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일 수요일

요한복음 14:1-15 근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근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라
요한복음 14:1-15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14:2 내 아버지 집에는 거주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 있을 곳을 예비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하였겠느냐? 
14: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있을 곳을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할 것이다. 
14: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14:5 도마가 예수께 말하기를 "주님, 저희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니, 
14: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한다. 
14:7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분을 알고 또 보았다." 
14:8 빌립이 예수께 말하기를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러면 저희가 만족하겠습니다." 하니, 
14: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도 보았는데 어찌하여 너는 말하기를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라고 하느냐?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들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그분의 일들을 하신다.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어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일들을 인하여 믿어라. 
14:12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들을 그 자신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일들도 할 것이다.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그것을 행할 것이니, 이는 아버지께서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14: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겠다."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들을 지킬 것이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간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14: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맞아들일 수 없으니, 이는 세상이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안다. 이는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고 너희 안에 계실것이기 때문이다.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올 것이다.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겠으나, 너희는 나를 볼 것이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 것이기 때문이다. 
14:20 그 날에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 것이다. 
14:21 내 계명들을 가지고 그것들을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요,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며 또한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나타낼 것이다." 
14:22 가룟 사람이 아닌 유다가 예수께 묻기를 "주님, 어찌하여 저희에게는 자신을 나타내시면서 세상에는 그렇게하지 아니하십니까?" 하니, 
14:23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로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할 것이다. 
14:24 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너희가 듣고 있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14: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머무는 동안에 너희에게 이것들을 말하였다. 
14:26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14:27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겨 주니, 내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으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라. 
14:28 '너희는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 온다.' 고 너희에게 말한 것을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니, 이는 아버지께서 나보다 크시기 때문이다. 
14:29 지금 내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14:30 내가 더 이상 너희와 많은 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세상의 지배자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내게 아무런 권한이 없다. 
14:31 다만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이다. 일어나라. 여기에서 떠나자."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근심하지 말라

본문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근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찬송가에 ‘근심걱정 없는 사람 누군가’라고 했는데, 근심걱정 없는 사람 없이 다 있습니다. 어떤 분이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왜 안보이냐고 물어보니까 신경 쓰고 근심하고 과로해서 안 보인다고 합니다. 과로하지 말고, 신경 안 쓰고, 근심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니까, 신경 안 쓰고는 살 수가 없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근심, 걱정,
우수, 사려, 번민, 고통 등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근심하지 않는 방법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을 믿는 것,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째입니다. 근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근심하지 않습니다. 왜 근심하지 않느냐면, 하나님을 믿으니까 근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주장하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복으로 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앞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십니다.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주시고, 우리 받은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당한모든 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쓴 것, 단 것, 짠 것, 매운 것,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사탕만 주시는 게 아닙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사탕만 주는 게 아니고, 맛이 없는 것도 주고, 어떤 때에는 약도 주고, 여러 가지 주는데 그것이 다 아버지께서 자녀를 사랑해서,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은 우리는 사랑해서,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주시는 겁니다. 여러 가지, 쓴 것, 단 것, 짠 것, 매운 것, 다 주십니다. 어쩔 때는 고춧가루 턱턱 쏘는 것, 신 것, 어떤 때는 짠 것 등, 여러 가지를 다 주신다는 말입니다.

야고보서 1:2-4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늘 좋은 것만 주면 사람 버립니다. 부잣집
재벌가의 아들들 보면, 사람 버렸다고 할 만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가 많은 재산을 물려줬지만, 그 재산 때문에 망하는 사람 많고, 죽는 사람도 많고, 또 형제들 끼리 재산 때문에 싸우고 다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여러 가지를 받아야 합니다.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부하게도 해주시고, 가난하게도 해주시고, 가난하게도 해주시고, 배부르게도 해주시고, 궁핍한 생활도 하게 해주시고, 환란도 받게 해주시고, 평안도 주시고, 감옥에도 갇히게 해주시고, 물에 빠지게도 해주시고, 여러 가지 위험을 당하게 해주셨지만, 그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랑하셔서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그런 연단을 통과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드시려고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시고,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다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고, 다 은혜가 되는 것이고, 그것들이 있어야 되겠기에 하나님께서 다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의 육신의 생각은 “뭐 어떻게 하면 좋겠다. 뭐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얼 주면 좋겠다. 무얼 주면 좋겠다”고 해도, 주면 망할까봐, 또 무얼 주면 그게 우상이 되어서 하나님 버리고 그것 따라 갈까봐,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 주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망하는 것을 왜 주시겠습니까? 아이들이 양잿물 달라고 하면 줍니까? 면도칼날도 안 줍니다. 아무리 달라고 해도 그것 주면 망하겠으니까 다 빼앗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계신데 무엇 때문에 근심하겠습니까? 필요한 것은 다 주시는데, 계속해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근심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전에 김현봉 목사님 말씀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계속해서 도와주신다고 하면, 계속해서 도와주시는 아버지가 있다고 하면, 근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한 달에 백만 원씩 계속해서 주신다고 하면, 계속해서 도와주신다고 하면, 돈에 대해서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 돈이 떨어질 만하면 또 주고, 떨어질 만하면 또 주는 아버지가 있는데 그 아들이 돈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해서 도와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계속해서 도와주시는 아버지니까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좋습니
까? 사도신경 제일 첫마디가 몇 억 만 달러보다 낫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그분이 내 아버지인데, 또 주장하시고, 우리에게 다 적용시켜 주시고, 필요한 것만 주시는데 뭘 걱정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근심하지 말라

“나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근심이 다 없어진다고 하십니다. 왜 그런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로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삼직이 있는데, 선지, 제사장, 왕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라 함에는 세 가지 직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우리에게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우리를 위해 구속의 피를 흘려주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왕으로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통치하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니 무엇을 걱정할 것이 있습니까? 우리의 왕이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제사장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채워주시는데,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도 했습니다. 본문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고, 우리의 거할 곳을 예비해 놓으신 주님이십니다.

“너희를 위해서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처소, 우리의 집, 거할 집을 예수님께서 예비하러 가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비하시면 다시 우리에게 오셔서 인도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요새 집 없는 사람들 집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할 텐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집을 예비해 놓고 우리를 그리로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처소’라는 것은 천당을 예비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천당은 창세전에 이미 예비해 놓았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34에 보면,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어서 우리의 구속의 세계를 이루어주시러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속의 세계에서 살도록 해주시러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까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길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진리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길, 가다가 길 잃어버리면 죽습니다. 사막을 가다가 길 잃어버리면 죽는 답니다. 동서남북 어딘지도 모르고 왔던 데로 다시 돌아가고 한답니다. 또 나무가 많은 깊은 산림 속에 들어갔다가 길 잃어버리면 죽는 답니다. 하루 종일 가도 끝이 안 나오고, 몇 일을 가도 끝이 안 나온답니다. 길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슨 길이냐? 아버지께로 가는 길입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너희가 알리라” 라고 하셨는데,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 예수님이십니다. 천당 가는 길, 구원 받는 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구원 받는 길, 이러한 길이라는 말입니다. 이 길로 가야지 다른 길 없습니다. 다른 길로 가면 사망입니다. 영생으로 가는 길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께로 가고 하늘나라, 그 예비한 처소로, 구속의 세계로 가는 길은 예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진리요”라고 했는데, ‘진리’는 ‘영적 진리’입니다. 세상에 모든 식물의 진리나, 과학의 진리나, 수학의 진리가 다 있지만, 그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영적 진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원불변의 영적 위치, ‘참’을 말합니다. 세상 모든 진리, 물질적인 진리 가지고는 그 영적인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알게 되고, 하늘나라도 알게 되고, 우리 영혼도 알게 되고, 영생도 알게 되고, 예수님 재
림도 알게 되고, 부활도 알게 되고, 우리가 부활할 것도 알게 되고, 영생 복락을 누릴 것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영적진리, 이것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계속되는 진리입니다.

세 번째는 ‘생명’인데, 영적 생명입니다. 우리 육신의 생명도 생명이지만, 영적 생명이 또한 생명입니다. 생명이 둘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영적 생명이 살아있고, 또 육신의 생명도 있습니다. 육신의 생명은 조금 가다가 죽고 없어지고 말지만, 영적 생명은 영원히 하늘나라에 가서 세세무궁토록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영적 생명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는 사람은 영적 생명을 받은 사람들 입니다. 그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생명의 양식, 영적 생명인 동시에 생수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생수가 나옵니다. 요한복음 4:13-14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적 생명인 동시에, 우리에게 생수를 주시고,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솟아 올라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생명의 역사가 넘쳐흘러서 항상 기쁘고, 즐겁고, 만족하고, 충만합니다. 이렇게 영적 생명수를 먹으면 영혼이 고갈함이 없습니다. 항상 만족이요, 충만함이요, 넘쳐흐릅니다. 예수님은 진리이고,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수를 먹고, 그 생명수가 우리 속에서 계속 솟아나도록 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근심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임

본문 8-10절에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
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하시며,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셔서 말씀도 해주시고, 모든 행하는 것도 아버지께서 행하라는 대로 행하는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서 말씀하셔서 하시는 말씀 그대로 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셔서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대로 하시는 것이고, 전부 아버지께서 하시는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49-50에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자의로 말씀하시는 게 아니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셔서 말씀하시는 대로, 그 명령하시는 대로 다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예수님께서도 말씀을 하시니까 그 말씀이 누구 말씀입니까? 하나님 말씀입니다. 또,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셔서 일하시는 대로 예수님도 일하시니까, 그 일하는 것은 누가 일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11-12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하십니다. 행하는 일이 예수님 자의로 행하시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셔서 행하시는 그대로 행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거룩한 길을 걸어 나가시는 것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룩한 길을 걸어 나가시는 대로 걸어가시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구원 사역을 이루시는 것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원사역을 이루시는 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 들어가셔서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파는 자들을 채찍으로 때려 다 내쫓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은 전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전부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말씀하시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은 전부 하나님 아버지께서 책망하시는 대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 자는 누구를 본 것입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다 나타내셨습니다. 다 나타내 주시고, 다 말씀해 주시고, 다 일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시뇨?’라는 요리문답 4문답에 대답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신이시니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변하시느니라’입니다. 세례 받으려면 이것을 다 외워야 됩니다. 이것 안하면 세례문답 낙제이니까 다 외워서 오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은 여러 가지,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있으신데, 이것이 다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마태복음 22:15에 바리새인들이 세금문제로 가이사의 화상이 그려진 돈을 가지고 와서 이 돈이 누구의 것인지, 가이사의 것인지, 하나님의 것인지 물을 때에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대답하셔서, 그것을 물은 자들이 꼼짝 못하고 물러갔었습니다. 그들은 사실 예수님을 올가미에 걸리게 해서 죽이려고 왔는데, 가이사의 것이라고 하면 그리스도의 자격이 없다고 할 생각이었고, 가이사에게 바치지 말라고 하면 내쫓아 내려고 했는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대답하시니까 그들이 꼼짝 못했습니다. 이것을 이기선 목사님은, 예수님의 지혜라고 하셨습니다. 보통은 이런 일에 다 걸리는데, 예수님의 지혜는 무궁하셔서 그런 지혜 있는 대답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또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사랑)하심과, 진실하심과, 이러한 하나님의 모든 속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 나타났습니다. 지혜도 나타나고, 거룩도 나타나고, 사랑도 나타났기 때문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 아버지를 보여 달라느냐? 다 보여줬는데, 아버지를 왜 또 보여 달라느냐?”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나신 하나님을 다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행사에 나타나시고, 말씀에 나타나시고, 일하는 데에 나타나시고, 심판하시는 데에 나타나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다 나타납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가 다 발견하고, 그 아버지를 바로 섬겨야 됩니다. 

3. 기도하면 다 주시니 근심하지 말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본문 13-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는 것,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본문 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렇게 기도하면 다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좀 필요하면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다 주십니다. 걱정할 게 있습니까? ‘무엇이 없어서 근심이다’, ‘무엇이 없어서 큰일 났다’ 하는데, 기도하면 다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근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기도하면 다 주시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가야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것을 다 들어 주십니다. 거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잘 안 들어 주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다 들어 주십니다. 기도할 때에,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딱 붙여가지고 올려 보내야 합니다. 다 기도하고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딱 붙여가지고 올려 보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보실 때 “아, 이거 누구의 이름으로 왔느냐?”하실 때에, “예수의 이름으로 왔습니다.”하면, “아 그래 다 받아라”하고 다 받아 주십니다. 자기가 아무리 믿사오니 하고 아무리 기도해도 안 됩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통과 못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다 통과입니다. 받아 주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 받아주시는 기도가 있습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는 것은 안 받아 주십니다. 야고보서 4:3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것은 못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구하는 것은 다 받습니다. 100% 다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은 100% 다 받습니다. 기도할 때에 어떻게 기도하라고 했습니까? 예수의 이름을 거기에 붙여서 올려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다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간절히 기도하고, 계속 기도하면 상달이 됩니다. 그런데 무슨 표를 붙이라고요? 예수님 이름의 표를 붙여서 올려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름을 보고 받아주십니다. 기도하면 다 주십니다. 기도를 계속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모하고, 주실 것을 믿고, 계속 기도하면, 하나님 앞에 합당한 기도는 다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은 안 주시고, 맞는 것은 다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같이하심

본문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와서 같이 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면 우리에게 오셔서 거처를 같이 하겠다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14:23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키면,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와서 같이 계셔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오셔서 동고동락, 동행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즐겁겠는지 생각을 해보십시오. ‘주와 같이 길가는 것’이 어떻다고 했습니까? ‘즐거운 일이 아닌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가는 게 즐거운 일이고,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은 더 즐거운 일입니다. 얼마나 큰 즐거움으로 가는 것입니까? 믿음으로 사는 길은 이렇게 근심이 하나도 없고, 즐거움으로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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