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에 거하라
고린도전서 13:1-7
고린도전서 13:1-7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징이나 울리는 꽹과리가 될 뿐이다.
13:2 내가 예언하는 은사를 가지고 있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가 자랑하려고 내 몸을 내어준다 하더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는 자가 되지 않으며, 사랑은 자랑하지않으며, 교만하지않으며,
13:5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13:2 내가 예언하는 은사를 가지고 있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가 자랑하려고 내 몸을 내어준다 하더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는 자가 되지 않으며, 사랑은 자랑하지않으며, 교만하지않으며,
13:5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1. 사랑의 가치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음
사랑에서 자라나는 일, 그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 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 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을 말합니다. 아가페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이 아닌 거룩한 사랑입니다. 헬라어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4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휠리아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은 친구간의 사랑입니다. 둘째는 에로스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성간의 사랑입니다. 셋째는 스톨게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은 동족적인 사랑입니다. 넷째는 아가페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다 초월한 사랑으로 이성간의 사랑도 아니고, 동족간의 사랑도 아니고, 친구간의 사랑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사랑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아주 고상한, 거룩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어야만 모든 것이 되고, 사랑이 없으면 다 헛된 데로 돌아갑니다. 아무리 방언을 많이 해도 사랑이 없으면 헛것이고, 천사의 말을 해도 헛것입니다. 또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 영적 유익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랑의 가치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천사의 말, 여러 가지 비밀의 예언을 한다고 해도 유익이 없고, 사람의 방언이나 산을 옮길 믿음이 있다고 해도 유익이 없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 구제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1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주실 만큼 사랑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 흘려서 하나님 앞에 화목제물이 되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우리는 늘 그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1서 4장 11절에는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지 말고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하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사람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면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참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면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없으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해도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소리 나는 구리란 구리철판 같은 것을 두드려서 소리 나게 하는 악기이고, 울리는 꽹과리란 금속제로 대야처럼 만들어 두드려서 소리 내는 악기입니다.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는 것은, 꽹과리를 두드려서 꽹! 꽹! 하지만 그것에 생명도 없고 어떤 유익도 없다는 것입니다. 구리 같은 것을 두드려서 소리를 내어도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아무리 해도 사랑이 없으면 일종의 꽹과리와 같고, 소리 나는 구리판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 나라 방언을 하고, 알지 못하는 방언을 해도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또한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고, 큰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믿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이적과 기사는 이단들과 마귀들도 행하지만 오직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적과 기사가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즉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 영의 세계, 성령의 세계, 생명의 세계임
영의 세계는 사랑의 세계입니다. 사랑의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이고, 하나님의 세계는 사랑의 세계입니다. 우리 중생한 영의 세계도 사랑의 세계이고, 성령의 세계도 사랑의 세계이고, 생명의 세계도 사랑의 세계입니다. 사랑의 세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에서 떠나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내가 내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구제했다고 할지라도, 심지어 내 몸까지 불사르게 내어 주었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가 정책에 반대하려고, 남에 대해 보복하려고 자기 몸을 불사르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불사른다고 해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걸하면 뭐하겠습니까? 아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죽었다 할지라도, 진정한 사랑이 없다고 하면 그것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만이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면 그것은 참된 유익이고, 생명의 역사가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가 다른 사람의 영혼을 길러 나감
요한복음 21:15-16에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 사람들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란 아가페 사랑을 하느냐고 예수님이 물어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할 때에 예수님이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실 때에 베드로가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라야 양을 먹일 수 있고, 양을 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하면 양을 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전도할수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의 영혼을 길러 나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에 다른 사람의 영혼을 길러나갈 수 있고, 자기 가족이라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에 자기 가족을 하나님 말씀대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또 나가서 몇 사람 전도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면 그 모든 일들이 다 안 됩니다. 양을 먹이고, 양을 치는 일, 하나님을 위하는 일 등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여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사찰로 맡겨 놓아도 그 맡겨진 일
을 잘하고, 교회 청소도 잘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므로 마음이 다 하나님께만 가 있고, 예수님께만 가 있고, 교회에만 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교회를 돌보고, 청소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성도 한 명을 귀히 여기고, 잘 돌보려고 합니다.
사랑으로 해야 잘하는 겁니다. 사랑이 아니면 잘 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 기르는 것도 진정으로 그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면 그 아이를 잘 길러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아이를 기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더러운 것을 더럽다 하지 아니하고, 힘이 드는 것을 힘든 줄 모르고, 단 마음으로 합니다. 또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사랑하므로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에 하나님의 양을 먹일 수
있고, 하나님의 양을 칠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잘 못합니다. 건성으로 슬슬 해나가고, 하는 모양만 가지고 속에 깊이 들어가 보면 하나도 되는 게 없습니다. 외부로만 그저 슬슬 되어 나갑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물으셨습니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며 믿는 일을 첫째로 하고, 예수님을 제일 높은 자리에 모시며, 주님의 일을 첫째로 하여야 합니다.
을 잘하고, 교회 청소도 잘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므로 마음이 다 하나님께만 가 있고, 예수님께만 가 있고, 교회에만 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교회를 돌보고, 청소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성도 한 명을 귀히 여기고, 잘 돌보려고 합니다.
사랑으로 해야 잘하는 겁니다. 사랑이 아니면 잘 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 기르는 것도 진정으로 그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면 그 아이를 잘 길러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아이를 기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더러운 것을 더럽다 하지 아니하고, 힘이 드는 것을 힘든 줄 모르고, 단 마음으로 합니다. 또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사랑하므로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에 하나님의 양을 먹일 수
있고, 하나님의 양을 칠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잘 못합니다. 건성으로 슬슬 해나가고, 하는 모양만 가지고 속에 깊이 들어가 보면 하나도 되는 게 없습니다. 외부로만 그저 슬슬 되어 나갑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물으셨습니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며 믿는 일을 첫째로 하고, 예수님을 제일 높은 자리에 모시며, 주님의 일을 첫째로 하여야 합니다.
순교는 예수님의 사랑에 삼키어져 목숨을 바치는 것
제일 좋은 것은 주님께 바칠 생각을 가지고, 단 마음으로 희생하여야 합니다. 순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단 마음으로 목숨을 바치는 게 순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목숨을 바꾸는 것이 순교입니다.
즉 말씀을 양보하면 살 수 있는데 말씀을 지키느라고 죽는 것이 순교입니다. 말씀을 양보하면 살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씀을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죽는 것입니다. 살 길이 있지만 예수님의 사랑에 삼키어져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죽는 길이라도 단 마음으로 간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순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삼키워져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순교입니다.
예수님은 성도가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고 또 비밀을 말하고 구제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가 살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여 구원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는가? 이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그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없다고 하면 방언이나 예언이나 구제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끌리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음
그러니까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살지 못하면 그것은 믿음을 떠난 사람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해서, 그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은 어떻게 날 이렇게 사랑하셔서 건져주셨을까?”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나올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서 나와야 되고, 전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해야 되고, 심방하는 것도 하나님 사랑에 감사해서 해야 되겠습니다.
그 사랑에 끌리어서 나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끌리어서 주를 위해서 희생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끌리어서 봉사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끌리어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충성을 해야 합니다. 교회 나올 때 하나님의 사랑에 끌리어서 나와야 합니다. 그게 진짜입니다. 습관적으로 나오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에 끌리어서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드시 순종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도 사랑합니다. 그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그 말씀에 순종을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에 정성이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데, 하나님을 위하는 일에 정성이 안 들어가겠습니까? 딸을 사랑하는 부모들이 딸을 시집보낼 때 정성을 다해 밤 잠 안자고 준비합니다. 딸을 시집보내려다가 병난 사람도 있고, 여러해 전에는 딸 시집보내는 것 준비하다가 죽은 어머니도 있습니다. 아니, 딸 시집보내려다가 죽습니까? 잘 준비하지 못해도 부모가 사는 게 중요하지, 몇 가지 더 해주려고 밤낮 자지 못하고 돌아다니다가 엄마가 죽으면 딸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미련퉁이입니다. 아니, 딸 시집보내다가 죽는 게 뭡니까? 딸에게 잘 해 주지 못해도 엄마가 죽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사랑하면 정성이 들어갑니다. 마음이 들어가고, 정성이 들어가게 됩니다. 사랑하면 마음이 거기에 갑니다. 그냥 마음이 가니까 몸도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아까울 것이 없이 다 하나님 앞에 바치려고 하고, 사랑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다 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속에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마음에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따라오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예수님을 따라가게 되고, 정성을 다하게 되고 힘을 쓰게 되고, 마음을 바치게되고 몸도 바치게 되고, 다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밤낮 늦어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없기에 이렇게 늦어지게 됩니까? 예배시간 늦어지는 사람들은 회개해야 됩니다. 그런 것 회개해야 됩니다. 자기 자녀 결혼식 때에도 늦어집니까? 결혼식장에 가보면 부모가 일찍부터 나와서 꽃 한 송이 달고 왔다 갔다 하면서 돌아다니던데, 거기에는 늦어집니까? 사랑하는 자녀가 결혼식 하는 데에는 늦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왜 예배시간에 늦어집니까? 그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까? 회개해야 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해야 됩니다. 사랑이 없다고 하면 별것을 다해도 쓸데없습니다. “나는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었다”,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구제했다”, “몸을 내 주어 불사르게 했다”, “천사의 방언을 했다”고 해도 그런 것 다 쓸데가 없습니다. 사랑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들어가야 함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되느냐? 그 마음이 얼마나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제일 사랑해야 됩니다. 세상 것이 첫째이고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둘째가 되는 건 안 됩니다. 사람 사랑하는 것이 첫째고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둘째라면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마음은 신앙이 아닙니다. 돈 사랑하는 것이 첫째고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둘째면 그것도 믿음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제일 첫째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시간을 다 바쳐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정성이 들어가야 됩니다. 시간이 들어가야 되고, 마음이 들어가야 되고, 힘이 들어가야 됩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첫째가 되고, 그것이 전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의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제일 첫째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시간을 다 바쳐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정성이 들어가야 됩니다. 시간이 들어가야 되고, 마음이 들어가야 되고, 힘이 들어가야 됩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첫째가 되고, 그것이 전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의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말씀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말씀을 단 마음으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계명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이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순종하면, 그의 계명이 순종하기에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순종하는데 힘이 안 듭니다. 할머니들이 손자 업고 다니는 것을 보면 힘들지 않게 업고 다닙니다. 손자 몸무게가 20Kg이 나간다고 해도 거뜬히 업고 다닙니다. 사랑하니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 할머니에게 20Kg 쌀 한가마니지고 가라고 하면 아마 허리가 똑 부러져서 못한다고 합니다. “사람을 죽이려고 하느냐? 이놈의 새끼들 날 죽이려고 하느냐?”고 욕을 할 것입니다. 또는 20Kg 돌을 지고 다니라고 하면 그 할머니는 쓰러질 것입니다. 그러나 손자 업고 다니는 것은 아주 기운이 생생해서 업고 다
닙니다. 왜냐하면 손자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하면 하나님 섬기는 것이 즐겁고, 힘도 안 듭니다. 힘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억지가 되고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없는 것을 회개하고, 먼저 그 사랑을 깊이 깨닫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셨는데, 이것이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그 사랑 아니었으면 우리는 다 멸망했을 텐데, 그 사랑 때문에 살고 있는데, 감사해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눠주는 그런 사랑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2. 사랑의 성질
본문 4-7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나온 사랑의 성질은 어떤 것입니까? 4절부터 보면,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다’, ‘온유하다’,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 ‘자랑하지 않는다’, ‘교만하지 않는다’, ‘무례히 행하지 않는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다’, ‘성내지 않는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나온 사랑의 성질은 어떤 것입니까? 4절부터 보면,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다’, ‘온유하다’,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 ‘자랑하지 않는다’, ‘교만하지 않는다’, ‘무례히 행하지 않는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다’, ‘성내지 않는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오래 참음
첫째,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들에 대해서 기다리면서 바로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사랑하면 오래 참아 줄 수 있습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면 율법의 완성이 되고,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면 오래 참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 해주실 것을 믿고, 원수도 하나님이 갚아주시고 심판도 하나님이 해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근심걱정을 하나님이 다 처리해 주실 것을 믿으니까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온유함
둘째, 사랑은 온유합니다. 사랑하므로 그 사랑하는 자들에게 온유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 해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다 맡기게 되어서 온유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투기하지 않음
셋째, 사랑은 투기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를 향해서 투기할 수 없습니다. 보통은 남이 자기보다 잘되면 시기합니다. 그런데 자기 아들이 자기보다 잘 되면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면 투기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잘 되는데 왜 투기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 들어간 사람은 투기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잘 되기를 원합니다. 남이 잘 된다고 투기하지 않습니다.
자랑하지 않음
넷째,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에게는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세계가 자기 세계이기에 하나님 세계가 잘 되는 것을 기뻐하고.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랑할 만한 일이 있어도 자기가 잘 해서 된 것이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는데, 우리는 자랑할게 없는 줄 알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교만하지 않음
다섯째,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교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해주겠는가? 하는 생각만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면 자녀에 대해서 자기가 낮아질지라도 어떻게 하면 잘 해줄 수 있을까만 생각하는 겁니다. 또한 성경에 ‘교만하지 말라’(렘13:15)고 했습니다. 교만한 것은 자기가 낫다고 생각하여 자기가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려는 것이 교만인데, 이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무례히 행치 않음
여섯째,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무례히 행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무례히 행하는 것은 그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는 말씀의 세계이고 진리의 세계인데, 거기는 무례히 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진리대로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음
일곱째,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습니다.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자에게는 좀 더 주려고만 하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잘해 주려고만 하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자녀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만 좀 더 잘해줄까? 그런 생각만 합니다. 예수님이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내어 놓으셨습니다. 자기 몸과 생명
까지 희생하시며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모세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기를 즐거워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유익을 구합니다. 사랑의 세계는 하나님의 유익을 구하는 세계입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까지 희생하시며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모세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기를 즐거워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유익을 구합니다. 사랑의 세계는 하나님의 유익을 구하는 세계입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성내지 않음
여덟째, 사랑은 성내지 않습니다. 성 낼만한 일이 있는데도 성내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와서 부모를 때리면 부모가 성냅니까? 성 내지 않습니다. 어떤 노인이 나이가 좀 들어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 아이가 와서 때리면 아주 기뻐했답니다. 그래서 아이가 부모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때리는 것인가보다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매일 노인을 때렸는데 노인은 그저 매일 기뻐했답니다. 나이 들어 아이 얻은 것이 너무 좋아 아이가 때리는 것도 귀여워서 늘 웃었는데 아이가 자라서도 여전히 한 대씩 가서 때렸답니다. 그러므로 그 소문이 온 고을에 다 퍼져서 “저 아무개 아들은 늙은 부모를 한 대씩 매일 때린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어렸을 때 아이가 때릴 때에는 그다지 아프지 않았지마는, 아이가 장성한 후에 맞은 것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래서 아들이 불효자로 고발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고을 원님이 불효 아들을 잡아서 물어 보았습니다. “부모를 매일 한 대씩 때린 게 사실이냐?” 하니까 “예 사실입니다”라고 해서 “불효막심한 녀석 같으니라고, 부모를 때리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니까, “우리 부모는 때려야만 기뻐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내내 한 대씩 때려왔습니다”라고 하였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참 순진합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부모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지극하다”고 생각하여, “그러면 네가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이제부터 네 아버지를 업고 너희 집까지 한번도 내려놓지 말고 가야 된다”고 하였답니다. 몇 십리 되는 길이라고 합니다. 몇 십리를 업고서 한번도 내려놓지 않으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 사람이 아버지를 업고 몇 십리를 되는 길을 한번도 내려놓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끝까지 결사적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를 때리는 것이 효도가 아니고, 이제부터는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게 효도라고 하니까 그 다음에는 잘해서 효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부모가 아들에게 매를 맞아도 성내지 않은 것은 아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성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하면 아무리 성낼만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성 내지 않습니다.
또한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면 성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 해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성내지 않습니다. 왜 성을 내겠습니까? 공의로 심판하실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주실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기 때문에 성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처리해 주십니다. “숨은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다”(마10:26)라고 했는데, 무슨 일에든 성 낼 것이 없습니다.
자기가 안 한 것을 가지고 누가 뭐라고 해도 성낼 것이 없습니다. 자기가 안 한 것을 했다고 해서 화내고, 성내고, 분이 나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이 다 해주실 것입니다. 숨은 것을 나타나게 해 주실 것이고, 감추인 것이 드러나게 해주실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안 한 것에 대해선 안 한 것으로, 한 것은 한 것으로 나타내어 주실 것이니까 자기가 성낼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성내지 않는 것입니다.
악한 것을 생각지 않음
사랑은 또한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고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가 과거에 뭘 잘못했다고 해도 다 용납해줍니다. 전에 잘못한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바로서면 과거의 것을 다 잊어버리고 나가는 게 사랑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바로 서서 회개의 열매가 맺히면 과거의 잘못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용납해 주는 게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이며, 성도의 세계입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음
본문 6절에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불의한 일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또 남이 잘못 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남이 잘못 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잘 못 되었다고 하면“그것 잘 되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병났다고 하면 잘 되었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 잘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랑이 없는 증거입
니다. 진정한 사랑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이 병이 들거나, 실패했을 경우에 같이 진정으로 걱정합니다. 그러므로 불의는 사랑의 세계가 아닙니다. 불의는 마귀의 세계인데, 사랑의 세계에 사는 자는 마귀의 세계의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또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진리를 기뻐하는 게 사랑이고, 진리로 더불어 즐거워하는 게 사랑입니다. 또 같은 진리 가진 사람을 기뻐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세워나가려고 힘을 쓰며, 그 진리와 함께 살고, 그 진리와 함께 일하고, 그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는 진리의 세계입니다. 진리의 세계에 있는 것은 다 자기 것으로 알고 기뻐합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모든 것을 어떻게 합니까?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딥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권고해주실 것을 믿고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고의 손이 나타날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라고 했는데, 이렇게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모든 것을 바라며’, 하나님이 약속대로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잘 참고 견딥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에 살면 뭘 한다고 했습니까? ‘모든 것을 참고’, 그리고 ‘모든 것을 믿으며’, 또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을 바라며’, 또 그 다음에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게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또 빨리 하려다가 안됐다 해도 낙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안 되면 다음에 해주실 것이고, 혹은 조금 더 오래 있다가 해주실 것이고,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대로, 말씀대로, 진리대로 해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바라보고 견디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라고 했는데, 이렇게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모든 것을 바라며’, 하나님이 약속대로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잘 참고 견딥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에 살면 뭘 한다고 했습니까? ‘모든 것을 참고’, 그리고 ‘모든 것을 믿으며’, 또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을 바라며’, 또 그 다음에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게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또 빨리 하려다가 안됐다 해도 낙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안 되면 다음에 해주실 것이고, 혹은 조금 더 오래 있다가 해주실 것이고,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대로, 말씀대로, 진리대로 해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바라보고 견디는 것입니다.
3. 사랑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라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자기 자신을 한번 비추어 보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지 못했다고 하면, 자기가 사랑이 없는 줄 알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오래 참지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하고, 온유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하고, 투기한 것을 회개하여야 하고, 자기 자랑한 것을 회개하여야 되고, 교만한 것을 회개하여야 되고, 무례히 행한 것을 회개 하여야 되고, 자기 유익을 구한 것을 회개하여야 됩니다. 또 성낸 것을 회개하여야 되고, 악한 것을 생각한 것을 회개하여야 되고, 불의를 기뻐한 것을 회개하여야 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지 못한 것을 회개 하여야 합니다. 끝까지 참지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됩니다. 참지 못한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또 모든 것을 잘 될 줄로 바라보지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됩니다. 그러므로 “희망이 없다, 모든 것을 바라볼 것이 없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는지 사람은 모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잘 되게 해주실지? 저것을 잘 되게 해주실지? 둘 다 잘 되게 해주실지? 알 수 없습니다. 또 사람으로서는 안 될것 같아도, 하나님이 갑자기 뒤집어서 되게 해주실지 알 수 없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목사가 되기 전에는 천하의 악질이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남을 못살게 했는지 목사가 되기 전에 시장에 김익두 나왔다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피하고, 벌벌 떨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장에 갈 때에는 오늘 김익두 안 만나게 해달라고 하며 가곤 했답니다. 빚 못 받으면 김익두를 내세워서 빚을 다 받아 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빚을 받아 내었냐 하면, 남의 빚 청부를 맡아서 칼을 하나 가지고 간다고 합니다. 찾아 가서 “빚 천만 원 진 게 있느냐”고 물어보고, “있다”
고 하면 다른 말은 안하고 “내라!”고 한마디만 한답니다. 그래서 별명이 “내라”입니다. “내라”고 할 때에 말이 없으면 칼을 꺼내어 자기 다리를 걷고 “내라!”고 하며 자기 다리에 칼을 꽂아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내라”는 것입니다. 피가 줄줄 나와도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빚진 사람이 빚을 안 갚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못되게 하고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목사가 되기 전에는 천하의 누구의 말도 안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때려서
거꾸러뜨려서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게 하셨고, 후에 유명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지 모릅니다. 사람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또 정 안되면 하나님이 징계를 해서라도 꼼짝 못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는지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참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 모르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이 잘 해줄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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