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일 수요일

요한복음 14:16-31 하나님께서 거처를 함께 하실 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께서 거처를 함께 하실 자
요한복음 14:16-31

14:16 내가 아버지께 간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14: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맞아들일 수 없으니, 이는 세상이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안다. 이는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고 너희 안에 계실것이기 때문이다.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올 것이다.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겠으나, 너희는 나를 볼 것이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 것이기 때문이다. 
14:20 그 날에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 것이다. 
14:21 내 계명들을 가지고 그것들을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요,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며 또한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나타낼 것이다." 
14:22 가룟 사람이 아닌 유다가 예수께 묻기를 "주님, 어찌하여 저희에게는 자신을 나타내시면서 세상에는 그렇게하지 아니하십니까?" 하니, 
14:23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로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할 것이다. 
14:24 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너희가 듣고 있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14: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머무는 동안에 너희에게 이것들을 말하였다. 
14:26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14:27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겨 주니, 내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으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라. 
14:28 '너희는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 온다.' 고 너희에게 말한 것을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니, 이는 아버지께서 나보다 크시기 때문이다. 
14:29 지금 내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14:30 내가 더 이상 너희와 많은 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세상의 지배자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내게 아무런 권한이 없다. 
14:31 다만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이다. 일어나라. 여기에서 떠나자."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20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24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25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1. 보혜사 성령 보내주실 것을 가르치심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참된 평화를 주시고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16-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실 터인데, 그 성령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한 너희 속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본문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했는데,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예수님에게서 들은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이미 말씀을 배워놨기 때문에 성령이 오시면 그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인도하십니다.

본문 18절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부활하실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본문 19절에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가리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다음에 ‘너희는 나를 보리니’라고 했는데, 이는 부활한 다음에는 예수님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예수님은 언제나 살아있고 십자가에 죽었어도 영혼은 살아있습니다. 영은 살아있기 때문에 다시 부활해서 본다는 것입니다.

또,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한 것은 부활의 생명으로 성도들의 심령을 살리실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살아계신 예수님이시고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도 육신만 죽으시고 영은 살아있었습니다.
낙원에 가셨고 다시 부활해서 변화된 몸으로 제자들을 볼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살았고 또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하셨는데, 부활해서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들의 생명을 계속 살려나가실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으로 살면 우리가 계속 살아나가게 됩니다.

본문 20절에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했습니다. 그날에는 부활하시는데, 부활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하십니다.
부활의 생명으로 살 때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안다는 겁니다.

부활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중요한데, 영적생명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육신에 속한 성도가 되지 말고 영에 속한 성도가 되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안에 계신 것을 알고 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압니다. 영적 신앙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 

계명을 지키는 자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임

본문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이며 또한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본문 23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계명을 지키는 자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했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지키는 자라야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이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말씀을 지키고 그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말씀을 점점 지키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하면 그 말씀을 지키지 못합니다. 말씀을 안 지키면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할수 없습니다.

본문 21절에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신 말씀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이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예수님도 그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에게 예수님을 점점 나타내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함과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점점 예수님을 나타내 보여주셔서, 예수님의 사랑을 좀 더 알게 해주시고, 그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의 높이와 길이와 깊이를 알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어떠한 예수님이신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데 얼마나 사랑하는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었습니다. 가족이나 부모나 친척이나 자녀나 전답이나, 이것들 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자라야 예수님도 그 사람을 사랑하시고, 하나님도 사랑하시고 또 그에게 나타내 보여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내 양을 먹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니까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세 번씩 말씀했습니다.

많이 탕감 받은 자가 예수님을 더 사랑함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기본인데 사랑이 없으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해야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같이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나타내주시는 이런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할까요?

성경에 보면 탕감함을 많이 받은 사람이 예수님을 더 사랑한다고 했고 탕감함을 받은 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빚진 것을 탕감해줬다고 했는데, 누가복은 7:41-43을 보면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라고 하였으며, 누가복음 7:47에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많이 사함받은 자는 많이 사랑하고, 적게 사함 받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많이 탕감 받은 자는, 죄를 많이 사함 받은 것을 언제나 가지고 나오는 사람이 됩니다. 죄를 적게 사함 받은 사람은 적게 탕감함을 받았기에 때문에 적게 사랑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죄를 많이 탕감 받고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자리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다고 죄를 많이 지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가 얼마나 큰 지를 날마다 발견해야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 대속의 피로 죄를 사함 받은 것에 늘 감격에 넘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는 사람이라야 예수님의 죄 사함에 감격하게 되고, 예수님의 대속에 감격하는 자라야 예수님께서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죄를 회개함으로 더 많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됨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 또 과거의 죄를 무시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더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한번 간음죄 지은 것으로 인해서 얼마나 회개했다고 했습니까? 침상이 뜨도록, 요가 썩도록 많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다윗 왕과 같이 과거에 죄지은 것을 늘 붙들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이만큼 회개하면서 다윗은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고, 그만큼 많은 죄를 탕감함을 받았고, 또 감격에 넘치는 신앙이 되었기 때문에 다윗은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시편도 기록했습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죄 사함 받았으니까 다 잊어버리고는 전에 죄 한번 지은 것도 다 잊어버리고 나갈 텐데, 다윗은 늘 밤마다 애통하고 늘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도 다윗을 더 사랑하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런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 사람에게 오셔서 점점 더 많이 예수님을 나타내 보여준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점점 더 많이 나타나시니까, 예수님을 점점 더 많이 발견하게 되고,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 큰 것을 알게 되고, 주님을 점점 배워나가고 자랑하고 얻어나가게 되고, 그 안에서 발견되어나가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되겠는데 그러려면 죄를 늘 회개해야겠습니다. 전에 지은 죄, 현재 지은 죄, 기도하지 못한 죄, 믿는 일 하지 못한 죄, 하나님께 바치지 못한 죄, 믿음 쓰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겠습니다. 믿음을 쓰지 못한 것도 죄입니다.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치 않은 것도 죄라고 했습니다.

그런 죄를 날마다 회개하면서 죄를 사해주신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해서 늘 감격에 넘치고 그 사랑에 감격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고,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말씀을 지킵니다. 명령을 지키게 됩니다.

3. 하나님께서 거처를 함께 하실 자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

말씀(명령)을 지키는 자

본문 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말을 지킨다’는 것은 명령을 지킨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명령을 지킨다는 말입니다.

본문 21절에는 ‘계명을 지킨다’고 했는데, 여기는 ‘말’ 즉 ‘명령을 지켜라’라고 했습니다. 명령을 지키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명령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면 씻는 것이 명령 순종입니다. 젊은 부자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자에게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하셨는데 그게 명령입니다.

그 부자청년은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명령을 지켜야합니다. 가서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했습니다. 그 명령만 지켰다면 이 사람이 살 뻔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와서 주를 따라오겠다고 할 때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머리 둘 곳 없을 줄을 알고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명령 지키는 것입니다. 그저 잘되려고 따라오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니까 돌아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 장사하고 온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주신 명령은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것이 명령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명령을 지켰습니까? 아닙니다. 따르기 전에 가족을 작별하고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하셨는데 그 또한 명령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족 작별한다’는 말은 예수님 따르는 것 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가족이 앞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당나귀를 주가 쓰시겠다’고 하실 때에, 당나귀 주인에게 대한 명령은 당나귀 바치라는 것인데, 그때에 그 주인이 명령을 지켰습니다. 또한, ‘유월절에 잔치를 네 집에서 해야겠다’라고 했을 때에, 다락방 주인이 다락방을 내줬는데 그것도 명령을 지킨 것입니다. 다락방 안 내줬으면 명령을 못 지킨 것입니다. 다른 계명들을 다 지켰어도 예수님 명령 순종치 못하면 안 됩니다.

평양에 양재영 장로가 젖소를 먹였었는데, 그 집 2층이 사료창고였습니다. 거기를 교회로 내놨습니다. 거기에서 처음에 예배를 여러 달 동안 드렸었습니다. 그와 같이 주께서 내놓으라하시면 내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연보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네게 있는 힘을 다해서 내놔라, 바쳐라’할 때에 “예”하고 자기 힘을 다 기울여서 바치면 명령을 지킨 것이고, 인색한 마음을 가지고 안 바친 사람은 주의 명령을 안 지킨 것입니다.

명령 지키는 자에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동거하심

본문 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는데,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는 것은 같이 산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같이 동거, 동락, 동행하신다는 덧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와서 같이 계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일 행복스러운 사람입니다. 우리 심령 속에 성부성자성령이 와서 같이 계시면 그 이상 더 좋은 게 없습니다. 사랑하고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같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되고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지키지 못할 것 같은 말씀까지도 지켜야지 쉬운 것만 지켜서는 안 됩니다. 어려운 것은 안 지키고 쉬운 것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아무리 어려워도,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환난과 핍박이 기다려도 올라가는 겁니다. 명령을 지키는 것, 어려운 것을 지켜야 되고, 하지 못할 것을 지켜야 되고, 생명 내놓고 지켜야 되고, 죽어도 지켜야 됩니다. 그게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을 한번 지키면 예수님께서 그만큼 사랑하십니다. 아버지께서도 그만큼 사랑하십니다.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거처를 같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것을 지켜야 영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풍성하게 되고, 예수님께서 나타내 보여주시고, 점점 예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오셔서 그 사람과 거처를 같이하십니다.

명령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고, 말씀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쉬운 것만 지키려고 하지 말고 어려운 것도 지켜야합니다. 할 만한 것만 지키려고 하지 말고 죽을 만한 것도 지켜야 합니다. 유익이 되는 것만 지키려고 하지 말고 손해나는 것도 지켜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바치는 것 까지도 지켰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에 들어가는데 까지 명령을 지켰습니다. 이런 것이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명령을 지키다가 풀무에 들어가게 되어도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독자라도 바치라고 하면 바치는 것이 명령 지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바쳤으니까 명령을 지킨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더 왔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오셔서 거처를 같이 하셨습니다.

그 젊은 부자에게 주께서 ‘네게 있는 것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실 때에, 그 명령만 지켰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예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예수님께서 점점 더 나타내 보여 주실 것이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와서 거처를 같이 하시는 사람이 될 뻔 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계명을 지킬 것이고, 내가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자는 말씀을 지킬 것이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재물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세상보다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말씀 지키는 것은 안하고, 거처를 함께 해달라고 아무리 기도 해봐도 거처를 함께 안 해주십니다. 자기가 문을 닫아놓고 들어오라고 하면 어떻게 들어오겠습니까? 예수님을 나타내 보여 달라고 아무리 기도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들어오시지 못하게 해놓았는데 어떻게 나타내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많은 죄 사함 받은 것을 늘 생각하고 회개하고, 현재의 많은 죄도 회개해야 합니다.

바울은 “나는 죄인가운데 죄수라”고 했습니다. 늘 자기가 죄인가운데 괴수인줄을 알고 늘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이 바울에게 더 많이 왔습니다. 그는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더 많이 오고, 예수님을 점점 더 발견하게 됐고, 바울은 예수님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오셔서 바울과 같이 계셨습니다. 감옥에도 같이 계셨는데,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같이 계셔서 쇠사슬이 다 벗겨지고 옥문이 저절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감옥의 첫째 대문간이 거저 열리고 둘째 대문간도 거저 열려서 그가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같이 계셨습니다.

4.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말씀을 지키지 않음

본문 24절에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습니다. 쉬운 것은 지키겠지만, 그러나 어려운 대목에 가서는 안 지킵니다.

쉬운 상황에는 문제가 아니고 어려운 대목이 문제입니다. 어려운 대목을 통과해야만 참으로 합격이 됩니다. 대목장에 부러지면 그건 아무리 했어도 안 됩니다. 평소에 계명을 지켰어도 대목장에 그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네게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것은 젊은 부자에게 대한 대목장입니다. 그 대목장에서 안 지키고는 다른 계명을 다 지키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평소에 계명 다 지키면 좋긴 좋지만, 대목장까지 지켜야 합격입니다. 대목장에 부러지지 마십시오. 대목장에 부러지면 과거에 계명 지킨 것은 다 헛수고와 같습니다.
학생들이 마지막 시험 볼 때 잘못 치르면 몇 년 동안 공부 한 것이 소용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공부하고 그다음에 대학 가려면 수학능력고사 봅니다. 그런데 수학능력고사인 그 대목장에 그만 부러졌다면, 좋은 학교 갈수가 없습니다. 평소에는 공부 잘한다고 떠들썩했어도 수학능력고사에 그만 부러졌다면 소용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잘해야 됩니다.

미국에는 SAT라는 시험이 있다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3학년이 보는 수학능력고사와 비슷합니다. SAT시험에 점수를 많이 맞으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고, 점수를 많이 못 맞으면 좋은 학교에 못갑니다. 그 시험의 점수를 잘 못 받았으면 오라고 하는 학교가 없게 됩니다. 초등학교 6년, 중, 고등학교 6년, 총 12년을 공부했지만 SAT시험을 잘 못 보면 인정을 안 해줍니다. SAT시험에 점수를 잘 맞으면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12년 동안 부지런히 했는데, 12년 동안 해마다 시험도 잘 쳤는데, 그런데 SAT시험을 잘 못 보면 전에 것들이 다 무효가 됩니다. 그와 같이 대목장인 시험에 잘 통과해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서 말씀 잘 따라왔지만, 대목장에서 잘 통과해야 하나님께서 더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나타내 보여주시고 와서 거처를 같이 해 주십니다. 대목장에서 부러지면 다 헛수고입니다. 아브라함의 대목장은 독자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이 대목장에 합격이 되면 하나님께서 더 사랑하시는 것이고 예수님도 사랑하시고, 예수님께서 더 많이 나타내 보여주시고, 그다음에는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거처를 같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대목장에서 무너지 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본문 25-26절에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했는데, 성령이 오시면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본문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릅니다. 영적 평안이고 심령의 평안이고 영혼의 평안입니다. 세상이 알지도 못하는 참된 평안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본문 28-31절에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못 박혀 죽게 되시지만, 아버지께서 부활시키고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기 때문에 가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말입니다.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라는 것은, 이후에 세상 임금인 마귀가 와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남은 때가 얼마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마귀가 이 세상에 오겠는데, 그 세상 임금이 오면 말할 기회가 다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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