났다고 막 떠들어 댔습니다. 그래서 무슨 희한한 능력이냐고 물어보니까 앉은뱅이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자기 교회에 용무산파에서 와서 부흥집회를 했는데 자기네 동네에 앉은뱅이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한한 능력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빨이 한 쪽 빠진 할머니가 그거 희한하다고 떠들어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앉은뱅이 일어섰으면 그 앉은뱅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아직까지 살았겠습니까? 살아있다고 해도 몇 십년내로 죽을 겁니다. 백년내로 다 죽을 겁니다. 그 앉은뱅이 일어섰다고 해도 그런 것은 썩어질 것이고, 썩는 양식이고,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이적이 큰일이 아닙니다.
2. 표적의 참 뜻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가라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떡이다
그런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 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하십니다. 표적을 본 까닭에 따라 온 것이 아니라는 것, 표적의 참 뜻을 보고 따라 온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큰 이적을 행했는데, 그것의 참 뜻이 무엇인가? 참 뜻은, 예수그리스도가 생명의 떡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려는 것입니다. 이 떡을 오천 사람에게 먹이는 것처럼, 몇 만 사람에게 먹이는 것처럼,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신데, 이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을 몇 만 사람, 몇 억만 사람에게 다 나누어 주셔서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시는 것을 가르쳐주시느라,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입니다. 사람들 배부르라고 먹이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인데,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시고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을 교훈하시느라고 상징적으로 그 이적을 행한 것입니다.
본문 3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라고 그랬습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는다. 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요, 하늘에서 내려온 떡입니다. 또한, 생명의 생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다고 그랬습니다. 생명의 떡 되시는 예수님, 영생의 양식이신 예수님, 우리 영혼을 살리는 양식되시는 예수님, 또한 우리에게 생수를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30-31에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가 되셨고 구속함이 되셨습니다. 또, 지혜가 되시고 거룩함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의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구속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사람이어야만 영생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그 속에 생명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껍데기만 가지고 다니면 아무 생명이 없고, 아무리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이적을 보고 떡을 얻어먹고 병을 고침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건 아무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만 그 사람 속에 생명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게 됩니다.
3. 예수의 살과 피를 먹는 방법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먹어야 하는데, 먹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는데, 어떻게 하여야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겠는가?
예수께로 와야 함
첫째는, 예수님에게로 가까이 와야 합니다. 본문 37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로 오는 게 첫째입니다.
예수님에게로 오는 것은 어떻게 올 수 있는가? 예배에 다 나오는 것도 예수님에게로 오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예수님에게로 왔습니다. 그러나 껍데기만 오는 건 진짜 오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와야 됩니다. 예배당에 몸이 왔으면, 그 다음엔 마음이 예수님에게로 가까이 와야 합니다. 몸이 예배당에 와 앉아 있어도 마음은 딴 데 가서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무 소용 없습니다.
마음이 시장에 가서 돌아다니고, 집에 도둑 오지 않겠는지, 아이들 어떻게 되지 않겠는지에 팔리고, 누구 손님 오지 않겠는지 신경 쓰는이런 건 다 예수님에게로 마음이 오지 않는 사람입니다. 또는 장사하는 생각, ‘내일 뭐 해야겠다’는 생각하고 앉아있으면, 그건 아무 소용없습니다. 전심전력을 예수님에게로 기울여서 예수님에게로 와야 합니다.
마음이 예수님에게로 나오는 사람, 자기 죄를 알아 자기가 죄인인줄 알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알고, 자기는 죄인인줄 알고 나와야합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그랬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는 것과 같이,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올 때는 자기가 죄인인 줄을 알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나와서 기도할 때도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을 먼저 해야 합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대속주로 믿어야 함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믿어야합니다. 그를 믿고 나와야합니다. 예수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을 했습니다. 이천년 전에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것,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지만, 유대나라에서 나셨지만, 그 예수님의 영은 영원부터 하나님의 삶이자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아들의 영이 예수님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찾아오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으로서도 이와 같이 올 수 있으셨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온 것이 더 사람에게 친근하게 사람의 사정을 다 알아주실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다 체험도 하시고, 또한 사람의 죄를 대속해 주시려고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사람이라야 사람의 죄를 대속 할 수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슨 보통의 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공자나 석가모니나, 무슨 그런 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사람 가운데 좀 나은 사람으로 알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이제 그 분이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었다가 삼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이제는 그 분을 믿고 나오는 것입니다. 나와서 믿는 것입니다.
첫째는 나오는 거고, 그 다음엔 믿는 겁니다. 믿는데, 어떤 예수님을 믿어야 된다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또,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서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또, 그 일생동안 그 몸을 나를 위해서 다 희생해 주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살을 먹는다는 것, 피를 마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법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신 것이 내 죄 때문에 흘려주신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게 피를 마시는 것이고, 피 먹는 것입니다. 살을 먹는 방법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그 몸을 십자가에서 희생해 주신 것을 믿는 것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입니다. 나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시고, 내 죄 때문에, 나 위해서 일생동안 희생해 주시고,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그 예수님을 ‘믿습니다!’하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습니
다. 내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피 흘려주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또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희생해 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믿습니다!”하면 그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내 속에 와서 역사합니다. 그건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믿는다 하면 예수님의 살과 피가 영적으로 내 속에 와서 역사합니다. 죄는 다 사해지고, 하나님의 의를 입혀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죽었던 영혼을 살려 놓으십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납니다. 그것이 중생입니다.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영혼이 살아납니다.
예수 안에서 살아야 함
그 다음은 예수님 안에서 살아야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 먹는 방법은 예수님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본문 56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자기 속에 모시는 사람, 그 사람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참으로 먹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어려운 문제인데 잘 들어야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라는 말입니다. 어떤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나를 위해서 피를 흘려주신 예수, 나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예수를 믿으라는 말입니다. 또, 삼일 만에 살아나신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께서 내 생명이 되시는 것을 믿으면 생명이 됩니다. 실제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내가 예수 안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주안에,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 된다’고 그랬습니다. 자신이 예수 안에 살면 ‘생명과 성령의 능력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한다(롬 8:2)’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그런 믿음,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로마서 8:1-2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죄를 다 사해 주시고, 우리는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영생의 생명을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주었습니다. 믿는 사람 속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은 다시 죽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데, 그 생명은 다시 죽는 법이 없습니다.
포도나무에다가 가지가 접붙임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는 포도나무고 우리 믿는 사람은 가지인데, 포도나무 가지를 그 원목에다가 접붙였단 말입니다. 우리는 들 포도였는데 참포도 나무에다가 접붙였습니다. 피로서 연결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상처를 입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접을 붙여서 생명의 연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산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제는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났습니다. 우리 영혼이 예수님의 생명과 연합이 되었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삽니다. 믿는 사람은 그 육신이 죽어도 영혼이 삽니다. 또한 우리의 영혼이 영원히 안 죽습니다. 죽어도 안 죽습니다. 벌써 영혼이 살아났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영혼은 이제는 그대로 하늘나라 갑니다. 죽는 법이 없습니다.
육신은 썩어질 장막 집이고, 장막 집 벗어놓고 나면 그곳엔 산 영혼이 있는데, 산 영혼이 이 육신의 장막에 숨어 살다가 이 장막 벗어놓고 그대로 하늘나라에 가서 사는 겁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자동차 타고 오다가 자동차 안에서 나와서 집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자동차 타고 올 때도 산 사람이고, 집에 들어간 다음에도 산 사람입니다. 자동차만 빈 자동차입니다.
육신의 몸은 이렇게 자동차와 같습니다. 우리 중생한 영이 육신의 몸을 쓰고 살다가, 자동차 가지고 살다가, 자동차에서 나와서 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동차 안에서 산거나 집에서 산거나 산건 마찬가지입니다. 그 영혼은 죽는 게 아닙니다. 우리 영혼은 산 영혼입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 사는 생명인데, 우리 속에 예수님을 우리 마음속에 영접하는 신앙, 그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그게 먹는 생활입니다.
예수로 인하여 사는 생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생활은, 본문 57절에,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생활’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생활입니다. ‘인하여 산다’는 말은 무엇인가? 그를 힘입어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힘입어, 그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산다는 것은,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그 역사가 내 속에 이루어지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그 말씀이 내 속에 생명이 되는데,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이 ‘인하여 사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생활은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로 말미암아서 사는 것, 힘입어 산다는 것인데,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힘입어 산다는 것입니다. 또, 그의 역사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역사! 그 역사를 힘입어서 사는 것이고, 제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대로 살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인도를 따라서 사는 생활입니다.
주가 인도 하시는 대로 삽니다. 예수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인도하시면 겟세마네 동산으로 따라가고, 골고다로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면 골고다로 따라가는 겁니다. 어디든지, 십자가로 인도하시면 십자가로 따라가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 갔다고 했습니다. 어디든지 따라가는 겁니다.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시면 예루살렘으로 따라가고, 또는 잡혀서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는 대로 인도하시면 환난과 결박을 당해도 따라가고, 죽음이 앞에서 기다려도 예수님께서 그리로 인도하시면 그래도 죽음의 골짜기로 따라 가는 겁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 생활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인도하는 대로 따라 가는 생활이 살과 피를 먹는 생활이고, 계속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라 가는 생활, 그 말씀대로 생명을 삼고 나가는 생활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생활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고 정성을 많이 드려야 하고, 힘을 많이 써야하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하고, 그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이 속에서 넘쳐야 합니다. 주의 살과 피를 먹는 사람은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많이 먹는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이 많습니다. 또 예수님을 사랑 하는 마음도 많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조금 먹은 사람은 그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 마음은 조금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별로 없습니다. 그 마음은 조금이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만 많습니다. 또,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만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돈 사랑하는 마음만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믿긴 믿지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많이 먹지 못 한 사람입니다. 조금 맛이나 보고 따라 다니고 생명의 역사가 미약합니다. 그래서 가다가 쓰러집니다. 마귀의 유혹에 다 실패
당하고 맙니다.
4. 예수를 믿고, 넘치는 감사와 기도로 전심전력할 것
그러니까 “예수를 믿습니다!”하고 믿는 것이 첫째고, 믿는데 어떤 예수를 믿어야 하냐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릴 위해서 피 흘려주신 예수님, 다시 부활해주신 예수님, 생명이 되어 주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에 대해서 이제는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 나와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마음을 예수님께 기울여야 합니다.
마음이 떠나면 다 떠난 거라고 그랬습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예수님에게 기울이고, 진액을 예수님을 위해서 짜서 바치고, 주를 위해서 희생을 많이 해야 합니다. 일심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할때부터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 안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제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하고, 새벽기도 특별이 해야 합니다. 유년 주일학교 맡은 반장들은 새벽기도를 해야 합니다. 반장들 오늘 새벽기도에 안 나온 사람들 손들어 보십시오. 이다음부터는 거꾸로 되어서 나오는 사람 손들라고 그럴 때 다 들어야겠습니다. 거의 다 안 나오고 몇 사람 나왔습니다. 새벽기도부터 나와서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 하고, 힘을 다하여서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정성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방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안에 산다고 그랬습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방법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여야 예수님 안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이, 우리 심령이 예수님 안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방편이 기도입니다. 회개와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생활,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생활을 하며 온유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순종하는 겁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야 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 나와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별로 없는 사람은 예수의 살과 피를 먹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살과 피를 계속 먹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한 번만 먹고 그만두지 말고, 계속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매일 먹어야합니다. 매일 그 예수님의 살과 피의 역사가 우리 속에 있도록 구속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매일 예수님의 새 생명을 얻고, 매일 예수님의 새 생명으로 사는 것, 새로운 역사가 있는 것, 새로운 말씀이 생명이 되는 것,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매일 힘이 되고, 생명이 되고, 노래가 되고, 매일 예수님의 역사가 속에 있는 사람, 감동이 매일 있는 사람
이 되어야 합니다. 그 생명의 역사가 중단이 안 되어야 합니다.
신앙이 잠자는 사람은 그 살과 피를 먹지 못 하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도 없고, 생명의 역사도 없고, 속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워서 나오는 마음도 없고, 그리고는 맹숭맹숭한 것입니다.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아니하고, 맹숭맹숭한 사람은 그 시간에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지 못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고 전엔 먹었지만, 지금 주께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과 간절한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과 뜨거운 마음이 없고, 주님을 향해서 어떻게 하든 나가려는 그리스도의 역사가 속에 없다고 하면, 그 사람은 죽은 믿음입니다. 또한 이 시간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지 못 하는 시간입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하라고 하면 기도할 게 없습니다. 속에는 맹숭맹숭하고 아무것도 없는데, 기도하려해야 할 게 있겠습니까? 그래서 심방 데리고 가보면, ‘오늘은 나 기도시키지 말라’고 부탁을 합니다. 오늘 자기 기도시키지 말라고 하고, 기도하라고 해도 할 게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시킬까봐 겁냅니다. 그래서 어딜 가면 머리 푹 숙이고 앉아있습니다. 자기 보고 기도시키면 안 되겠으니까 얼굴 모르게 하려고, 머리를 땅에다 박고 앉아 있습니다. 머리 뒤만 보입니다.
5. 예수의 살과 피를 언제나 먹으며 영생하는 자
언제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모하고, 그 생명으로 살려고 애를 쓰고, 주님을 영접하고, 주와 더불어 영적 교통을 하고 회개하면서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주의 생명이 속에 있고, 그 말씀으로 생명을 삼고, 그리스도의 생명의 인도와 능력의 인도를 따라가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은 늘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영혼이 점점 자라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의 영혼이 점점 자라나고, 능력이 있게 되고, 강하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되고, 모든 것이 자라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우린 날마다 먹고, 날마다 그 역사로 말미암아 새 생명의 길을 걸어가고, 날마다 자라나가고, 날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커지는 그런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죽어도 안 죽습니다. 그 사람은 육신이 죽어도 영혼은 그대로 하늘나라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살다가 저기서도 사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으로 말하면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에 가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또는 미국 사람은 미국서 살다가 떠나서 여기 한국 온 것과 같습니다. 안 죽
은 겁니다. 살아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한재철 목사가 세상을 떠났는데 가보니 다 울고 있습니다. 세상 떠났다고, 가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한재철 목사는 죽은 것이 아니고 살았다. 한재철 목사가 살아있다는 걸 믿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육신의 장막 치고 살다가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로 가서 살려고 이사 가는데, 이사 가는 날 울고 있습니까? 이사가서 거기서 사는데 왜 웁니까.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의 역사,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우리 영혼이 날마다 살아야합니다. 이게 아니면 다른 건 아무리해도 다 썩어질 양식입니다. 이건 썩지 않을 양식이고, 다른 것들 ‘무슨 이적을 봤다’, ‘병이 나았다’, ‘무슨 큰 복을 받았다’, ‘물질로 많이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 줬다’, 또 ‘좋은 직장을 얻었다’는 것은 다 썩어질 것입니다. 다 없어지고, 다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예수로 말미암아 영혼이 산 것,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생명이 된 것, 생명이 자라난 것, 이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영생하도록 남는 양식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만 따라가고,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가고, 주의 뜻이 아니면 가지도 말고, 하지도 말고, 주의 뜻대로만 살고, 주의 인도만 따라가고, 주님으로 생명을 삼는 그 길로만 걸어가야 우리가 영생을 해 나아갑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영원히 사는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우리는 가지고,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이제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저희가 다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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