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씻어 주신 예수님을 본 받으라
요한복음 13:1-20
요한복음 13:1-20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할 자신의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13:2 만찬 때에 마귀가 이미 시몬의 아들 가룟 사람 유다의 마음에 주님을 넘겨줄 생각을 넣었다.
13:3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신의 손에 맡기신 것과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13:4 만찬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13:5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13:6 시몬 베드로에게 오시니,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님, 주께서 제 발을 씻기십니까?" 하니,
13:7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게 될 것이다."
13:8 베드로가 말하기를 "제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실 것입니다."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13:9 시몬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님, 제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소서." 하므로,
13:1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목욕한 자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밖에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가 깨끗하나 모두는 아니다."
13:11 이는 예수께서 자기를 넘겨줄 자를 알고 계셨으므로 "너희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3:12 예수께서 그들의 발을 씻겨 주신 후에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으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13:13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 이라고 부르니, 너희 말이 옳다. 내가 과연 그러하다.
13:14 내가 주이며 선생으로서 너희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라고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여 주었다.
13:16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종이 그의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그를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다.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복이있다.
13:18 내가 너희 모두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안다. 그러나 '내 빵을 먹는 자가 나를 대항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다.' 고 한 성경이 이루어질 것이다.
13:19 이제부터 내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내가 그임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13:20 내가 진정으로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니, 누구든지 내가 보내는 이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1.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심
본문 1절에“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적인 사랑은 최고의 사랑으로 무한한 사랑이며, 변함없는 영원한 아가페 사랑입니다.
본문 34절에“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새 계명은 사랑
레위기 19:18에"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했는데 왜 새 계명이라고 했을까?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죽으심으로 그 사랑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택한 백성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영적 사랑의 본질을 새로이 나타내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계명이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은 중생한 영의 본질입니다. 성도가 영적 생활을 하면 사랑은 자동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인줄 압니다. 서로 미워하는 것은 마귀의 인도를 받는 것이며, 마귀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셨습니다. 또 사랑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사랑으로 승리하신 예수님, 사랑으로 모든 것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본 받아야 합니다. 사랑으로 하지 아니하고 서로 다투고 싸우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마태복음 26:52에“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혈육으로 싸우는 자는 망한다는 뜻입니다. 즉 남을 죽이는 사람은 자기도 죽임을 당합니다. 갈라디아서 5:15에“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물고, 먹고, 싸우고, 다투면 둘 다 망합니다. 싸우고 물고 찢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마귀의 종노릇하는 일입니다. 성도는 무슨 문제가 있을 때에 싸우며 물고 찢어서는 안 됩니다. 싸우는 것보다 불의를 당하고 속는 것이 낫습니다(고전 6:7).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여야 합니다. 사랑으로 한 예수님은 최후에 승리하셨습니다. 사랑으로 원수를 이기고,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사랑으로 화목하고, 사랑으로 용납하고, 사랑으로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신 것이 예수님의 도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 받아서 이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2.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
본문 4-6절에“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발 씻어 주신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삼년 동안 세상에서 말씀을 전파해 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일을 행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되신 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일생 동안 행하신 것을 마지막으로 상징적으로 가르쳐 주시려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수건으로 닦아주셨습니다.“내가 일생동안 행한 것이 이것이고 내가 온 목적도 이것이다, 너희를 위해서 피 흘려서 너희를 목욕시켜
주고, 너희를 점점 깨끗하게 만들어 나를 본 받아서 닮는 일을 하라고 내가 왔다,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앞으로 알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씻어 주어야 예수님과 관계가 깊어지고, 예수님의 사람이 되고,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예수님에게 음을 받아야 됩니다. 베드로가 씻어주는 도리를 알고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은 적극적인 신앙입니다.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떠나면 죽는 줄 아는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의 간절한 마음을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종의 위치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사랑과 겸손과 섬기는 모본을 보여 주셨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배 피를 흘려 택한 백성의 죄를 씻어주실 것을 상징으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베드로가 제자로서 선생 되시는 예수님이 발을 씻어 주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주님이 어떻게 내 발을 씻기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발 씻겨 주시는 뜻을 베드로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게 되리라는것입니다. 진리는 자기 신앙의 정도대로 이해합니다. 신앙이 어려서 지금은 진리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후에 믿음이 자라나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잘 깨닫지 못해도 성경을 부지런히 가르쳐 주고 또 배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하는 자리에 나아가지 말고(벧후 3:16), 믿음이 자라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 8절에“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이 내 발을 씻기시는 것은 감당할 수 없다고 하며 절대로 내 발을 씻기지 못한다고 할 때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하였습니다.
3.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음
본문 10절에“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라는 것은 가룟 유다는 중생하지 못한 것을 가리킵니다. 가룟유다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습니다(요 6:64, 70). 가룟 유다는 믿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제자로 택하셨고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그 이유는 교역자 중에도 불택자가 있을 것을 알게 하려고, 불택자도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이용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택자와 불택자를 심판 때까지 함께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요 13:18; 시 41:9), 범죄자의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택한것입니다.
목욕하였다는 것은 중생을 가리킴
중생이란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난 것을 가리킵니다(요 3:3-8). 디도서 3:5에“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중생한 사람은 죄사함을 온전히 받아서 영이 깨끗해졌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전부 사함 받아 깨끗해진 것입니다. 또 중생한 자에게 성령이 내주하셔서 새사람으로 만들어 나가십니다. 중생은 성도에게 일생 동안에 한번만
있는 일이며 다시 반복하지 않습니다. 한번 중생한 사람은 다시 중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한 영은 털끝만큼도 더러운 것이 없습니다. 온전히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목욕을 한 것과 같습니다. 한번 중생한 영은 다시 타락되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벌써 구원 얻어 놓은 것이고, 벌써 깨끗해진 것이고, 벌써 하늘나라에 가서 앉은 것입니다.
골로새서 3:1에“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는 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성도의 신앙의 모본이 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성도를 도와주시고 위해서 기도해 주심을 가리킵니다.
① 중생의 요소
※ 물과 성령입니다. 요한복음 3:5에“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중생했습니다.
A.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에베소서 5:26에“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하였는데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 중생은 성령과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약 1:18; 벧전 1:23).
㉡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의 씨입니다(눅 8:11).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생명을 받습니다.
㉠ 중생은 성령과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약 1:18; 벧전 1:23).
㉡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의 씨입니다(눅 8:11).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생명을 받습니다.
B.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은 예수님의 피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중
생하였는데 말씀 속에는 예수님의 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C. 성령의 역사
㉠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고 중생시킵니다.
㉡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시고 죽었던 영을 살려 놓습니다. (겔 11:19; 요 1:13;3:5; 행 16:14; 롬 9:16).
㉢ 성령의 단독적인 역사로 중생하고 사람의 협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 예수님의 피, 하나님의 말씀, 성령, 이 셋이 하나라고 하였습니다(요일 5:8). 두 가지로 하면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② 중생한 증거
※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 1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난 자”는 중생한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로 믿어지는 자는 전부 중생한 자입니다. 그 이유는 죽은 자는 자기를 구원한 분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③ 중생의 결과
A. 중생한 영은 죽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 1:23에“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 썩지 아니하고 항상 살아 있는 말씀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한번 거듭난 영은 다시 죽지 않습니다(벧전 1:23). 죽지 않는다는 것 은 하나님과 단절될 수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 중생한 영은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참포도나무 되는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았습니다(요 15:1-8). 그러므로 중생은 일생에 한번만 하는 것이고 반복하지 않습니다. 중생한 자는 벌써 영생을 얻어 놓은 것입니다(요 5:24). 중생한 생명은 다시 잃어버리지 않습니다(요 10:28; 11:26). 예수님을 믿는 자는 중생한 영이 살아 있으므로 절대 지옥에 가지 않고 다 천국에 들어갑니다(요10:28; 5:24; 벧전 1:23; 요일 5:13).
㉠ 썩지 아니하고 항상 살아 있는 말씀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한번 거듭난 영은 다시 죽지 않습니다(벧전 1:23). 죽지 않는다는 것 은 하나님과 단절될 수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 중생한 영은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참포도나무 되는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았습니다(요 15:1-8). 그러므로 중생은 일생에 한번만 하는 것이고 반복하지 않습니다. 중생한 자는 벌써 영생을 얻어 놓은 것입니다(요 5:24). 중생한 생명은 다시 잃어버리지 않습니다(요 10:28; 11:26). 예수님을 믿는 자는 중생한 영이 살아 있으므로 절대 지옥에 가지 않고 다 천국에 들어갑니다(요10:28; 5:24; 벧전 1:23; 요일 5:13).
B. 중생한 영은 자라납니다.
에베소서 4:15에“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5:13-14에“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2:2에“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
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중생한 영이 자란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속성들이 자라나는 것으로 의와 진실과 거룩(엡 4:24)과, 지식(골 2:10)과, 지혜(고전 1:30)와 선과 사랑, 능력이 점점 자라나는 것을 말합니다(롬13:14). 성도가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 나아가며 자라나야 합니다(갈 4: 19). 성도가 죽을 때는 그 영이 자란대로 하늘나라에 갑니다. 하늘나라에도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습니다(마 5:19).
C.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 항상 살아 있고 죽지 않는 말씀으로 중생했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습니다(벧전 1:23).
요한일서 5:18에“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중생한 영을 가리키는데 그 영은 범죄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중생한 성도에게는 새 사람과 옛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가 새 사람(중생한 영)으로 살 때는 의를 행하고 옛 사람으로 살 때는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성도에게는 새 사람과 옛 사람의 싸움이 있습니다(롬 7:15-23). 새 사람은 거듭난 생명이니 그것은 범죄 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성도가 범죄 하게 되는 것은 옛 사람의 요소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새 생명은 범죄 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 성도가 범죄하는 것은 옛 사람의 소행입니다.
옛 사람을 육체의 욕심, 육체의 정욕, 육체의 소욕, 몸의 행실이라고 하였습니다(막 7:21-22; 롬 8:13; 갈 5:16-17, 19-21; 엡 4:22; 벧전 2:11).
㉢ 옛 사람은 중생한 영과 늘 싸우고 있습니다(롬 7:18-25).
베드로전서 2:11에“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였습니다. 중생한 영을 따라 새 사람으로 살 때에는 의를 행하고, 육체의 부패성을 따라 옛 사람으로 살 때에는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옛 사람이 범죄 한 것을 중생한 영이 책임을 지고 같이 탄식하고 회개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입어 나가며, 구원(성화)을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롬 8:26, 34). 로마서 7:20에“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하였습니다.
㉣ 중생할 때에 영 전체가 살았습니다(롬 8:10).
하나님께서 성도의 영을 중생시킬 때에 일부분만 살리시지 않았습니다. 성도의 영이 만일 일부분만 살고 일부분은 죽어 있다고 하면 성도의 영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 영은 산 것도 아니며 죽은 것도 아닙니다. 성도의 영은 한 인격체이므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성도의 영이 일부라도 죽어 있다고 말한 성경은 한 곳도 없습니다.
에베소서 2:1에“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하였고, 요한복음 5:24에“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2:6에 중생한 성도의 영은 하늘에 앉아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영이 일부분만 살았고 다른 부분이 죽어있다고 하면 그 죽은 것이 어떻게 하늘에 앉을 수가 있겠습니까? 만일 성도의 영이 일부분이 죽어 있으면 어떻게 성전이 되며 어떻게 예수님께서 그 안에 거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의 중생한 영은 영 전체가 다 살아난 것이며 그 전체가 하나님의 성전이며 예수님께서 그 안에 거하십니다. 한번 중생한 영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생한 영은 다시 타락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한번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중생한 사람은 절대 지옥가지 않습니다.
※ 발을 씻어야 된다는 것은 이미 중생한 사람도 마귀의 유혹을 받아 욕심을 따라 살 때에는 죄를 범하게 되는데 이것을 회개하는 것이 발 씻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것도 예수님이 발을 씻어주시는 것인데 이것을 예수님이 해 주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발을 내밀어라 할 때에 발을 내밀어야 하고, 예수님이 발 씻어 주실 때는 감사하는 마음과 황송하고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자신은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발을 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피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우리를 회개 시켜서 점점 정결케 만들어 나가는데 발은 한번 씻고 그만 두는 것이 아닙니다. 더러워졌으므로 또 씻어야 합니다. 그래서 점점 더 정결케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다 죄가 있습니다(롬 3:10).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데 마귀에게 넘어가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영적 일과 하나님의 일에 손해를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고, 예수님의 구속을 힘입어서 감격에 넘치는 생활을 하여야 하고, 정결케 되어 나가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순종해서 모든 부패성과 죄악성을 벗어버리면 예수님을 닮아가며 예수님의 옷을 입습니다.
로마서 13:14에“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4:19에“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은 의와 선과 거룩과 사랑과 지혜와 지식과 진실과 능력인 하나님의 속성을 말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3:3에“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영이 믿음으로 이미 깨끗함을 받았으나 깨끗함에서 더욱 깨끗함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점점 옷 입어 나가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예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 우리를 목욕시켜 주시고, 우리의 발을 씻어 주시고, 예수님의 몸과 같이 거룩하고 깨끗하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항상 예수님의 피에 대해서 감사하여야 하고, 부활의 능력으로 살려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여야 합니다. 날마다 죄악성을 벗어 버리고, 깨끗한 데로 나아가므로 그리스도의 흰 옷을 입어 나가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4:19에“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은 의와 선과 거룩과 사랑과 지혜와 지식과 진실과 능력인 하나님의 속성을 말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3:3에“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영이 믿음으로 이미 깨끗함을 받았으나 깨끗함에서 더욱 깨끗함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점점 옷 입어 나가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예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 우리를 목욕시켜 주시고, 우리의 발을 씻어 주시고, 예수님의 몸과 같이 거룩하고 깨끗하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항상 예수님의 피에 대해서 감사하여야 하고, 부활의 능력으로 살려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여야 합니다. 날마다 죄악성을 벗어 버리고, 깨끗한 데로 나아가므로 그리스도의 흰 옷을 입어 나가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4. 예수님은 종의 자리까지 낮아지셨습니다.
본문 12-14절에“저의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자가 선생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도리인데 예수님의 도는 선생이 제자의 발을, 상전이 종의 발을 씻어주는 도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겸손의 교훈으로 예수님은 주와 선생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그 보좌와 영광을 다 내어 놓고 사람이 되어 종노릇 하는 데까지 낮아졌으니 지극히 겸손한 것입니다. 또 사랑의 교훈으로 예수님이 모든 것을 희생하며 봉사한 것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피 흘려서 죄를 씻어 준 것을 본받아 너희도 서로 용서해주고 주님의 구원운동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받들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려면 종의 자리에 처해야 함
본문 16-17절에“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된 자리를 다 내어 놓고 종의 자리에 내려갔습니다(빌 2:6-7). 예수님은 우리의 상전이며 우리는 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복음 전파하라고 보낸 자이시고 우리는 보내심을 입은 자입니다. 상전이 종의 발을 씻어 주는 일은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너희도 이처럼 낮아져서 종의 발을 씻어 주는 데까지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섬김을 받는 자보다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젠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 같이 낮아져야 하고, 예수님이 희생하신 것처럼 희생하는 마음을 가져야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줄 수 있습니다.
발 씻는 재료
① 예수 그리스도의 피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죄를 정결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습니다(히 9:22).
성도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다른 사람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고 예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게 만들고 예수님의 친구가 되게 하는 사명이 있는데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도 예수님의 피 공로를 전해서 믿게 해야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다른 사람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고 예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게 만들고 예수님의 친구가 되게 하는 사명이 있는데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도 예수님의 피 공로를 전해서 믿게 해야 합니다.
② 하나님의 말씀 (벧전 1:22)
에베소서 5:26에“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케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함으로 깨끗하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 받아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본 받는 일이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의미도 있으나 더 깊은 의미는 다른 사람을 목욕시켜 주라는 것이며 그보다 더 깊은 의미는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 주라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죄 씻음 받아 점점 더 깨끗하게 씻어 나가도록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의미도 있으나 더 깊은 의미는 다른 사람을 목욕시켜 주라는 것이며 그보다 더 깊은 의미는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 주라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죄 씻음 받아 점점 더 깨끗하게 씻어 나가도록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목욕시켜 준다는 것은 예수님의 피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깨끗하게 만들어 나가는 일을 예수님이 하실 때 우리가 거기에 심부름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를 사용해서 다른 사람을 목욕시켜 나가시고,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나가시는데 우리가 그 일에 쓰임 당하면 복된 사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다른 사람을 목욕시켜 주는 일입니다. 자기도 발을 씻으면서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는 일을 게으르지 아니하고 일심전력을 다해서 하여야 합니다.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고 그 사람이 죄 가운데서 나오도록 항상 믿음으로 인도하여야하며 말씀으로 가르쳐야겠습니다. 그래서 점점 깨끗한 데로 나아가서 예수님의 옷을 입어 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얼마나 죄 가운데서 멸망 길로 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까? 지옥으로 가는 사람을 어떻게 하든지 건져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예수님의 피로 목욕시켜 주어야 합니다. 또 내가 목욕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내가 목욕을 했으니 다른 사람도 목욕을 시켜 주어야 하며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이 하시
는 것이지만 예수님이 사람을 시켜서 하는 것이므로 내가 수종 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해도 죄 가운데서 헤매는 사람들을 건져 내는 일을 우리가 바로 해 나가야 발을 씻어 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5. 예수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본문 31절에“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속사업을 완성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예수님이 영광을 얻는 일이며 하나님이 예정하신 구속사역이 성취되므로 하나님도 영광을 얻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죽으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본문 32절에“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히시고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권세를 다 주셨습니다(빌 2:8-11). 성도들도 하나님을 순종한 것만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만큼 성도에게 영광을 주십니다. 구속 사업에 참여하고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기 위해 희생한 것만큼, 하나님의 뜻을 복종한 것만큼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그만큼 영광을 주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영화롭게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희생하고 낮아지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높여서 영화롭게 하십니다. 그러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자는 하나님이 내어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면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면서라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영화롭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예수님의 본을 받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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