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이기라
야고보서 1:13-21
야고보서 1:13-21
13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19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21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1. 마귀가 주는 욕심 때문에 시험을 받음
본문 13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당하게 할까?”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 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본문 14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욕심 때문에 시험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욕심이 없으면 시험을 안받습니다.
시험을 안받는다는 것은 시험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욕심 때문에 사람들이 시험에 듭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은 시험에 안듭니다. 욥이 시험에 들었습니까? 욥의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져도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 하루아침에 십남매가 다 죽었어도 시험에 안 들었습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신 줄로 알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닙니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자기 것, 자기가 하겠다는 것, 자기를 위하는 것 등은 욕심입니다. 또 욥은 자기 몸에 병이 났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하며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욥 2:10).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 시험에 들었습니까?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 너무 기뻐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욕심이 없으면 어떠한 일이 닥쳐도,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사람이 시험에 드는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렇게 했을까?”하며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고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아무도 시험하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시험이 올 때에 그렇게 해야 되겠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시험을 통해서 연단을 시키시고, 온전하게 하시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다 빼어 버리고, 자기라는 것을 다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시험이 왔을 때에 시험
에 들지 않아야 합니다. 물질의 유혹을 받아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면 시험에 듭니다. 욕심에는 물욕, 정욕, 사욕이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 있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시험이 드는데, 그때에 믿음을 써서 이겨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믿고, 내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나가면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인 줄로 알고 나가면 시험에 듭니다. 십일조를 왜 안냅니까? 하나님의 것인 줄로 알지 않고, 자기 것으로 알기 때문에 십일조를 못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인 줄로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된다”하며 십일조를 냅니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죄입니다. 말라기 3:8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를 안내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재산과 자녀와 건강을 잃었을 때에도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욥1:22).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려고 선으로 시험하시는 것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는 것은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또 세상 줄을 끊어 버리게 하시려고 주십니다. 인간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게 만드시려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은 것을 알게 하시려고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즉 세상 줄을 끊어 버리게 하고, 하늘나라를 사모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드시려고 여러 가지 시험을 주십니다. 그것은 악으로 주시는게 아닙니다. 또 못살게 하려고 주시는 게 아닙니다. 더 잘 되게 하시려고, 이 풍랑 인연해서 더 빨리 가게 하시려고, 또 자기의 부족한 것을 깨닫고 회개하게 만드시려고, 세상 줄을 끊어버리고, 하늘나라의 것을 붙들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험이 들어와야 자기 속의 부패성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또 자기의 못된 것을 알게 되고, 자기의 교만을 꺾습니다. 교만을 빼어 버려야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그냥 두면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어떤 목사가 그 교회의 장로와 혈기를 부리며 싸웠다고 합니다. 사실은 자기가 잘했다고 싸웠는데, 혈기를 부리고 보니까 얼마나 부끄러운지 하나님께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낮아졌답니다. 그러므로 혈기 부리는 시험도, 그 사람을 만드시려고 주시는 것입니다. 가만히 두면 혈기가 안나오니까 자꾸 혈기가 나오도록 격동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격동 받는 것을 다 빼내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으로 시험하시지 않습니다. 선으로 시험하십니다. 악으로 시험하시려고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선으로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나타내시려고,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려고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시험에 들면 손해를 봅니다.
예를 들어 배가 항해하는데, 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물이 배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배가 항해하는 데에는 물이 필요하지만 물이 배에 들어오면 침몰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좋은 것을 주시려고 시험을 주시는데, 그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에 욕심을 빼내어 버리면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중심, 제 것, 제가 하겠다는 욕심을 가지면 시험에 듭니다. 자기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누구의 것이라고 하였
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24:1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아들은 제외하고 여호와의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들도 여호와의 것입니다. 또 자기 몸뚱이는 제외하고 여호와의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도 여호와의 것입니다. 자기 아들도, 자기 몸도 여호와의 것, 자기 재산도 여호와의 것입니다. 자기 생명도 여호와의 것입니다. 내 것은 없습니다. 내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욕심입니다. 그저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면 가고, 오라고 하시면 오는 것뿐입니다. 또 맡으라고 하면 맡아서 있는 것이고, 내 놓으라고 하면 다 내놓아야 합니다. 내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내 생명, 내 아들, 내 재산, 내 교회, 내 것” 등을 찾는 것은 다 욕심입니다. “내 어머니, 내 남편, 내 아내”도 욕심입니다. 욕심을 다 내어 버리면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어떤 시험이 와도 그 시험을 통해서 더욱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어져 나가고, 더욱 더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져 나갑니다. 즉 그리스도의 옷이 입혀져 나갑니다.
2.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음
본문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습니다.“자기중심, 자기 위하는 것”이 욕심입니다. 욕심이 있으면 죄를 범하게 됩니다. 또 물욕과 정욕과 사욕이 욕심입니다.
이런 욕심을 속에 품고 다니면, 죄를 낳게 됩니다. 아이를 잉태하면 아이를 낳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욕심을 잉태하면 죄를 낳습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을 품고, 자기중심에 빠지면 죄를 짓게 됩니다. 욕심을 잉태하면 점점 커져서 해산하게 됩니다. 즉 처음에는 술을 마시고도 안 마신척 하다가 점점 그 죄가 자라납니다. 음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안 한척 하다가 점점 그 죄가 자라납니다. 그 다음에는 숨길 수 없게 됩니다. 반드시 장성하게 되어 있고, 장성한 다음에는 사망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몰래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아예 욕심이 속에 들어오면 즉시 빼어 내버려야 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어디라고 이런 욕심이 들어오느냐?” 하며, 즉시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을 붙들어야 됩니다. 가만히 두면 점점 자라나서 마지막에는 죽습니다. 낳고, 낳고 두 번 하면 죽는 것입니다.
이런 욕심을 속에 품고 다니면, 죄를 낳게 됩니다. 아이를 잉태하면 아이를 낳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욕심을 잉태하면 죄를 낳습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을 품고, 자기중심에 빠지면 죄를 짓게 됩니다. 욕심을 잉태하면 점점 커져서 해산하게 됩니다. 즉 처음에는 술을 마시고도 안 마신척 하다가 점점 그 죄가 자라납니다. 음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안 한척 하다가 점점 그 죄가 자라납니다. 그 다음에는 숨길 수 없게 됩니다. 반드시 장성하게 되어 있고, 장성한 다음에는 사망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몰래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아예 욕심이 속에 들어오면 즉시 빼어 내버려야 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어디라고 이런 욕심이 들어오느냐?” 하며, 즉시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을 붙들어야 됩니다. 가만히 두면 점점 자라나서 마지막에는 죽습니다. 낳고, 낳고 두 번 하면 죽는 것입니다.
3. 빛의 자녀에게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
본문 16-17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고 하였는데, 욕심을 가지고 사는 것은 속는 것입니다. 욕심을 부리면 잘 될 것 같아도 결국은 사망입니다. 사람들이 왜 욕심을 부리는가? 하면, 자기가 잘 될 것 같으니까 욕심을 부립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산입니
다. 욕심을 부려서 잘 될 것 같으면 욕심 많은 사람이 내내 잘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죄를 짓게 되고 마지막은 사망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하였는데, 각양 좋은 은사와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옵니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잘되는 것이지, 욕심을 부린다고 잘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의 욕심으로 되는 줄 알면 속는 것이고, 망하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부터 내려와야 잘 되는 것입니다. 빛들의 아버지라는 것은 하나님은 빛과 생명과 의와 선과 신령한 세계에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십니다. 빛 가운데 거하시는 아버지이시므로, 그의 자녀들도 빛 가운데 거하는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 가운데 거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각양 좋은 은사와 선물을 주시는 것이지, 흑암 속에 있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흑암 속에 있는 자들의 아버지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흑암 속에 있는 자는 흑암 속에서 나와야 됩니다. 욕심은 흑암입니다. 흑암에서 나와서 빛 가운데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무엇인가 하면,
첫째, 빛과 생명과 의와 선에 속한 것들로서 ‘그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둘째는 빛들의 아버지를 모시고 순종하는 자에게 더하여 주시는 세상의 모든 것들입니다.
셋째는 믿음을 지키려는 자에게 필요해서 주시는 여러 가지 시험과 그것을 참고, 이기는 은사 등 입니다. 성도가 빛의 세계의 것을 받으면 영이 살아나갑니다. 그러나 욕심을 부리며 흑암가운
데 거하는 자는 잘 될 것 같아도 점점 망해 갑니다. 점점 죄만 짓고, 점점 부끄러움만 당하고, 점점 마귀의 종만 되고, 마지막에는 사망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자기의 아버지가 되고, 어두움에 거하는 자는 마귀가 자기의 아버지가 됩니다.
즉 욕심에 거하는 자의 아버지는 마귀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자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욕심으로 사는 사람이 아무리 “주여, 주여” 해도 그것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의 말은 안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떼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빛에 거하는 자들의 아버지이시므로,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각양 좋은 은사를 내려 주십니다. 금보다 더 귀한 하늘의 은사를 주십니다. 세상이 다 멸망해도 없어지지 않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하나님께서 내려주십니다.
데 거하는 자는 잘 될 것 같아도 점점 망해 갑니다. 점점 죄만 짓고, 점점 부끄러움만 당하고, 점점 마귀의 종만 되고, 마지막에는 사망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자기의 아버지가 되고, 어두움에 거하는 자는 마귀가 자기의 아버지가 됩니다.
즉 욕심에 거하는 자의 아버지는 마귀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자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욕심으로 사는 사람이 아무리 “주여, 주여” 해도 그것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의 말은 안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떼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빛에 거하는 자들의 아버지이시므로,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각양 좋은 은사를 내려 주십니다. 금보다 더 귀한 하늘의 은사를 주십니다. 세상이 다 멸망해도 없어지지 않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하나님께서 내려주십니다.
4. 주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심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주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변함이 없으시다”는 말은 ‘약속하신 말씀대로 변치 않으시고 주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14-18에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
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을 변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복주고 번성케 한다고 하신 그 말씀대로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빛 가운데 거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고, 번성케 하십니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하였는데, 위로부터 오는 은사와 선물은 불변의 은사요 다시 거두어 가지 않는 영원한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빛 가운데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미 복을 받아놓은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기중심이 아닌, 하나님의 중심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하신 복을 변치 않으시고 주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고 번성케 하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그 약속대로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복을 주셨습니다. 또 욥이 자기 욕심으로 나가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고 나갔을 때에, 하나님이 욥에게 복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이와 같이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괜히 욕심을 부리면서 돌아가면 하나님의 것을 받지 못하고, 망하는 길로 들어가게 됩니다.
5.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낳으셨음
본문 18절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낳았다는 것은 중생했다는 것입니다. 중생이란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중생은 물과 성령으로 됩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중생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됩니다. 베드로전서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왜 낳았습니까? 첫 열매가 되게 하려고 낳았습니다. 즉 우리를 첫 열매가 되게 하려고 중생시키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난 아들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출애굽기 22:29에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영혼을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중생시켜 하나님께 드렸으므로 첫 열매가 된 것입니다. 즉 첫 열매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인데(민 15:17-21), 하나님께 바치게 하려고 우리를 중생시켰습니다. 첫 열매가 맺히면 그 다음의 것도 그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중생한 첫 열매로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의 둘째 열매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또 셋째 열매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 열매는 무엇입니까? 둘째 열매는 만물입니다. 성도를 통해서 만물을 다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첫 열매로 삼아 놓고, 믿는 사람을 통해서 만물을 다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즉 성도를 먼저 구속해 놓고, 성도를 통해서 만물 구속을 이루는 것입니다. 만물이 성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6. 도를 받는 자가 될 것
속히 듣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본문 19-20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듣기를 속히 하라는 것은 빨리 듣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말하기를 더디 하라는 것은 발표하기를 더디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빨리 받아 자기 양식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고, 발표는 더디 해야 합니다. 듣기는 빨리해야 하지만 자기가 무얼 안다고 발표하는 일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듣기를 속히 하라는 것은 빨리 듣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말하기를 더디 하라는 것은 발표하기를 더디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빨리 받아 자기 양식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고, 발표는 더디 해야 합니다. 듣기는 빨리해야 하지만 자기가 무얼 안다고 발표하는 일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성내기를 더디 하라고 하였는데, 성내는 것과 혈기 부리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노할 일이 생기고 분한 일이 생겨도 성내지 말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저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분한 마음, 노할 일이 많이 생깁니다. 그러나 참고 믿음을 잘 지켜서 해지기 전에 그 분을 풀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참으면 하나님께서 원수도 갚아주시고 잘 되게 해주시는 것인데, 분내고 화내면 자기가 마귀의 종이 되고 맙니다. 노하는 마음이 생길 때에 그리스도께서 날 위해서 죽어주신 것을 생각하며 잘 참고, 해지기 전에 그날의 분을 풀어야 합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라
본문 21절에,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죄를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으로 나누었는데, 더러운 것은 우상 숭배입니다. 음란과 간음과 호색 같은 것들이 더러운 죄입니다. 우리 속에는 그러한 더러운 것이 다 있습니다. 이것을 잘 내어 버리면 믿는 일이 되고, 잘 못 내어 버리면 믿는 일이 안 됩니다. 그릇을 깨끗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과 악독한 것이 가득 찬 곳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것부터 다 내어 버리려면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속에는 넘치는 악이 있습니다. 로마서3:13-18에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며,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 넘치는 악이 목구멍에서 넘쳐 올라옵니다. 즉 입에서 독사의 독이 나오고, 저주와 악독이 나오는데, 이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즉 혈기부리는 것을 회개하고, 넘치는 악을 회개하고, 모든 더러운 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혈기부리는 것을 보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혈기를 안 부려야 됩니다. 왜 혈기를 부립니까? 자기가 죽어지지 않아서 혈기를 부리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혈기를 부리는 것 보았습니까? 죽은 사람이 어떻게 혈기를 부리겠습니까? 그러므로 혈기를 부리는 것을 보면 아직도 자기가 죽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죽어졌으면 혈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다 맡기는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고 하였는데, 그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또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는 것입니다.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5리를 가고자 하면 10리까지 동행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기 때문에 혈기가 나오고, 넘치는 악이 나옵니다. 자기가 죽어져야 속에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십니다.
또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하는 세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성결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믿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다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권리, 자기 인격 문제 등 이런 것 때문에 싸우고 다투면 안 됩니다. 또 분김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김에 죄를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니까 분이 나서 나도 바람피운다고 하며 여자가 보따리 싸가지고 집을 나가는데, 그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또 분김에 집에 불을 놓기도 하고, 분김에 아이를 두들겨 때려서 병신을 만들기도 하는데, 분김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며,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26-27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가기 전에 분을 풀라는 것입니다. 분을 품고 다니면 안 됩니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으므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다 잘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섭섭한 마음, 원수 갚는 마음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순종하며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서 ‘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말씀을 받으려면 우리 속의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가 첫째입니다. 우리 속에 더러운 것과 악이 모두 있는데 이것을 먼저 내어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누가복음 8:15절에,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의 구원을 이루어 나갑니다. 말씀은 영의 양식입니다. 우리 영이 자라나려면 말씀을 날마다 먹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8:12-14절에,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돌밭이나 길가와 같은 마음은 말씀을 아무리 갖다가 뿌려도 성공을 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받을 때, 좋은 말씀이라고 하고는 심령 속에는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돌밭에 있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말씀을 기쁨으로 받지만 뿌리가 없어 돌로 인한 핍박과 시험이 올 때에 그 말씀을 내어 버리는 사람입니다. 돌에는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는 자라나긴 자라는데, 그 가시가 기운을 다 뽑아먹어서 결국 자라남이 막히게 됩니다.
세상염려 재리, 일락에 기운이 막혀서 자라나지 못하는 자가 됩니다. 요새 교회가 일락주의, 방탕주의, 친목주의, 육체의 만족주의로 나가는데, 이것은 성경말씀과는 상관이 없는 것들입니다. 열매가 못 맺히고, 맺혀도 일락주의 열매가 맺히고 맙니다.
그러나 옥토는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자신의 영의 양식을 삼습니다. ‘너희 영혼을 구원 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했는데, 이 말씀을 받을 때에 영이 구원을 받도록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자라나고 새 힘을 얻도록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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