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로마서 10:16-21 바른 진리를 듣고 마음에 받아 행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바른 진리를 듣고 마음에 받아 행하라
로마서 10:16-21

16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
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 났노라 하였고 21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10:16 그러나 그들 모두가 다 복음에 순종한 것은아니다. 이사야가 말하기를 "주님,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였다.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10:18 그러면 내가 묻겠다. 그들이 듣지 못하였느냐? 그렇지 않다. "그들의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들의 말이 땅 끝까지 이르렀다." 하였다. 

10:19 내가 또 묻겠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말하기를 "내가 백성 아닌 자를 통하여 너희가 시기하도록 하고, 미련한 백성을 통하여 너희가 분노하게 하겠다." 하였고, 

10:20 또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게 말하기를 "나를 찾지 않는 자들에게 내가 발견되고, 내게 구하지 않는 자들에게 나를 나타내었다." 라고 하였다. 

10:21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말씀하기를 "순종하지않고 거역하는 백성에게 내가 온종일 내 손을 벌렸다." 라고 하셨다.


1. 바른 진리를 받아야 함

믿음은 성경말씀을 들음에서 남

본문 16-17절에,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를 보면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들음’은 뭘 들어야 된다고 했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믿음을 더하는 법인데,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데서 믿음이 나옵니다. 그리고 순종하는데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들어야 되고 그 말씀을 순종해야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믿고 아무리 믿사오니 해도 그것은 바른 믿음이 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른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으로 모든 것을 했었더라도 이것은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자기들 스스로 무엇을 하려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써서 했지만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자기가 뭘 해보겠다고 애를 쓰는 것, 그것이 믿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자기 스스로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 하늘에 올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음부에 내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찾기 위해서, 진리를 이루기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거나 음부에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놓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다 이루어놓으셨는데 그 말씀이 이제 우리에게 가까워서 우리 입에 있으며, 우리의 마음에 있으리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무궁무진한 진리에 대해 많이 발견해야 함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것, 우리가 지금 배운 것인 하나님이 이뤄 놓으신 구속의 도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 놓은 구속의 도리가 무궁무진하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뤄 놓으신 구속의 도리를 다 기록하려면 세상에 책을 쌓을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25절에,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일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다 기록하려면 이 세상에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의 도리, 보여주신 모든 진리 이것이 몇 마디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묘하고 무궁무진한 그 진리의 말씀을 우리에게 다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성경에 기록했는데 대지만 기록한 것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만 기록을 했는데, 성경 안에 내포해 있는 진리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은 진리,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구속의 도리를 많이 연구하고, 많이 발견하고 많이 배우고 그 말씀에 입각한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한 마디로 ‘예수 믿는다’만 하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데 무슨 예수를 믿는 것인지,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또 믿으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살아났다고 하면 뭐가 살아났는지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잘못 배우면 헛된 믿음이 됨

1) 천년왕국 

어떤 사람은 천년왕국이 없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천년왕국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천년왕국이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여 세상을 심판하시고, 공중 재림하여 세상을 심판하시고, 지상 재림하여 천년왕국을 건설할 것을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천년왕국 건설할 것을 믿지 않습니다. 천년왕국이 없다고 합니다. 어떤 교훈이든지 하나만 맞고 하나만 옳습니다. 천년왕국이 이다음에 실제로 있으면 있다고 하는 것이 맞고 없다고 하는 것이 틀린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임하면 없다고 했던 사람은 헛되게 믿은 것입니다. 지식이 잘못되어서 믿음이 그만큼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 이다음에 천년왕국이 없다면 있다고 믿은 사람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거기에 대해서 헛되게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바로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행하지도 못하면서 배우기만 하면 뭘 하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받아서 마음으로 시인하면 뭐가 된다고 했습니까? 의가 된다고 했습니다. 옳은 말씀 받아서 그 말씀을 마음에 믿으면 의가 됩니다. 

문제는 바로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른 진리를 배우고 바른 진리를 믿는 것, 그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잘못 배워놓으면 그것은 진리가고, 지상 재림하여 천년왕국을 건설할 것을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천년왕국 건설할 것을 믿지 않습니다. 천년왕국이 없다고 합니다. 어떤 교훈이든지 하나만 맞고 하나만 옳습니다. 천년왕국이 이 다음에 실제로 있으면 있다고 하는 것이 맞고 없다고 하는 것이 틀린 것입니다. 

만약 옳지 않은 말씀을 잘못 배워가지고 잘못된 것을 믿으면 그것은 의가 되지 못합니다. 헛된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있는데도 없다 하는 말을 받아서 그것을 마음에 믿으면 그것은 헛된 것입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헛된 믿음 가지고 나가다가 예수님 재림하는 날 그 때 헛된 것이 드러납니다. 그때 헛된 것이 드러나면 고칠 수 있습니까? 고칠 기회가 없습니다. 

2) 기독교 사업주의 

좀 미리부터 바른 진리를 배워가지고 그대로 믿었어야 의가 되고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이 되었겠는데 잘못 배워놓으니까 그것은 의가 못됩니다. 기독교 사업주의를 가르쳐서 믿는 것도, 성경에 ‘사업주의’ 하라고 했으면 되겠지만 성경에 사업주의 하라고 안 했으면 그것은 헛되게 믿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모든 것을 다 바쳤다 하더라도 자기 구원도 못되고 의도 못됩니다. 

문제는 바로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른 진리를 배우고 바른 진리를 믿는 것, 그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잘못 배워놓으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헛된 것입니다. 헛된 것을 가지고 나가다가 예수님 재림하는 날 다 드러나게 되면 후회막급입니다.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진리를 하나라도 바로 배워야 합니다.

3) 영혼문제 

옛날에는 남자에게만 영혼이 있고 여자에게는 영혼이 없다 이렇게 배웠다고 합니다. 이거 잘못 배운 것입니다. 이 다음에 여자에게 영혼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잘못 배우고 믿으면 헛된 것입니다. 잘못 배워 놓으면 이렇게 헛되게 됩니다.
어떤 종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천당 가는 것이 아니고 무덤에 내려가서 잔다고 합니다. 영혼도 무덤에 내려가서 자다가 예수님 재림하는 날 부활해서 올라간다고 합니다. 영혼과 육신이 한꺼번에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즉시로 천당 간다고 믿습니다. 즉시로 갑니다. 무덤에 가서 자는 것 아닙니다. 즉시로 천당을 갑니다. 이것도 둘 가운데 하나가 맞습니다. 진짜 무덤에 들어가서 영혼이 잔다고 하면 즉시로 간다는 것이 안 맞고 즉시로 간다고 하면 즉시로 안 간다고 하는 것이 헛되게 믿는 것입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4) 우상숭배 

일제시대 때 천주교에서는 신사참배가 죄가 아니라고 해줬습니다. 그래서 천주교는 전부 다 신사참배 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교인들이 직접 성경을 해석할 수 없고 신부도 성경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본청에서만 성경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해석한 책을 각 천주교회에다가 하달하는데 그것을 보고 그대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우상 섬기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자기네는 만날 우상 섬기고 있으니까, 마리아 섬기고 베드로 섬기고 하니까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죄라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서 우상 섬기는 것이 죄라 하시면, 죄 아니라고 한 것이 헛되게 믿은 것이고, 또한 우상을 섬겼으니까 벌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할 것입니다. 

5) 성찬예식 

바로 믿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루터파에서는 성찬예식을 어떻게 가르쳤습니까?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합니다. 성찬예식을 하면 떡과 포도주에 살과 피가 같이 있다는 ‘공재설(共在說)’을 가르칩니다. 쇠를 달구면 쇠는 쇠대로 있지만, 쇠가 시뻘게지니까 그 가운데 불도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성찬 때 떡과 포도주이지만 그 가운데 예수님의 살과 피가 같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찬예식으로 축복한 다음에도 예수님의 살과 피가 그 가운데 같이 있는 것이 아니고 ‘기념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칩니다. 기념하며 영으로만 같이한다. 믿음으로 참여한 자를 영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참여시키는 것이고 기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믿습니다. 바로 배우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6) 기독교 국가관, 사회관 

어떤 종파에서는 ‘교회가 세상운동 해야 된다. 사회참여 해야 된다. 국가운동 해야 된다. 독립운동 해야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교회는 세상 국가운동 하지 않는다. 영적 운동만 해야 된다’고 믿습니다.
교회가 정치에 참여해야 된다고 깨달은 사람은 정치에 참여하여 사건만 일으킵니다. 우리는 이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는 국가를 위해서 기도만 해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국가의 정책에 순종을 하면서 우리는 이 영적 구원운동만 해 나가야 됩니다. 영이 사는 구원운동만 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믿습니다. 가르쳐 주는 것이 각각 다릅니다.
국가관이 다릅니다. 국가관이 어떤 종파에서는 ‘사회를 기독교화 시켜야 된다. 복음화 시켜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가 기독교화 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사회관이 다릅니다. 이 세상은 이방나라이고 교회만 이스라엘이라고 믿습니다. 교회는 이방나라에 대한 운동을 하는 데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인 교회는 구원 운동을 하는 곳이지 이방운동 하는 데가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운동 하는 데가 아닙니다. 교회가 세상운동을 해야 된다고 믿는 종파에서는 데모도 하고 정치에도 참여하려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은 다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교회는 세상운동 하는 데가 아닙니다. 세상운동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국가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잘 되게 해주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것뿐이고, 직접 나서서 교회를 가지고 세상운동 하는 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섬기고 영혼이 구원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는 속죄구령운동, 영적 구원운동을 하는 곳이 교회인 줄 그렇게 믿습니다. 

7) 해방신학, 신신학 

교회관이 다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해방관이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영적인 해방이다’라고 하고, 해방 신학자들은 ‘제도적이고 정치적인 억압받는 데서 해방을 받아야 된다’고 합니다. 해방신학자들은 신신학자들이기 때문에 가는 데마다 해방을 받아야 되니까 사건을 일으킵니다.
어떤 공장에 해방신학자가 전도하러 들어가서 ‘공장에서 직공들이 억압을 받고 있다. 해방을 해라’고 하면서 폭동을 일으켜서, 공장에서 데모도 하게 만들고, 그 공장이 도산되게 만들었습니다. 공장이 다 넘어갑니다. 해방신학자 하나 들어갔기 때문에 공장이 다 넘어갔습니다.
그 사람들은 신앙관이 다릅니다. 신앙관이 해방시키는 것이 신앙관이기 때문에, 그 공장 직공들이 불쌍하니까 ‘가만히 있지 말고 데모해라. 반항을 해라’고 해서 넘어뜨립니다. 신앙관이 잘못되면 전체가 다 잘못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8) 내세관, 구원파 

내세관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 다 천당 가는데, 천당 가서 모두 같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영혼이 자라난 사람은 자라난 대로 가고 자라나지 못한 사람은 자라나지 못한 대로 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늘나라가면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 같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율법과 말씀을 다 지켜주셨고 우리는 구원을 받아놨으니까 이제는 성경대로 행할 것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신구약 성경을 다 지켜줬는데, 이제 우리가 성경 지킬 필요가 뭐 있느냐? 구원 다 받아놨고 성경 다 행해 놨는데, 예수님께서 다 행해줬기 때문에 이제 성경 안 지켜도 된다’고 가르칩니다. 이제 주일날 뭘 사도되고, 십일조 안 드려도 괜찮고, 이렇게 다 괜찮다고 가르치고, 또 그것을 옳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구원파라고 합니다. 구원은 이미 다 받아놨으니까, 예수님께서 신구약 성경은 다 행해줬고 그러니까 성경 행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미 거저 다 먹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구원파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잘못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론 행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에서 한 소리만 듣고는 또 다른 한 소리는 무시하니까 교회가 다 넘어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전복되고 마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바른 진리를 배워서 마음으로 믿으면 의가 됨

아무리 장로교라고 해도, 보수라고 해도, 가르치는 것이 각각 다릅니다. 가지각색입니다. 그러나 옳은 것은 언제든지 하나입니다. 국가에 대해서도 정치에 참여하느냐 안 하느냐, 이것도 참여하는 것이 옳으면 안하는 것이 틀렸고, 참여 안하는 것이 옳으면 하는 것이 틀린 것입니다.
잘못 배웠으면 그것은 헛되게 믿은 것입니다. 그 면으로 헛되게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옳은 것을 알기가 힘듭니다. 알쏭달쏭 합니다.
이 사람 말 들으면 이게 옳은 것 같고, 저 사람 말 들으면 저게 옳은 것 같습니다. 하여간 바로 배우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바로 배우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 줄 알아야 되고, 바로 배운 진리를 마음으로 믿어야 되고, 믿으면 의에 이르게 됩니다. 행하지 못했어도 마음으로 진리를 많이 배워 가지고 있으면 그게 의가 된다는 말입니다. 

진리를 알고 있으면 언젠가는 행할 수 있음

당장은 행하지 못했어도 언젠가는 행할 수 있습니다. 알지 못하여 일 잘못한 사람하고 알고도 잘못한 사람하고는 차이가 있습니다. 배우지 못해서 어떤 사람은 모르고 잘못하고, 어떤 사람은 배웠는데 알고도 그 일을 했습니다. 그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둘 다 행하지 못한 것 같은데, 알고 행하지 못한 사람은 늘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행할 날이 옵니다. 그런데 알지 못하고 그 일을 행한 사람은 잘못된 줄 모르니까 양심이 편안합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은 10년이 가도 회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하는 건 나중에 행하더라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령 원자탄 만드는 원리를 아는 나라하고 모르는 나라하고 둘 다 만들지 못했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아는 나라는 지금 만들지 못했지만 유사시에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은 원자탄을 만들어 두진 않았다고 하지만 원자탄 만드는 원리를 알고 있다고 합니다. 모르고 있는 나라보다는 썩 낫죠. 뭐가 낫습니까? 전쟁 난 다음에는 금방 하나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리를 알면 벌써 마음에 그 진리가 옳은 줄 알고 받아서 자기 속에 믿으니까, 마음에 의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옳다. 그렇게 해야 된다’고 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니까 이다음에 그대로 할 것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모르면, 잘 못 배워놓으면, 비뚤게 배워놓으면 나중에라도 갈 때 비뚤게 나가게 됩니다. 비뚤게 나가니까 잘못 나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바로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마음으로 배워서 믿고, 그 다음에 믿음을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행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입으로 증거 하는 것, 증거는 행동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였는데, 마음으로 진리를 배워서 그 진리가 옳은 줄 알고 의에 이르게 됩니다.
분별력이 생겼습니다. 심령의 눈을 떴습니다. 행하지 못했어도 이제는 다른 사람을 보면 잘못한 것은 다 압니다. 자기는 못해도 이거는 옳다 저건 틀리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언젠가는 입으로 시인할 날이 옵니다. 행동으로 옮길 날이 오게 됩니다. 그러면 자기 구원이 쑥 이루어집니다. 영이 자라나고 자기가 만들어 집니다. 아는대로 행하는 것이니까 자기를 만들게 됩니다. 

성경을 많이 배우고 교회 안 나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 식구는 교회 다 나오고 자기 부인도 교회 나오는데, 그 남편은 많이 알면서도 안 나옵니다. 교회 안 나오면서도 자기 아내가 잘못한 것은 다 압니다. 아는 것으로 따지만 사실 그 남편이 부인보다 낫습니다. 다 아니까 그 사람 언젠가는 교회 나올 날이 있습니다. 나온 다음에는 아는 대로 믿으니까 그 사람이 바로 믿게 될 것입니다.

바른 진리를 받는 것 자체가 믿음이 됨

그러니까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고 바른 진리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믿음은 말씀에서 납니다. 말하자면 말씀을 받아가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말씀을 받아가지는 자체가 믿음이고, 그 다음에 행하면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말씀 하나 받으면 그만큼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말씀 열 개 받아가지면 그만큼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서 그 말씀대로 행하면 구원이 그만큼 이루어집니다.
받아가진 것이 없으면 자기 속에 의가 없습니다. 말씀의 의가 없고그러면 행하려고 해도 행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많이 받아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믿어야 되겠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말씀을 믿지 않고 지식적으로만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지식이 교만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믿으면 자기의 생명이 되고 의가 됩니다. 그 다음에 그 말씀대로 행하게 되면 자기가 만들어 집니다. 구원이 됩니다. 그러니까 말씀 받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번에도 우리가 말씀을 많이 배웁니다. 배울 때 그 말씀대로 믿으면 속에서 다 의가 됩니다. 속에서 말씀이 다 살아서 역사합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면 쑥 자라납니다. 자기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2. 받은 말씀 행하기

쉬운 말씀부터 행할 것

행할 때에 뭐부터 행해야 되겠는가 하면, 제일 쉬운 것부터 행해야 됩니다. 한꺼번에 다 행하려고 하지 말고 제일 쉬운 것,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것부터 행해야합니다. 말씀은 많이 받아두어야 하는데, 소처럼 먹을 때 한꺼번에 많이 먹어두어야 합니다. 소는 한꺼번에 많이 먹어도 새김질 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새김질 하면서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행하는 데 뭐부터 행하라 했습니까? 제일 쉬운 것, 초기단계 3가지부터 해야 합니다. 

초기단계 3가지가 뭡니까?

1) 주일성수 

첫째는 주일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날 뭘 사거나, 팔거나, 일하거나 이런 것은 하나님 앞에 죄 입니다. 가게 문 열어놓거나, 뭘 사오는 것은 다 하나님 앞에 죄 입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인데 주일을 잘 지키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 하는 날도둑입니다. 날도둑은 하나님 앞에 용납 받을 수 없습니다.
주일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이제는 생명 내어 놓고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주일 지키는 것이 생명입니다. 하나님 말씀 하나 지키는 것이 생명입니다. 생명보다 더 중요합니다. 주일을 지켜도 굶어 죽지 않습니다. 직장 떨어질까봐 벌벌 떨 필요가 없습니다. 떨어지면 하나님께서 다른 갈 데를 만들어주십니다. 이 동네에서 쫓겨나면 저 동네로 가고 저 동네에서 쫓겨나면 또 다른 동네로 가면 됩니다. 이스라엘 동네를 다 돌기 전에 인자가 온다고 그랬는데, 믿음 지키다가 쫓겨나면 하나님께서 갈 데를 인도해 주십니다. 다른 동네가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거기에서도 믿음 쓰다가 쫓겨나면 다른 동네가 또 있습니다. 이스라엘 동네를 다 다니기 전에 인자가 온다는 것은, 갈 길이 막히기 전에 하나님의 권고가 온다는 말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권고가 옵니다. 하나에다가 둘 더하면 셋 되는 것만 알지 말고, 하나님은 살아계신 만능의 하나님이신 줄 믿어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만 가지고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갈 때에 어떤 신앙을 가지고 들어갔습니까? 사자 굴에 들어가면 잡혀 먹을 줄 알고 들어갔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건져 주실 줄 알고 들어갔습니다. 사자 굴에 들어가도 하나님께서 건져 주신다는 이것을 믿었습니다.
‘들어가도 건져 주신다’, 이것을 믿은 다니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자 하나 못 이기시겠습니까? ‘나를 사자 굴에 넣더라도 하나님께서 건져 주신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요 만능의 하나님이시라는 이것을 믿고 나가는 다니엘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가도 건져내 주실 것을 믿은 증거가 뭐라고 했습니까? 다리오왕이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갈 때 하는 말을 보면, ‘네가 항상 섬기는 하나님께서 너를 건져 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다니엘한테 다리오 왕이 배운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배운 신앙입니다. ‘네가 섬기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고 사자 굴에서도 건져주실 수 있는 하나님으로 네가 그렇게 믿지 않았느냐? 나는 네가 하는 것을 보고 안다. 건져 줄 것이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침 새벽에 가서 ‘하나님께서 건져주셨느냐?’하고 물어 본 것을 보면 왕이 다니엘의 모든 신앙을 보고서 하나님은 사자 굴에서 건져주셨을 것이고, 다니엘을 보호해 줬을 것이라는 것을 믿고 간 것입니다. 얼마나 다니엘이 철저한 믿음을 가졌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철저한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고 왕이 그대로 믿고 간 것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방해해도 하나님께서 이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자 굴에서 건져 줄 것을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산 신앙입니다. 사자 굴에서 못 건져 준다고 믿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또한 다니엘의 친구들 신앙을 보고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건져 주실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같은 동지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친구들의 신앙이 ‘우리를 풀무 가운데 던져 넣어도 하나님께서 건져 줄 것입니다’라고 했고 이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풀무 가운데서 건져 주시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주실 줄 믿습니다’하는 신앙을 보니까 다니엘하고 같은 신앙입니다.
사자 굴에서 건져 주실 것을 믿는 신앙으로 말씀대로 나가면 죽을 것 같아도 삽니다. 말씀대로 나가면 앞길이 막힌 것 같아도 열립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열어 주십니다. 만능의 하나님입니다. 그런 산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산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에 둘을 더하면 셋이 된다는 이런 타산적인 신앙만 가지면 하나님께서 특별한 역사로 주시는 모든 것을 다 받지 못합니다. 그런 계산적인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다 버리고, 자연에서 오는 것만 가지고 살 신앙입니다. 특별한 정기에서 오는 것을 그 사람은 받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새로운 모든 것 주려고 하시는 것을 다 못 받습니다. 사자 굴을 이기는 하나님이시라고 하면서, 사자 굴에 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을 받는 신앙이고, 사자 굴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신앙입니다. 원수를 이기는 신앙입니다. 

말씀을 지키면 죽을 것 같아도 산다고 했습니다. 죽을 것 같아도 삽니다. 말씀을 지키면 굶을 것 같아도 안 굶습니다. 쫓겨날 것 같아도 안 쫓겨납니다. 쫓겨난다고 해도 다른 데 갈 데가 또 있습니다. ‘이스라엘 다른 동네가 있다’, ‘다 다니지 못하고 인자가 온다’고 했습니다. 갈 길이 막히기 전에 하나님께서 거기로 올 거니까 염려하지 말고 하여간 무조건 주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2) 십일조 

그 다음 초기단계로는 ‘십일조’ 드리는 것을 지켜야 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지 하나님께 안 바치면 그것은 도적이라고 했습니다.
말라기 3장 8-10절에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했습니다.
십일조 안하는 것은 도적입니다. ‘너희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해먹고 어떻게 잘 되겠습니까? 십일조는 십일조대로 별도로 드리고, 그 다음에 다른 연보는 다른 돈으로 또 드려야 됩니다. 그래야 온전한 십일조인 것입니다.

3) 우상의 제물 먹지 않기 

그 다음에 우상의 제물 먹지 말 것이 초기단계 지킬 말씀입니다. 성경에 우상의 제물 먹지 말라고 했으니까 우상의 제물 먹으면 안 됩니다. 그 제물을 먹는 사람은 우상에게 제사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 먹으면 안 됩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은 데서 나오는데, 말씀을 먼저 받아서 믿고 나면 속에서 의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또 바른 것을 알게 되고, 갈 길을 알게 되고, 눈을 뜨게 되고, 귀가 열리게 됩니다. 말씀 받으면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인생관, 내세관, 이성관, 세상관, 이런 것들을 다 바로 가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바로 받아야 합니다. 

순종하여 행하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다 되게 해주심

그 다음에는 ‘행하라’는 것인데, ‘입으로 시인해야만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그 말씀을 행하면 자기가 만들어지고, 자라나고,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행하는 건 뭐부터 행하라고 했습니까? 제일 초보적인 단계부터 행하라고 했습니다.
알고도 행하지 못하던 것인, 초보적인 단계에 있는 것부터 행하라는 것입니다. 뻔히 알면서도 행하지 않던 것을 이제부터라도 행하지 않고는 그 이상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행할 것을 결심하고 달라붙어서 하려고 애를 쓰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도와서 그 일이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자기가 힘을 얼마 쓰면 그 다음에 하나님의 힘이 와서 그 일이 되게 만듭니다. 제 힘으로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동차로 말하면 파워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전에 어떤 곳에 제가 갔을 때, 파워 브레이크를 한 번 시험해보라는 것입니다. 저는 좁은 곳에서 운전 못하니까 넓은 데로 가자고 했습니다. 운전이 서툴러서 좁은데서 하다가 사고 나면 안 되겠기에, 길이 넓으면 좀 비뚤게 가도 여유가 있으니까 넓은 데로 가자해서 갔습니다. 캐나다에 넓은 땅이 많이 있습니다. 가다가 한번 파워 브레이크를 눌러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워 브레이크를 가만히 누르니까 가다가 차가 딱 섰습니다. 파워 브레이크는 조금만 누르면 어디서 힘이 나와서 차를 딱 멈춰주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파워 브레이크는 조금만 누르면 힘이 나와서 팍 섭니다. 우리 신앙생활이 파워 브레이크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조금만 힘을 쓰면, 자기에게 있는 힘은 적은 힘이지만 그런 자기의 적은 힘을 다 갖다 쓰면, 하나님의 만능이 팍 와서 다 해주십니다. 수가 나는 것입니다.
파워 브레이크가 있으니까 ‘힘이 없다. 위험하다’ 핑계대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말씀을 지켜야 된다고 했으니까, 입으로 시인해야 된다고 했으니까, 순종하려 시인할 때에 자기에게 있는 작은 힘만 쓰면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 와서 그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해주십니다. 그러면 자기가 할 수 없던 일도 되고, 다른 사람도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 되어 나갑니다. 그러면 자기도 신기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해놓은 것 보면 신기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힘이 없다, 연약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뭐만 쓰면 됩니까? 내게 있는 힘 다 쓰면 됩니다. 자기 것 아무리 적어도 그것만 다 쓰면 됩니다. 힘이 약한 사람은 약한 대로 그것만 다 쓰면 됩니다. 힘이 강한 사람은 그 힘 다 써야 합니다. 다 쓰면 그때 하나님의 만능이 와서 그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가 적지만 그것을 바치라 했을 때 그것을 다 바쳐 순종하니까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와서 오천 명을 다 먹이고도 열 두 바구니에 남았습니다. 그런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니까 말씀을 자꾸 바른 말씀을 많이 배우고, 그 말씀을 자기 있는 능력을 다 기울여서 그대로 시인하며 행해야 합니다. 그대로 행하면 자기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자기가 자라나고, 세상을 정복하게 되고, 강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져 나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3. 이스라엘이 복음을 듣지 않음으로 복음이 이방에게 나감

본문 18절에,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온 땅에 퍼졌다고 말씀했습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이르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9절에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라고 했는데, 이스라엘이 복음을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방사람에게로 복음이 나갔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사람은 이방사람인데, ‘이방사람으로 너희를 시기나게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미련한 백성’도 이방사람인데, 이방사람이 믿어서 너희를 노엽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방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노여워했습니다. 자기 어머니를 빼앗긴 아들이 노여워하지 않겠습니까?

본문 20절에,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구하지 아니하는 자’는 이방사람입니다. 그들이 찾은바 된다고 했습니다. ‘문의하지 않은 사람’도 이방사람인데, 이 이방 사람에게 이제는 하나님께서 찾은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순종치 아니하기 때문에 복음이 이방으로 나갔습니다.

본문 21절에,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을 듣긴 들었지만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이 이방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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