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라
요한복음 18:1-27
요한복음 18:1-27
18:1 예수께서 이것들을 말씀하신 후에 자기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거기에 동산이 있었는데,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곳으로 들어가셨다.
18:2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에서 자주 모이셨으므로 예수님을 넘겨줄 유다도 그 장소를 알고 있었다.
18:3 유다가 군대와, 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하인들을 데리고 횃불과 등과 무기를 들고 그리로 왔다.
18:4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닥칠 모든 것을 아시고 나아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18:5 그들이 대답하기를 "나사렛 사람 예수라." 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그이다." 하시니, 그분을 넘겨줄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18: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곧 그이다." 라고 말씀하실 때에 그들은 뒤로 물러나 땅에 엎드러졌다.
18:7 그러자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물으시기를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그들이 말하기를 "나사렛 사람 예수라." 하므로,
18: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곧 그이라고 너희에게 말하였으니, 너희가 나를 찾거든 이들은 가게 하여라."
18: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 가운데서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18:10 시몬 베드로가 지니고 있던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그의 오른쪽 귀를 베어 버렸는데, 그 종의 이름은 말고였다.
18:11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검을 집에 꽂아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고 하셨다.
18:12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들의 하인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묶고
18: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으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었다.
18: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 라고 권유한 자였다.
18: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갔는데 그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였으므로 예수님과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 안으로 들어가고,
18: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었다.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인 제자가 나와서, 문을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18:17 그러자 문을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너도 이 사람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아니다." 라고 하였다.
18:18 날씨가 추워서 종들과 하인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불을 쬐고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18:19 대제사장이 예수께 그분의 제자들과 그분의 가르침에 대하여 물으니,
18:2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세상에 명백히 말하였다. 나는 언제나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고 아무것도 은밀하게 말하지 않았는데,
18:21 너는 어찌 내게 묻느냐?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말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은 내가 한 말을 알고 있다."
18:22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곁에 서 있던 하인들 중 하나가 예수님을 때리며 말하기를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렇게 대답하느냐?" 하니,
18:23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잘못 말하였다면 그 잘못에 대하여 증언하여라. 그러나 옳다면 어찌하여 네가 나를 때리느냐?"
18:24 그러자 안나스는 예수님을 묶은 채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냈다.
18: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너도 그의 제자들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부인하여 말하였다. "나는 아니다."
18:26 대제사장의 종들 중 하나로서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자의 친척인 자가 말하기를 "네가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동산에서 보지 않았느냐?" 하니,
18:27 베드로가 다시 부인할 때 곧 닭이 울었다.
18:2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에서 자주 모이셨으므로 예수님을 넘겨줄 유다도 그 장소를 알고 있었다.
18:3 유다가 군대와, 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하인들을 데리고 횃불과 등과 무기를 들고 그리로 왔다.
18:4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닥칠 모든 것을 아시고 나아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18:5 그들이 대답하기를 "나사렛 사람 예수라." 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그이다." 하시니, 그분을 넘겨줄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18: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곧 그이다." 라고 말씀하실 때에 그들은 뒤로 물러나 땅에 엎드러졌다.
18:7 그러자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물으시기를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그들이 말하기를 "나사렛 사람 예수라." 하므로,
18: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곧 그이라고 너희에게 말하였으니, 너희가 나를 찾거든 이들은 가게 하여라."
18: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 가운데서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18:10 시몬 베드로가 지니고 있던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그의 오른쪽 귀를 베어 버렸는데, 그 종의 이름은 말고였다.
18:11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검을 집에 꽂아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고 하셨다.
18:12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들의 하인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묶고
18: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으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었다.
18: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 라고 권유한 자였다.
18: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갔는데 그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였으므로 예수님과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 안으로 들어가고,
18: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었다.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인 제자가 나와서, 문을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18:17 그러자 문을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너도 이 사람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아니다." 라고 하였다.
18:18 날씨가 추워서 종들과 하인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불을 쬐고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18:19 대제사장이 예수께 그분의 제자들과 그분의 가르침에 대하여 물으니,
18:2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세상에 명백히 말하였다. 나는 언제나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고 아무것도 은밀하게 말하지 않았는데,
18:21 너는 어찌 내게 묻느냐?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말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은 내가 한 말을 알고 있다."
18:22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곁에 서 있던 하인들 중 하나가 예수님을 때리며 말하기를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렇게 대답하느냐?" 하니,
18:23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잘못 말하였다면 그 잘못에 대하여 증언하여라. 그러나 옳다면 어찌하여 네가 나를 때리느냐?"
18:24 그러자 안나스는 예수님을 묶은 채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냈다.
18: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너도 그의 제자들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부인하여 말하였다. "나는 아니다."
18:26 대제사장의 종들 중 하나로서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자의 친척인 자가 말하기를 "네가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동산에서 보지 않았느냐?" 하니,
18:27 베드로가 다시 부인할 때 곧 닭이 울었다.
1.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의 자리까지 따라가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찬송가에도 있는 바와 같이 겟세마네 동산까지 우리가 따라가야 되겠고, 심판하는 자리까지 따라가야겠습니다. 평안할 때만 예수님을 따라가지 말고 환난이 들어올 때에도 따라가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의 자리까지 따라가고, 심판을 받는 자리까지 따라가야만 예수님의 참 제자입니다.
본문 1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라고 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예수님이 기도하시려고 들어가셨습니다. 거기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님을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십자가를 승리적으로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는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35에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새벽미명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39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습관을 좇아서 감람산에 가서 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는 습관을 세우시고 매일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을 찾아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기도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벽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을 택하실 때에 밤새도록 기도하시고 택하셨고, 또 제자들을 바다로 건네 보내실 때에도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셨고, 변화산에 가셔서 기도하셨고, 최후에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동산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산에 가서 기도하는 습관을 세워놓고 늘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의 발자취를 따라가야겠습니다. 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언제나 쉬지 않고 기도하는 정신을 가져야겠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늘 기도하는 정신을 가져야겠습니다.
마음을 언제나 하나님께 기울여 하나님과 교통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두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즐거워하는 것도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생각하고, 말씀 속에 들어가려고 힘을 써야겠습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신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늘 기도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대로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누가복음 22:43-44에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고 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힘쓰고 애써 기도 하실 때에 사자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힘을 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더욱 힘쓰고 애써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었다고 했는데 우리는 예수님이 힘쓰고 애써 기도하시고 또 땀이 피방울 같이 되도록 기도하
시는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성역을 시작하실 때에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 기도로서 시작을 하셨고, 또 자주 예수님은 산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변화산에 가서 기도하시다가 변화된 일도 있었고, 또 매일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나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십자가를 승리적으로 통과하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힘쓰고 애써서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마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서 힘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십자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성도는 늘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더라도 기도해야만 승리할 수가 있었는데 하물며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고는 승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세 제자를 데리고 가서, 땀과 피와 정력을 다 쏟아서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를 하실 때에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어 힘을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이길 만한 능력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큰 능력을 받아 가지셨습니다. 즉 십자가를 이길 만한 능력을 힘입어서 겟세마네 동산을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가룟유다가 그 곳을 알기 때문에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진 무리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본문 3절에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고 하였습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군대와 바리새인들이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예수님을 잡으러 겟세마네 동산으로 왔습니다.
본문 4-6절에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하실 때에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내로라’ 하니 그 사람들이 다 땅에 엎드러졌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담대하게 나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환도와 몽치 가진 자들이 왔지만 예수님은 담대하게 두려워하지 않고 너희가 누구를 찾으러 왔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으러 왔다고 할 때에 ‘내로라’하니까 그 한마디가 얼마나 권위가 있고, 얼마나 담대한지 그만 하나님의 권위에 그 사람들이 찔리워서 다 뒤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신 기도의 힘으로 담대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의 역사로 담대하게 마주하여 나갈 수가 있었고 “내로라” 하는 말을 담대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위에 찔리워서, 양심에 찔리워서, 땅에 다 엎드러졌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십자가를 당면하고도 담대하게, 권위있게 걸어 가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도 항상 기도에 힘을 쓰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을 힘입어서, 아무리 어려운 십자가가 와도 담대히 십자가를 통과할 수 있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만 되겠습니다.
2. 원수까지 사랑하며 예수님을 따라가라
본문 8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는 길은 담대하게 가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한명이라도 잃어버리지 않으시려고 “제자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사랑하시고, 제자들을 생각해 주시는 예수님의 넓으신 사랑과 아량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10절에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거기 있다가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의 귀를 베어버렸습니다. 누가복음 22:51에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귀를 만져 낫게 하셨고,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하느니라”고 하시며 말고의 귀를 손으로 어루 만져서 낫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끝까지 원수를 사랑하시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3. 아버지께서 주신 고난의 잔을 달게 받으면서 예수님을 따라 가라
본문 11절에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검을 빼서 잡으러 온 사람을 죽이려고 내리칠 때에 말고라는 종의 귀가 떨어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것까지 참으라, 검을 집에 꽂아라,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을 달게 받아 마시면서 나아가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가룟유다가 팔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는 것인데, 또 대제사장과 바리새교인들이 다 잡아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것이고, 빌라도가 재판을 비뚤게 하였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 사람들 때문에 죽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주시는 잔이라고 하셨습니까?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하시며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인 줄 알고 십자가를 달게 받으시면서 나가셨습니다.
가룟유다가 팔았다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또 빌라도가 재판을 비뚤게 했다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시기로 잡아 주었다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또 떡 5개로 오천명을 먹일 때에 예수님을 찬송했던 백성들이 지금에 와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지만 그 백성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으로 알고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하며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달게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환난, 모든 시험, 모든 고난을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인 줄 알아야 됩니다. 잔이라고 하는 것은 고난을 가리킵니다. 즉 십자가의 고난을 가리킵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을 “내가 달게 받아 마시면서 나가야 되겠다”는 신앙으로 예수님은 나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신앙을 가질 때에 원망하지 않습니다. 불평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인데 왜 원망하고 불평하겠습니까? 이 잔이 내게 꼭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잔인줄 알고 달게 받아 마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털끝만큼도 죄가 없으십니다. 그런데 우리 죄를 예수님이 대신 다 담당하시고, 우리 대신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고난의 십자가가 올 때에 사람이 주는 줄 알면 안 됩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개가 나빠서 내가 이런 고생을 당한다, 아무개가 손해를 주어서 내가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제1계단으로 보면 사람들이 다 잘못하고 내게 손해를 주는 사람이 많지만 2계단으로 들어가 보면 다 아버지가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으면 가룟유다가 팔 수 없고, 제사장이 잡을 수 없습니다. 또 빌라도가 재판을 비뚤게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허락했기 때문에 잡아주기도 하고 재판도 비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이 올 때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인 줄 알아야 됩니다. 또 내가 잘못해서 오는 고난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고난이 왔는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어디서 떨어졌는가? 내가 어디서 이런 고난을 받을 만한 원인을 만들었는가?”를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찾아서 회개할 때에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해서, 나를 만들려고, 내게 은혜로 이 고난을 주신 줄 알고 감사히 받으면서 나가야 합니다. 여러 가지 고난은 나를 만들려고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멀리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까이 오게 하시려고, 또 우상을 따라갔기 때문에 우상을 버리게 하시려고 그런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 잘못했기 때문에 못된 버릇을 고치게 하시려고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즉시로 고쳐야 합니다. 고치지 않으면 아주 망하고 맙니다. “모든 고난의 잔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잔이다”할 때에는 한사람이라도 원망할 것이 없습니다. 불평할 것도 없습니다.
제1차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제2차원에서 보는 것입니다. 즉 고상한 높은 계단에서부터 우리가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1계단에서만 보지 말고 2계단, 3계단에 올라가서 아버지 앞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달게 받아 마시면서 나가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겠습니다.
4. 제자의 자격으로 심판 받는 자리까지 예수님을 따라 가라
예수님께서 군대와 천부장과 하속들에게 잡히어 끌려가실 때에 다른 제자들은 다 흩어졌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만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두 제자만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에 대제사장의 마당까지 따라갔습니다. 요한은 대제사장과 아는 친척간이므로 문지기가 제사장의 마당에까지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주어서 대제사장의 마당까지 들어갔고, 베드로는 마당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문지기 보고 이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인데 이 사람도 들여 보내
달라고 하여 베드로가 들어갔습니다. 안마당에서 예수님이 심판받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기는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갔는데 예수님의 제자의 자격으로 따라간 것이 아니고, 친척 집에 가는 자격으로 따라간 것입니다. 또 베드로는 요한이 말해주어서 따라간 것입니다. 제자의 자격으로는 한사람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또 명백하게 “나는 예수님의 제자다” 이렇게 말하지 못하고, 베드로는 구경꾼인체 하고 불 쬐면서 예수님이 심판 받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갈 때에 제자의 정신으로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또 명백하게 “나는 예수님의 제자이다, 좀 들어가자” 하여야겠습니다. 제자의 자격으로서 두 제자가 가지 못했고, 친척에게 가는 것으로, 구경꾼으로 이렇게 대제사장의 마당에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나 어디서나 나는 예수님의 제자이다”하며 제자로서의 자격을 언제나 가지고 다녀야겠습니다. 교인 아닌 체 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배당에 갈 때에도 어떤 사람은 성경책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하려고 작은 것을 사가지고 호주머니에 넣고 가다가 다른 사람이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저기” 하고 예배당 간다는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또 “담배 먹으라”고 하면 “나는 예수 믿기 때문에 담배 안 먹는다” 하지 아니하고 “먹기 싫어서 안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꾸 먹으라고 합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안 먹는다”고 하면 전도도 되고 얼마나 좋습니까?
지난주에 여수에 있는 지교회에서 장로 안수식이 있기 때문에 갔었는데, 기차간에서 어떤 사람이 나보고 담배 한 대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 믿기 때문에 담배 안 먹습니다”고 하였더니 그 사람이 목사님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라고 하였더니 그 사람이 자기 사위도 목사라는 것입니다. 사위가 목사이면 예수를 믿으라고 하니까 자기는 예수를 믿는데 술은 먹으면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술을 끊고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과 내내 이야기 하면서 갔는데 하여간 언제나 예수님의 제자의 자격을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나는 예수를 믿는다” 또 어디 가느냐? 하면 “나는 예배당에 갑니다, 당신도 갑시다”하며 내다대고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술 마시라” 하면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하고 내다대어야 합니다. 거져 “못 마신다, 속이 안좋다, 먹고 싶지 않다” 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자꾸 먹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첫번에 “나는 예수 믿는다”라고 내다대면 그 사람들에게 전도도 되고 얼마 좋은가? 말입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못합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내다대며 나가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의 자녀가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제자의 자격으로서 언제나 명백하게 예수님을 따라가야겠습니다. 그것을 여기서 배워야 합니다. 베드로는 구경꾼으로 가장하고 가고, 요한은 친척집에 가는 것처럼 간 것이므로 제자의 자격이 상실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합당치 않습니다. 얼마 후에 사람들이 베드로를 보고 “이 사람도 예수를 따라다녔다”고 할 때 베드로가 “나는 예수를 모른다,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와서 “이 사람도 예수의 제자이다”라고 할 때 또 “나는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알지도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6-27절에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베어버렸는데 말고는 대제사장의 일가입니다. 그러므로 말고의 귀를 베어버린 베드로를 자세히 보아 두었다가 당신도 예수님의 제자이지 않느냐? 내가 동산에서 당신을 보지 않았느냐? 할 때에 베드로가 “나는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닭이 곧 울었다고 하였습니다. 닭이 두 번 울 때에 베드로가 거기서 통곡을 하면서 회개했습니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했는데 말고의 귀를 베어 버렸기 때문에 그 사람이 원한을 갖고 와서 예수의 제자라고 밝혀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죽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죽여 놓으면 그 사람이 원수가 됩니다. 어떻게 하든지 남을 죽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것은 남을 죽인 사람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레바논 사태에도 피난민을 많이 죽인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죽이지 않았어야 승리할 것인데, 죽였기 때문에 원수가 상당히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남을 죽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기독교는 원수를 사랑하는 교입니다. 남을 죽이는 교가 아닙니다. 저 사람이 나를 죽이려고 해도 나는 저 사람을 죽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죽이지 않고 해결해야 합니다. 죽이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제1계단은 죽어야 해결이 될 것 같지만 제 2계단으로 보면 안 죽이고도 해결할 방법이 있고, 제 3차, 4차 방법이 있고 5, 6, 7차가 있기 때문에, 1차 방법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2차 방법이 또 없을까? 1차 방법은 꼭 죽여야 하겠는데, 2차 방법으로 하면 안 죽일 수 있고 또 3차 방법으로 하면 안 죽일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을 때에 요셉이 자기와 약혼한 여자가 자기와 관계없이 잉태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처녀가 아이를 가지면 돌로 때려 죽이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자가 아이를 가졌다”고 요셉이 폭로만 하면 돌로 때려 죽입니다. 그 때에 요셉이 어떻게 했습니까? 가만히 끊고자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남을 죽일 필요가 무엇인가? 내가 이것을 폭로하면 “그 여자가 돌에 맞아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남을 죽일 필요가 없다, 내가 데려오지 않으면 된다”는 방법으로 해결 하려고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의로운 요셉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남에게 손해를 주지 아니하면서 자기도 손해 보지 않고 그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선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자꾸 생각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또 기도하면서 성경말씀을 상고하였습니다. 이사야 7:14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였는데 그러면 마리아가 잉태한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서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 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다,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데려온 것입니다. 남을 죽이지 않겠다는 선한 마음, 그 마음 때문에 마리아가 죽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폭로 했더라면 마리아가 동네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그때 마리아가 죽었더라면 예수님도 복중에 있었으므로 죽을 뻔 하였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무저항주의,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지 않는 정신, 남을 죽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베드로가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이려고 말고의 귀를 내리쳤기 때문에 친척이 복수심을 가지고 있다가 심판하는 마당에 가서 네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노골적으로 들고 왔습니다. 그때에 피할 길이 없습니다. 닭이 울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한 말씀이 생각이 나서 심히 통곡을 하면서 거기서 회개했
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갈 때에 생명을 내놓고 심판하는 자리까지, 또 예수님의 제자로 명백하게 나타나서 “죽으면 죽으리라, 죽어도 좋다”라는 결사 각오의 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갈 때에 기도의 길로 따라가야 되겠고, 원수를 사랑하는 길로 따라가야 되겠고,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을 달게 받아 마시는 길로 따라가야겠고 또 명백하게 제자의 자격으로 예수님을 날 마다 따라가기를 힘을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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