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천 명의 성도를 은혜로 남겨두신 하나님
로마서 11:1~6
로마서 11:1~6
1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3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11:1 그러면 내가 묻겠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며,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이고 베냐민 지파 사람이다.
11:2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 너희는 성경이 엘리야에 대해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송사하여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11:3 "주님, 그들이 주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주님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으며 오직 나만 남았는데, 그들이 제 목숨도 찾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으나,
11: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었느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라고 하셨다.
11:5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의 선택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
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는 은혜가 되지 못한다.
11:2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 너희는 성경이 엘리야에 대해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송사하여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11:3 "주님, 그들이 주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주님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으며 오직 나만 남았는데, 그들이 제 목숨도 찾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으나,
11: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었느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라고 하셨다.
11:5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의 선택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
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는 은혜가 되지 못한다.
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증거
바울이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택함 받음
본문 1절에,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순종치 아니하였기 때문에 구원이 이방으로 갔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로 바울이 자기도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버리지 않으신 것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신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당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증거로는 바울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구원 받은 걸 보면 알수 있고, 또한 엘리야 때에 칠천 명의 ‘남은 자’를 남겨두신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당시에 자기 혼자 남은 줄 알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 칠천을 남겨두셨습니다. 그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고, 보호하시고 계셨음을 알수 있습니다. 결국 아합 왕을 다 잡아 죽이지 않았습니까?
성경은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 놓았다’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은혜로 택하심을 받아 남겨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게 남겨놓으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11:2-5절에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 때에 아합 왕이 선지자들을 다 잡아 죽였습니다. 모든 주의 종들을 다 잡아 죽였으므로 엘리야 한 사람만 나가서 증거했습니다. 아합 왕에게 증거하였고, 갈멜산에 올라가서 거짓 선지자 850명과 더불어 대결하여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된 것을 다 드러냈고 또 숙청했습니다. 엘리야가
그 당시에 생명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선지자 직분을 잘 감당을 했습니다. 엘리야 생각에는 자기 혼자만 남은 줄 알고,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주께 호소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 칠천을 남겨두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생명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선지자 직분을 잘 감당을 했습니다. 엘리야 생각에는 자기 혼자만 남은 줄 알고,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주께 호소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 칠천을 남겨두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겼다는 것을 보면, 바알에게 무릎을 꿇은 사람도 있고, 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몇 가지 종류입니까? 네 종류입니다.
첫째는 엘리야와 같이 어려운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잠잠하지 아니하고, 생명을 내놓고 계속 외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로 인도하는, 생명 운동을 해나가는 선지자가 있고, 둘째는 잡혀서 죽은 사람이 있고, 셋째는 너무 환난과 핍박이 무서우므로 신앙을 양보하고 바알에 무릎을 꿇은 사람입니다. 넷째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으면 죽이므로, 숨어서 자기 개인의 신앙을 지킨 사람입니다.
그 가운데 어느 종류의 사람이 제일 많을 것 같습니까? 첫째가 제일 많겠나? 둘째가 많겠나? 셋째가 많겠나? 넷째가 많겠나? 바알에게 무릎을 꿇은 사람이 제일 많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 둘째 번은 누가 많을 것 같습니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 세 번째는? 죽임을 당한 사람이고, 그 다음 네 번째는 엘리야와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네 종류가 있는데, 그 가운데 제일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행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하나님께 가장 합당하게 행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는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아예 생명을 내놓고, 바알 선지와 싸웠습니다. 또 바알 선지자들의 잘못된 것을 다 드러내었고, 하나님의 진리를 밝혔습니다. 즉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나타나게 했습니다. 엘리야가 한 일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고 가장 큰 일입니다. 그저 숨어서 자기의 신앙 명맥이나 지켜 나간 사람은 그래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은 사람보다는 낫습니다. 믿음을 지켰으므로, 즉 진리를 양보하지 아니하고 혼자서라도 진리를 지켰으므로 영적 생명이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혼자만 산 것입니다. 칠천 명이 자기 개인의 생명만 산 것이지, 진리를 밝히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파도 하지 못하고, 거짓 선지자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백성을 바른 데로 인도하지도 못했습니다.
엘리야는 아예 생명을 내놓고, 바알 선지와 싸웠습니다. 또 바알 선지자들의 잘못된 것을 다 드러내었고, 하나님의 진리를 밝혔습니다. 즉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나타나게 했습니다. 엘리야가 한 일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고 가장 큰 일입니다. 그저 숨어서 자기의 신앙 명맥이나 지켜 나간 사람은 그래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은 사람보다는 낫습니다. 믿음을 지켰으므로, 즉 진리를 양보하지 아니하고 혼자서라도 진리를 지켰으므로 영적 생명이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혼자만 산 것입니다. 칠천 명이 자기 개인의 생명만 산 것이지, 진리를 밝히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파도 하지 못하고, 거짓 선지자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백성을 바른 데로 인도하지도 못했습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신앙 지킨 것은 잘했지만 그래도 이들은 엘리야에 갖다 대면 천지 차이입니다. 숨어서 신앙을 지킨 자들은 자기 혼자만 생명을 보전한 것입니다. 그래도 죽지는 않고 살긴 살았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적극적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귀의 세력을 침투해 들어가고, 대항해 나가고, 정복해 나가고, 진리의 빛을 밝히고, 어두운 데 있는 백성에게 빛을 비추고 인도했으므로 엘리야의 한 일은 굉장히 큰 것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가면 상당히 많은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또 순교당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엘리야와 같이 나가서 싸우다가 순교당한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순교자의 특별 반열에 참여합니다. 순교당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면 순교자의 특별 반열에 참여하므로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키워졌고, 또 죽었지만 죽어도 말하고 있습니다. 죽어서도 말하는 게 순교자입니다. 그런데 숨어 있는 칠천 명은 증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순교자는 죽었지만 그 죽음으로서 오히려 말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4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벨이 순교 당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그 당시에만 말했나? 아니면 지금도 아벨이 말하고 있나? 아벨이 순교당하여 죽었지만 “이렇게 제사하는 것이 참 제사이다”하며 오히려 말하고 있습니다. 순교자는 그 당시에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후시대에도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그 당시에만 말했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는 그 후대에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교자가 굉장히 큰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제일 대목장이 언제입니까? 그것은 주를 위해서 순교당하는 것이 제일 큰 대목장입니다. 장사꾼이 일 년 내내 장사를 못해도 대목장만 잘 되면 빚을 다 물어주고도 돈이 많이 남습니다.
믿는 사람이 순교 당하면 그것은 일생동안 모든 것을 다 제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교자가 제일 큰 복을 받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한 번 죽을 몸인데 순교 당하면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것은 복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십 년 더 살면 뭘 하고, 십오 년 더 살면 뭘 합니까? 스데반이 순교 당하지 않고 오십 년 더 살고 죽었다고 합시다. 오십 년 더 살고 죽었으면 스데반이 지금 있습니까? 오십년은 잠깐입니다. 아무래도 죽을 몸인데 오십 년 전에 순교 당했
으니 얼마나 큰 복입니까? 이십 년이 잠깐이고 십 년이 잠깐입니다.
6.25 사변 때 피난 갈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 년입니까? 33년입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그러므로 순교 당하는 것이 몇 년 더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순교 당하는 것이 참 영광인 줄 알고, 순교 당할 시기만 오면 기쁘고 즐거움으로 순교를 당해야 됩니다. 아합 왕 당시에 순교 당한 사람이 많았고, 엘리야는 살아서 증거 하였고, 그 다음에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신앙을 지킨 사람이 칠천 명이 있었는데, 그 칠천 명은 신앙은 지켰지만 자기 혼자만 지킨 것입니다. 이
칠천 명보다 엘리야 한 사람이 낫습니다.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행해 나갔던 것입니다. 칠천 명은 숨어서 제 신앙이나 지킨 것입니다. 그것보다 엘리야와 같이 나와서 적극적으로 일해야 됩니다.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증거 해야 됩니다. 그래야 빛이 비추어 나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이 되어 나가고, 마귀의 세력이 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순교당하면 죽어서도 후시대에 말하고, 하늘나라에 가면 특별 반열에 참여하며 상급이 큽니다.
그러므로 네 종류의 사람 가운데 제일 못 쓸 사람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목숨을 좀 연장한 사람들로 그 사람들은 제일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 죽지 않으려고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더 살려고 했으나 지금 살았습니까? 살긴 뭘 삽니까?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몇 년 더 살았겠습니까? 가령 오십 세 난 사람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하면 몇 년 더 살았겠습니까? 한 이십 년 더 살았겠습니까? 더 많이 살았다고 해도 한 삼십 년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십 년 더
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삼십 년 잠깐입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신앙의 정절을 빼앗기고, 영적 생명이 죽고, 믿음을 다 팔아먹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진리를 배반하고, 삼십 년을 더 살았다면 썩어질 생활이요, 망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즉 삼십 년 동안 썩은 것이고, 삼십 년 동안 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삼십 년 전에 아예 신앙을 지키다 죽은 것이 진짜 산 것이고, 후대에도 말하고 있는 것이고, 하늘나라에서도 영광이 크고, 상급이 큽니다.
신앙을 양보하고 사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그 날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신앙을 양보하면 죽으러 도수장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도수장은 소나 양 같은 짐승을 잡는 곳입니다. 신앙 양보하고, 육신의 목숨을 좀 연장해야 되겠다는 것은 도수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또 연장해도 몇 년 더 연장 못 받습니다. 인간의 수명은 건강하면 팔십이라고 하였는데, 그 날이 신속히 날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시편90:10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월이 날아갑니다. 백발이 그저 날아옵니다. 언제 오는지 훌떡훌떡 온다는 말입니다. 그 옛날 아이들 때에 헤어진 사람을 만나니 다 머리가 허옇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다 생겼습니다. 왜 이렇게 늙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만큼 빨리 세월이 날아갑니다. 얼마 안가면 청년일지라도 다 늙습니다. 6.25 사변 후에 새파랗게 젊었던 사람들이 요새는 영감이 다 되었고, 할머니가 다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양보해야 살고, 양보 안 하면 죽는다고 하면 죽는 것이 낫습니다. 백배나 만 배나 낫습니다. 몇 년 더 살아야 뭘 하겠습니까? 잠깐 있다가 지나가는 세월입니다.
또 신앙을 양보하면 영적 생명이 그 시간부터 죽습니다. 신앙 양보하는 그 시간부터 영적 생명이 죽고, 흑암에 갇히고, 마귀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들어가고, 영적 감옥에 갇힙니다. 그 자손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고, 비참한 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정조를 못 지키겠으면 차라리 신앙을 양보하는 것보다 칠천 명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 낫습니다. 그 다음에 적극적으로 나가다가 아예 순교를 당하든지, 엘리야와 같이 하든지 둘 가운데 하나이
어야 합니다. 옛날에도 칠천 명 속에 들어가는 사람 많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신앙을 못 지키겠으므로 만주로 가고, 또 도시에서 못 지키겠으므로 산골로 가서 농사 해먹으면서 신앙을 지켰습니다. 속으로 믿는 것입니다. 즉 속으로 하나님께 매일 기도하고, 믿음을 지킨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만 신앙을 지켰지, 옆에 사람에게 전도하지 못 하고, 불의한 세력에 대항하여 불의 하다고 말도 못하고, 거짓 선지자에 대하여 바른 증거도 못하므로 상급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시대에나 이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엘리야와 같은 자리에 서든지, 그렇지 않으면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든지 하여야 합니다.
이북에 엘리야가 있겠습니까? 아마 순교 당한 사람이 많고, 지금도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가 있을지 모릅니다. 중공에는 엘리야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증거하고, 전도하고, 나가서 사경회를 인도 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놓아주면 또 나가서 증거하는 생활을 합니다. 루마니아에 범브란트라는 목사는 감옥에 갇혔다가 나오면 또 증거하고 또 잡히면 감옥에 갇히고 또 나오면 또 증거하는 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공산국가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또 순교당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 다음에는 칠천 명이 많다는 말입니다. 숨어서 속으로만 믿고 외부로는 믿음 지키지 못합니다. 그 다음에는 여기 하나님의 비밀을 말했다고 했습니다.
이북과 중국에 남겨두신 성도들
이북에서 성도들을 다 잡아 죽인 것 같은데 그러나 이북에도 성도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교회가 없고 믿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이북에도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 칠천 명을 남겨 두셨을 것 같습니다. 표면적으론 없는 것 같지만, 그곳에 많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남겨 놓으셨을 것입니다.
중국에는 여러 해 전만 해도 교회가 없었습니다. 모택동 때 문화혁명 시대에는 교회가 다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중국에서도 종교의 자유를 조금 주기 때문에, 그동안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숨어 있었는데 이제는 많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중국에 교회가 몇 개가 됩니까? 공인받은 교회가 400개 정도고, 교인은 오천만 명 이라고 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숨겨놓아 두셨었습니다. 교회가 하나도 없었고, 전에 있던 예배당은 무슨 공장으로 다 만들어놓고는 하나도 안 남게 없앴었는데, 지금은 400개의 교회가 나왔습니다. 제가 봉천 서탑교회에 한 번 가봤었는데, 전에 있던 교인들이 다 죽고 망했었지만, 요새는 다시 문이 열리고 교인들도 다시 모입니다. 교인들이 한 육백 명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다 숨겨 놓아 두셨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일은 실패하지 않음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버리지 않으심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절대 버리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엘리야 때에 대적들이, 많은 백성을 다 잡아 죽이고, 엘리야는 자기 혼자 남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택한 백성에게 반드시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셔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택자는 다 구원하여 주십니다.
바로 믿으려는 성경말씀 운동
칠천 명을 숨겨두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택자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자유진영에도 바로 믿는 사람들을 많이 두셨을 것 같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바로 믿는 사람이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이 세속화되고, 신신학으로 세계 교회가 기울어졌습니다. 또한 신비주의로 기울어지고, 세속화 운동으로 내려가고, 많은 목사들이 타락되어서 신신학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다 형편없이 타락이 되었지만, 그래도 성경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경이 있으니까 ‘성경을 그대로 믿자’고 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사방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기대해 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성경을 다 믿지 않고 내려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다 부인하고 세상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성경 말씀대로 바로 믿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남겨 두실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많이 숨겨 놓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앞으로 많이 일어나게 해주시지 않겠나 생각해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실패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운동이 하나님의 말씀 운동입니다. 우리가 남겨둔 칠천 명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예수를 믿는 시대인데, 우리가 말씀대로 믿어라 하고 외치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시켜서 ‘성경대로 믿어야 된다’고 일깨우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운동이 하나님의 말씀 운동입니다. 우리가 남겨둔 칠천 명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예수를 믿는 시대인데, 우리가 말씀대로 믿어라 하고 외치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시켜서 ‘성경대로 믿어야 된다’고 일깨우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주일을 잘 안 지키는 시대인데, 우리는 주일을 지켜야 된다고 외칩니다. 이것도 칠천 명을 남겨두셔서 바른 것을 깨우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믿어야 된다’, ‘영적으로 믿어야 된다’, ‘영이 살아야 된다’고 깨우치게 하십니다.
또한 문서를 가지고 여러 교회가 각처에 나가 전합니다. 강해서로 전하고, ‘이렇게 믿어야 옳다. 이것이 하나님 바로 섬기는 것이다’고 전합니다. 이런 운동으로 각처에 퍼져 나가서 남은 칠천 명으로서 남들을 깨우치는 일을 하는 가운데 있고, 이를 통해 살려나가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반드시, 절대로 폐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문서를 가지고 여러 교회가 각처에 나가 전합니다. 강해서로 전하고, ‘이렇게 믿어야 옳다. 이것이 하나님 바로 섬기는 것이다’고 전합니다. 이런 운동으로 각처에 퍼져 나가서 남은 칠천 명으로서 남들을 깨우치는 일을 하는 가운데 있고, 이를 통해 살려나가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반드시, 절대로 폐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교회가 세속화 된 이 세대에 남겨두신 사람이 있다
아무리 세대가 악하게 되고, 이세벨과 같이 종교를 탄압하고 다 잡아죽이고, 아무리 다 세속화되고 타락이 됐어도, 엘리야만은 타락이 안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다 타락이 되어도, 어느 시대나 ‘그래도 성경대로 믿어야 되겠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남겨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바른 신앙대로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바른 신앙의 사람 칠천 명이나 하나님께서 남겨 두십니다. 그런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해주신 일입니다. 우리는 감사한 것뿐입니다. 사람 생각으로는
안 될 것 같아도 하나님은 실패가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이기고, 하나님 바로 섬기는 자가 이기고, 참된 신앙이 승리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공산주의 국가에 있는 성도들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바로 믿는 성도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고, 여기에서도 바로 믿는 성도들을 일으켜서 참 신앙, 생명 있는 신앙의 명맥을 이어나가실 것입니다. 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많이 일으키셔서 당신의 하실 일을 실패하지 아니하시고 성공하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3. 남은 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됨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
본문 6절에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칠천 명을 남겨 놓으셨는데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칠천 명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는데, 왜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은혜로 말미암았다고 했습니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것은 행위지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그 행위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말씀 지키는 행위도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함
말씀 지키려는 행위 자체가 은혜로 된 것입니다.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 하나도 못 지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말씀을 지킬 수 있는 믿음이 생긴 것이고, 믿음을 주셔서 그 사람들이 생명을 내놓고 말씀을 지키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게 칠천 명을 남겨 놓으신 것이기에 그것이 다 은혜로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그 사람들은 생명 내놓고 하나님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말씀을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물론 자기의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말씀을 지킨 것이지만, 그게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킬 마음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지킬 힘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도 하나님 은혜입니다. 말씀을 못 지키게 할 만한 세력도 하나님께서 막아주셨는데 그것도 하나님 은혜입니다. 전부 하나님의 은혜로 되게 하신 것입니다.
말씀대로 지키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구원을 이루어나가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10:17)고 했는데, 말씀을 들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롬 10:10)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많이 듣고 깨닫고 그 말씀대로 행함으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져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않아서 구원이 이방에게로 나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대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말씀을 지킨 성도, 참 신앙을 지키는 성도 칠천 명을 남겨놓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남겨놓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말씀대로 말씀을 지키는 신앙을 우리에게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에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고 말씀운동을 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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