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4일 토요일

사도행전 1:20-23 사도 보충.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사도 보충
사도행전 1:20-23

1:20 시편에 기록되기를 '그의 거처가 폐허가 되어 그곳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그의 직분을 다른 이가 차지하게 하소서.' 라고 하였다. 
1:21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들 중에서, 
1:22 곧 요한의 세례로부터 시작하여 예수께서 우리를 떠나 들려 올라가신 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었던 자들 중에서 하나가 우리와 함께 그분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1:23 그리하여 그들이 두 사람, 곧 바사바라고도 불리고 별명이 유스도라고도 하는 요셉과 맛디아를 내세우고, 


1. 가룟 유다의 죽음에 대해서 성경대로 해결함

정과 애착심과 달콤한 것은 다 제거시켜야 합니다. 마귀가 어떻게 하든지 미혹을 시켜서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지 못하게 만듭니다. 마귀가 성도를 망하게 만드는 법은 성경 말씀을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만 떠나지 않으면 백만의 마귀가 있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말씀에 바로 서 있으면 마귀가 손을 못 댑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큰일난다’고 하였습니까? ‘빛 가운데’라는 것은 ‘말씀 가운데’라는 것입니다. 말씀과 생명 가운데로 걸어가기만 하면 아무리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괜찮습니다. 아무리 마귀가 많아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빛 가운데로 걸어갈 때에는 손을 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어두움의 권세 잡은 자입니다. 따라서 빛 가운데 마귀의 손만 들어와도 그 손이 녹아집니다.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사람을 마귀가 잡아 삼키려고 손을 댈 때에 마귀의 손이 다 녹습니다. 마귀의 손이 녹기 때문에 마귀가 못 들어옵니다. 또 마귀의 쇠갈고리도 어두운 데서는 단단한데, 빛 가운데 들어오면 녹아집니다. 마귀의 손톱, 마귀의 손, 마귀의 주먹, 마귀의 쇠갈고리는 빛 가운데 들어오면 다 녹아지기 때문에 마귀가 꼼짝 못합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성도를 빛 가운데서는 잡지 못하므로 경계선으로 옵니다. 빛과 어두움에 경계선이 있을 것 아닙니까? 언제나 그 경계선에 마귀가 옵니다.
욥기서에 마귀가 하나님 앞에까지 갔다고 했는데, 그것이 경계선에 간 것입니다. 경계선에 가서 마귀는 하나님께 대항하고 성도에게 대항합니다. 믿는 사람에게 ‘거기서 나오라, 안 나오면 죽인다, 거기 있으면 안 된다, 거기 있으면 직장 떨어지고, 거기서 말씀대로 하면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도 못 받고, 취직도 못 한다, 예수를 믿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말씀을 양보하고 믿으라’고 하며 거기서 나오라고 합니다.
그럴 때에 ‘큰일 나겠네’하는 사람은 마귀가 더 바짝 달려 들어와 ‘죽인다’고 합니다. 그러면 끌려 나가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서 한 발자국만 나가면 마귀가 ‘이제 됐다’하고 모가지를 잡아끌고 가는 것입니다. 뱀이 개구리 잡아먹는 식으로 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빛 가운데 있으면 뱀이 들어오다가 다 녹아지므로 못 들어옵니다.
어떤 때에는 마귀가 제일 달콤한 것을 가지고 와서 이것을 줄 테니 나오라고 합니다. ‘이것 꿀이다, 꿀 얼마나 좋으냐’하며 ‘너 이것 하나만 먹으라’고 합니다. 먹음직하게 보암직하게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며 ‘천하 영광을 다 준다, 이것 보아라’고 마귀가 유혹합니다. 마귀가 삼손에게 무엇을 주고 나오라고 하였습니까? ‘기생을 줄 테니 나오너라, 들릴라 여기 있다’하며 나오라고 유혹했습니다. 또 가룟 유다는 돈으로 유혹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 때문에 끌려 나갔습
니다. 마귀의 미끼에 걸리면 마귀가 모가지를 잡고 아예 도축장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꼼짝 못합니다. 믿음이 죽고 생명이 끊어집니다. 새 생명의 역사가 없어집니다. 마귀의 밥이 되고 마귀의 일만 해 주게 됩니다. 

마귀의 역사가 무섭고 놀랍고 강하며 또는 꿀을 가지고 달콤하게 왔어도 말씀에서 절대 나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에서 내가 떠날 수 없다, 재산·명예·영광이 다 없어지고 쫓겨난다고 하여도 죽는다고 할찌라도 말씀은 내가 떠날 수가 없다’하고 말씀 위에 바로 서야 합니다. 그러면 마귀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마귀의 시간만 낭비하는 것입니다. ‘다른 곳으로 가서 잡아먹어야지, 이것 잡아먹으려고 하다간 먹지도 못하고 배만 고프다’하며 내어 버리고 달아납니다. 그러
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올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떠나지 않으면 반드시 산다는 것을 언제나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떠나면 죽는다는 것을 또 언제나 알아두어야 합니다. 말씀을 떠나면 반드시 망합니다. 말씀을 떠나지 않고 겪어내면 하나님께서 그만한 권능을 입혀주셔서 오는 모든 시험이 얼마나 크든지 그 시험을 이길 만한 권능을 입혀주십니다. 그러므로 큰 핍박과 환난이 있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큰 환난을 주시는 것은 큰 권능을 주시려는 것이므로 그곳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곳에서 전혀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이깁니다. 사도행전 1:14에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고 하였는데, 겸손과 사랑으로 합심하여 전혀 기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 다음에 가룟 유다가 왜 죽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어왔는데, 가룟 유다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회계를 맡았던 똑똑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았습니다. 그리고 목메어 자살했는데, 그 몸이 곤두박질하여 떨어져 배가 터져 창자가 다 나와 죽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가룟 유다의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성경대로 바로 해결을 하였습니다. 성경대로 바로 깨닫고 성경대로 바로 이해를 하였습니다. “성경에 그런 사람이 있겠다고 말했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판다고 하였다, 유다의 집이 저주를 받아서 멸망하겠다고 했고, 또 유다의 직분은 다른 사람이 취하겠다고 시편 109편 8절에 말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된 것은 성경대로 된 것이다, 성경대로 된 것이므로 잘 된 것이다”라고 하며 성경에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우리가 의심할 필요 없다”라고 하며 성경대로 해결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든지 성경대로 바로 이해를 하고 바로 판단을 하고 바로 해결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2. 사도 보충

본문 21-22에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열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인 가룟 유다가 죽었으므로 한 사람이 모자랍니다. 열 두 사도들이어야 일이 원만하게 충족하게 되어 나가겠는데, 하나가 죽었으므로 이제는 사도를 보충시켜야 합니다. 이에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증거할 사람을 세워나가는, 그 일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한 쪽이 지금 찌그러졌다, 으스러졌다’라고 하며 그 결함을 보충시켜 나가면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할 일을 하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주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잘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자기의 할 일은 안 하고 기도만 하는 사람은 잘못 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부활을 증거하는 일이 자기가 할 일이며, 원만하게 되어 나가는 일, 진리를 세워나가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 생명 운동을 해 나가는 일, 사도 보충을 해야 할 일 등이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의 일이 찌그러졌는데,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바로 하지 않고 나가면 안 됩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바로 하지 않으면 한편 일이 잘못 되어 나갑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살아나셨다 해서 이후에 뭐가 될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훌쩍 올라가시고, 가룟 유다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제는 예수님의 전성기도 다 지나갔다, 이젠 다 틀렸다, 보따리 싸가지고 고기 잡으러 나가야지, 여기있다가는 국물도 없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또 승천하셨다 해도 약속이 있지 않습니까? 말씀은 있습니다. 또 열 두 제자 중에 하나가 죽었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일을 언제든지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으신 것이 아니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면 됩니다. 하면 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해 나가는 일, 그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사도의 자격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까지 늘 같이 하던 사람 그러면 제자 보충의 일을 어떻게 했습니까? 첫째, 어떤 사람을 택하라고 했습니까? 일꾼을 세우는데 있어서 첫째는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까지 늘 같이 하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요한의 세례로부터’는 요한의 증거로부터 예수님께서 다니실 때에 항상 같이 다니면서 배운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배웠어야 합니다. 배우지 못하고 어떻게 나가서 바로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진리를 많이 배운 사람, 진리를 제대로 배운 사람을 선택하려고 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신학과정으로 말하면 ‘예과’이며, 예수님과 3년 동안 항상 같이 다닌 것은 ‘본과’로, 예과와 본과의 과정을 제대로 배운 사람을 세워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을 세워놓으면 나가서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제대로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 대개는 탈선을 많이 합니다. 배운 것이 없으므로 생각나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예수라고 하는 사람들도 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즉, 신학을 제대로 못한 사람들입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신학을 제대로 한 사람은 과거에 여러 사람들이 나가다가 실패한 것들을 교회사에서 많이 배우고 또 교리도 많이 배웠기 때문에, 또 양심이 있기 때문에 허튼 소리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바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한 사람을 택해야 합니다.

항상 함께 다니던 사람

둘째는 22절에 “항상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충성된 사람, 즉 변함이 없이 충성스러운 사람을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니다’가 또 ‘안 다니다’가 하는 사람은 안 됩니다. 충성 되이, 변함이 없이, 시종일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나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 덕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더불어’ 정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우리로 더불어”라고 하였는데, ‘더불어’ 정신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즉 협동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어울려 해 나갈 수 있는 사람, 즉 ‘더불어’ 정신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일군으로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독불장군(獨不將軍)으로, 저 혼자만 잘하겠다는 것은 안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화목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어울려
나갈 수 있는 사람, 빈부귀천을 떠나 더불어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기 쉽고 지식이 많은 사람은 무식한 사람을 멸시하기 쉬운데, 이것은 하나님 앞에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지식이 많든지 적든지 부자이든지 가난한 자이든지 누구나 함께 더불어 할 수 있는 자, 차별이 없고 사랑과 화목으로 다른 사람과 같이 더불어 나갈 수 있는 사람, 남을 멸시하지 않고 더불어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독선주의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저만 잘났다고 하며, 남의 결점만 보고 나가면 안 됩니다. 남의 결점을 보기 전에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나는 너보다 더한 자다’라고 하며 그저 자기는 더한 자인 줄 알면 됩니다. ‘아무개 틀렸다’라고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한 자인 줄 알아야 합니다.

결점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다 있습니다. 하물며 내게는 결점이 없겠습니까? 하여간 언제나 내 눈 속에 들보가 있는 줄 알면 됩니다. 그러나 진리 문제에 대해서는 아닌 것은 “아니다”, 옳은 것은 “옳다”하며 분명하게 밝히고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 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개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죄인 가운데 괴수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을 내가 양보하지 않고 따라가야 되겠다’라고 하며 바로 믿어
보려고 해야 합니다.
바로 믿어 보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믿으려고 힘을 쓰는 것이고, 바른 진리를 붙들고 따라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하며, 옳은 것은 옳다고 하면서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개인 문제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예수님께서 내 꼴을 보고 참으셨으니 나도 참자, 내 꼴은 그 보다 더하다’하면서 참으며 나가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 실수할 때에는 ‘나도 젊었을 때에는 저보다 더 했다’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김현봉 목사님 생각이 늘 납니다. 삼각산 임마누엘 기도원에서 집회할 때입니다. 그 때 사람이 약 7, 80명 모였을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장소가 온돌방 두 개가 놓인 곳인데, 사람을 많이 수용하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교회에서 온 목사와 교인들이 조그만 방에 있었습니다. 취사하러 갔다가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이야기하던 중에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무슨 문제였는지는 생각이 안 나지만 그때 제 나이가 한 서른 몇 살 났는데 뒤집어 놨습니다. 너무 소리를 크게 지르니까 김현봉 목사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이것 큰일 났다, 오늘 김 목사님한테 기합을 단단히 받는가보다’하고 있었는데, 왜 그랬냐고 물어 보십니다. 그래서 이러이러해서 그랬다고 하니 괜찮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 보고 젊은 조사가 실수한 것이니 참으라고 하십니다. “나도 젊었을 때는 이것보다 더 했다”고 하시며 참으라는 것입니다. 김현봉 목사님도 젊었을 때는 나보다 더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늘 생각이 납니다. 나도 요새 젊은 교인들이 실수하고 돌아갈 때에는 그 생각이 납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나보고 그렇게 하셨는데, 나도 젊었을 때는 저것보다 더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나서 좀 세게 야단을 치려고 하다가도 가만 두곤 합니다. ‘나도 젊었을 때는 저것보다 더 했으니 참자’합니다.
김현봉 목사님 정신도 ‘더불어’ 정신인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기가 젊었을 때와 비교해보신다는 말입니다. 말 들어보면 더 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성격이 칼날과 같아서 장가가면 부인 때려 죽일까봐 장가를 안 가셨답니다. 그래서 마흔 세 살인가, 몇 살 나서 장가를 갔다고 안 그럽니까? 얼마나 성격이 급했으면 부인 죽일까봐 안 갔겠습니까?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연세가 많아지면서 다 죽어지고 그래도 참 좋은 목사님이 된 것 아닙니까? 나이가 들면 모든 사람이 다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란 나이가 좀 드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우리로 더불어’에는 덕이 들어가야 합니다. 즉 덕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도록 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려 나갈 수 있어야 하고, 또 윗사람 지도를 받으면서 나가는 덕이 있어야 하고, 동지들끼리 서로 같이 나가는 덕이 있어야 합니다. 또 아랫사람에 대해서도 김현봉 목사님처럼 양해해 주는 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문제에 대해서는 용납 못 합니다. 그것은 날카롭게 쪼개어야 합니다. 아니면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당장 욕을 먹는다고 해도 진리를 세워 나가는 데에는 칼날같이 날카로워야 합니다.
그러나 행동면에 있어서는 ‘더불어’ 정신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을 사도로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왕이 되고 왕벌이가 되어서 하나님의 일이 다 파괴됩니다.

4. 맛디아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함

본문 23절에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을 공천해서 제비를 뽑으려고 합니다.
한 사람은 요셉이고 또 한 사람은 맛디아입니다. 두 사람은 세례 요한의 세례로부터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제대로 배운 자들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신학교 과정을 제대로 다 마친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배운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열심이 있고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우리로 더불어 정신이 있고 덕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넷째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사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 둘을 선택했습니다. 그 다음에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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