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로마서 11:7-31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음
로마서 11:7-31
 
7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11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13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25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헬, 충만히 26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28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29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30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므로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나감

본문 7-10절에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교만하고, 완악하여 하나님을 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또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을 자랑하면서도 그들이 교만하여 믿음의 길로 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눈이 어두워지고,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그들이 가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또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고,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는데, 교만한 자와 완악한 자는 다 이렇게 되며, 하나님의 참된 생명의 도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외부적인 껍데기 종교만 가지고 있고, 성경의 참뜻을 알지 못하면 생명의 도를 주지만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가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아주 버렸느냐? 라는 말입니다. 그 대답은 아주 버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넘어지기 때문에 구원이 이방 사람에게로 가서 나중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기가 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인해서 구원이 이방 사람에게로 나가서 이방인이 믿음으로 부요해졌습니다. 또 이스라엘이 실패했기 때문에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나가서 이방사람이 믿음으로 부요해졌다고 하면, 이스라엘의 충만함이 얼마나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넘어졌기 때문에 구원이 이방 사람에게 나가 부요함이 되었다고 하면 본래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것이 얼마나 충만했겠느냐?는 뜻입니다. 

2. 이방신자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자랑하지 못함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해서 돌아오게 함

본문 13-14절에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이방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이방 사람이 예수를 믿고 복을 받게 하려고 힘을 썼다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이방 사람을 구원하는 것과 둘째, 이스라엘 백성을 시기나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어머니가 오라고 할 때에 말을 안듣고 오지 않을 때에 어머니가 다른 아이를 업어 준다고 하면, 달아나던 아이가 그 다음에는 시기가 나서 자기 어머니에게로 달려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고 해도 안 돌아오므로,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생명의 세계로 돌아오라고 해도 율법과 의식에 붙들려 교만하고 완악해져서 믿음의 세계로 돌아오지 않으므로, 이제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해서 이방인에게 생명의 역사가 나가고, 이방사람들이 복을 받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기가 나서 “우리도 하나님을 섬겨야 되겠다”하며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본문 15절에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완악해져서 외부적인 종교만 붙들고 있다는 말입니다. 껍데기만 붙들고 있습니다. 즉 생명 없는 종교만 붙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버리셨고 복음이 이방 사람에게로 가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기가 나서 돌아오게 된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와 뿌리가 거룩함

본문 16절에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익은 곡식 가루와 뿌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조상들을 가리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의 이스라엘 조상들이 거룩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조상들이 거룩하므로 가지도 거룩한 것이 분명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즉 이스라엘 조상들이 잘 믿었기 때문에 그 자손들도 앞으로 잘 믿을 날이 온다는 말입니다. 또 지금은 교만해서 일시적으로 안 믿지만 나중에 가면 그 조상들의 뿌리와 처음 익은 곡식가루가 좋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잘 믿을 날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상들이 좋은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 자손들이 그 신앙을 본받습니다. 또 일
시적으로 타락이 되어서 불순종하는 가운데 나가는 자식들이 있을지라도, 그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는 자기 조상의 신앙을 본받아서 잘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 믿음을 잘 못 지키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불량한 일을 많이 했지만 나중에는 자기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하나님께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자기 아버지 이삭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지 보고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버지 이삭의 경외하던 그 하나님께로 내가 돌아가야 되겠다”고 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잘 믿으면 자식들이 그것을 본받습니다. 일시적인 타락으로 인해서 안돌아올 때가 있어도 언젠가는 그 아들이 돌아올 때는 그 옛날자기 부모가 가졌던 그 신앙으로 돌아옵니다.

참감람나무 가지에 돌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임

본문 17절에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라고 하였습니다. 참감람나무는 유다사람을 가리키고, 돌감람나무는 이방사람을 가리킵니다. 참감람나무 가지에 돌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의 진액을 받아서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이 믿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은 돌감람나무 같은 이방인을 불러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를 믿으므로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긍하면 하나님께서 찍어 버리심

본문 18-21절에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즉 믿음의 그루터기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가지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고, 뿌리가 가지를 보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즉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 받아서 사는데 무슨 자랑을 하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원가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꺾어버리셨는데, 그렇다면 접붙임을 받은 가지는 이제 순종하지 않으면 더 잘 꺾어 버리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는 것은 하나님의 엄격하고 위엄성 있는 것을 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위엄성 있고, 권위가 있는 무서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에 거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에 거한다는 말이며, 또 하나님의 사랑에 거한다는 말은 믿음에 거한다는 말입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처음 사랑으로 살면 하나님의 사랑이 언제나 너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된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처음 사랑을 가지고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겨버리신다는 것입니다(계 2:5). 

버림 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

본문 23절에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합니다.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리”란 하나님께 꺾이운 바 된 이스라엘 백성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면 접붙임이 된다는 것입니다. 버림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접붙일 능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본문 24절에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라고 하였습니다. 돌감람나무가 원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는데 하물며 원 가지인 그들이 이제 돌아오기만 하면 얼마나 그 접붙임을 잘 받겠느냐?는 말입니다. 즉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이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거든 하물며 원래 참감람나무 가지인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더욱 잘 영접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3. 이방인의 수가 차면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음

이방인의 수가 차기까지 이스라엘이 완악함

본문 25-27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 하노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인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이 완악하게 되었다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다 들어오면, 그 다음에는 구원이 이스라엘에게로 간다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구약시대와 예수님 당시 때까지는 이스라엘에 구원의 문이 열릴 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이방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로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문이 열렸을 때이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다음부터는 이방으로 복음이 나가는 시대입니다.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감

즉 유대에 구원의 문이 닫히고, 스데반 순교당한 이후부터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나갔습니다. 그 때는 이방인의 문이 열릴 때입니다. 그러므로 유대 사람은 예수님을 잘 믿지 않습니다. 소수가 믿기는 믿지만 대부분이 잘 안 믿습니다. 이제 이방 사람의 충만한 수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그 다음에는 다시 이방인의 문이 닫히고 구원의 문이 다시 유대 사람에게로 돌아갑니다. 즉 이스라엘에 구원의 문이 열리고 이방인에 구원의 문이 닫힐 날이 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
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되는가? 하나님은 완악하고 불순종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을 안주십니다. 구약시대와 예수님 당시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많이 애를 썼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완악하고, 교만하여, 불순종했으므로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던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겸손하게 복음을 받아드리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언제나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방 사람들도 어떤 사람들이 복음을 잘 받는가?하면 겸손한 자, 순종하는 자가 복음을 잘 받습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지 백년이 되었습니다. 백 년 동안 한국 교회가 세계적으로 우수하게 발전되었습니다. 그것은 한국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잘 받아 믿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나라, 자존심이 강한 나라, 오만불순한 나라일수록 복음이 잘 안들어 갑니다. 아무것도 없고, 겸손하여 그대로 받아 믿는 나라에 복음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이방인의 수가 충만하게 차면 이방인의 구원의 문이 닫히고, 다시 구원이 유대사람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중단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생명강수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계속해서 내려가는데,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른 데로 갑니다. 강물을 막아놓으면 다른 데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또 막아 놓으면 또 다른 데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또 생명수를 받아들이는 곳은 생명이 살아났으나, 안 받아들이는 곳은 목이 마릅니다. 목이 마르므로 그 다음에는 교만이 깨어져나가고 사모하게 됩니다. 그 때에는 다시 생명강수가 그곳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이방이 교만해지고 완악해지면 다시 생명수가 이스라엘 나라로 들어가 생명의 역사가 있게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유대사람들이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라고 하며, 하나님을 섬긴다고 열심히 하나님께 제사하나 이들이 교만하고 완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을 순수하게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여, 껍데기만 붙들고 만족하는 생명 없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갔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방사람들이 순진하고, 겸손하여 말씀을 잘 받아 믿으므로 어느 정도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만해고,완악해지고, 육신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므로 이제는 이방에 복음의 문이 막힙니다.

그 때에 복음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비밀을 잘 알고 있어야 됩니다. 언제나 종교가 껍데기만 남고,세상에서 세력을 쓰며, 외부적인면만 화려하고, 내적 생명의 역사가 없으면 하나님이 내버리십니다. 그러면 많은 환난 가운데 빠집니다.
거기서 순교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데 그 시일이 오래 걸립니다. 한 두 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사람은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교만이 깨져 나가고, 과거의 것을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즉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것이 70년 걸렸습니다. 유대사람에게 다시 문이 열리는 것은 약 2000년이 걸립니다. 유대사람들이 2000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곤란을 당해야 됩니다. 이처럼 종교가 의식주의로 돌아서고, 껍데기만 남고, 내적 생명의 역사가 없으면 다시 하나님께서 환난 가운데 빠뜨리십니다. 구소련 교회들이 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구소련에 레닌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기독교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구소련 사회의 권세를 기독교가 다 잡고 있었고, 가는 곳마다 큰 예배당들이 가득했습니다. 취직 하나 하려고 해도 목사의 증명이 없이는 취직을 못하고, 토지는 교회에서 다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교인 숫자는 많아지고 세력은 강하여졌지만 내적생명의 역사가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공산당에게 내버리신 것입니다. 구소련에 있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환난을 많이 받았고, 지금까지 환난을 받고 있습니다. 공산국가에 있는 종교들은 다 이와 비슷합니다.
하나님이 다 내어주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죽고, 또 많은 기독교인들이 환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점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외부적인 세력도 깨지고, 권세도 깨지고, 자랑하던 것도 깨지고, 의지하던 것도 깨지고, 아무 볼 것 없이 비참한 상태에 빠지므로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그 기간이 오래 걸립니다. 성도의 권세가 다 깨져야 됩니다. 다니엘 8:13에 “내가 들은즉 거룩한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그 말하는 자에게 묻되 이상에 나타난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성도의 권세가 이천 삼백 주야까지 깨져야 합니다. 기간이 오래 걸립니다. 유대 사람은 유대사람의 교만과 허세와 자랑하던 것과 완악한 것이 깨지는 것이 약 2000년 걸려야 됩니다. 

복음이 이방으로 나왔는데 이방 사람들이 처음에는 순진하고, 겸손하여 말씀을 그대로 사모해서 잘 받아들였는데, 예수 믿고 복을 받게 되니 교만하고 완악하고 세상세력을 잡으려고 합니다. 종교가 의식화 되고, 형식화되고,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내적 생명의 역사가 끊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또 내주십니다. 종교가 외부적인 세력을 쓰면 안됩니다. 그것 때문에 내적 생명이 없으므로 다 깨어져야 됩니다. 요새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진짜 신자는 이북에 있고 진짜 공산당은 이남에 있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이 이북에 많지만 출세하고, 권세 쓰려고 공산당 하는 것은 진짜 공산당이 아닙니다. 이남에서 반공법을 만들어 공산당을 때려잡는데서 공산당하는 것이 진짜 공산당이 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기서 예수 믿으면 잘 된다고 해서 예수 믿으면 그것은 진짜 신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볼짱 보려고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진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북에서 예수 믿으면 잡아 죽이고, 성경책도 보지 못하게 하며, 탄압을 하는 거기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진짜라는 것입니다. 

종교가 껍데기만 남고 내적 생명의 역사가 없이 외부적인 면만 자라나면 그것은 살았다 하는 이름만 가진 것입니다. 즉 부요하다는 이름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적생명은 가련하고, 곤고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사람에게 내주어서 이방사람들이 이것을 짓밟아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는데 이천 삼백주야를 지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다 끝난 것인가? 구소련의 기독교가 다 끝난 것인가? 이북의 기독교가 다 끝난 것인가? 월남의 기독교가 다 끝난 것인가? 캄보디아의 기독교가 다 끝난 것인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외부적으로 보면 없는 것 같습니다. 성도의 권세가 다 깨졌습니다. 그러나 끝난 것이 아닙니다. 외부적인 것이 다 깨어져 나가므로 이제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다 깨어지는 가운데서 택한 백성 칠천 명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절대 버리시지 않습니다. 칠천 명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될 때에 예수님이 심판하십니다. 악한 자는 다 심판해 치우시고 성도는 거기서 다시 건져 내십니다. 그 때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