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승천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옴
사도행전 1:9-12
사도행전 1:9-12
1:9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에 그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분을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였다.
1:10 예수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1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왜 너희는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느냐? 너희에게서 하늘로 들림을 받으신 이 예수께서는 너희가 하늘로 가신 것을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 라고 하였다.
1:12 그 후에 그들이 올리브 산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이 산은 안식일에도 다닐 수 있을 만큼 예루살렘에서 가까웠다.
1:10 예수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1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왜 너희는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느냐? 너희에게서 하늘로 들림을 받으신 이 예수께서는 너희가 하늘로 가신 것을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 라고 하였다.
1:12 그 후에 그들이 올리브 산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이 산은 안식일에도 다닐 수 있을 만큼 예루살렘에서 가까웠다.
1. 감람산에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승천하심
하늘로부터 예수께서 구름타고 재림하실 것임
하늘로부터 예수께서 구름타고 재림하실 것임
본문 9절에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 갈 때에도 구름을 타고 올라 가셨고 다시 이 세상에오실 때에도 구름 타시고 오십니다. 예수님이 타시고 승천하신 구름은 실제로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구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에는 영광의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본문 10-11절에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흰옷 입은 두 사람은 천사를 가르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 천사가 예수님을 호위하였는데 그 천사가 증거를 하였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하였는데 갈릴리
사람이란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룟 유다만 제외하고 다 북쪽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남쪽 유대 사람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을 팔고서 목메어서 죽었습니다. 그 외에 열한 제자는 다 북쪽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는데 갈릴리는 그다지 좋은 지방이 아닙니다. 천한 지방입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하는 것은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사렛도 갈릴리에 있는 것으로 “갈릴리”라고 하면 북쪽에 있는 천한 지방을 가리킵니다.
너희가 갈릴리 사람들이었음을 잊지 말라
예루살렘은 유대의 중심지로 “예루살렘”하면 사람들이 다 알아주는 곳입니다. 그러나 갈릴리 사람이라고 하면 알아주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으로 말하면 서울 사람이라고 하면 좀 알아주고, 평안도 사람이라고 하면 알아주지 않습니다. 또 전라도 사람들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할 때에 전라도 사람이라고 하면 벌써 한번 내려 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전라도라고 안 한다고 합니다. 고향이 어디입니까? 물으면 그저 저기입니다. “저기”라고 답변을 합니다. 나는 고향이 어디입니까? 물으면 평안북도라고 합니다. 누가 인정 안 한다고 해서 살지 못하겠습니까? 하여간 다른 사람들이 좋게 보는 것은 말하기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이 우러러 보지 못하는 것은 말하기 싫어하는 것이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어떤 처녀가 대학 시험에 떨어져서 다른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1학년 때에 심방을 가서 어느 대학교에 붙었냐고 물었더니 말을 안해 줍니다. 훌륭한 대학에 들어갔다면 말해 주었겠는데 아마 시시한 대학에 들어간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느 대학에 다닌다고 말하지 않고 그저 대학에 다닌다고만 합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이 우러러 보지 않는 것은 말하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여기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갈릴리 사람들아”라고 한 것은 네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해서 우쭐대고 돌아다니지 말고,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잡이 해 먹던 네 신세, 네 처지를 언제나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시몬이라 하는 것도 네가 반석(베드로)이라는 이름을 하나 얻었다고 해서 우쭐해서 돌아다니지 말고 언제나 시몬의 노릇을 하던 것을 늘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됩니다. 그런데 개구리가 올챙이 때의 일을 생각 못합니다. 그래서 개구
리가 되었다고 해서 올챙이를 다 잡아 먹고 돌아다닙니다. 거지도 거지의 환경을 벗어났으면 자기가 돈을 모으러 동냥하던 때를 생각해서 동냥 다니는 거지에게 더 많이 주어야겠는데 안 줍니다.
언제나 자기의 부족한 때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비참한 처지에 있던 때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교회를 핍박하고, 스데반을 잡아 죽일 때에 참여한 것을 언제나 잊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잡아 죽일 때에 참여하던 나였다” 언제나 바울이 그것을 잊지 않고 있었는데, 제자들이 갈릴리 사람의 처지였음을 늘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냐? “고기 잡아먹던 천한 해변사람 갈릴리 사람이다” 언제나 겸손과 자기의 부족을 늘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리에, 낮은 자리에 처하라는 말입니다. 자기가 교만해지면 망합니다. “나”다 하면 벌써 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낮아져서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이 도와주셔야만 살 줄 아는 그 자리에 언제나 서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본 그대로 오실 예수님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는데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는 것은 첫째, 예수님이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으므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다는 말입니다. 둘째, 눈으로 보이는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으므로 이 다음에도 눈으로 보이는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육신의 눈으로 보게 올라가셨으므로 육안으로 예수님이 보이게 오신다는 것입니다.
2. 자칭 예수라 하나님이라 하는 자들의 틀린 점
미혹하는 사람들은 이 세 가지가 맞지 않습니다. “예수가 왔다, 문선명이 예수다”라고 하고 또 부산 산성기도원에 유정론이라는 여자가 있는데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산성기도원에 있는 사람들이 그 여자보고 “하나님”하면 “왜”하고 대답을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고 안 따라갈 것 같죠? 그런데 속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고려신학교 나온 목사가 거기에 가서 유정론이라는 여자를 보고 “하나님! 하나님!” 하고 부르며 앉아 있습니다. 그 목사의 부인도 고려신학교를 나왔습니다. 내가 잘 아는 목사 부부인데 거기 여러 해 동안 다니면서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 여자를 섬겼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해 후에 그 산성 기도원에서 나왔습니다. 나온 다음에 내가 “정신이 있냐? 아니, 유정론이 왜 하나님인가 생각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요새 전라도에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왔다는데, 하나님이 요새 때때로 나옵니다. 또 지금 문선명이도 예수이고, 철산에 김성도가 예수이고, 또 허호빈은 예수를 배속에 가졌다고 합니다. 예수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 이 세 가지에 안 맞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구름을 타고 왔나? 육신의 눈으로 보이게 왔나? 다 안 맞습니다. 예수라고 하면 이 세 가지를 보면 됩니다. 하늘로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온다고 하였으니 육신의 눈으로 보이게 하늘로부터 와야 되고,
구름을 타고 와야 됩니다. 그 사람들이 다 이렇게 왔습니까?
하나님은 우주의 충만한 하나님이시지 어떤 개인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마귀의 종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란 말입니까?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시고, 무소부재 하시고, 하나님은 영이신데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자칭 하나님이라고 말하면 다 틀린 줄 알아야 합니다. “본 그대로 오신다”는 것은 미혹이 많을 것인데 너희가 미혹을 받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사건을 기록한 것은 “너는 이제 영적인 예수님을 섬겨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권능을 기다릴 때에 미혹을 받지 않으면서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미혹이 많을텐데 그 미혹에 빠지면 너희가 권능에 참여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은 말씀을 떠나지 말고 기다릴 것, 영의 것과 육의 것을 혼돈하지 말고 증인 생활 하면서 기다릴 것, 예수님을 영적으로 교제하면서 기다릴 것, 미혹을 받지 않으면서 바른 진리에 서서 바른 신앙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권능이 입히어 지기를 끝까지 기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여 그 권능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3.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옴
권능을 힘입어서 증인이 되라고 하였는데 권능의 증인이 되려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명령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데 있어서 이 세상운동과 혼돈하지 않아야 하고, 영적으로 예수님과 교제하며 미혹을 받지 않고 재림을 고대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감람산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셨습니다(눅 24:50; 19: 29). 누가복음 24:50-51에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남으로 뻗힌 산인데 그 남쪽에 베다니가 있다고 합니다. 감람산에서 승천하셨다는 말과 베다니에서 승천했다는 말은 같은 말로 베다니와 감람산은 같은 장소입니다. 제자들이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했으니 이젠 다 끝났다”하며 흩어진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으로 일백 이십 명이 돌아와서 기도에 전혀 힘쓴 것을 보면 희망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사탄이 득세해서 기독교 박멸정책을 쓰는 곳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 언제 잡히어서,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하는 그런 곳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하여 결사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제자들이 돌아왔다는 것은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셨지만 말씀으로 돌아가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평소에 말씀으로 돌아가는 훈련이 되어 있고, 말씀에 서는 신앙을 늘 가졌던 모양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환난과 핍박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교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집의 아이들이 믿음을 잘 지킵니다. 그 아이들의 어머니가 세상에 떠나기 전에 어떻게 가르쳤는가? 하면 성경말씀대로 늘 가르쳤다고 합니다. 무슨 문제 때문에 아이들이 어머니한테 물어보면 “너, 교회에서 어떻게 배웠느냐?”고 한 마디 하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성경 배운대로 하라는 것을 늘 가르쳐 준 모양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로 다 어린데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어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신앙대로 지금 아이들이 믿음을 잘 지킵니다. 큰딸은 아버지에게 자기 어머니가 보시던 성경책을 드렸다고 합니다. 또 그 영감은 자기 부인이 살았을 때에 예수 믿지 않았지만 자기 부인이 교회에서 필기해 놓은 노트가 한 궤짝쯤 있는 모양인데, 그것을 매일 저녁 보고
잔다고 합니다. 아이 엄마는 죽었어도 자기 남편에게 전도를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저녁 부인이 필기 해 놓았던 것을 남편이 보게 되니 그 바람에 예수가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대로 가르쳐 놓은 것은 틀림없습니다. 제자들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계시지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있지 않느냐? “가자,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 하셨으니 가서 기다리자”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감람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서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고 하였는데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란 그때 사람들이 정해 놓은 거리인 듯 합니다. 여호수아 3:4에 하나님의 언약궤와 이스라엘 백성과의 사이를 이천 규빗 두고 가라고 했는데 그런 정도 정하지 않았겠는가? 그 후에 또 랍비들이 이것을 고쳐서 좀 더 광범위하게 사천 규빗 까지 안식일에 갈 수 있게 해 놓았다고 하는데 확실치 않습니다. 사천 규빗이면 한 오리쯤 되는 모양입니다.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란 한 오리쯤 되지 않겠는가? 그 쯤 되면 가기 알맞은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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