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9일 수요일

히브리서 11:5-19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신앙의선진(先進) 세 사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신앙의 선진(先進) 세 사람
히브리서 11:5-19

5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7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8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9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11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12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13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7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18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본문 5절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에녹이 승천했는데 승천하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노아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입니다. 또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입니다. 오늘 신앙의 선진 세 사람에 대해서 하나씩 생각하면서 은혜 받고자 합니다.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게 계심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고, 믿음 안에서 살며, 순종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세 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첫째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 믿음 안에서 살고, 셋째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는 믿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어디에 계신 것을 믿습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무소부재라는 것은 안 계신 곳이 없는 하나님, 무소불능이라는 것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즉, 세상 어디나 계신 하나님, 만능의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 있든지 그곳에 계신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집에 있든지 시장에 나가든지 산에 가든지 교회에 오든지 직장에 가든지 하나님은 거기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거기 계셔서 살펴보시고 아시고 우리를 위해서 염려하시며 권고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우리와 같이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그곳에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보시고 살피시고 사정을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심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2) 믿음 안에서 사는 믿음 

그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하나님 보시는 앞에 있고 하나님 목전에 있고 또, 그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기 때문에 경외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어떻게 경외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도 좀 위대한 사람, 또 유명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 욕도 못 하고 그 사람 앞에서 삼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 앞에 있을 때에 삼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며 삼가하고 조심합니다. 또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 때 하나님을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그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사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고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범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계신 것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 안에서 살게 되는데, 그러면 항상 즐거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났는데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가 즐거운 나라니까 하나님을 만나서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즐거운 세계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신 것과 또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믿으면 그 다음에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범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즐거워하지 아니하고 기도하지 아니하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이 같이 계시다고 하지만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 하나님이 반드시 여기 계신 것을 믿는 사람, 자기와 같이 계신 것을 믿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나라가 즐거운 나라이므로 기뻐하고 또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정을 하나님께만 다 아뢰게 되어 있습니다. 쉬지 않고 교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에 범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합동해서 유익하게 되니까 어떤 일을 만나도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잠언 14장에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소가 있으면 구유가 깨끗하지 못합니다. 소가 있으면 구유를 더럽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소를 없애 버리면 구유는 깨끗하지만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을 못 얻습니다.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논이나 밭을 갈고 짐을 실어 나릅니다.
또 소의 힘으로 얻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 소가 없으면 옛날에 어떻게 논이나 밭을 갈 수 있었겠습니까? 또 짐은 어떻게 실어 나릅니까? 지게에다 소 한 마리에 한 번 실을 것을 몇 십번 지고 날라도 그만큼 못합니다. 하여간 범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유를 좀 더럽히는 소가 있어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없는 것보다 나은 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자신이 상팔자인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며 그 안에서 살고 범사에 감사하며 그 안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 안에서 살면 항상 기쁘고 즐거움이 충만하고 생명수가 넘쳐 흐릅니다. 거기에는 고갈함이 없습니다.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목마름이 없습니다. 항상 충만합니다.

3) 순종하는 믿음

 그 다음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믿고, 믿음 안에서 살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살고 그 다음에 순
종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

오늘 본문에서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고 했습니다. 300년 동안, 일생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입니다. 또 하나님과 같이 살았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이 죽지 않고 산 채로 승천해서 하나님께 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 즉 믿음으로 사는 자는 앞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변화하여 공중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세가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모세를 변화산에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믿고 죽은 사람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부활해서 올라갑니다. 죽었던 자는 부활해서 올라가고, 살아남은 사람은 그대로 죽지 않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올라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공중에서 영접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하실 때가 임박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 가까웠다 말하지만 실제로 가까웠다고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부분 말로만 가깝다고 합니다. 저도 이따금 회개합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신 줄 저도 믿긴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도원 공사할 때 “여기 기도실 잘 지어라, 한 100년 가도 괜찮도록 지으라고 했다가 회개했습니다. 100년 안에 예수님께서 오실 것인데, 예수님 재림이 가까웠다는 소리를 그때는 그저 잊어버리고 100년 가도록 틀림 없이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회개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가끔 한 100년 가도록 하라는 말이 쏙 나오곤 합니다. 재림하도록 까지 있게 하라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100년 후의 계획은 안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여간 하나님께서 반드시 계신 것을 먼저 믿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그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에녹이 이렇게 하나님 계신 것을 믿고, 하나님과 그 믿음 안에서 살았습니다.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살면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모르겠으면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알면 됩니다. 매 시간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매 시간, 매 분, 매 초 믿음 안에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산 채로 승천했습니다. ‘이 다음에 우리도 믿음 안에서 살면 승천한다, 죽은 사람은 부활해서 올라가고 산 사람은 변화되어서 올라간다’라고 믿는 것이 에녹의 신앙입니다.

3. 믿음으로 방주를 예비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노아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노아가 나왔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예비했습니다. 7절에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그 시대의 죄악이 관영하여 그것이 하늘에 사무쳤음을 알았습니다. ‘죄악이 가득했으니 이제 홍수로 심판하겠다, 그러니 네가 구원을 받으려면 방주를 만들어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지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얼마나 비가 와서 이 땅이 다 잠기겠느냐, 노아가 정신 나갔다, 노아가 나이가 들더니 노망이 난 모양이다’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고 했으니까 올 것을 믿고 그 다음에 방주를 예비하라고 했으니까 방주를 예비했습니다. 그가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몇 년간 만들었습니까? 한 70년 간 만들었습니다.
70년 간 노아가 방주 예비하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방했겠습니까? ‘정신 나갔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심판이 반드시 온다, 구원 받으려면 방주를 예비하여야 구원받지 그 외에는 구원 받을 길이 없다’, 이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앞에다 놓고 ‘틀림없다, 심판이 온다, 홍수가 온다, 세상이 멸망한다, 구원 받을 길은 방주 예비하는 것 밖에 없다’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온 재산을 다 기울여 산에 가서
나무를 찍어다가 일꾼들을 많이 고용해서 한 70년간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방주 예비하는 동안에 노아의 아들들은 감독을 했을 것 같고, 며느리들은 무엇을 했을 것 같습니까? 밥해 주는 것을 했을 것 같습니다. 밥해 주는 일을 한 사람들이 노아의 며느리들입니다. 우리 교회도 노아의 며느리들이 더러 있습니다. 밥하는 사람이 노아 며느리인줄 아십시오. 며느리들이 매일 일꾼들 점심하느라 상당히 수고가 많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계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루어지면 심판이 온다, 구원의 길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었다, 방주를 예비하여야 한다’ 하는 믿음으로, 다른 사람들은 다른 것을 많이 해도 노아는 다른 것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것 무엇을 하겠습니까? 방주 예비하는 것만 잘 하면 됩니다. 방주 예비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다른 것은 둘째, 셋째입니다.

우리도 노아와 같이 믿음의 방주를 예비해야 합니다. 죄악이 관영한 이 시대 노아의 시대와 같이 되지 않았습니까? 또 하나님이 심판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도신경에 ‘저리로써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저리’라는 것은 ‘거기’입니다. 즉, 거기로써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는 것입니다. 심판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내내 이렇게 못 나갑니다. 끝이 있습니다. 내내 이렇게 나갈 줄 아는 사람들은 불신자들이고 무엇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아는 사람들은 내내 이렇게 나가는 것이 아니라 끝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끝이 있습니다. 세상만사가 다 끝이 있지 않습니까? 세상만사가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도 끝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종말이 옵니다. 그때는 불 심판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을 해 놓았는데, 불 심판 올 때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롯의 처와 같이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롯의 사위와 같이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위는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다가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심판을 믿지 않고 있다가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세상에 빠져 마음을 세상에 두고 살던 롯의 처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심판이 옵니다. 구원 받을 길이 무엇입니까? 방주를 예비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 예비한 것처럼 방주를 예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방주를 잘 예비해야 합니다. 믿음의 방주, 물이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방주 지을 때 오래 되어 썩은 것은 갈았을 것입니다. 70년간 나무가 많이 썩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물이 안 들어오도록, 세상 물결이 들어오지 않도록, 환난의 물결이 우리에게 들어오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 막아 내야 합니다. 나무는 말씀이라고 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방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 물결, 죄악의 물결, 환란의 물결, 심판의 물결이 들어오지 않도록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개할 것을 회개하고, 썩어진 것은 떼 내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새 나무를 가져다가 대야 합니다. 말씀을 가져다가 보충을 시키라는 것입니다. 회개할 바를 회개하고 말씀으로 항상 단장하고 말씀대로 못된 것은 잘라버리고 말씀대로 또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여러 면에 말씀대로 되지 못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무엇이 말씀대로 되지 못했는지 찾아야 합니다.

방주를 만들려면 나무를 얼마나 많이 갖다 대야 하겠습니까? 몇 백개 갖다가 대야 하는데, 우리도 여러 면으로 신앙의 방주를 준비해야 합니다. 어떤 면으로 준비해야 합니까? 도덕 면으로, 또 능력 면으로, 또 지식 면으로, 또 썩어진 걸 잘라버리고 다시 지으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면을 잘 지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썩어진 것을 잘라 버리고 갈아야 합니다.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고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친구 면으로 인간 면으로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에 대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대한 계명이 1계명에서 4계명인데, 그에 대하여 썩어진 것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잘못한 것을 잘라 내야 합니다. 그것이 방주 예비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잘 못 지키는 것, 십일조 잘 하지 못하는 것, 이러한 것들이 다 하나님 앞에 잘못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는데 하나님 앞에 잘못해가지고 어떻게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십일조를 꿔 쓰는 사람도 있는데 아니 하나님이 십일조를 꿔 쓰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십일조 떼어 놨다가 꿔쓰는 사람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다 드리지 않고 일부만 드린답니다. 물론 성경에 조금만 드리라고 했으면 조금만 드리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노아가 방주 준비한 것처럼 우리는 신앙의 방주를 잘 준비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말씀대로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방주 준비하는 것입니다. 도덕 면과 능력 면을 잘 만들어야 하고 지적(知的)인 면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도덕 면이 무엇입니까?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이것이 다 도덕적인 것입니다. 의와 진리와 거룩, 이런 것들이 다 도덕적인 것입니다. 거기에 썩어진 것이 있으면 다 잘라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갖다가 새로 대야 합니다. 만들어야 합니다.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성경대로 그대로 바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경제면에서 잘못했으면 회개하고 잘라 버리고 이제부터 바로 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잘라 버리고 회개하고 이제부터 바로 하면 됩니다. 성경대로 하면 됩니다. 성경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아도 잘 되고 실패할 것 같아도 성공합니다.

4.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아브라함

이제 아브라함의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순종하여 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명령대로 순종하여 가는 것입니다. 제 생각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이익을 보려고 가는 것, ‘어디로 가야 이익이 되겠느냐, 잘 살겠느냐, 성공하겠느냐’, 이런 것을 보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가라’ 하면 가는 것입니다. 어디로 갑니까? 가라 하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동으로 가라 하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라 하면 서로 가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명령을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명령을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떠나라 하시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명령대로 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를 바쳐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통과했습니다. 로마서 4장 19~21절에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100세가 되어 그 몸이 죽은 것과 같고 사라도 90세가 되어 단산하여 그 태가 죽은 것과 같음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는다고 했으니까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의심치 아니하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낳았는데 이삭이 15살 즘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바쳐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이 아까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첫마디에 ‘예!’ 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장작을 패어 독자 이삭을 바치려고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을 해야 기뻐하시지 순종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들도 순종하는 아이를 기뻐하지 순종 안하는 아이를 기뻐합니까? 순종 안 하고 거역하는 아이에 대하여 부모가 걱정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순종 잘 하는 아들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순종 잘하는 아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들이고 순종하지 않는 아들은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는 아들입니다. 영광을 가리 웁니다. 순종 잘 하는 아들은 영광을 드러내고 순종하지 않는 아들은 영광을 가리 웁니다. 하나님께 욕 돌리는 그런 아들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서 기쁘시게 해 드렸습니까? 순종을 잘 해서 기쁘시게 해 드렸습니다.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했는데, 우리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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