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과 에녹의 믿음의 증거
히브리서 11:1-6
히브리서 11:1-6
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2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4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5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를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1. 믿음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은 아벨
말씀대로, 신령한 제사를 드림
본문 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인류 최초의 인간은 아담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을 하나님께서 창조했는데, 그 아담의 아들인 두 사람을 성경에 기록을 했습니다. 맏아들은 가인이고, 둘째아들은 아벨입니다. 가인은 농사를 해서 농작물 가운데 제일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양을 치는 자이므로 양의 첫 새끼와 기름진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농사해서 제일 좋은 것으로 정성껏 하나님께 드렸는데, 왜 안 받으셨나? 그건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아서 안 받은 것입니다. 가인의 제사가 말씀에 안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담의 범죄 후에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희생의 제물을 가지고 나가야 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말씀, 장차 그리스도가 온다는 말씀, 또한 가죽옷을 내 입히므로, 희생을 가지고 나와야 죄사함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아담이 아들 둘에게 그 말씀을 다 가르쳐주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범죄 했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그러나 장차 그리스도를 여인의 후손을 통해서 보내주셔서 마귀의 세력을 멸해주실 것이라는 것과, 또한 하나님께 나갈 때는 희생의 피가 아니면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담이 그 아들들에게 가르쳐주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아벨은 아버지가 전해 준 그 말씀대로 하나님께 나갈 때는 양의 피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우리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속죄의 피가 아니면 하나님께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아버지께 배운 대로 피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맞았습니다. 그런데, 피만 가지고 나가도 또한 하나님께서 안 받습니다. 이사야 1:11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수양의 피나 수송아지의 피나 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아벨이 드린 피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셨는데, 왜 이사야 당시 때 사람들은 피를 가지고 나왔는데도 안 받았는가? 그것은 양의 피만 가지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양의 피를 가지고 나왔지만 이사야 당시 사람들은 마음이 틀렸던 것입니다. 껍데기만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피만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고, 그 피가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피를 믿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양의 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아벨은 양의 피를 가지고 나오면서 이 양이 피 흘려 죽는 것처럼,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피 흘려주실 것을 바라보고, 영적으로 바라보는 제사,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첫째는 제사가 말씀에 맞아야 되고, 둘째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 교통이 있어야 됩니다. 영적인 제사,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통하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고 교통하는 영적인 제사를 드려야만 됩니다.
그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인데, 요한복음 4:24에 예수님이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진정 이라는 것은 진리라는 말이고, 신령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하면서 즉, 영적 역사가 있는 그런 제사를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가 어떤 제사입니까? 그것은 첫째 성경에 맞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됩니다. 신령한 제사, 영적인 제사,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제사를 해야 됩니다. 성경에 맞아야 됩니다.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은 다 죽은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성경을 버리고 성경을 어기고 믿는 것은 죽은 제사입니다. 성경을 그대로 지키면서 드려야 산제사가 됩니다. 오늘날에도 산제사를 드리려면 말씀에 맞아야 되고 신령한 제사가 되어야 됩니다. 말씀이 없어도 죽은 제사이고, 신령한 것이 없어도 죽은 제사입니다. 즉, 성경말씀대로 제사를 드리느냐 아니냐를 분별해야 됩니다. 또한 신령한 영적 면이 있느냐 없느냐를 분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성경말씀에 어긋나게 나갑니다. 성경말씀대로 나가지 않고, 목사가 설교를 해도 성경 한 절 읽고 세상 이야기하고 책 읽은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성경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것이 없고 의식만 있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영이 살고 신령한 역사가 있어야 되는데, 교회가 타락이 되면 의식적 예배만 드립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산제사를 드리려면 목사가 첫째 기도를 많이 해야 되고, 교인들도 예배시작하기 전에 미리 나와서 기도로 많이 준비하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경대로 해도 껍데기로만 하면 안 되고, 영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통하고, 생명의 역사가 있는 그런 제사가 되어야만 산제사가 됩니다. 우리가 항상 산제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가인의 제사는 자기의 농사한 것 가운데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서 정성을 다해서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받지 않았습니다. 왜 안 받았습니까? 성경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맞지 않았고 또 영적인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제사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영적인 제사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산제사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증거가 나타남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마음이 기쁘고, 그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하나님을 더 사귀게 되었고, 즐거움으로 심령이 살게 되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받지 않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아무런 감동이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만 제사 드렸기 때문에 생명의 역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기가 나서 결국 아벨을 죽였습니다. 얼마나 악한 사람입니까? 하나님께 산제사, 생명이 있는 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결국 이처럼 마귀가 들어와서 시기심을 일으키고, 자기 동생을 미워하게 하다가 결국 죽인 것입니다.
산제사를 드리지 못하면 언제든지 마귀가 속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불쾌한 마음, 시기, 미워하는 마음이 들어옵니다. 산제사를 드리지 못하면 남을 사랑하지 못하고 영적 평안이 없고 생명의 역사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속에 들어오게 되고 결국 마귀 종노릇 하다가 죄만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산제사를 드리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또 예배시작하기 전에 미리 나와서 기도로 준비하고 있다가 예배시간에 영의 세계를 찾아야 합니다. 기도를 해야 영의세계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영의세계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깨어 기도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산제사를 드림으로서 믿음의 증거를 날마다 얻어 나가야겠습니다.
산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맞는 믿음은 산 믿음이고, 안 맞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해야 됩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과 말씀으로 믿는 것이 합해졌을 때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만일 “마음으로 나는 믿습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절반입니다.
행하는 믿음이 있어야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즉 우리는 성경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행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산 믿음이 됩니다. 또한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무슨 믿음이라고 했습니까?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과 26절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말씀에 맞는 산 믿음을 소유해야하고 성경 말씀에 맞는 산 제사를 드려야하며 성경말씀에 맞는 행함을 해야 합니다. 내 정성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 말씀에 맞게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아벨의 제사와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를 드리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신앙
본문 4절 하반 절에 “그 믿음으로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벨은 시기당해 가인의 손에 죽게 되었지만 하나님께 호소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 기억하신바 되어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4:10절에 “네 아우의 핏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벨의 제사가 하나님께 상달이 됐고 기억하시고 받아주셔서 친히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산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시고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아벨은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아벨을 기억해주시고 받아주시고 갚아주셨습니다. 육신적으로 아벨이 죽었으나 결국 하나님께 갔습니다. 하나님께 갔을 때 하나님께서 아벨의 순교 당한 것을 기억해주셨고 갚아주셨습니다. 산 신앙은 죽어도 성공입니다. 죽게되어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신앙, 하나님이 인정해주는 신앙을 우리는 가져야합니다.
2.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하는 증거를 얻은 에녹
하나님과 믿음으로 동행한 에녹
창세기 5:21-24에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에녹은 삼백년간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365세 때에 죽음을 보지 않고 산 채로 하늘로 승천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서 산채로 승천한 사람은 에녹이 첫 번째이고, 그 다음에 엘리야이고, 그 다음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입니다.
에녹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는데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의 심령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늘 받아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늘 받아서 잠시라도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잊어버리고 다니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게 아닙니다. 하루 종일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든 것을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이 에녹을 데려간 것처럼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은 하나님께 상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이 참 신앙인데, 과거 구약시대 성도들 중 노아가 하나님을 공경했고 아브라함과 이삭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존경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데려가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 자체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말씀을 순종하는 신앙으로 영이 자라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께 바로 하려고 하면 그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그 영은 자라나고 하나님께 영광이 드러납니다. 어디를 가나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 사람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은 많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고 주십니다. 성도들끼리 싸우고 다투고, 서로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행동을 한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또한 말이 경건치 못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하고, 불신앙의 언사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못 됩니다. 이제부터 에녹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본문 3-6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리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옮기셨다고 했는데, 에녹은 아담의 7대 손입니다. 창세기 5장 21-24절에,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에녹은 삼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산 채로 승천하게 했는데, 에녹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은 믿음입니다.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고 하였는데, 에녹이 승천하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해야 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고, 단 마음으로, 충성되이 일심정력을 기울여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입니다.
요셉은 어디로 가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리워서 종살이 할 때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39:23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기 때문에 요셉에게 형통한 길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감옥에서도 요셉과 하나님이 함께 하신 증거입니다. 그 다음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에도, 요셉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도록 모든 일에 힘을 써야겠습니다. 불평과 불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맡긴 것을 단 마음으로, 기쁘게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겁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에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애굽에 보내신 줄로 믿고 현실에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시켜서 귀히 쓰는 그릇으로 만드시려고 그곳에 보낸 줄로 믿었습니다. 또 욥도 재산과 자녀와 건강을 다 잃고 고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이 나를 연단 시켜서 정금과 같이 나오게 하시려고 연단 시키는 줄로 믿고 거기서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욥에게 갑절의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직장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직장인 줄 알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단 마음으로, 충성되이 양심을 써서, 지혜롭게 바로 하여야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같이 하십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에게 지어 준 십자가를 질 때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그 십자가를 지어야겠습니다. 예수님도 “내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 하시며, 십자가를 단 마음으로 지고 나가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만 했습니다. 요한복음 5:19에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고 하였고, 요한복음 8:29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요한복음 12:49에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의로 말이나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일러주시는 대로, 명령하시는 대로, 말과 행동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내 뜻대로 하지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어기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을 어기지 말아야 합니다.
심을철 목사님은 담배 피울 때에 기도해보고 피우라고 합니다. 기도해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피우라는 겁니다. 즉 담배를 피우기 전에 기도해 보고 기도가 안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므로 피우지 말라는 겁니다. 또 술을 마실 때에도 기도해 보고 마시라는 겁니다. 기도해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마시고, 기뻐하시지 않을 것 같으면 마시지 말라는 겁니다. 매사에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만 가야 합니다. 성경대로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죄에 대해서 심판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성령의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찾아서 행하여야 합니다. 즉 전도하는 일, 교회 세우는 일, 선교사를 보내는 일 등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십자가가 와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잘 세워나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진리를 세워나갈 때에 바른 진리에 서 있는 교회를 세워나가야 됩니다. 즉 신본주의로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이 주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장사 하는 곳으로 만들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교회, 영이 사는 교회, 참된 신령한 양식을 먹는 교회, 참된 진리를 세워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구속운동을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구속운동을 바르게, 혼잡하지 않게, 무엇을 섞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며 바로 세워 나갔습니다. 즉 다른 복음을 제거하고 바른 복음만 세워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울을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십자가를 달게 지고, 희생 봉사하며 나아가야겠습니다. 또 우리에게 주신 물질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사용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물질을 사용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세상에 물질 쌓아 놓으면 그것은 다 좀이 슬고 도적이 도둑질하여 갑니다. 그러나 복음운동에 쓰여진 것은 하늘나라에 영원히 남게 됩니다. 그것이 물질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사용하는 겁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쓰면 자기 영이 자라나고, 큰 유익이 됩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늘 힘을 써 나가야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계셨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8:29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행하는 자는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이 항상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일을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항상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찾아서 행하여야겠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무슨 일을 맡겨도 언제나 충성되이 잘 해나갑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비결입니다. 부모공경을 잘하는 것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부모공경도 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또 탐심을 품지 않고, 거짓증거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증거도 주십니다. 즉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믿고, 또 우리와 같이 계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우리를 십자가의 보배 피로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을 믿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믿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아이들이 “아버지” 하며 따라다니면 아버지가 아이를 무시하지 않고 좋은 것을 다 주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 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셔서 모든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계신 것을 믿는 믿음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살아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이 보시고,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모든 것이 되어 나갑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살아 계신 것, 자기와 같이 계신 것, 하나님이 보고 계신 것을 믿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항상 공경하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이 보시고 계시며,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행동, 생각, 말 등을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하려면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고, 언행심사, 마음에 생각하는 것, 모든 행하는 것 등을 하나님이 보시는 데에서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3장 8절에,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려서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하는 죄를 범한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데,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그 영광의 눈을 촉범했습니다. 안보고 계신 것처럼,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이 살고, 마음과 행동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고, 하나님 앞에서 행하지 못할 행동을 하고, 하나님이 보시는데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면 안 될 일, 가증한 일, 가증한 행동, 하나님 앞에서 하면 안 될 생각, 합당치 않은 생각 등을 하는 게 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2:24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해서 모독을 받는다고 했는데,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 욕 돌아가지 않나 생각해 봐야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그 앞에서 합당치 않은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만하면 되었다 하시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연보하는 것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게 해야 됩니다. 자기 힘을 다해서 하라고 하였습니다. 과부는 엽전 두 푼 드렸어도 하나님이 보시고 많이 했다고 하였습니다. 부자는 많이 드렸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많이 한 것이 아닙니다. 합당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경제적인 힘을 많이 주었는데, 연보를 많이 해야 하나님 앞에 바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되었다. 너희 힘을 다해서 했다”고 하시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많이 주셨는데 합당치 않게 제 생각대로 해치우면, 그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범사를 행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늘 해야 됩니다.
욥은 하나님을 늘 경외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하나님을 공경하는 말을 하고, 또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말을 하지 않고, 또한 고난이나 재앙이나 병 등이 와도 다 하나님이 주신 줄 알고, 하나님을거역하지 않았습니다. 욥이 기도한 것을 보면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 하나님께 반항하는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반항하는 말을 한 마디라도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말이나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행동을 합니다. 합당치 않은 것은 안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는데 어떻게 합당치 않은 행동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창세기에 보면 요셉이 애굽에 가서 종살이 할 때에, 그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사람이 없을 때 붙잡고 동침하자고 하니까,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 이런 큰 악을 행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요셉은 살았습니다. 누가 볼 사람 하나도 없고 동침하고도 그 주인의 아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고, 대접도 더 잘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 어찌 이 큰 악을 행하리요”하며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할 수
없는 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며 거절하고 도망쳤다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들어가도,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하다가 들어가는 것은 괜찮습니다. 아무리 잘 되어도,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는 말이나 일이나 행동 등을 한 것이 있다면 그건 완전히 실패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 바로 하지 못한 것,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한 것에 대한 심판은 정해 놓은 것입니다. 지금은 안 망해도 얼마 안가서 반드시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돼지는 잡아 먹기로 예정해놓은 것입니다. 다른 짐승들도 필요해서 먹입니다. 말은 타고 다니려고, 소는 논이나 밭을 갈고 뭘 실어오려고, 개는 집을 보게 하려고, 닭은 새벽을 알리게 하려고 먹입니다. 다 필요가 있기 때문에 먹이는 것입니다. 돼지는 아무 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잡아먹을 것은 돼지 밖에 없습니다.
집에 있든, 직장에 있든, 혼자 있든, 캄캄한 데 있든, 하나님이 다 보십니다. 하나님이 다 보시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일, 연보하는 일이나 주일을 지키는 일이나 예배를 드리는 일, 이런 것들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시는 것처럼, 제 생각 제 뜻대로 자기 마음대로, 제 생각대로, 또 자기 죄악성, 부패성대로 혈기를 있는 대로 다 부리고, 사기횡령하고, 음란방탕하면서 행동하는 것은 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가 됩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보시는 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계신 것을 언제나 믿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가 언제나 보시는 걸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믿음
그 다음에 에녹의 믿음은 하나님을 찾는 믿음입니다.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겁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는데,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계속 찾는 생활입니다.
1) 죄악의 담을 헐고 찾을 것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과 막힌 죄악의 담을 헐고 찾아야 됩니다. 이사야 59:1-2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찾아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죄악의 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죄악의 담을 헐어 치워야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악의 담을 쌓아 놓고서는 하나님을 아무리 찾아도 못찾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 올 때에는 자기의 죄를 자복하면서 나와야 되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야 됩니다. 교만, 고집, 이기주의 등은 전부 하나님과 나 사이를 막는 죄악의 담입니다. 교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습니다. 완고한 것과 고집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습니다. 이기주의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습니다. 막아놓고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의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교만을 찾아 회개하고, 고집과 완고한 것을 찾아 회개하고, 이기주의를 찾아 회개하고, 모든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또 계명을 어긴 죄, 기도하지 못한 죄,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죄 등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의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교만을 찾아 회개하고, 고집과 완고한 것을 찾아 회개하고, 이기주의를 찾아 회개하고, 모든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또 계명을 어긴 죄, 기도하지 못한 죄,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죄 등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2)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하나님을 찾을 것
그 다음에는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됩니다. 세상을 향했던 마음, 세상을 사랑했던 마음, 돈을 사랑했던 마음을 돌이켜야 하나님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과 동행하면서도 예수님이신 줄을 모른 것은 마음이 세상으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돈 사랑하는 사람은 돈에만 눈이 밝아 돈버는 데로만 마음이 다 가 있으므로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고, 마음은 돈에 다 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못 찾습니다. 비둘기는 마음이 어디에 가 있다고 합니까? 콩 하나 먹으려고, 콩 밭에 가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몸은 교회에 와 있으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이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돈 사랑하는 사람은 돈에만 눈이 밝아 돈버는 데로만 마음이 다 가 있으므로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고, 마음은 돈에 다 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못 찾습니다. 비둘기는 마음이 어디에 가 있다고 합니까? 콩 하나 먹으려고, 콩 밭에 가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몸은 교회에 와 있으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이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29:13-14에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돌이켜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아야만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하나님을 찾아야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기도하기를 쉬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기도하기를 쉬지 말고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배시간 전에 나와서 기도 많이 하고 예배에 참여해야 됩니다.
또 새벽 기도도 전심으로 힘써서 해야 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못찾습니다. 예배시간 늦어지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기 힘듭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예배시간에 늦어지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을 붙잡으며 찾을 것
그 다음에 하나님을 찾은 다음에는 하나님을 붙잡고 떠나지 않아야 됩니다. 즉 마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이 예수님에게서 떠난 것은 간음한 여자와 같습니다. 마태복음 16:4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란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세대라는 말입니다. 성도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과 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 안에서 살아야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 안에 계셨고,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계셨습니다(요 14:10). 또 너희는 내 안에, 나는 너희 안에 있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요 15:5).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예수님 안에, 예수님은 우리 마음속에 언제나 계셔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신앙입니다. 또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신앙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언제나 마음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일할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하여야겠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찾는 생활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과 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 안에서 살아야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 안에 계셨고,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계셨습니다(요 14:10). 또 너희는 내 안에, 나는 너희 안에 있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요 15:5).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예수님 안에, 예수님은 우리 마음속에 언제나 계셔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신앙입니다. 또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신앙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언제나 마음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일할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하여야겠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찾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결과 -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함
그 다음에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에녹을 죽지 않고 승천케 하셨습니다. 창세기 5장에는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또 자녀를 낳으며 동행했다는 말은 에녹이 가정 일을 잘 해나가면서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 하는 것은 홀로 산에 가서, 또는 굴에 가서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가정 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또 사업을 하면서 얼마든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과 동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결과는 죽음을 보지 않고 산채로 하나님이 데려 가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 하는 것은 홀로 산에 가서, 또는 굴에 가서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가정 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또 사업을 하면서 얼마든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과 동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결과는 죽음을 보지 않고 산채로 하나님이 데려 가셨습니다.
1) 성도의 부활을 표본으로 보여 주신 것임
즉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산채로 승천했습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앞으로,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성도의 영혼이 천국에 올라갈 것을 표본으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또 죽은 성도도 부활하여 천국에 올라가게 될 것을 표본으로 보여 주시는 겁니다. 즉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살아남아 있는성도들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서 올라갑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 다음에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이 성도들을 다 공중으로 데리고 올라 가십니다. 올라가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지상재림 하셔서 천년동안 왕 노릇하십니다. 그리고 천년이 지난 후 공중에서 백보좌 심판을 하시고, 성도들은 영원히 하늘나라로 갑니다. 안 믿는 사람은 지옥으로 갑니다. 믿는 사람은 영원토록 천국에서 하나님과 같이 살게 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지옥에 한번 가면 못나옵니다. 지옥은 얼마나 뜨거운 곳인지 압니까? 물 한 방울 없는 곳에서 영원토록 꺼지지 않은 지옥 불의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믿는 성도들은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세세토록 하나님과 같이 살며, 하나님을 찬송을 하면서 하나님과 같이 즐거워합니다.
2) 하나님과 동행한 생활 전체가 하나님께 상달됨을 보여 주신 것임
그 다음에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다는 또 다른 뜻은 하나님과 동행한 그 생활 전체가 하나님께 상달했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일이 하늘나라에 상달되었다는 겁니다. 세상을 위해서 산 것은 다 썩어지고 없어집니다. 즉 육신을 위해서 산 것은 다 썩어지고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 산 것은 하늘나라에 가면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누구를 위해서 살았는가? 한번 생각
해 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했는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했다면 얼마나 했는가? 또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산 것은 없는가?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산 것은 다 없어집니다. 세상을 위해서 산 것도 다 없어집니다. 요새 노라리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관광버스를 내어 가지고 관광 다니느라고 유원지마다 사람들이 넘칩니다.
해 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했는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했다면 얼마나 했는가? 또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산 것은 없는가?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산 것은 다 없어집니다. 세상을 위해서 산 것도 다 없어집니다. 요새 노라리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관광버스를 내어 가지고 관광 다니느라고 유원지마다 사람들이 넘칩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해수욕장에도 사람이 넘칠 것입니다. 그것은 다 썩어진 생활입니다. 해수욕장에 사람이 넘치지 않고 어디에 넘치면 좋겠습니까? 기도원에 사람이 넘쳐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성도들이 기도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 기뻐하시는 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은,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은 하나님께 다 상달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범사에 형통합니다.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범사에 형통했습니다. 또 이삭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했습니다. 또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어디를 가든지 형통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생활은 형통한 생활입니다. 우선 마음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항상 심령이 낙원에 있습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앞길을 열어 주시므로 형통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했습니다. 또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어디를 가든지 형통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생활은 형통한 생활입니다. 우선 마음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항상 심령이 낙원에 있습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앞길을 열어 주시므로 형통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모든 면에서 형통한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은 죽어도 유익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1:21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또 다니엘 6:10에는 30일 동안에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넣는다는 금령이 내렸는데도 다니엘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면 잡혀서 이제 사자의 밥이 되겠는데, 어떻게 감사 기도를 했겠습니까? 그것은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므로 죽는 것도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기 때문에 그 생명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니까 더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으로 사는 것은,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은 살아도 유익, 죽어도 유익하며, 범사에 형통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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