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30일 목요일

야고보서 1:22-27 영의 자유를 써나가는 성도가 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영의 자유를 써나가는 성도가 되라
야고보서 1:22-27

22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누구든지 도를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24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25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제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1. 도를 듣기만 하여 자기를 속이지 말 것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 행하라

본문 22절에,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받았으면 행하게 될 것인데, 온유한 마음으로 듣지 않았기 때문에 듣기만하고 자신을 속이는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받지 않아서 자기의 생명이 되지 못합니다. 힘이 되지 못합니다. 자기 영혼이 힘을 얻지 못했습니다.

본문 23-24절에,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저의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다는 것은, 보고는 가서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행하지 않는 것은 온유함으로 받지 아니한 증거입니다. 온유함으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잊어버립니다. 온유함으로 받았으면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되고, 반드시 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온유함으로 받지 않고, 지식적으로 받고, 겉 껍데기로만 받으면 다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받지 말고,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생명으로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꿀보다 달고, 꿀송이 보다 달게 받아서 말씀으로 즐거워하고, 말씀이 생명이 되고, 노래가 되고, 말씀이 자기의 힘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듣기만 하는 것은, 들을 때에는 자기 자신의 모양이 어떠한지 발견은 했지만,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이, 자기 모양을 보고는 가서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하고 
둘째는 말씀을 새김질해야 합니다. 
세째는 행해야 합니다. 새김질하지 않으면 다 잊어버립니다.

새김질이라는 것은 들은 말씀을 다시 되새겨서 그 말씀대로 못한 것을 회개하고, 그 말씀대로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그 말씀이 자기 생명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먹고 나서 새김질하지 않으면 소화불량 되어서 본인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먹은 다음에는 반드시 새김질해야 합니다.
영으로 받아서 생명을 삼고, 새김질하고, 행하여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는 성경말씀 들어서 새김질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2. 영의 자유를 써나가는 성도가 될 것

본문 25절에,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자유’는 영의 자유입니다.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영을 자유하게 합니다. 영을 살게 하는 생명의 말씀이 자유하는 율법입니다.

영이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리는 것이 영이니 육은 무익합니다. 요한복음 6: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고 고린도후서 3:17절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자유함을 주셨으니 다시는 굳세게 서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영의 자유, 양심의 자유, 생각의 자유, 이렇게 자유하게 하는 진리를 받았으면 영이 자유를 누립니다. 영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자유하게 행동할 것입니다. 다 벗어지고 해방이 되고 영의 자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유롭게 행동합니다. 영의 자유를 쓰는 사람이 참된 성도입니다. 영의 자유를 쓰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성도입니다. 영의 자유를 쓰는 사람은 참 성도, 영의 자유를 쓰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성도입니다.

영의 자유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온유한 마음으로 영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영의 자유가 시작됩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데부터 영의 자유가 시작됩니다. 영이 살고, 자라나며, 새 새명의 길로 걸어갑니다.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 아닌 것에서는 떠나고 옳은 길로 갑니다.

영의 자유가 막히면 안 됩니다. 영의 자유를 쓰다가 막히면 거기서 부터 중단입니다. 죄의 종이 됩니다. 마귀의 종, 사람의 종, 제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영의 자유를 써나가다가 막히면 죄의 종이 됩니다.
생명의 역사가 중단이 됩니다. 막히지 않도록 하십시오. 영이 자유하면 막히지 않고 가는 것입니다. 어떤 제제를 안 받습니다. 영의 자유를 써서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영의 자유를 써나가는데 진리 안에서 영의 자유이지, 진리 밖에서의 영의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의 유혹을 받은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영의 자유를 써나가는 것입니다. 영의 자유를 써나가며 달음박질하고 전진하고, 영이 가야 할 때는 가고, 영이 안 가야 할 때는 안 가며, 영의 자
유를 써나가는 것입니다. 영의 자유가 이렇게 하라고 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하면 저렇게 하며 영의 자유를 써나가야 합니다.
써나가다가 막히면 거기서 마귀의 종이 되고 중단이 됩니다. 자격이 없습니다. 성도는 영의 자유를 써나가야 희망이 있습니다. 자라납니다. 영의 자유를 써나가다 막히면 종이 되는데, 사람 때문에 막히면 그 사람의 종, 어떤 제도 때문에 막히면 제도의 종, 어떤 단체 때문에 막히면 단체의 종이 됩니다. 그러므로 막히지 마십시오. 가야할 것은 가고, 먹어야할 것은 먹고, 안 먹어야 할 것은 안 먹는 것이 영의 자유입니다. 영의 자유를 써나가야 합니다. 영이 계속 전진하고, 향상하고, 달음박질하고, 올라가고, 자유자재로 합력하고, 계속해서 올라가야 합니다. 영의자유를 써나가는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진리 안에 있는 영의 자유이지, 진리 밖에 있는 영의 자유가 아닙니다. 영의 자유를 진리 안에서 계속 써나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영의 자유를 써서 이겨나갈 것은 이겨나가고, 정복할 것은 정복해 나가고, 올라갈 것은 올라가고, 기도할 것은 계속 기도하며 영의 자유를 써나가야 합니다. 영의 자유가 없는 사람은 불쌍합니다. 자유가 생명보다 귀한데, 영의 자유를 써나가다 죽어도 됩니다. 그것은 성공입니다.
다니엘이 영의 자유를 쓰다가 사자 굴에 들어갔습니다. 성경에 하루 세 번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까?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어 놓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까?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은 성경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창문을 열어놓고 하라는 말씀은 성경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잡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창문 열어 놓고 기도한 것은 다니엘이 영의 자유를 쓴 것입니다. 또한 하루 세 번씩 기도한 것도 영의 자유를 쓴 것입니다. 다니엘이 조금 있으면 잡힐 것이 뻔합니다. 그러기에 숨어서 문 닫아놓고 커튼치고 기도하든지 이불 뒤집어쓰고 기도하든지 하면 될 것을, 원수들이 다 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그렇게 미련하게 문을 열어놓고 기도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영의 자유를 쓰느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의 자유가 진리 안에 있는 자유입니다. 다니엘은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살려달라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살려 주신다면 주를 위해서 몸 바쳐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보통 이렇게 기도할 텐데, 다니엘은 “감사합니다”라는 영의 자유를 쓰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영의 자유를 쓰다가 사자 굴에 들어가도 거기가 영의 자유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건져주셨습니다.

영의 자유를 쓴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스데반이 영의 자유 쓰고 전도하다고 순교당하지 않았습니까? 스데반이 말씀을 전하면서 책망했습니다. 영의 자유를 써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다락방 바친 것도 영의 자유, 당나귀 바친 것도 영의 자유, 스데반 순교당한 것도 영의 자유, 베드로가 로마에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했는데 그것도 영의 자유, 그렇게 영의 자유를 쓰며 나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간 것도 영의 자유를 쓴 것입니다. 심령에 매임을 받아서 예루살렘에 간다고 했는데, 심령에 매임을 받는 것도 영의 자유대로 간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환란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도 영의 자유를 써서 갔다가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잡혔습니다. 그것이 영의 자유를 쓴 것인데, 바울은 죽었으나 살았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율법을 따라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자유하지 못하게 하는 율법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따라가면 죽습니다. 종이 됩니다. 마귀의 종이 되고, 생명의 역사는 중단이 됩니다. 영의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지 않고 실행하는 자인데, 이 사람이 행하는 일에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의 자유를 써나가는 자는 율법을 들여다보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고 반드시 행하는 자입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영의 자유가 생깁니다. 그 말씀이 영을 자유케 하는 말씀이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영을 자유하게 하는데 어떻게 행하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행합니다. 그리고 행하는 일에 복을 받는 것입니다.

3.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

본문 26-27절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 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이 무엇입니까? 경건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바로 믿는 것입니다. 잘 믿는 것입니다. 경건하면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건도 무슨 경건이라고 했습니까?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고 한 것을 보면 경건에 더러움이 있으면 안 됩니다. 정결해야 합니다. 경건생활하면서도 자기 유익을 보는 것은 더러운 것입니다. 영의 생활을 한다 하면서도 자기 유익을 보는 것, 다른사람 앞에서 대접받으려고 하는 것은 더러운 경건입니다.

더러움이 없이 정결하고, 거룩한 경건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경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잘 믿는 경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사는 생활이 깨끗한 경건, 거룩한 경건, 더러움이 없는 정결한 경건입니다. 정결한 경건은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인데 정결한 생활입니다.

정결한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나 자기 이익을 보려고 하고, 자기 명예를 위해서 하는 경건은 안 됩니다. 연보해서 자기가 장로한번 되려고 하고, 누가 알아줄까 해서 하는 것은 정결한 경건이 아닙니다. 교회 봉사도 칭찬받으려고 하는 것은 정결한 경건이 아닙니다. 자기 한몫 보려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정결한 경건이 아닙니다. 정결한 경건을 가져야 합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질 것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정결한 경건을 가질 수 있습니까 ? 정결한 경건을 가지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겠습니까?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안 됩니다. 정결한 경건생활을 하려면 첫째로, 온유한 마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온유한 마음 이기주의가 없어져야 합니다. 자기 유익을 위한 것이 없어져야 합니다. 자기 유익을 보려고 경건 생활하는 것은 헛것입니다.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구제했어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상급을 다 받았습니다. 기도할 때 다른 사람에게 잘했다고 칭찬받으려고 써가지고 읽는 것은 정결한 경건이 아닙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온유한 마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혀에 재갈 물리며 못된 버릇을 고칠 것

또한 자유 하는 율법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자유 하는 율법을 들여다보고 그 말씀을 행하고, 그다음에는 입에 재갈 물려야 합니다. 마음을 속이면 안 됩니다. 마음의 죄의식 없이 혀에 재갈 물리지 않고 경건하다 하며 돌아가는 것은 헛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 하며 잘 공경한다고 자랑하는 것은 혀에 재갈물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잘 하기는 하고, 또 많이 하기도 했는데, 혀를 자라게 놔두어서 다 빠져나갔습니다. 구멍이 뚫어졌습니다. 혀에 재갈 물려야 할 사람은 혀에 재갈을 물려야 하고, 손을 결박해야 할 사람은 손을 결박해야하고, 경건 생활하려면 마음을 단속해야 하고, 마음을 속이지 말고 진실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을 지켜야 정결한 경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성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혀에 재갈 물린다는 것은 자기의 못된 악습이 나오지 않게 하라는 것인데, 악한 습관이 들어서 혀로 경건생활을 다 결단내는 것입니다. 혀에 재갈 물리라는 것은 자기 전체를 다 제어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전체를 제어하지 않고 자기 성격대로 하고, 습관대로 하면 그 경건은 쓸데없는 경건이 됩니다. 이름만 경건이지 사실 마귀 일만 해주는 것입니다.

참으로 잘 믿으려면 온유한 마음부터 갖고, 하나님의 신령한 도를 자유하게 하는 율법으로 받고 행하고, 그 다음에 자기 못된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혀가 못되면 재갈 물리고, 성격이 못됐으면 성격을 죽여야 합니다. 욕심이 있으면 욕심을 죽이고 잘못된 것을 고쳐야 합니다.
자기가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을 고치는 것이 경건입니다. 누가복음 3장10-14절에, “우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누어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도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하고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정한 세 외에는 늑징하지 말고 더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양심을 똑바로 써서 받을 것만 받아야 합니다. 군병들은 강포하지 말고, 월급 받는 것을 족한 줄로 알라는 것입니다. 조금 받든 많이 받든 족한 줄로 알라는 것입니다. 월급 작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그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경건이 바로됩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늑징하고 더 많이 받으려고 하는 그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욕심을 부려 자기부터 먹으려고 하는 그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혈기 부리는 사람은 무엇을 고쳐야 합니까? 혈기부터 고쳐야 합니다. 제어해야 합니다. 죽여야 합니다. 욕심있는 사람은 욕심부터 고쳐야합니다. 신경질 내는 사람은 신경질부터 고쳐야합니다. 싸움 잘하는 사람은 싸움부터 고쳐야 합니다. 원망 잘하는 사람은 원망하는 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불만 이 많은 사람은 불만부터 고쳐야 합니다. 남에게 욕 잘하는 사람은 그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본문에 ‘혀를 재갈 먹이라’하는 말은 그것 하나만 고치라는 것이 아니라, 입을 통해서 모든 악독이 나오는데 그것을 전부 고치라는 것입니다. 악이 여러 가지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고칠 것을 다 고쳐서 원만해져야 합니다. 원만해져야 정결한 경건이 됩니다. 정결한 경건은 자기의 못된 것부터 고쳐야합니다. 못된 습관, 풍속, 버릇, 자기의 못된 결함을 고쳐야 합니다. 자기의 고칠 것을 못 고치면 경건하다는 것이 헛것입니다. 고칠 것을 고쳐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세속에 물들지 말 것

그 다음으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고아를 돌봐주고 과부를 돌봐주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구제하라고 했는데 고아를 도와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선을 행해야 합니다. 경건생활은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건생활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속에 물들어 삽니다. 경건은 거기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도 세속에 물들면 안 됩니다. 세상이 하는 것을 하면 안됩니다. 세상대로 하면 안 됩니다. 세상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세상주의대로 교회를 하면 안 되고 경건한 교회를 해야 합니다. 성도의 입에서 찬송이 나와야 하는데 세상의 속된 것이 나오면 안 됩니다. 교회가 세상에 물들면 안 됩니다. 목사들이 교회를 인본주의로 세속에 물들게 하면 안 됩니다.

못된 버릇을 고쳐야 하고 욕심을 빼버리고, 그리고 선한 사람으로서 고아와 과부를 돌봐야 합니다. 그리고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 정결한 경건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노아시대에는 노아가 정결한 경건 생활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시대의 정결한 경건생활을 한 자이고, 에녹이 정결한 경건생활을 한 자입니다. 이러한 정결한 경건을 가지고 나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소돔 고모라에서는 롯이 경건한 자였는데, 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건져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정결한 경건생활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사람들 앞에 빚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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