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살과 피에 생명이 있다
요한복음 6:47-64
요한복음 6:47-64
47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49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52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57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58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60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61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64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1.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생명이 없음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제사와 이적들
예수님의 살과 피에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그랬고, ‘인자의 피를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느니라고 하셨는데,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제사 할 때에는 양이나 소를 잡아서 그 피를 가지고 제사했고, 또 제단에는 떡을 올리는데, 진설병이라는 떡을 가져다가 제사를 했습니다. 그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실 것을 가르치는 제사였고, 떡은 예수님의 살을 우리를 위해서 희생 하실 것을 가르치시는 제사입니다.
광야에서 모세 때에는 만나가 내려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광야 40년간 하늘에서 만나라는 떡 가루가 내려와서 40년간을 그것을 먹었습니다. 그것도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살을 생명의 떡으로 우리에게 주실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그 만나를 내려 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도 그때 굶주린 사람을 일시적 구제하겠다는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떡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이고, 그래서 예수님이 당신의 몸을 5천 조각 혹은 몇 만 조각, 몇 억만 조각으로 나누어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줄 것을 상징하는 이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된다는 것은 구약시대부터 예수님께서 전도할 시대에까지 모든 것을 통해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아니면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야말로 우리에게 생명이 있게 합니다.
요나의 표적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에게 바리새인들이 와서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시대가 표적을 구하니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요나의 표적 외의 어떤 표적이든 보여줘 봐야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나의 표적’이라는 것은 요나가 삼일 삼야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살아나온 이적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혀서 삼일동안 장사 지내셨다가, 무덤 속에 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을 가르쳐 주는 이적이었습니다. 요나의 사적은 사실인데 그 일을 왜 하나님이 하셨는가 하면, 장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땅속에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그런 이적을 요나를 통해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야말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48절에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고, 본문 51절에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면 영생합니다. 영원히 죽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의 살은 생명의 떡이고, 예수님의 피는 우리에게 죄 사함과 생명을 주는 피 입니다. 사죄와 새 생명을 주는 피 입니다. 요나의 표적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인데, 이것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 죄를 속해 주실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지 못 하면 다른 아무런 것을 다해도 쓸 데 없다는 것입니다. 죄 값으로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사형 받을 사람에게 다른 이적을 행한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면 무슨 소용이 있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면 또 무슨 소용이 있고,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이적이 나타나면 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또, 천사의 방언을 하면 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죄 값으로 멸망하여야 할 사람에게는 요나의 표적,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부활로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 이 이상 더 큰 표적이 없고, 이 이상 더 중요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적이고, 가장 우리에게 필요한 이적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부활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며 분명히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다시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2.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방법
믿는 것이 먹는 것임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가?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피를 먹긴 먹어야 하고 살을 먹긴 먹어야 살겠는데, 그래야 영생을 얻는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죄 값으로 다 멸망해야 됩니다.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했고 모든 사람이 죄 때문에 다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어야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 영생을 얻겠는데, 어떻게 먹고 어떻게 마셔야겠는가?
예수님의 살을 먹는 방법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 구원하시려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나를 위해서 희생해 주신 예수님을 믿어야 됩니다. 주께서 나를 위해서 일생동안 희생해 주셨습니다. 하늘영광을 내어 놓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모든 고난을 다 당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모든 희생을 다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 의를 이루어 주신 것을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 몸으로 의를 이루어 주신 것을 믿는 것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입니다. 또한, 날 위해서 죽어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날 위해서 몸을 버려 주시고, 못 박혀 주시고, 날 위해서 생명을 다 희생해 십자가에서 죽어 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사형 받아야 하는데, 내 죄 값으로 예수님이 대신 사형 받아서 죽어주신 것을 믿는 이것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입니다.
또한, 나를 위하서 부활해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 방법이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방법은 내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피 흘려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피에는 생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레위기 17:11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생명이 피에 있다고 하였고,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피에 생명이 있고,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피 흘려주셨습니다. 주께서 피를 안 흘리시면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무슨 선을 행하고, 좋은 일을 하고, 마음의 도를 닦아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에게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피를 흘려야 합니다. 자기가 피를 안 흘리면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흘려주어야 살지,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피 흘려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피의 공로로,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를 먹는 방법은, “내 죄 값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는 그것입니다. 믿는 것이 예수님의 피를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은, 예수님이 날 위해서 하늘 영광을 내어 놓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고, 나 위해서 모든 희생을 다 해 주셨고, 또 날 위해서 의를 다 이루어 주셨고, 또 날 위해서 몸을 버려서 십자가에서 못을 박혀 죽어 주셨다는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입니다. 믿는 게 먹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 먹는 것임
본문 56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라고 그랬는데,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고, 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니까 먹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 속에 거하시니까, 또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고, 우리 영이 예수님 안에 거하고, 우리 심령 속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런 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 위해서 희생해 주시고, 십자가에서 죽어 주시고, 날 위해서 피 흘려주신 주님을 믿습니다”라는 이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 안에서 내가 삽니다. 내 안에 주님을 모십니다”하는 이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 되고’라는 찬송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언제나 중심에 모시고 사는 생활,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영이 사는 생활, 하나님을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을 떠나지 않고, 언제나 주와 동행하는 생활, 이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잊어버리지 않고, 매 시, 매 분, 매 초 언제나 마음을 주께만 기울일 것, 주님을 언제나 중심에 모실 것, 이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생활입니다.
그리스도를 인하여 사는 생활이 먹는 것임
또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은 본문 57절에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는 예수로 인하여 사는 생활입니다. ‘인하여 사는 생활’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생활입니다. ‘인하여 사는 생활’은 무엇인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산다, 그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은 예수님을 힘입어 사는 생활입니다. 그 예수님이 속에서 역사하시는 대로 그로 말미암아 사는 생활입니다.
골로새서 1:29에, “이를 인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했습니다. ‘이를 인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자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하여 수고 하노라’,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이 속에 계시다는 말입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4에는 우리 속에 예수님이 계신데,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의 역사를 따라서 사는 생활이 예수님을 인하여 사는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후 13:4). 또, ‘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그리고 3절을 보면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강하다고 그랬고, 또 우리 안에서 강한 능력으로 살으셨다고 그랬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강한 능력으로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또한 성령께서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바울은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나도 힘을 다 하여 수고 하노라, 나도 쫓아가노라”고 했습니다. 이게 바울의 신앙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서 강하게 역사하시고, 또한 성령께서도 우리 속에서 강하게 역사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 하시는데, 자신도 이제 그 역사를 따라서간다는 것입니다. “나도 따라 간다”는 것, 그리스도께서 강하게 역사하셔서 끌고 가니까 자신도 따라가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 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서 역사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 속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데 강하게 역사한다고 고린도후서 13장에 말씀하셨습니다.
3.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함은 죄 때문임
성령께서도 우리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데 왜 감동을 받지 못 하는가? 왜 모르는가? 그것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죄를 회개하고, 내 교만을 회개하고, 불순종하던 것을 회개하고, 제 스스로 강하게 자기 뜻대로 살겠다고 하면서 살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서 이제는 심령이 가난하게 되어야 합니다. 가난해져서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강력한 역사와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발견해야 합니다.
회개하면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면 그 역사가 발견이 됩니다. 발견이 된 다음에는 따라가면 됩니다. 그 역사를 따라가면 됩니다. 가자고 하면 가면 됩니다. 앉으라 하면 앉으면 되는 거고, 서라하면 서면 되고, 올라가라고 하면 올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시온산에 올라가라면 올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면 떠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요새 성령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능력의 신이여 오시옵소서”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왔다 갔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왔다가 갔다가 또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신데, 성부 성자 성령은 우주에 충만하십니다.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합니다.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닙니다. 언제나 성령은 우주에 충만하고, 우리 심령 속에 언제나 내재하고 계시고, 성령은 언제든지 감동을 시켜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능력이 없는가? 그것이 문제인데, 그것은 죄가 있고, 자기 고집이 너무 강하고, 교만하고, 심령이 둔해지고, 양심이 마비가 되어서 아무리 성령께서 오셔서 역사하시지만, 둔해서 그 역사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발뒤꿈치에 가시하나 들어가도 발뒤꿈치가 둔한 사람은 그것을 모릅니다. 둔하면 발뒤꿈치에 칼을 좀 대어도 안 아픕니다. 목욕한 다음에 베어내어 버려도 안 아픕니다. 그것이 너무 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심령이 둔해진 다음에는 감동을 시켜도 못 받는 것입니다. 성령이 감동을 시켜도 못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강렬히 역사하시지만 안 받아집니다. 안 받아지는데 어떻게 하느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오셔도 감동이 없는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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