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4일 토요일

사도행전 2:29-41 베드로 전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베드로 전도
사도행전 2:29-41

2:29 형제들아, 나는 너희에게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으니, 그가 죽어서 묻혔으며 그의 무덤이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 있다. 
2:30 그가 선지자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의 보좌에 앉히시겠다고 그에게 맹세하신 것을 알고, 
2:31 미리 내다보며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가 음부에 버림을 당하지도 않았고, 그의 육체가 썩지도 않았다.' 라고 하였다. 
2:32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셨으니, 이에 대해 우리 모두가 증인들이다. 
2:33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높임을 받으시고,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아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다. 
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않았으나, 그 자신이 말하기를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2:35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 받침대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였다. 
2:36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이 확실히 알 것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이다." 
2:37 그들이 듣고 마음에 찔려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말하기를 "형제들아,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하니, 
2:38 베드로가그들에게말하였다. "회개하라. 그리고 너희가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각각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들과 먼데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들에게 하신 것이다." 
2:40 베드로가 여러 가지 다른 말들로 확증하고 그들을 권면하여 말하기를 "너희가 이 사악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아라." 하니, 
2:41 그의 말을 받아들인 자들이 세례를 받았으며, 그 날에 약 삼천 명이 늘어났다. 

1.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다윗은 선지자인데,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을 것을 알았다는 말씀은, 그리스도를 알았다는 말입니다. 다윗도 장차 그리스도께서 나셔서 그 왕권을 영원히 계승하실 것을 내다본 사람입니다. 

본문 31절에,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미리 본다고 했습니다. 여기의 ‘음부’라는 말은 구약에서는 스올이라고 했는데, 무덤이라고도 하고 죽음 이후에 가는 고통의 자리를 말하기도 하고 요나서에서는 고기뱃속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무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육체를 무덤 속에서 썩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으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으로 전도한 베드로

본문 32절에는 베드로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라며 담대히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본문 33절에,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고 했는데, 성령은 아버지께로서 나오고 아들에게서도 나오십니다. 영원히 나오십니다.

본문 34-35절에,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시편 110편 1절에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성경을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전도를 하면서 성경을 많이 들어 얘길 합니다. 성경을 펼쳐 읽으면서 했는지 따로 암송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와 같이 복음 전도자는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도할 때에는 성경을 가지고 전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말씀 한마디 해주고 읽어주고 설명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전도지 가지고 다니면서 그 전도지를 읽어주고 거기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거저 말해주는 것 보단, 성경 말씀으로 권면하고 전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면 제대로 전할 수가 없습니다. 강단에서도 성경을 많이 읽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연설을 하지 말고 강도를 해야합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풀어서 해석해주어야 합니다.

원수를 이겨 발등상으로 삼으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라고 본문 34절에 나오는데, 이것은 시편 기록할 당시에 다윗이 살아있었다는 뜻이고, 나중에 죽어서 천국에 갔습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셨지만 그리스도의 영은 ‘다윗의 주’입니다.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에서 주님은 원수를 발등상이 되게 하신다고 했는데, 발등상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고 공력이 적게 들어가 값이 싼 것보다는 공력이 많이 들어가 비싼 발등상이 더 낫습니다. 원수가 발등상이라고 했는데, 원수를 믿음으로 이기면 그것이 자신의 발등상이 되어서, 예수님을 좀 더 높여드리고 좀 더 영광스럽게 해드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원수를 다 정복하시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25-28절에 보면,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물을 다 정복하고 발등상으로 삼으니까 예수님은 지극히 높은 자리에 오르시고, 존귀와 영광이 무한합니다. 모든 원수를 다 정복하셨기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모든 원수를 발등상이 되게 하는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먼저 원수를 이겨나가시는 중에 계시고, 성도를 통하여서 원수를 다 이기도록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성령으로 인해서 성도가 모든 원수를 믿음으로 사랑으로 말씀으로 능력으로 점점 이겨나가고 있습니다. 

이긴 것이 자신의 발등상이 됩니다. 완력으로, 혈육으로, 술수와 방법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사랑으로 원수를 이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마귀의 세력이 강하다고 할지라도, 마귀가 사람이나 세력을 이용한다고 해도, 어떠한 기관을 이용해서 성도를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해도, 그것을 이겨야 합니다. 그것을 이기고 말씀대로 걸어가면 이긴 것이 발등상이 됩니다. 

그런데 원수를 이기지 못하고, 양보하고 나가면 오히려 발등상 밑에 들어가게 됩니다. 발등상 아래 들어간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여기도 발등상 아래로 들어간 사람이 있습니다. 발등상 아래 들어가서 아예 못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발등상 위에 올라서야 영광이 있는데 그 아래 있으면 영광이 없습니다.

말씀대로 걸어 나가려고 하는데 막는 어떤 세력이 있다면 발등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제자에게라도 믿음으로 나가려는 것을 막는다면 ‘사단아 물러가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십자가 지시지 말라고 했을 때에 예수님은 ‘사단아 물러가라’ 하신 것입니다. 모든 시험과 마귀의 술수와 음모가 우리를 말씀대로 걸어 나가지 못하게 하려하는데, 그것에 굴복하면 우리가 지는 것입니다.
이기고 나가면 쑥 올라가는 것입니다. 

원수를 발등상이 되게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해 주심

요셉이, 형들이 죽이려 하고, 노예로 팔지 않았다면 애굽의 총리가 못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종살이 할 때에도 믿음으로 이기고 쑥 올라갔고, 감옥에 있을 때에도 믿음으로 이기고 쑥 올라갔습니다. 나중에 형들이 요셉에게 왔을 때에도 사랑으로 형들을 이기고 쑥 올라갔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지만 요셉은 형들을 사랑함으로 이기고 쑥 올라갔습니다. 믿음으로 이기고 올라가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못했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 어려움을 이기고 나면 그것 때문에 자신이 올라가고 존귀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볼 때에 원수가 있는 사람이 낫겠습니까? 없는 사람이 낫겠습니까? 원수가 있는 사람이 낫습니다. 원수가 있어야 발등상을 만들 것인데, 없으면 어떻게 이기고 올라갈 수가 있겠습니까? 원수를 이기기만 하면 저절로 발등상이 되는데, 원수를 구하려 해도 구할 데가 없습니다. 

원수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가기만 하면 원수가 자연히 자신의 발등상이 되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돈 주고 원수를 만들려 해도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핍박을 하는 사람도 맘 편히 핍박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도 죽을 지경으로 힘들게 핍박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자신의 발등상이 되게 만드는 일, 이것이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시는 일인데 잘 이겨 나가야겠습니다. 늘 신앙을 양보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인도를 양보하면 안 됩니다. 계속 나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환란과 핍박이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걸어 나가신 길을 본받아야겠는데, 모든 원수로 발등상이 되게 하는 길을 걸어 나가면서 점점 더 존귀해지고 영광스러워지고 올라가는 일을 해야겠습니다. 무엇에 붙잡혀서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 나아가지 못하면 그것은 발등상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잃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함

“어찌할꼬”하는 회개

본문 36절에,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고 책망을 합니다. ‘너희가 못 박아 죽였다’고 베드로가 성령으로 책망을 하니까, 본문 37절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성경으로 책망할 때에 그들의 마음이 찔림을 받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라며 탄식하는 가운데 들어간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전도할 때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찔렸고, 스데반이 전도할 때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찔렸습니다. 여기 본문의 사람들은 마음이 찔릴 때 겸손하게 순종하고 자복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성령으로 말할 때에 사람들은 마음이 찔렸지만 더 소리 지르며 달려들어 스데반을 돌로 쳤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찔려도 더 악해져서 스데반을 죽인 사람들은 그 죄가 더 크고 하나님의 심판이 더 큽니다. 성령이 감동을 시키실 때에 그 감동을 멸시한 죄가 큽니다. 성령의 감동을 반역한 죄는 더욱 더 참으로 큽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와 앙화가 있는 자리에 빠지게 됩니다.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성령의 감동에 회개하는 자 복이 있다

그러나 실수를 했지만 성령이 감동을 시키실 때에 “어찌할꼬”하며 회개하는 마음과 자신의 죄를 깨닫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늘나라가 그런 사람에게 임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실수 안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는데,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감동을 시키시고 책망하실 때에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회개하고 바로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귀히 여기십니다. 하늘나라가 그 사람에게 임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일곱 번 넘어졌어도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여섯 번 넘어질 때에 자기는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에 한번 넘어질 때에 일어서지 못하고 마는 사람은 망하게 되고 맙니다.
일곱 번 넘어갔어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과, 한 번도 안 넘어지다가 한 번 넘어진 사람이 있는데, 안 넘어가다가 한 번 넘어간 사람이 일어서지 못하고 말게 되면,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이 복이 없습니다. 아무리 계속 넘어졌어도 계속 일어서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실 때에 자기 죄를 깨닫고 돌이키고 “어찌할꼬”하면서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네들이 잡아 죽인 예수님의 제자, 갈릴리에 있던 어부에게 “어찌할꼬”하고 묻는 게 사실 그 사람들에게는 체면이 서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잘못했으면 체면이나 위신은 생각할 게 없고 자복할 일입니다. 체면과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감동이 임할 때에 더욱더 강퍅한 마음을 먹고 나가는 자들은 멸망이 멀지 않은 자들입니다. 멸망받기로 작정한 자들인 것입니다. 

선지자의 권고를 받지 않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다고 역대하 25:16에, “선지자가 오히려 말할 때에 왕이 이르되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선지자가 그치며 가로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줄 아노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실 때에 그 감동을 받지 않고 더 대적하여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참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어찌할꼬’ 하며 회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천국이 그에게 임하게 됩니다. 

3. 베드로의 교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얻으라

본문 38-39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어찌할꼬’하며 회개하니까 베드로가 교훈을 해줍니다. 책망하고 그만두면 그들이 어찌할지 모르겠으니까,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고 교훈합니다. 

초대교회에는 예수님을 믿는 즉시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만큼 성령이 충만했고, 예수님을 직접 모시고 다녔기 때문에 사도의특별한 직분을 주셨습니다. 사도들은 성경을 기록할 특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역사하신 성령은 특별한 역사하심이 있었습니다. 즉시로 세례를 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시대였기에, 그 시대에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 참 믿음이었습니다. 생명 내놓고 나가는 참 믿는 사람이기에 바로 세례를 줄 수가 있었습니다. 요새는 예수님 믿겠다는 사람에게 즉시로 세례를 주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참인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6개월 이상 좀 지내봐야 참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즉시로 세례를 주지 않습니다. 

불세례(성령세례)와 물세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세례를 받아야 죄 사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처럼 되어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불세례와 물세례가 있습니다. ‘세례’라는 뜻은 씻음을 받는다는 뜻인데,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으로 벌써 세례를 받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깨끗함을 얻게 됩니다. 물세례는 예수님을 믿는 징표입니다. 

사도행전 15:9에,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고 했는데, 믿음으로 깨끗해졌다는 것은 성령으로 깨끗해졌다는 뜻입니다. 물세례를 받아야 죄 사함을 얻는 게 아니고, 믿는 것 자체가 죄 사함을 얻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죄 사함을 받는 일입니다.
여기의 세례는 물세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성령세례까지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을 때에 성령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믿는 그 일이 세례를 받는 일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세례를 받아야 죄 사함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어떻게 하든지 세례를 줍니다. 아주 급할 때에는 정식 신부가 아닌 아무든 세례를 주기도 합니다. 

천주교의 세례, 영세를 장로교에서 인정할 수 있는가? 신부가 정식으로 준 것은 인정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격이 없는 그 곁다리들이 준 것은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다시 받아야 됨을 우리가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주교에서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면 거기에 성부, 성자,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정으로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식 교역자가 아닌 사람이 준 것은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아 위로와 기쁨을 얻으라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에서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로와 기쁨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역사와 감동과 위로와 생명의 역사를 우리가 받을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다 이 약속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이 약속을 얻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성령의 감동과 위로와 역사가 이 사람에게 넘치도록 오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이 기쁩니다.”하고 이 한마디만 해주면 죄 사함을 받고, 영혼이 살고, 마음이 기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빠졌어도 마음이 기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볼 때에 자기 같으면 괴로워할 텐데 믿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고 기뻐하는 것을 봅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과 다릅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았기에 성령의 역사가 있고 위로가 있습니다. 그게 다른 것입니다.

거스르는 세대를 떠나 순종의 세계로 가라

본문 40-41절에,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고 했습니다. 패역한 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대입니다. 이런 세대에서 너희들이 스스로 영생의 도리를 거스르고, 진리의 길을 거스르고, 천당 길을 거스르고, 영적 생명의 길을 거스르며 나갔다고 합니다.
거스르는 세대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곳에는 평안도 없고, 생명도 없고, 위로도 없고, 모든 것이 괴로운 것뿐입니다. 세상은 전부가 사망이요, 고통이요, 흑암이요, 억지요, 무거운 짐 진 것뿐이고 고통의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거스르는 세대에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거기서 건져냄을 얻어서 순종하는 세대로 가야 합니다. 순종하는 세대는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성령에게 순종하고, 자기 중생한 영혼에게 순종하고, 생명 길에 순종해 올라갑니다. 영원한 나라에 순종해서 올라갑니다. 순종의 세계로 가면 하늘나라가 부요해지고 영혼이 창성하고, 마음이 평안하며 심령의 소생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 거스르는 세대에 사는 것은 너무나 고통이 많습니다. 거스를 때에 고통을 받습니다. 이런 거스르는 세대에서 살면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영원한 것, 참된 것은 다 잃어버리고 오히려 고통만 있고, 무거운 짐만 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거스르는 세대에서 믿음으로 나오라는 말씀입니다. 주께로 나오라, 진리의 세계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점점 하늘나라가 가까워지고, 시원하고, 평안합니다.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거스르는 세계에서 회개함으로 나와서 말씀에 서고,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고 생명의 길을 말씀대로 걸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삼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남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고 했는데, 물세례를 다 준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침례교 식으로 삼천 명을 모두 담갔다가 꺼내려면 하루 동안에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물을 찍어 끼얹는 적수세례를 베드로가 준 것으로 봅니다.
하루 동안에 삼천 명이 회개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삼천 명이 갑자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 계실 때부터 다 성령께서 역사를 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전도하시던 사람들이고, 선지자 때부터 이미 씨를 뿌려놓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거두어들이는 일에서 삼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이와 같이 능력이 크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는 일에 능치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일시에 구원하시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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