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로마 전도
사도행전 28:1-31
사도행전 28:1-31
28:1 우리가 구출된 후에 그 섬이 몰타라는 것을 알았다.
28:2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친절을 베풀어 비가 오고 날씨가 추우므로 불을 피워서 우리 모두를 영접하였다.
28:3 바울이 나뭇가지들을 한 아름 가져다가 불에 넣었는데, 그 열기 때문에 독사가 나와서 그의 손을 물고 있었다.
28:4 그 동물이 그의 손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원주민들이 서로 말하기를 "이 사람은 분명히 살인자다. 이 사람이 바다에서는 구출되었지만, 정의가 그를 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하였으나,
28:5 바울이 그 동물을 불에 떨쳐 버리니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28:6 그들은 그의 몸이 붓든지 아니면 그가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렸으나,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보고 생각을 바꾸어 그를 신이라고 하였다.
28:7 그곳 가까이에 그 섬의 가장 높은 자인 보블리오라고 하는 자의 토지가 있었고,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삼일동안 친절하게 대접하였다.
28:8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었으므로 바울이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고 기도하여 그를 낫게 하였다.
28:9 이런 일이 일어나자, 섬에 있는 다른 아픈 이들도 와서 고침을 받았다.
28:10 그들이 우리를 극진히 예를 갖추어 대우하였으며, 우리가 떠나갈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배에 실어주었다.
28: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지난 배를 타고 떠났는데, 디오스구로라는 이름이 붙은 알렉산드리아 배였다.
28:12 시라쿠스에 이르러 삼일을 머물고,
28:13 거기에서 닻을 올려 레기온에 닿았다. 하루 후에 남풍이 불어와 우리가 이틀 만에 보디올에 도착하였다.
28:14 거기에서 우리가 형제들을 만나 초청을 받았고, 그들과 함께 칠 일을 머물다가 마침내 로마로갔다.
28:15 거기에서 형제들이 우리에 대한 소식을 듣고 압비오 시장과 세 여관' 이라는 곳까지 우리를 맞으러 나왔다. 바울이 그들을 보고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용기를 얻었다.
28:16 우리가 로마로 들어갔을 때에 바울은 자신을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지내도록 허락받았다.
28:17 삼일 후에 바울이 유대인들 중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이 모이니,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가 우리 백성을 거스르거나 조상들의 관습을 거스르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았으나 예루살렘에서 죄수로 로마 사람들의 손에 넘겨졌다.
28:18 그들이 나를 심문한 후에 내게 사형에 처할 죄목이 하나도 없으므로 풀어 주려고 하였으나,
28:19 유대인들이 반대하므로 내가 부득이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며 내 민족을 고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28:20 이 때문에 내가 여러분을 보고 이야기하려고 여러분을 초청하였으니, 나는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에 이 쇠사슬에 매여있다."
28:21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유대로부터 당신에 대한 글을 받은 일도 없고, 형제들 중에 누가 와서 당신에 대해 무슨 악한 것을 고하거나 말한 적도 없으니,
28:22 당신의 사상이 어떠한 것을 당신에게서 듣기를 원하니, 우리가 이 종파에 대해서 어디에서나 반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28:23 그들이 바울과 날짜를 정하여 그의 숙소로 많이 오니, 바울이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강론하고 증언하며,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가지고 예수님에 관하여 그들을 권하였다.
28:24 어떤 이들은 그 말을 믿었으나 어떤 이들은 믿지 않아,
28:25 그들이 서로 의견이 엇갈려서 헤어질 때에 바울이 이 한 마디 말을 하였다. "성령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잘 말씀하셨는데,
28:26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여라. 너희가 듣고 또 들어도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며, 보고 또 보아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28:27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졌으며, 그들이 귀로 둔하게 듣고, 그들이 자신들의 눈을 감았으니,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아서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28:28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보내어진 것을 알아라. 그들도 들을 것이다."
28:29 (없음)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이것들을 말할 때에 유대인들이 서로 많이 논쟁하면서 떠나갔다'가 있음.
28:30 바울이 이년 내내 자신의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이들을 다 영접하여,
28:31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담대하게 가르쳤다.
28:2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친절을 베풀어 비가 오고 날씨가 추우므로 불을 피워서 우리 모두를 영접하였다.
28:3 바울이 나뭇가지들을 한 아름 가져다가 불에 넣었는데, 그 열기 때문에 독사가 나와서 그의 손을 물고 있었다.
28:4 그 동물이 그의 손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원주민들이 서로 말하기를 "이 사람은 분명히 살인자다. 이 사람이 바다에서는 구출되었지만, 정의가 그를 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하였으나,
28:5 바울이 그 동물을 불에 떨쳐 버리니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28:6 그들은 그의 몸이 붓든지 아니면 그가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렸으나,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보고 생각을 바꾸어 그를 신이라고 하였다.
28:7 그곳 가까이에 그 섬의 가장 높은 자인 보블리오라고 하는 자의 토지가 있었고,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삼일동안 친절하게 대접하였다.
28:8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었으므로 바울이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고 기도하여 그를 낫게 하였다.
28:9 이런 일이 일어나자, 섬에 있는 다른 아픈 이들도 와서 고침을 받았다.
28:10 그들이 우리를 극진히 예를 갖추어 대우하였으며, 우리가 떠나갈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배에 실어주었다.
28: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지난 배를 타고 떠났는데, 디오스구로라는 이름이 붙은 알렉산드리아 배였다.
28:12 시라쿠스에 이르러 삼일을 머물고,
28:13 거기에서 닻을 올려 레기온에 닿았다. 하루 후에 남풍이 불어와 우리가 이틀 만에 보디올에 도착하였다.
28:14 거기에서 우리가 형제들을 만나 초청을 받았고, 그들과 함께 칠 일을 머물다가 마침내 로마로갔다.
28:15 거기에서 형제들이 우리에 대한 소식을 듣고 압비오 시장과 세 여관' 이라는 곳까지 우리를 맞으러 나왔다. 바울이 그들을 보고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용기를 얻었다.
28:16 우리가 로마로 들어갔을 때에 바울은 자신을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지내도록 허락받았다.
28:17 삼일 후에 바울이 유대인들 중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이 모이니,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가 우리 백성을 거스르거나 조상들의 관습을 거스르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았으나 예루살렘에서 죄수로 로마 사람들의 손에 넘겨졌다.
28:18 그들이 나를 심문한 후에 내게 사형에 처할 죄목이 하나도 없으므로 풀어 주려고 하였으나,
28:19 유대인들이 반대하므로 내가 부득이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며 내 민족을 고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28:20 이 때문에 내가 여러분을 보고 이야기하려고 여러분을 초청하였으니, 나는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에 이 쇠사슬에 매여있다."
28:21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유대로부터 당신에 대한 글을 받은 일도 없고, 형제들 중에 누가 와서 당신에 대해 무슨 악한 것을 고하거나 말한 적도 없으니,
28:22 당신의 사상이 어떠한 것을 당신에게서 듣기를 원하니, 우리가 이 종파에 대해서 어디에서나 반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28:23 그들이 바울과 날짜를 정하여 그의 숙소로 많이 오니, 바울이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강론하고 증언하며,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가지고 예수님에 관하여 그들을 권하였다.
28:24 어떤 이들은 그 말을 믿었으나 어떤 이들은 믿지 않아,
28:25 그들이 서로 의견이 엇갈려서 헤어질 때에 바울이 이 한 마디 말을 하였다. "성령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잘 말씀하셨는데,
28:26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여라. 너희가 듣고 또 들어도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며, 보고 또 보아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28:27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졌으며, 그들이 귀로 둔하게 듣고, 그들이 자신들의 눈을 감았으니,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아서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28:28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보내어진 것을 알아라. 그들도 들을 것이다."
28:29 (없음)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이것들을 말할 때에 유대인들이 서로 많이 논쟁하면서 떠나갔다'가 있음.
28:30 바울이 이년 내내 자신의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이들을 다 영접하여,
28:31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담대하게 가르쳤다.
1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1. 멜리데인들의 영접
본문 1-2절에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지중해에서 바람에 쫓겨 먹지 못하고 가다가 열나흘 째 되는 날 음식을 먹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겨우 구원을 받아서 멜리데라는 섬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섬의 지금 이름은 ‘말타’라고 합니다. 바울 일행은 파선(破船)이 되어 널조각 등 나무 조각을 타고 겨우 멜리데 섬에 올라왔는데, 그 섬에 원래부터 살던 토인들이 나무를 가져다 불을 피워놓고 그 불을 쬐라고 하면서 일행을 영접했습니다.
본문 3절에 “바울이 한 뭇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나무를 가져다가 불에 넣는데 독사가 나와 바울의 손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본문 4절에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고 늘어진 것을 보고서 토인들은 “이 사람은 진실로 살인한 자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지만 독사가 물어서 죽이는 것을 보니 공의가 살지 못하게 이 사람을 죽인다”고 말했습니다.
본문 5-6절에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도리어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토인들이 바울이 독사에 물려 죽지 않는 것을 보고 “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독사에 물린 사람은 반드시 거꾸러져 죽는 모양인가 봅니다. 그런데 토인들이 바울을 보니 붓지 않고 거꾸러지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울을 신으로 높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것은 바울이 나뭇단을 불에 갖다 넣은 일입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배에서 구원받은 사람이 276명이라고 했는데, 그 많은 사람이 지금 육지로 나와서 뺑 둘러 불을 쬐고 있는 중입니다. 토인들도 와서 배에서 구원 받은 사람들을 영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돌아가는 가운데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나뭇단을 가져다가 불에 넣는 것을 보면, 그가 여러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무를 가져다가 불에 넣기를 기다릴 수도 있는데, 기다리지 아니하고 자기가 손수 나무를 가져다가 불에 넣은 것입니다. 자기도 쬐고, 여러 사람들을 불에 쬐이게 했다는 말입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어떤 일에 솔선하는 자세로 자기가 하는 것은 아주 귀한 것입니다. 이처럼 귀한 바울의 봉사 생활을 우리가 배워야 하겠습니다. 내가 안 해도 다른 사람이 하겠거니 하는 그런 사상은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안 하면 남이 할 것이다’라는 정신은 버려야 합니다. 바울의 ‘내가 먼저 하는 정신’은 아주 좋은 정신입니다. 우리도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하겠거니 하는 정신을 다버리고, 다른 사람은 보지 말고 내가 먼저 봉사해야 하겠다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접을 받으려고 오지 아니 하시고 대접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또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 몸을 너희에게 양식으로 주려고 왔다”고 하셨고, “내 피를 너희에게 음료로 주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대접을 하고 섬기고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피와 살까지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우리도 남을 대접하고 봉사하는 정신, 공중(公衆)의 일을 내가 먼저 하는 정신을 언제나 가져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일도 다른 사람이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해야 하겠다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안 해도 교회가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정신을 가지면 안 됩니다. ‘내가 해야 할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 명령이다, 내가 해야 한다’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창광 교회는 큰 교회이므로 자기 교회로 십일조와 연보를 보내 달라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큰 교회는 연보 안 해도 되지 않겠느냐, 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신이 나가는 교회를
자기가 받들어야지, 모두가 자기 나가는 교회는 큰 교회이니까 다른 작은 교회에 연보를 하며 받들고 나가면 누가 자기 나가는 교회를 받들겠습니까? 그러므로 언제나 ‘내가 있는 교회나 사회에서 내 일은 내가 한다’는 정신, 즉 ‘자기가 한다’는 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바울이 나뭇단을 가져다 불에 넣지 않았다면 독사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뭇단을 가져다 불에 넣었기 때문에 독사가 나와서 바울을 문 것입니다. 이것은 일을 했기 때문에 손해가 온 것입니다. 즉, 악한 독사가 나와서 바울을 물었습니다. 일 하는 자에게 환난이 옵니다. 일 하는 자에게 시험이 들어오고 고통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일하였기 때문에 많은 원망도 듣고 비방도 들었습니다. 모세가 일을 안 했으면 그런 소리를 하나도 안 들었을 것입니다. 일 하는 것만큼 마귀의 역사는 많고 손해를 주려고 하는 시험도 많이 옵니다. 독사가 나와서 바울의 손을 물었는데, 그 독사한데 물리면 사람이 즉시로 거꾸러져 죽는 모양인가 봅니다. 그 만큼 아주 지독한 독사가 나와서 바울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나
가는 바울은 마가복음 16:17에 나온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16:17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인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 하리니”라는 이 말씀을 바울이 들었을 것이고, 또 그 말씀을 속에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독사가 나와서 물고 늘어질 때에 ‘주여! 믿습니다, 믿는 자는 독한 것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아니하고 뱀을 집어도 해를 받지 아니한다’는 그 말씀을 믿었을 것입니다. 곁에 있던 토인들은 바울이 거꾸러져 죽는다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가이사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너는 가이사 황제 앞에까지 가서 설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이 복음을 전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울이 믿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로마에까지 가게 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또 가이사 앞에 가서 복음을 말하게끔 하기 위해서 거꾸러져 죽지 않게 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독사는 불에 타서 죽고, 바울은 붓지도 않고 거꾸러지지도 않고 아무 손해가 없었습니다. 독사가 바울을 무는 것을 보고 토인들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 사람은 살인한 자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받았지만 독사가 물고 늘어지는 것을 보니 이것은 분명히 큰 죄를 범한 자라”고 몰아쳤습니다. 손해를 당할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살인한 자라고 비방하며, 큰 죄인으로 취급합니다.
이처럼 봉사를 하게 되면 마귀의 시험이 들어오고, 또 손해가 옵니다. 시험을 당하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비방하고 멸시하고 죄인으로 몰아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는 죄인으로 몰리어서 못 박히셨습니다. 사람들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내려 오너라, 아무 것도 못하는 자가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비방과 멸시를 하며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이와 같이 믿는 사람이 바로 믿어 보려고 하면 시험이 들어옵니다. 또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핍박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그 환난과 핍박을 당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못 쓸 것으로 몰아치우고 비방을 합니다. 멸시와 천대를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바울은 거기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은 ‘말씀에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말씀에 뱀을 잡아도 상함이 없다고 그러지 않았는가? 독한 것을 마셔도 믿는 자는 해를 받지 않는다고 그러지 않았는가? 또 주의 말씀에 뭐라고 하였는가? 주의 말씀에 로마에까지 가서 전하라고 그러지 않았는가? 멜리데 섬에서 죽을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왜 로마에까지 가서 전하라고 그랬겠는가? 또 가이사 앞에 선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 섬에서 죽을 것 같으면 왜 가이사 앞에 선다고 말씀하셨겠나?’하며 ‘주의 말씀을 믿습니다’하고 나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시며 그 능력으로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셔서 무사히 로마에까지 가게 될 것을 믿습니다’라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며 믿음을 쓰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함으로 바울에게 아무 손해가 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말씀을 믿고 그 영이 깨어서 역사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늘 깨어서 역사하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아무 손해가 없었습니다.
결국 토인들은 바울이 독사에게 물리고도 아무렇지 않으므로 바울을 신이라고 하며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는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살인한 자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그 다음에는 “신이다”라고 하며 우러러 존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신이다”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신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만, 천사와 같이 잘 받들고 존경하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갈라디아 4:14-15에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사도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가 제일 복이 있는 때입니다. 토인들이 바울을 신이라고 한 것은 잘못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신은 아니지만 바울을 천사와 같이 영접하는 자는 복 받는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뱀을 잡아도 상함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어떤 교파에서는 예배당에 뱀을 잡아다 놓고 이 사람, 저 사람이 만진다고 합니다. 또 오늘 말씀과 같이 교역자가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하였으므로, 어떤 신비주의파 교회에서는 논에 농약을 치다가 농약을 먹어도 된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집에 가서 상당한 의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면 농약을 먹어야 되는가? 교인들이 농약을 못 먹으면 믿음이 없는 자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독을 먹어도 해를 안 받는다고 하였는데 내가 믿음이 없나, 하며 우리 신학생에게 거기에 대해서 물어 보더랍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나가다가 어떠한 독한 일을 당해도 손해를 안 본다는 말이다”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믿음으로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손해를 보지 않게 막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어디 괜찮나 한번 먹어보자’하고 농약을 먹어 보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수가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그 발을 붙들어 해를 당하지 않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내려 뛰어라, 하나님이 너를 붙들어 주시는가 보라’는 것은 마귀의 시험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갈 때에 큰 손해나는 일이 많이 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다 지켜 막아 주십니다. 손해를 받지 아니하도록, 독한 것이 와서 그 독을 뿌리지 못하도록 영영히 막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도 독사와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악한 일도 많이 옵니다. 나를 죽일 만한 사건도 많이 생기지만 내가 말씀을 지키면서 믿음으로 나갈 때에는 하나님께서 영영히 막아 주십니다. 즉,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다 막아 주셔서 손해를 받지 않도록 해 주십니다.
바울도 믿음으로 나갈 때에 악한 독사가 왔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이 손해 받지 않도록 다 막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아주실 때에는 그것들이 손해를 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험해서 독사와 같은 사람도 많고 그 독을 가져다가 먹여 망하게 하려는 역사도 많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한 발자국씩 걸어 나가면 그런 모든 것이 오더라도 손해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막아 주시고 평탄한 길을 열어 주십니다. 독이 왔지만 그 독이 내게 손해를 못 줍니다. 독사가 와서 물었지만 그 독사의 독으로 내게 손해를 못 줍니다. 날 죽이지 못하고 거꾸러뜨리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나가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나가면 그 악한 마귀의 독들을 하나님께서 다 막아 주셔서 우리고 하여금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 나갈 때에 마귀는 우리를 잡아 삼키려고 여러 가지 시험을 많이 주지만 믿음으로 모든 것을다 이기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다 정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내게 욕하고 비방하여도 속상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속상한 일도 많고 죽을 일도 많이 있습니다. 내게 손해 주는 사람도 많고 나를 잡아먹으려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독사와 같은 것들이 가득합니다. 그렇지만 믿음으로 나갈 때에는 마치 그것들이 없는 것처럼, 내게 와서 손해를 주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다 막아 주십니다. 그리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신앙의 길을 걸어 나가게끔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7-10절에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섬의 제일 높은 사람 ‘ 블리오’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부친이 열병과 이질로 누워서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가서 기도하고 안수해 주므로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섬에 있는 많은 환자들이 바울에게 나아왔고 바울이 기도해 주므로 많은 환자들의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므로 섬 사람들이 바울을 후히 대접하였습니다. 그때에 바울은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바울을 들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해 나가셨습니다.
2. 로마에 있는 믿는 형제들이 바울을 영접함
본문 11-15절에 “석 달 후에 그 섬에서 과동한 알렉산드리아 배를 우리가 타고 떠나니 그 배 기호는 디오스구로라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난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수
라구사’라는 곳은 시실리 섬의 수도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레기온’에 갔고, 그 다음에 ‘보디올’에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레기온’이라는 곳은 이탈리아 반도 남쪽 끝에 있는 도시이고, ‘보디올’은 이탈리아 반도 남쪽의 항구로 우리나라 부산과 같은 곳입니다. 배를 이탈리아 남쪽에
댔습니다. 즉, 부산쯤에 댔습니다. 이에 거기에 있는 성도들이 나와서 바울을 영접해 주었습니다. 친절하게 바울을 맞아서 칠 일 동안을 잘 대접하였습니다. 또 바울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거기서 떠나 ‘압비오’ 섬으로 왔는데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는 로마에서 40마일이나 된다고 합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바울이 몇 백 리 떨어진 곳에서 온다는 말을 듣고 마중 나가 영접했습니다. 바울이 그것을 보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로마에 있는 믿는 형제들이 로마서를 통해서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1장을 통해서 로마에 갈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간다고 하였습니까?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가지고 가서 나누어 주겠다고 하였고, 너희에게서 열매를 맺도록 해야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편지를 보고 로마 교인들이 바울을 늘 사모하고 있었는데, 바울이 오늘 온다는 소문이 들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을 영접하러 먼 지방까지 마중 나간 것입니다.
마중 나가는 정신은 무슨 정신입니까? 하나님의 복음과 하나님의 종을 영접하는 정신입니다. 바울이 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오는 것이며, 신령한 은사를 가지고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은사를 받으려고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몇 백 리까지 찾아 와서 영접하였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바울에게 담대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왜 담대한 마음이 생겼습니까? 바울이 생각하기에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사모하여 아무 것도 아닌 나를 하나님의 종으로 영접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의 일이 참 잘 되어 나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 내가 로마에 온 것이 참 잘 되었다, 로마에 왔기 때문에 이 분들이 이렇게 영접을 하고 또 내가 이 복음을 나누어 주게 되었다’는 담대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즉 ‘빨리 로마에 가서 이 복음을 나누어 주어야 하겠다’는 기쁨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으려면 영접하는 사람과 나누어 주려는 사람이 서로 마음이 맞고,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야 합니다. 즉 3합이 맞아야 합니다.
첫째는 성령, 이번에 은혜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야 합니다. 즉,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나누어 주려고 하는 사람이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성령으로 복음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즉,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야 하겠다’는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합니다. 즉,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야 하겠다’는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받는 사람들이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번에는 내가 꼭 신령한 은사를 받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가지고 오는 복음은 아주 귀한 복음이다, 이것을 내가 이번에 받아야 하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3합이 맞아야 합니다. 교인들이 은혜 받는 것도 교역자가 먼저 기도를 많이 하여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다음에는 교인들이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그 교역자가 오기 전에 미리 준비
하고 있어야 합니다. 미리 준비를 하고 마중 나갈 수 있는 데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하고 있어야 합니다. 미리 준비를 하고 마중 나갈 수 있는 데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가정도 베드로가 오기 전에 사람을 청하러 보냈으며, 친척과 친지들이 다 모여 베드로를 기다리며 사모하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왔고 베드로에게 엎드려 절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나한테 절하지 말라, 나는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 줄 때에 큰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말씀을 받는 자는 복음과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종을 영접하려는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은 신령한 복음을 가지고 성령으로 이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찾아가는 역사, 그것이 아주 귀한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로마 교회가 큰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로마 교회가 바울을 영접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복을 받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으로도 많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바울을 태워서 배는 로마까지 가지 않았습니까? 그 배는 세계 문명을 싣고 가는 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 바울이 로마로 갔기 때문에 세계 문명이 로마로 갔습니다. 또 복음의 역사가 유럽으로 건너갔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지 아니하고, 아시아 쪽으로 건너왔다면 아시아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 살고, 아시아가 유럽보다 문명이 앞 설 뻔 했습니다. 상당히 앞설 뻔 했는데, 바울이 로마로 갔기 때문에 복음이 로마에서부터 전파되었고 유럽 사람들이 복음을 받았습니다. 복음만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복을 다 받았습니다. 세상 문명도 유럽 사람들이 먼저가 되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도 유럽 사람들이 먼저 가서 점령을 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은 머리와 눈이 새카맣고, 키도 작은 동양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미국과 영국 사람들이 건너가기 전에 본래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동양 사람들이 알래스카로 해서 건너 갔으며, 몽골 쪽에서도 건너간 것 같습니다. 복음이 아시아에 먼저 들어왔다면 아메리카 대륙이 동양 사람들의 것이 될 뻔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갔습니다. 즉, 로마로 먼저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복이 유럽으로 건너갔고 또 아메리카로 건너가서 그곳이 먼저 문명 국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잘 공경하며 세상적인 면에서도 발전이 많이 되어서 앞서게 되었습니다. 바울을 태워서 오는 배가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문명을 좌우하는 배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가는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또 복음을 가지고 가는 사람이 중요하지만 복음 전도자를 영접하는 것도 중대한 문제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복음이 먼저 들어 온 곳이 앞섰습니다. 한국의 선교사가 호남 땅으로 갈 때에 나주에 근거지를 잡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주 사람들이 반대를 해서 선교사들이 어디로 갔는가, 하면 광주로 갔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광주가 호남에서 제일 큰 도시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바울이 복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 위대한 일이고 또 바울을 영접하는 일도 아주 위대한 일입니다. 복음 자체가 귀합니다.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하였는데, 믿음은 기본적인 믿음이 있고 자라나는 믿음이 있습니다. 복음도 젖으로 먹이는 복음이 있고 단단한 식물로 먹이는 복음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젖으로 먹다가 영이 자라나면 점점 단단한 식물이 되는 진리를 먹어야 합니다. 좀 더 높은 진리, 즉 진리의 2계단에서 3계단으로, 4계단에서 5계단으로 올라가야 합됩니다. 또 6계단에서 7계단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또 복음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하고 복음 전도자를 영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복음 전도자를 기쁨으로 영접하여 도와줄 때에 그 복음을 가지고 가는 사람은 담대한 마음이 생기고 힘이 납니다. 또 복음을 좀 더 힘있게 널리 전하게 됩니다.
모세의 팔을 아론과 훌이 들어줄 때에 모세가 힘써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팔을 받들어 주지 않을 때에는 모세의 손이 내려 왔고,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이스라엘이 졌습니다. 모세의 손을 받들어 줄 때에는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바울을 영접한 것은 아주 귀한 일입니다. 또 바울이 여기서 담력을 얻어서 ‘내가 로마에 온 것이 잘 되었다, 안 왔더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바다에서는 다 죽을 뻔 했지만 여기 와서 생각해보니 참 잘한 것이다’ 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나오고 담대한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3. 바울이 로마에서 유대인들에게 전도함
본문 16-20절에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 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에 도착한 바울을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하였습니다. 로마에 들어가서 딴 곳에 집을 정해주고 군사 한 사람이 지키게 만들어 바울을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그 집에만 있게 했습니다. 바울을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마음대로 찾아오게 만들어 놓고, 나가지는 못하게 했습니다.
바울이 거기서 한 사흘 동안은 여정을 풀고 유명한 사람들을 다 오라고 초청했습니다. 사흘 후에 했다는 것을 보아도 바울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지체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지체하면 안 됩니다. 그 먼 지중해를 건너가면서 14일 동안 먹지 못하고 다 죽게 된 상태로 겨우 로마에 와서 사흘 동안 밖에는 쉬지 않았습니다. 사흘 동안 겨우 좀 쉬고 이제는 사람들을 다 모아 놓고 하나님의 복음을 말한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은 바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지체하면 안 됩니다. 빨리빨리 해야 합니다. 바울이 한 열흘 있다, 한 달 있다 해도 되지만 열흘, 한 달 있으면 나태성이 생긴단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의 사명이 급하기 때문에 이 다음에 미루면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흘 동안 있다가 피곤이 풀린 다음에는 유명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서 자기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바울이 왜 왔는지, 또 어떤 사람인지, 또 왜 이렇게 쇠사슬에 메여 있는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 주고, 그 다음에 복음을 전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을 메게 되었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란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메시야가
와서 우리를 구원했다”고 하는 이것 때문에 “내가 여기에 왔다”고 자기에 대한 것을 자세히, 사실대로 사람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자기에 대한 것을 먼저 말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말해 주지 않으면 ‘이 사람이 무엇 하러 왔는가?’하며 딴 생각을 가지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복음 전도할 때에 안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대로 말을 해 주고 그 다음에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들이 “우리는 당신에 대해서 모른다, 또 무슨 편지 받은 것도 없다, 나쁜 말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러면 오늘은 이만 하고 날짜를 정해서 한 번 더 오십시오”하며 날짜와 시간을 정
해서 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3-25절에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일자를 정하고 다시오라 하였더니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우거하는 집에 왔습니다. 그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였습니다. 구약 성경, 모세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말해 주면서 그리스도가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장사한 다음에 부활해야 한다는 것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즉, 예수께서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한다는 것, 삼 일 만에 살아난다는 것을 성경 여러 곳을 찾아서 하루 종일 증거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에 가서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가 참 그리스도다, 참 메시야다, 오랫동안 우리 조상들이 고대하고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왔구나, 난 믿겠다’하며 믿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무슨 그리스도냐, 나는 그런 소리를 믿지 않는다”하며 반대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말할 때에 그것을 옳게 듣는 사람도 생겼고 반대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두 가지 갈래로 생겼습니다. 그 때에 바울이 이사야서를 들어서 그 사람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4. 유대인들이 복음을 배척하므로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됨
본문 26-28절에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이사야 6:9-10의 말씀을 들어서 말했는데, 이제는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이 간다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말해도 너희가 듣지 않기 때문에 복음이 이방 사람에게로 간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너희가 복음을 들어도 알지 못하는데 그것은 너희에게 복이 없는 까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듣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즉, 복음을 듣고 깨닫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3:13-16에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모르는 사람은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를 들을 때에 ‘참된 진리이다’라고 하며 깨닫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불택자는 아무리 와서 말해 주어도 복음을 반대합니다. ‘예수는 무슨 예수, 천당은 무슨 천당, 죄 사함은 무슨 죄 사함’하며 반대만 합니다. 그것은 복이 없는 것입니다. 불쌍한 자입니다. 또 예수를 전할 때에 믿는 사람은 그 만큼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서도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더 복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죄인지 모릅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주일을 안 지키고 술 담배를 다 먹고 조상 제사하고 사기 횡령하며 못된 짓을 다 해가며 돌아가는데, 이것은 믿긴 믿어도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5. 바울이 로마에서 2년간 전도함
본문 30-31절에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 셋집에서 2년간 죄수의 몸으로 있으면서 높고 낮은 사람들에게, 즉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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