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음
로마서 10:1-16
로마서 10:1-16
1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2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4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성경
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6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6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0:1 형제들아, 내 마음의 소원과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10:2 내가 그들에 대하여 증언하는데,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그것은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다.
10:3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다.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이 의에 이르도록 하시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
10:5 모세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두고 기록하기를 "율법을 행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살 것이다." 하였으나
10: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한다. "너는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라고 말하지 마라. 이것은 그리스도를 끌어내리려는 것이다.
10:7 또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라고 말하지 마라. 이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10:8 그러면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 가까이에 있으니,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다.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른다.
10:11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으니,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이 되시고, 그분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부요함이 되신다.
10:13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10:14 그러나 그들이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부르겠느냐? 듣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느냐?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떻게 듣겠느냐?
10:15 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면 어떻게 전파하겠느냐? 기록된 것과 같으니,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하였다.
10:16 그러나 그들 모두가 다 복음에 순종한 것은아니다. 이사야가 말하기를 "주님,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였다.
10:2 내가 그들에 대하여 증언하는데,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그것은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다.
10:3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다.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이 의에 이르도록 하시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
10:5 모세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두고 기록하기를 "율법을 행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살 것이다." 하였으나
10: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한다. "너는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라고 말하지 마라. 이것은 그리스도를 끌어내리려는 것이다.
10:7 또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라고 말하지 마라. 이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10:8 그러면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 가까이에 있으니,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다.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른다.
10:11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으니,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이 되시고, 그분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부요함이 되신다.
10:13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10:14 그러나 그들이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부르겠느냐? 듣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느냐?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떻게 듣겠느냐?
10:15 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면 어떻게 전파하겠느냐? 기록된 것과 같으니,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하였다.
10:16 그러나 그들 모두가 다 복음에 순종한 것은아니다. 이사야가 말하기를 "주님,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였다.
1. 이스라엘의 열심
바른 진리에 입각한 열심어야 함
본문 1절에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이스라엘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했으며 또 하나님께 구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 민족이기 때문이 아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예배와 율법과 언약과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2-3절에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열심’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열심’이 있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열심을 바로 쓰지 못했습니다. 즉 지식을 좇은 ‘열심’이 아닙니다. ‘열심’도 지식을 좇는 열심이어야 하는데, 열심을 바로 쓰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 그 ‘열심’이 도리어 손해만 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열심이 있는 것은 좋지만, 그 열심이 바른 지식에 의한 열심이어야 합니다. 지식이 바로 되지 못한 열심은도리어 그 열심 때문에 하나님을 더 멀리 떠나게 되고, 하나님을 더 거역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의를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를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의인데, 이것을 모르고 율법을 행해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율법을 행하기에만 애를 많이 썼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을 바로 쓰지 못했습니다. 즉 지식을 좇은 ‘열심’이 아닙니다. ‘열심’도 지식을 좇는 열심이어야 하는데, 열심을 바로 쓰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 그 ‘열심’이 도리어 손해만 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열심이 있는 것은 좋지만, 그 열심이 바른 지식에 의한 열심이어야 합니다. 지식이 바로 되지 못한 열심은도리어 그 열심 때문에 하나님을 더 멀리 떠나게 되고, 하나님을 더 거역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의를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를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의인데, 이것을 모르고 율법을 행해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율법을 행하기에만 애를 많이 썼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행해서 의를 얻겠다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 자기의 행위로써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을 받겠다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시온산 봉우리로 가는 길은 오직 한 길인데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는 여러 갈래길이 많이 있습니다. 또 ‘열심’으로 행합니다.
그러나 그 ‘열심’으로 하는 것이 다 바른 진리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 열심 때문에 바른 진리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릇된 신비주의자들도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열심히 하긴 하는데, 도리어 하나님의 의에서는 점점 멀리 떠납니다. 즉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에서는 점점 멀리 떠나고 있습니다. 바른 진리에 ‘열심’을 쓰면 쑥 올라가겠는데, 바른 진리에 열심을 쓰지 못하고 비뚤게 쓰기 때문에 곁 봉우리로 자꾸 올라갑니다. 곁 봉우리로 자꾸 올라가므로 도리어 바른 봉우리하고는 점점 더 멀어집니다. 바른 봉우리로 갈 가능성이 없습니다. 자기 구원 이루어나갈 것을 다 빼앗기고, 도적맞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양도천 목사가 요새처럼 많이 탈선하지 않았을 때는 허튼소리를 그렇게 많이 안 했습니다. 그저 “모든 믿는 사람들이 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말세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이런 말만 하였습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좀 잘못되어서 그 잘못된 것을 다 버리고, 즉 곁 봉우리로 올라갔으므로 밑에까지 다시 내려 왔다가, 다시 바른 봉우리로 올라가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양도천 목사가 “내려가기는 왜 내려가는가?”라고 합니다. 지금 어느 정도는 되었는데, 맨 밑에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재 출발해서 올라가라고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지금도 계룡산에서 “하나님이 오신다”고 하며 엎드려 있는데, 하여간 이처럼 곁 봉우리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른 진리는 하나입니다. 즉 바른 봉우리는 하나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안에는 곁 봉우리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사회주의, 신신학, 인본주의, 기독교 사업주의 등이 곁 봉우리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기름을 부었을 때에, 제자들이 그것을 얼마에 팔아 구제하라고 하였습니까?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다른 사람들을 구제 하지 않고 왜 허비하냐?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곁 봉우리입니다. 지금 마리아는 바른 봉우리를 올라가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위하고, 예수님만 따라가는데 제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제일 큰 줄로 압니다. 이것이 기독교 사회주의, 사업주의로 곁 봉우리입니다. 예수님도 물론 구제했습니다. 또 구제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고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은 마리아와 그것을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구제하지 않았다고 하는 제자들과는 분명히 노선이 다릅니다. 즉 깨달은 지식이 다릅니다. 마리아가 깨달은 지식은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어야 옳다는 것이고, 제자들이 깨달은 지식은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을 필요가 없고,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식이 서로 다릅니다. 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 깨달은 지식대로 열심을 냅니다.
제자들이 그 신앙대로 열심을 내고 나갔더라면 기독교 사회주의, 사업주의로 나갔을 뻔 했습니다. 마리아는 마리아대로 열심을 내며 나갔는데, 마리아의 열심은 바로 된 것입니다. 바른 봉우리로 올라가는 열심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진리를 배워야 됩니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하였는데, 언제나 바른 진리를 배워서, 바른 진리에 입각한 열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새 기독교 사회주의, 해방신학 등이 있는데 이런 것은 다 지식이 잘못 되었습니다. 해방신학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 예수님의 정신이며 그것이 기독교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에 억압받는 사람을 해방시켜야 하는가? 그것은 인종억압에서 해방시켜야 하고 또 정치적 억압에서 해방시켜야 하고, 그 다음에는 빈부의 차이에서 해방시켜야 하고, 즉 경제적 억압에서 해방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방신학 자들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려면 전부 해방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연보한 것을 공산주의 게릴라와 W.C.C.(세계 기독교 협의회)에 보냅니다. 이와 같이 그 사람들은 잘못 깨달았기 때문에 죄를 거침없이 짓고, 불의한 일을 거침없이 합니다.
누가복음 4:18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라고 하였는데, 눌린 자에게 자유를 준다는 것은 정치적 자유 운동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 눌린 자에게 자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정치 운동 기관이 아닙니다. 그런데 해방신학자들은 그것을 잘못 깨달아 정치적 억압에서 해방을 시켜야 된다고 주장하며 또 민족적 억압에서 해방을 시켜야 한다고 하며 반미 운동을 합니다. 또 경제적 억압에서 해방을 시켜야 된다고 하며 자본주의 국가를 반대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사회주의입니다. 그러므로 깨닫지 못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연보를 해서 W.C.C.에 상납하는 교회가 많은데 참 한심합니다. 그러면 그 연보한 돈이 아프리카 공산 게릴라에게로 갑니다. 공산 게릴라는 그 돈으로 총을 구입해서 선교사들을 쏴 죽이니 원통할 노릇입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열심히 연보했어도 그것이 하나님께 바로 쓰여지지 못했습니다. 또 다 바쳐서 교회를 지었다고 하여도 그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파하지 못합니다. 진리를 비뚤게 전파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일생동안 자기의 몸을 다 바쳤다고 해도, 말씀대로 바로 행하지 못하여 구원을 이루어 나가지 못했다고 하면, 그것은 헛된 수고를 한 것입니다. 다 도적에게 빼앗긴 것이고, 잃어버린 것이고, 약탈당한 것입니다.
것이 아닙니다. 일생동안 자기의 몸을 다 바쳤다고 해도, 말씀대로 바로 행하지 못하여 구원을 이루어 나가지 못했다고 하면, 그것은 헛된 수고를 한 것입니다. 다 도적에게 빼앗긴 것이고, 잃어버린 것이고, 약탈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무엇이냐? 어떤 것이 옳으냐? 하며 옳은 진리에 열심을 내야하고, 옳은 진리에 희생을 해야 됩니다. 옳은 진리를 위해서 열심을 내고 희생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헛된 것입니다. 도리어 진리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하나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열심을 낸 만큼 멀어집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옳은 진리를 깨달아서 그 진리대로 열심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믿음으로 의와 구원을 얻음
본문 5-7절에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는 것은 레위기 18:5
의 인용으로서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는 그 율법을 행함으로써 산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행하여 의를 이루어 그것으로 살려 열심을 내었으나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다 행한 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는 것은 신명기 30:12의 인용으로서 구원의 도를 얻기 위하여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는 것은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구원의 도리를 가져오려고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누가 의를 이루기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는 것이며, 또 음
부의 권세를 이기기 위하여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란 이미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의를 다 행해주시고,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구속성취를 부인하려는 생각이므로 이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음부의 권세를 다 이겨 놓았기 때문에 무엇을 다시 이기기 위해서 내려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음부의 권세를 이겨 놓은 것을 믿지 않는 불신의 언사이므로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하늘로부터 오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의를 완성해 놓으셨으므로, 이제는 네가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구속을 다 이루어 놓으셨으므로 네가 이제는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길을 새로 개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의라는 것은 자기가 의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또 의를 새로 개척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의가 우리에게 가까이 있고, 또 그 말씀이 우리의 입에 있고,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즉 세밀한 것은 아직도 모르지만 원리는 다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가?
3.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름
본문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네가 네 입으로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행함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으로 믿으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는데, 그러면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네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으므로 입으로 시인하여야 됩니다. 그러면 마음으로만 믿고 입으로 시인하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가는가? 마음으로 믿었으므로 벌써 의인입니다. 의인은 지옥에 갈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것입니다. 마음으로만 믿어도 구원을 받습니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는데,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신앙고백을 가리킵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진리를 나타내는 것 아닙니까? 진리를 나타내는데 입으로 나타내고, 행위로 나타냅니다. 진리를 나타내므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마음으로 믿어서 그 말씀이 자기에게 의가 되었습니다. 또 입으로 시인하면, 즉 신앙고백으로 그 말씀대로 행하면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어 나감
그러면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혼이 자라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중생한 영이 자라나고, 자기가 신령한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다 구원을 받는데, 이제는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자라나야 합니다. 자라나지 못하면 어린아이대로 있습니다. 히브리서 5:14에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
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장성한 신자가 있고,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에는 다 어린아이와 같이 신앙이 어립니다. 즉 영이 어립니다. 그러다가 이제 그 영이 바른 진리를 많이 먹고 그대로 시인을 하며, 진리의 길을 걸어가므로 연단을 받아, 그 영이 자라나야 합니다. 그래야 장성한 신자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가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큰 자와 작은 자가 있습니다.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5:19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말씀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큰 자입니다. 또 바른 말씀을 배워서, 그 말씀대로 행한 사람도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됩니다. 여러 가지 환난 속에서 말씀을 행하며 연단을 받아야 영이 자라납니다. 그러나 바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자라나지 못한 사람은 하늘나라에서도 어린 자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일생동안 달려갈 길을 다 가고,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믿음을 잘 지킨 사도 바울과 일생동안 죄만 짓다가 죽을 때에 잠시 회개하고 죽은 사람과는 하늘나라에 가면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같지 않습니다.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잘 지킨 바울과 죄만 짓다가 죽을 때에 회개한 사람이 어떻게 바울과 같겠습니까? 하늘나라에서 같다고 하면 그것은 도리어 불공평합니다. 만약에 같다고 하면 달려갈 길을 다 가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울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같다고 하면 선한싸움을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므로 영의 사람이 자라나서 하나님 앞에 가야 합니다. 즉 우리의 육체가 점점 죄 가운데서 벗어져 나와 거룩함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서 하나님 앞에 가야 합니다.
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장성한 신자가 있고,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에는 다 어린아이와 같이 신앙이 어립니다. 즉 영이 어립니다. 그러다가 이제 그 영이 바른 진리를 많이 먹고 그대로 시인을 하며, 진리의 길을 걸어가므로 연단을 받아, 그 영이 자라나야 합니다. 그래야 장성한 신자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가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큰 자와 작은 자가 있습니다.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5:19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말씀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큰 자입니다. 또 바른 말씀을 배워서, 그 말씀대로 행한 사람도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됩니다. 여러 가지 환난 속에서 말씀을 행하며 연단을 받아야 영이 자라납니다. 그러나 바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자라나지 못한 사람은 하늘나라에서도 어린 자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일생동안 달려갈 길을 다 가고,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믿음을 잘 지킨 사도 바울과 일생동안 죄만 짓다가 죽을 때에 잠시 회개하고 죽은 사람과는 하늘나라에 가면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같지 않습니다.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잘 지킨 바울과 죄만 짓다가 죽을 때에 회개한 사람이 어떻게 바울과 같겠습니까? 하늘나라에서 같다고 하면 그것은 도리어 불공평합니다. 만약에 같다고 하면 달려갈 길을 다 가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울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같다고 하면 선한싸움을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므로 영의 사람이 자라나서 하나님 앞에 가야 합니다. 즉 우리의 육체가 점점 죄 가운데서 벗어져 나와 거룩함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서 하나님 앞에 가야 합니다.
본문 11절에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은 절대 부끄러움을 당하는 법이 없습니다. 또 진리를 바로 믿는 사람은 절대 부끄러움을 안 당합니다.
4.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음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 구원받음
본문 12절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또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셔서 예수님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본문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주여, 주여’ 하기만 하는 자가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 받는 것입니다.
전도 받는 방법까지 예정되어 있음
본문 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는 구원 받습니다. 택한 백성은 다 구원받습니다.
‘택한 백성은 누구나 다 절대적으로 구원받게 되어 있으니까 전도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만 놔둬도 구원받을 것인데 전도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리고 불택자는 아무리 전도해도 믿을 수 없는데 전도할 필요 없지 않느냐고 합니다. 불택자는 전도해도 안 믿을 거니까 전도할 필요가 없고 택한 백성은 구원받게 되어있기로 예정되어 있으니까 전도할 필요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이 거기에 대한 답변입니다.
물론 택한 백성은 누구나 다 구원받게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기로 예정된 그 방편까지 예정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구원받기로 되어 있는가 하면, 택한 백성이 예수를 믿게 해서 구원받게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믿게 하는가 하면, 복음을 들어서 믿게 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복음을 듣습니까? 전도해서 듣게 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전도했습니까? 보내심을 받아서 전도했습니다. 이게 다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택한 백성 한 사람을 구원받기로 예정할 때에 어떤 사람을 전도자로 보내서, 그 사람이 전도를 하게끔 만들고, 택한 백성 한 사람이 그 말씀을 듣게 만들어서 들음으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하기로 예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은 다 구원 받을 것이니 그냥 가만 내버려둬도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두 가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은 구원 받기로 예정할 때에, 그 사람을 예수 믿게 만들어서 구원하기로 예정했습니다. 복음을 들어서 믿게 했습니다. 어떻게 듣게 했는가 하면, 전도자를 보내서 전도 받아 듣게 했습니다. 전도자를 보내서 전도하게 했습니다. 이런 방법들을 다 합해서 택한 백성이 구원받도록 예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물론 택한 백성은 누구나 다 구원받게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기로 예정된 그 방편까지 예정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구원받기로 되어 있는가 하면, 택한 백성이 예수를 믿게 해서 구원받게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믿게 하는가 하면, 복음을 들어서 믿게 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복음을 듣습니까? 전도해서 듣게 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전도했습니까? 보내심을 받아서 전도했습니다. 이게 다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택한 백성 한 사람을 구원받기로 예정할 때에 어떤 사람을 전도자로 보내서, 그 사람이 전도를 하게끔 만들고, 택한 백성 한 사람이 그 말씀을 듣게 만들어서 들음으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하기로 예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은 다 구원 받을 것이니 그냥 가만 내버려둬도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두 가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은 구원 받기로 예정할 때에, 그 사람을 예수 믿게 만들어서 구원하기로 예정했습니다. 복음을 들어서 믿게 했습니다. 어떻게 듣게 했는가 하면, 전도자를 보내서 전도 받아 듣게 했습니다. 전도자를 보내서 전도하게 했습니다. 이런 방법들을 다 합해서 택한 백성이 구원받도록 예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도하러 나가는 것도 예정이고, 복음을 전하는 것도 예정이고, 듣는 것도 예정이고, 들어서 믿게 되는 것도 예정이고,믿게 되어서 구원받는 것도 예정입니다. 다 하나님의 예정에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우리가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누가 택한 백성인지 모르니까 무조건 나가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불택자는 아무리 들어도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지 못해도 전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판 날에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불택자에게 전도한 것이 이다음에 심판 날에 증거가 되니까 불택자에게도 전도해야 되고, 택한 백성은 들어서 예수 믿게 했으니까 우리가 무조건 전해야 됩니다.
성도는 전도의 사명이 있음
본문 15절에,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아름답도다’라고 했는데, 뭐가 아름답다고 했습니까? 구두 좋은 것은 신은 것이 아름다웁니까?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복음 전하는 자가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가 제일 귀한 자이고, 복음 전하는 자의 발이 참으로 아름다운 발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전도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택자가 어떻게 복음을 듣겠습니까? 듣지 못한 자가 어떻게 믿겠습니까?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냈는데 어떻게 전도하지 않겠습니까? ‘너희는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라미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는데, 전하지 않는 자는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화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내가 전하지 않을 수 없어서 전도하는데, 부득불 전도하는데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고 그랬습니다.
전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도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아무쪼록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려고 애를 쓰고,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쓰고, 전도하는 데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바울이 힘을 쓴 것처럼 해야겠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음
어떠한 사람에게 전도해도 믿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죄 가운데서 멸망하겠지만, 전도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 피 값을 전도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찾는다고 했습니다. 전도했지만 안 믿어 지옥 갔으면 책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도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안 믿어 지옥 갔다고 하면, “너 왜 안 믿었니?” 물을 때에 “난 전도를 받지 못했습니다”라고 하면, “네 옆에 아무개가 믿었는데 전도 안했느냐?”고 하실 때에 “전 하나도 못 들었다”고 대답한다면, 그 책임이 전부 전도하지 않은
사람에게 가는 것입니다.
하여간 우리는 그 사람이 믿든지 안 믿든지 무조건 전도해야 됩니다. 전도해놓아야 책임을 다 하는 것입니다. 전도할 책임이 다 있습니다. 전도하지 않은 사람에게 전하지 않아 망한 자의 피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에스겔 3장 18-19절에,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고 했습니다.
악인에게 전해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겠지만, 하나님은 ‘그 악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요’라고 그랬습니다. ‘만일 네가 말해도 안 듣고 죽었으면 책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은 보내심을 받은 자가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파하기 위해서 우리를 보냈는데 왜 전하지 않느냐 그것입니다.
악인에게 전해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겠지만, 하나님은 ‘그 악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요’라고 그랬습니다. ‘만일 네가 말해도 안 듣고 죽었으면 책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은 보내심을 받은 자가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파하기 위해서 우리를 보냈는데 왜 전하지 않느냐 그것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아름다운 사람
가서 전하면 택한 백성은 그 말씀 듣고 믿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 믿지 않고 돌아가더라도 나중에 하나님께서 믿게 만들어 놓으십니다. 우리는 전도의 책임, 이것을 알고 바른 진리의 지식을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했지만 바른 진리가 없었습니다. 바른 진리의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도리어 비뚤게 나갔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바른 진리의 지식을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뚤게 나가는 사람을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이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본문 15절에 보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보내심을 받아서 전파하러 가는 발이 아름다운 발이고, 그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가 귀한 사람입니다. 복음을 가지고 복음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아주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음에 순종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고, 그의 발이 아름다운 발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받은 이상 이 진리를 전파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진리를 전파해서 잘못 나가는 사람들을 바로 인도하는 책임을 다 감당해야 되겠습니다.
5.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음
본문 16-17절에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을 더하는 법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데서 믿음이 납니다. 그 다음에는 순종하는데서 믿음이 납니다.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들어야 되고, 그 말씀을 순종을 해야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믿고, 아무리 “믿사오니”하여도 그것은 바른 믿음이 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른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모든 것을 했지만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21:25에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의 도리는 몇 마디로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묘막심하고 무궁무진한 진리의 말씀을 우리에게 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구속의 도리를 많이 연구하고, 많이 배우고 그 말씀에 입각한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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