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7일 화요일

사도행전 27:1-44 광풍을 만난 바울 일행이 탄 배.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광풍을 만난 바울 일행이 탄 배
사도행전 27:1-44

27:1 우리가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가기로 결정되니, 그들이 바울과 몇몇 다른 죄수들을 아우구스투스 보병대의 율리오라고 하는 백부장에게 넘겨주었다. 

27:2 우리가 아시아 해안의 여러 곳으로 가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승선하여 떠나갈 때에 마케도니아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가 우리와 함께 있었다. 

27:3 이튿날 우리가 시돈에 도착하였는데, 율리오가 바울에게 친절을 베풀어 친구들에게 가서 보살핌을 받도록 허락하였다. 

27:4 또 거기에서 우리가 출항할 때에 바람이 거슬러 불어서 키프로스를 바람막이로 하여 항해하다가, 

27: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앞 바다를 지나서 루기아의 무라에 도착하였다. 

27:6 백부장이 거기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서 우리를 그배에 태우매, 

27:7 여러 날 동안 배가 천천히 항해하여 간신히 니도 앞에 이르렀는데, 바람이 우리를 허락하지 않아 살모네 옆을 지나 크레타를 바람막이로하여 항해하였다. 

27:8 간신히 그 해안을 따라 항해하여 라새아 성에 가까운 아름다운 항구라고 불리는 곳에 이르렀다. 

27:9 많은 시일이 경과되어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이제 항해가 위험하게 되어 바울이 그들에게 권하여, 

27:10 말하기를 "여러분, 내가 보니, 이번 항해에서 화물과 배뿐만 아니라 우리 목숨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으나, 

27:11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하였다. 

27:12 그 항구가 겨울을 나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대다수 사람들은 거기에서 떠나 어떻게 하든지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나자고 하였으니, 뵈닉스는 크레타에 있는 항구로 남서쪽과 북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27:13 남풍이 부드럽게 부니 그들은 자기의 뜻을 이룬 줄로 생각하고, 닻을 올리고 크레타 해안에 가까이 붙어서 항해하였다. 

27:14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섬에서 유라굴로라고 불리는 폭풍이 몰아치니, 

27:15 배가 떠밀려 바람을 거슬러 나아갈 수 없어서 가는 대로 표류하다가, 

27:16 가우다라고 불리는 작은 섬 아래로 항해하면서 우리가 거룻배를 간신히 제어할 수 있게되자, 

27:17 그것을 끌어올리고 밧줄을 사용하여 선체를 동여매었다. 그들은 모래톱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닻을 내리고 그냥 떠밀려 갔다. 

27:18 그들이 폭풍에 몹시 시달리다가 이튿날에는 짐을 바다에 버렸으며, 

27:19 삼일 째에는 배의 장비마저 손으로 직접 내버렸다. 

27:20 여러 날 동안 해나 별이 보이지 않고 큰 폭풍이 여전히 몰아쳤으므로, 우리가 구원받을 희망이 다 사라졌다. 

27:21 사람들이 오랫동안 먹지 못하였으므로 바울이 그들 가운데 일어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이 내 말을 듣고 크레타에서 떠나지 않았더라면 이 피해와 손실을 입지 않았을 것이다. 

27:22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권하니, 기운을 내라. 여러분 중 누구도 목숨을 잃지않고 오직 배만 잃을 것이다. 

27:23 지난밤에 내가 속해 있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내 곁에 서서, 

27:24 말하기를 '바울아,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이 많은 이들을 모두 네게 맡기셨다.' 라고 하였으니, 

27:25 그러므로 여러분, 기운을 내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나님을 믿는다. 

27:26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닿게 될 것이다." 

27:27 십사 일째 밤이 되었을 때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표류하던 중, 선원들은 자신들이 한밤중에 어떤 육지에 접근하고 있는 것을 짐작하고, 

27:28 그들이 수심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었고, 조금 있다가 다시 재어 보니 열 다섯 길이었다. 

27:29 우리는 혹시 암초에 걸릴까 두려워서 배꼬리에 닻 네 개를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였다. 

27:30 그런데 선원들이 배에서 도망치려고 뱃머리에서 닻을 내리려는 체하며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놓으니, 

27: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말하기를 "이들이 배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너희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하니, 

27:32 군인들이 거룻배의 밧줄들을 끊어 버렸다. 

27:33 날이 새어 갈 때에 바울이 모든 이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며 말하였다. "너희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주리며 기다린 지 오늘까지 십사일이다. 

27: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니, 이것은 너희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너희 중에 어느 누구도 머리 카락하나라도 잃지 않을 것이다." 

27:35 그가 이렇게 말하고 빵을 들어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떼어서 먹기 시작하였다. 

27:36 그들 모두 다 기운을 내어 음식을 먹었으니, 

27:37 배에 있는 우리가 모두 이백칠십육 명이었다. 

27:38 그들이 음식을 배불리 먹은 후에 밀을 바다에 내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다. 

27:39 날이 새자, 그들은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해변이 있는 어떤 항만을 발견하고 그곳에 배를 들여 댈 수 있을지 의논하였다. 

27:40 그들이 닻들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의 밧줄을 늦추고, 앞 돛을 바람에 맞추어 올리고 해변으로 들어갔다. 

27:41 그러나 두 물살이 만나는 지점으로 밀려들어가서 배가 모래톱에 걸리니, 뱃머리는 단단히 박혀서 꼼짝하지 않고 배꼬리는 거친 파도 때문에 깨어졌다. 

27:42 군인들은 죄수들이 헤엄쳐서 도망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죽이기로 결정하였으나, 

27:43 백부장은 바울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의 결정을 거절하고 명령하기를, 헤엄칠 수 있는 자들은 뛰어내려 먼저 육지로 나가게 하고, 

27:44 다른 이들은 널빤지나 부서진 배 조각들 위에 타게 하여 모두 다 육지 위로 구출되었다.

1. 미항까지 감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총독이 2년 동안 감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 후 다른 총독이 왔는데 바울을 놓아 주지 않으므로 바울이 로마에 가서 가이사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일행이 몇 사람 되는데 그 중에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함께 갔습니다. 그 다음에 다른 죄수들이 같이 갔습니다.

본문 1절에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탄 배에 백부장과 군사들과 죄수들, 또 여행하는 사람들 등 여러 사람들이 타고 로마로 갔습니다.

본문 8-9절에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성에서 가깝더라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라고 하였습니다. 간신히 미항이라는 항구에 갔습니다. 금식하는 절기란 대속죄일을 말합니다. 성력으로는 7월 15일로 오늘날 양력으로 하면 9월 말에서 10월 초에 해당하는 절기입니다. 이 때는 늦가을이 되어서 바람이 많이 부는 때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본문 10절에 “여러분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상이 있으리라”하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미항이라는 항구에서 겨울을 지내고 봄에 가야지 이번에 가는 길은 배만 아니라 생명에까지 많은 손상이 있을 것이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2. 풍랑을 만나게 된 원인

백부장이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음

본문 11절에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습니다. 바울의 말을 안듣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이번에 운행하는 것이 위태하니 여기에서 과동을 하고 봄에 가는 것이 옳다”고 하였는데 선장과 선주는 지금 가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백부장이 바울의 말을 들었으면 안 떠났을텐데,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본문 9절에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했기 때문에 죄수의 몸으로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에는 죄수나 일반 사람들을 다 합해서 이백 칠십 육명이 탔습니다. 바울과 바울의 일행 중에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와 또 다른 몇 사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죄수들, 장사꾼, 군인들 등 많은 사람들이 이 배에 탔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금식하는 절기가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하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시기를 바로 알았습니다. 금식하는 절기는 칠월 대속죄일라고 합니다. 성력으로 칠월 달이면 요새 달력으로 구월이나 시월에 해당이 됩니다. 이 때에는 우리 한국에도 태풍이 많이 오는 계절인데, 거기도 아마 이런 태풍과 같은 광풍이 많이 오는 계절인 모양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번에 항해하는 것은 위태하다,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도 타격과 많은 손상을 입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시기를 분별하지 못하고 나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시기를 잘 분별해야 됩니다. 로마서 13장 11절에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라고 하였는데, 바울과 같이 시기를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시기를 잘 모르고 아무 때든지 그저 가면 되는가보다 하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면 다 죽게 됩니다. 이들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좇아갔습니다. 백부장이 바울의 말을 따라갔어야 되는데,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기 때문에 미항을 떠나서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말해주는 것을 안 듣고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따라가다가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편리주의로 나갔음

본문 12절에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미항이라는 항구에서 과동하기가 불편하여 뵈닉스라는 항구에 가서 과동하자고 여러 사람이 주장 하였습니다. 거기는 따뜻하고 아주 평안한 곳이므로 거기서 겨울을 지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가 떠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번 항해하는 것이 위태하다”고 하였습니다. 로마까지 가려면 상당히 먼 길입니다. 지중해 바다를 건너가야 하므로 아마 순풍을 달고 제대로 잘 간다고 해도 삼, 사일은 걸러야 될 것입니다. 그런 먼 길인데 가다가 풍랑을 만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 있는 곳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레데 항구에 가서 과동하자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미항에서 겨울을 지내는 것은 불편 하다는 말입니다. 그레데에 가서 거기에서 겨울을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제주도로 말하면 제주시에서 과동하는 것보다 서귀포에서 과동하는 것이 좋다는 것과 같습니다. 서귀포는 겨울에도 꽃이 피는 따스한 곳입니다. 이와 같은 섬에서 겨울을 지내면 따스하고 좋단 말입니다. 미항에서 과동하는 것은 불편하고, 바람도 세고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이 일시적인 편리한 것을 따라갔습니다. 바람 부는 것, 위태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일시적 육신의 편리함을 따라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시기를 분별치 않으면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때가 어느 때이냐?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하며 시기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33에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였습니다. 시기를 항상 분별하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일시적 편리한 것, 좀 더 좋은 데로 가려고 하다가 환난을 만납니다.

다수를 따라 갔음

이 사람들이 현재 미항이라는 항구에 있는데 그레데 항구에 가서 과동하자는 사람들이 바울보다 더 많았습니다. 바울은 미항에서 과동하고 겨울이 지나서 봄에 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은 여기가 불편하니 그레데 항구에 가서 과동하자고 하였습니다. 그 숫자가 바울보다 많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가자고 하는 대로 따라간 것입니다. 그래서 다수의 말을 따라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진리는 다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 간다는 사람은 바울과 바울의 일행 몇 사
람뿐이었을 것입니다. 다수를 따라가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오늘 날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이 진리가 적용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은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 같습니다. 즉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종의 인도를 받아서 가야하는데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인도하는 그 인도를 따라가지 아니하고,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따라 간 것처럼 모든 기술에 능란한 사람들의 말을 더 믿고 따라가지 않았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고, 사람의 경험, 사람의 기술 등을 더 믿고, 여기가 불편하니 좀더 편안한 곳을 찾아가자하며 편안함만 따라가면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대세주의를 따라 갔음

본문 13절에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미항을 떠나서 가는데 마침 남풍이 부니 가기가 좋습니다. 대세가 가기 좋게 나갑니다. 이렇게 대세가 되어 나가므로 일이 잘 풀려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현재 대세가 좋은 환경입니다. 그래서 그 환경을 따라서 배가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3. 큰 풍랑을 만남

본문 14-15절에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라고 하였습니다. 얼마 못가서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났습니다. 유라굴로라는 광풍은 동북풍이라고 합니다. 굉장히 큰 태풍과 같은 바람입니다. 광풍을 만나서 배가 쪼개졌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선주와 선장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방향 없이 바람에 밀리워 가는대로, 물결치는 대로 밀려가는 것입니다. 산과 같은 큰 물결이 올라가고 배가 쑥 들어갔다, 쑥 올라갔다 하는데 언제 겉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인도해주는 인도를 따라가지 않고 선장과 선주의 말을 따라가고, 또 평안함을 따라가고, 다수를 따라가고, 대세주의를 따라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서 겉잡을 수없이, 향방없이 밀리워 가는 그런 지경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인도해 주는 뜻이 가지 말라고 하면 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라”고 하면 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서 “평안히 살겠다, 남풍이 푼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고 하여 따라가다간 반드시 유라굴로라는 큰 환난을 만나서 겉잡을 수 없는 지경에 빠집니다. 방향없이, 바람 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밀리워 가는 것입니다.

본문 16-17절에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거루라는 것은 조그마한 배로 구조시에 사용합니다. 보트 같은 것입니다.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로 선체를 둘러 감았습니다. 배가 나무배이므로 물결이 심해서 배가 깨질까봐 밧줄로 선체를 둘러 감았습니다. “스르디스에 걸릴까”라고 하였는데(17절) “스르디스”는 모래가 쌓인 곳을 말합니다. 모래가 많이 쌓인 곳에 배가 걸리면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거기 걸릴까봐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배 안에 있는 물건을 다 집어 바다에 내버렸습니다. 지금 물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이 위태한데 물건보다 생명이 사는데로 나가야 된다하며 물건을 다 내버리고 사는 길로 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배는 바람에 밀려가는데 로마를 향해서 가고 있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유대 나라에서 로마로 가려면 지중해에서 내내 서쪽으로 똑바로 가야 로마로 갑니다. 왼쪽으로 가도 로마로 못 갑니다. 오른쪽으로 가도 안 됩니다. 그 배는 풍랑에 밀리워서 쫓겨 가지만 운전수는 하나님이십니다. 뱃사공들은 이제 손을 다 놓았습니다. 뱃사공들이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도 쓰지 못합니다. 그 배의 운전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배를 인도하셔서 로마를 향해서 서쪽으로 똑바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바람에 밀려서 왔다 갔다 하더라도 결국은 로마로 가는 것입니다.

본문 18-20절에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고 하였습니다. 이튿날 풍랑을 인하여 심히 애쓰다가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다 내버렸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않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므로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이 쫓겨 갔는지, 그저 바람에 배가 쫓겨 가는 것입니다. 이튿날에는 이렇게 쫓겨 가다가 이제 물결이 너무 세어 배의 짐을 다 바다에 던졌습니다. 배 안에 276명이 탔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의 짐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짐을 다 내버렸습니다. 아무리 짐이 아깝고 또 비싼 것들일지라도 그냥 싣고 가다가는 배가 침몰이 될 것 같으므로 짐은 없어도 사람은 살아야겠으므로 짐을 바다에 다 내버린 것입니다.

짐을 버릴 때에 “내 짐이다”라고 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내 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람이 죽겠는데 다 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배에서 사용하는 기구들을 다 내어 버렸습니다. 가볍게 해야만 풍랑을 겪어나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고 나갔기 때문에 물질을 제 손으로 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는 것과 같이 다 빠져나간 것입니다. 또 배의 기구를 아무리 좋은 것 장만했어도 다 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고 가는 사람은 제 손으로 다 내어 버릴 날이 옵니다.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고 집을 장만한 것, 또 아무리 좋은 가구들을 다 장만해 놓았어도 안 버리면 죽게 되겠으므로, 제 손으로 다 내어 버릴 날이 오게 됩니다.

본문 20절에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소망이 끊어지고 이젠 다 죽게 되었습니다. 배에 탄 사람이 이백 칠십륙 명인데 거기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바울을 위시해서 바울 일행의 몇 사람이 있고, 백부장이 있고, 또 백부장의 군대, 장사꾼, 여행하는 사람, 죄수들이 있습니다. 한 배에 탔기 때문에 몇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고 또 몇 사람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이러한 때를 때때로 만날 수가 있습니다.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환난, 풍파를 만나서 갈래야 갈 수도 없고, 돌아올 수도 없습니다. 이젠 바람 부는 대로 쫓겨가는 수밖에 없는 그러한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요새 한국이라는 배가 광풍을 만나서 쫓겨가는 것과 같은 것 같습니다. 한국이라는 한 배에 다 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백 칠십 륙 명이 탔다고 했는데, 한국이라는 배에는 한 사천만 명이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밀려서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내일 무슨 일을 만날지, 또 일년 있다가 무슨 일 만날지, 또 명년에 무슨 일을 만날지 알 수 없습니다. 아드리아 바다를 이리저리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밀려가는 것과 같이 밀려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손 쓸수 없습니다. 배에 돛을 달고 원하는 곳으로 가려고 해도 배 돛이 다 찢어졌고, 배에 돛을 단다고 해도 배가 전복되게 되어있으므로 배 돛도 달지 못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공들이 있어도 속수무책입니다.
사공들이 원하는 곳으로 배를 운전할 수가 없습니다. 배를 운행하려면 모든 것이 다 말을 안 듣습니다. 너무 바람이 세기 때문에 그 바람에 밀리워가는 것뿐입니다.

4. 바울이 풍랑 중에 권면과 소망을 줌

잘못을 깨달아라

본문 21절에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바울이 나섰습니다. 바울이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안 떠났으면 좋았을 뻔하지 않았느냐?”하며 반성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떠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떠나서 이런 큰 손상을 당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백부장으로부터 군사들과 배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고, 안 떠날 길을 떠났다가 이렇게 큰 흑암 속에 갇혀서 말할 수 없는 큰 손상을 당하고 있는 것을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하였는데 깨닫게 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환난을 만났을 때에는 반드시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과거에 이렇게 안 했으면 이런 손상을 안봤을 것인데 하고 어디서부터 믿음이 떨어졌는가? 어디서부터 내가 잘못되어 나갔는가? 생각해보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이 배는 하나님이 인도 하심

본문 21-22절에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안심하라, 생명에는 손상이 없겠다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본문 27절에 “열 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저리 쫓겨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와지는 줄을 짐작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먹지 못한 지가 열 나흘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배는 이젠 바람을 맞추어 갈 수도 없어, 아드리아 바다를 이리저리 쫓겨간다고 하였습니다. 당장 배가 뒤집어 질것 같습니다. 4-5일이면 다 갈 길을 열 나흘동안 쫓겨가면서 살 소망이 다 끊어지고 당장 죽게 되었습니다.

본문 31-32절에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이에 군사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배에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배가 침몰되면 사람들이 거루를 타고 도망치려고 하는데, 바울은 배에 있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배에 있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
한다고 한 것은 그 배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배이기 때문입니다. 배의 운전수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버리시지 않음

거기에는 하나님의 종인 바울이 있고, 누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과 동행하는 그 일행이 있습니다. 경건한 하나님의 종과 경건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그 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경건한 하나님의 종과 그의 일행들을 내버리실리가 없습니다. 예레미야 5:1에 예루살렘에 의인 한 사람만 있어도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기 않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배에는 지금 의인이 몇 사람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 누가, 그의 일행 등 몇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행들을 내버리시지 않습니다.

본문 22-25절에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레데에서 내 말을 듣고 안 떠났으면 이런 손상을 안 받을 것인데, 내 말을 안 듣고 떠나서 이런 손상을 받는 것이 아니냐, 뉘우쳐 보라”고 바울이 권면한 후 “여러분이여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가서 설 것이요, 너는 로마에까지 갈 것이요,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나의 섬기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해주실 것을 나는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들어왔습니다. 첫째는 반성하고 회개하라는 권면이 들어왔고, 반성하고 회개할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들어왔습니다. 무엇인가?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왜 안심을 해야 되겠는가? 너희 생명에는 손상을 안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큰 시험을 만나서 다 죽을 것 같지만 흑암 속을 덤벙덤벙 하지만 아주 망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바울에게 맡겼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사람들이 어떻게 들었겠습니까? 좋게 들었겠습니까? 좀 섭섭하게 들었겠습니까? 좋게 들었을 것입니다. 다 죽게 되었는데, 이제 살려준다고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풍랑을 안 만났을 때에 즉 미항에 있을 때에 바울이 “여러분들의 생명을 하나님이 다 내게 맡겼다”고 하면 이 사람들이 뭐라고 하였겠습니까? 아마 바울이 매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네가 뭐인데 우리를 네게 다 맡겼다는 것이냐? 하며 바울을 그냥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배 안에 276명이나 많은 사람이 탔는데, 그 사람들 가운데는 여러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죄수의 몸으로 나와서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내게 다 맡겼다고 말했다면 아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노했을 것입니다.

배안에는 로마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각 나라 사람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맡겼다는 말을 고맙게 들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요새 비행기 타고 여행갈 때에도 각국 나라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사람, 미국 사람, 영국 사람, 필리핀 사람, 남미 사람, 오스트리아 사람 등 한 비행기 안에 각 나라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죄수 의복 입은 사람이 앞으로 나가서 “다 내게 맡겼다”고 하면 그 사람들이 코웃음을 하고, 바울은 매 맞아 죽기 쉽습니다.

본문 33절에 “날이 새어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지가 오늘까지 열 나흘인즉”라고 하였습니다. 먹지 못한지가 열나흘이라고 하였는데 열나흘 동안이나 굶고 이제는 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럴 때에 바울이 나타나서 “하나님이 어젯밤에 사자를 보내어서 우리 생명을 하나도 해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다 내게 다 맡긴다고 하였다, 난 그대로 될 것을 믿는다, 안심하라”하는데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여야 합니까? 그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바울 때문에 살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아니면 다 죽습니다. 그 사람들의 생명이 바울에게 달린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한국 사람들의 생명은 누구에게 달렸는가? 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달렸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바울과 같이 믿는 일을 바로 하면 한국이라는 배에 탄 사람들을 다 살릴 것이고, 믿는 사람들이 제대로 믿는 일을 못하면 내버려 두셔서 바람 부는 대로 밀려 가다가, 침몰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과 같이 믿음으로 나가는 성도들이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 사람을 보시고 배에 탄 사람들을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의 손에 맡겨서 배에 탄 사람들을 무사히 다 살게 해주시는 목적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가이사에게 가서 전도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적은 가서 평안하게 살라고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전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중대한 것을 깨달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소망이 있습니다. 말씀이 속에 쑥 들어올 때에 안심이 되고, 말씀이 속에 쑥 들어올 때에 평안이 들어오고, 말씀이 속에 쑥 들어올 때에 회개가 나옵니다. 말씀이 속에 쑥 들어올 때에 앞길이 열리고, 소망이 생깁니다. 말씀이 아니면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나가다가, 큰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에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나?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하지 말라는 것을 내가 한 것이 없었나? 또 하라는 것을 하지 않은 것이 없었나? 반성해 보고 말씀을 속에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평안한 마음이 들어오고, 소망이 생기고, 앞길이 열립니다.

가이사 황제에게 전도하기 위해 가는 배임

본문 24절에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고하였습니다. 이 배는 가이사 황제에게 전도하러 가는 배입니다. 바울이 로마 황제 앞에 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에게 죄수의 몸으로 가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냥 가서 가이사 황제를 만나자고 하면 만나 주겠습니까? 죄수의 몸으로 가므로 가이사 황제가 무슨 죄수냐? 왜 왔느냐? 심문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가서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울에게 “네가 가이사 앞에 설 것이다”라고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배에 있는 사람은 구원받게 되어 있습니다.

또 그 배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들이 처음에 기도했을 것 같고, 그 다음에 이백 칠십 륙 명이라고 했는데 그 가운데서 자기 신에게 기도해도 안 되므로 사도 바울 일행이 기도할 때에 “우리도 같이 기도하자”하며 열 나흘째 되는 날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몇 사람만 하다가 그 다음에 몇 십 명 하다가 그 다음에는 점점 더 많이 참여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아지지 않았겠는가? 생각됩니다. 그러면 왜 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구원을 못 받는가? 기도하는 사람이 탄 배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고, 믿음에 서려고 하고, 회개하는데 하나님이 왜 보호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열 나흘 동안 얼마나 회개하였겠습니까?

5. 풍랑 중에 구원의 길을 열어 줌

배에 있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본문 27절에 “열 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저리 쫓겨 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와지는 줄을 짐작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열 나흘째 되는 날, 밤중에 어느 육지가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물을 재보니 스무 길입니다. 좀 있다가 또 재보니 열다섯 길입니다. 이제는 육지에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 입니다. 밤중이므로 가다가 암초에 부딪히면 배가 파선될 우려가 있으므로 날이 밝기를 기다렸습니다.

본문 30절에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 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놓거늘”라고 하였습니다. 사공들이 이제는 육지가 가까웠으므로 도망치려고 조그만 배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본문 31절에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말입니다.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사공들이 달아나면 누가 구원을 얻지 못합니까?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너희”는 배안에 있는 전체를 말합니다. 사공들도 구원을 얻지 못하고 다 쫄딱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부장이 빨리 가
서 사공들이 조그만 배를 타지 못하게 거루 줄을 다 끊어버렸습니다. 거루 줄을 다 끊어버리므로 작은 배가 다 떠내려 갔습니다. 멀리 떠내려 갔으므로 사공들은 이제 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시험입니다. 사공들이 도망을 치면 이 큰 배를 누가 운전합니까? 큰 배를 운전해 가는 사람들은 사공입니다.

운전수들이 다 도망치면 배가 어떻게 가겠습니까? 아직 섬은 멉니다. 그러므로 사공들을 도망 못 치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사공들은 조그만 배를 타고 가다가는, 유라굴로라는 큰 물결이 치므로 얼마 안가서 배가 다 뒤집어져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모르고 사공들은 도망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배에 있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였는데 배에 있을 사람은 배에 있어야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산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떠나지 않을 사람이 떠나면 자기도 망하고, 또 다른 사람도 망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있어야 될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예루살렘을 떠나면 사도들도 망하고, 예루살렘에서 복음 운동하는 것도 망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떠나지 않고 기도를 해야 사도들도 살고, 예루살렘 교회가 사는 것입니다. 떠나지 말라고 할 때는 안 떠나야 됩니다. 사공들 생각에는 “우리는 배 부리는 기술이 있다” 아무 곳에 가서도 살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을 다 데리고 가다가는 다 죽겠으므로 “우리라도 살자, 어떻게 하면 살까, 도망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기주의입니다. 배안의 사람들은 생각 안하고 자기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공들이 떠났다면 일이 다 틀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기업체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친척도 그렇습니다. 떠나지 않아야 될 사람이 있습니다. 떠나지 아니하여야 될 사람이 떠나면 그만 그 일이 다 틀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있어야 될 사람은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서 전체가 다 삽니다.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삽니다. 그것을 언제나 우리가 알고, 자기 개인의 문제만 생각을 해서 해결을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나?를 살펴서 내가 떠나야 될 사람인가? 안 떠나야 될 사람인가? 이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바로 분별하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인도해주는 바가 있을 때에는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순종하면 안 될 것 같아도 되고, 죽을 것 같아도 살고, 소망이 없는 것 같아도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하나 살려고 떠나면 될 것 같아도 안 되고, 소망이 있는 것 같아도 망합니다. 배도 깨지고 자기도 망하고, 전체가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우리는 모든 일에 바로 해야 되겠습니다.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본문 33-36절에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열나흘 째 되는 날에 바울이 떡을 가져다가 “여러분들이여 안심하라,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한 때가 열나흘인데 이제는 먹어라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말한 후 하나님께 축사하고 다 떼어주니 배불리 저희가 다 안심하고 먹었습니다. 열나흘 동안 배 안에서 먹지 못하고, 살 소망이 거의 다 없었는데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안 상할 것이니 먹으라고 할 때에 순종해서 다 먹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이 말을 안 했으면 굶어서 이제 다 죽게 됩니다. 열나흘 굶은 사람이 어떻게 헤엄을 칠 수 있겠습니까? 열나흘이나 굶었으므로 손으로 물을 댕길 힘이 없어 다 죽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먹어라, 안심해라”할 때에 그 말을 믿었습니다. 이제는 바울의 말을 안 들을래야 안들을 수가 없습니다.

본문 37-38절에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 칠십 육인이러라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다 먹은 다음에는 남은 것을 다 버렸습니다. 배가 무거우면 섬에 들어 갈 때에 침몰될 위험이 있으므로 식량을 다 내버린 것입니다. 배 안에 전부 사람이 몇 명이라고 하였습니까? 276명이나 되는 많은사람이 탔지만 하나님이 보호해 주셔서 무사히 이렇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276명이면 상당히 많은 사람인데, 많은 사람을 바울에게 맡기셨고, 또 바울의 말을 듣고 이 사람들이 다 살아난 것이 하나님의 큰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났다는 것을 보여주느라고 인수를 쓴 것입니다.

본문 39-41절에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당하여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큰 사고입니다. 배의 뒷부분이 깨져서 물이 들어오겠으므로 배가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군사들이 죄수들이 도망치면 자기들의 책임이 있겠으므로 죄수들을 다 잡아 죽이자고 의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은망덕한 군사들입니다. 죄수들을 죽이면 누구까지 죽여야 되겠습니까? 바울까지 죽여야 됩니다. 자기가 산 것이 누구 때문에 살았습니까? 바울 때문에 산 것이 아
닙니까? 바울이 지금 소망을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고, 또 먹게 해주므로 바울 때문에 살았는데 군사들은 죄수가 도망치면 책임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겠으므로 다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본문 42-44절에 “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저희를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백부장이 바울을 살리려고 죄수들을 죽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죄수들이 다 죽을 뻔 했는데 또 바울 때문에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백부장의 마음을 감동 시켜서 바울을 사랑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백부장은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헤엄칠 줄 아는 사람은 먼저 헤엄쳐서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배에 있는 널판들을 하나씩 붙들고 헤엄쳐 나가라고 하여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나갔습니다. 276명의 사람들이 한 사람도 죽지 않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큰 환난과 시험 가운데 빠졌던 사람들이 이제는 거기서 나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신앙생활을 할 때에 이와 같은 큰 시험을 때때로 당합니다. 큰 풍랑을 만나는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소망을 가진 이 사람들처럼, 우리도 말씀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또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풍랑 만난 사람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사람, 또 내가 갈 바를 알지 못할 때에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받아 가지고 회개 하면서 바로 서야 됩니다. 그러므로 풍랑을 무사히 통과하고 육지에까지 나가는 신앙의 길을 가야겠습니다.

말씀에 배에서 떠나지 말라고 하면 안 떠나야 됩니다. 사공들이 배에서 떠나면 배에 탄 사람들이 다 망하고, 자기도 망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먹으라고 하면 먹어야 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먹으라고 하면 먹어야 됩니다. 또 머리카락도 상하지 않는다면 안 상할 것을 믿어야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것은 이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큰 배가 지금 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라는 배가 지금 가고, 우리 가정이라는 배가 지금 가고 있고, 우리 한국이라는 큰 배가 금년에도 바다를 건너 항해 합니다. 지금 바다를 항해하는 중에 있는데 바울이 타고 가는 배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말씀에 의해서 움직이는 우리 전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기주의는 안 됩니다. 276명에 대한 “나”라는 것을 언제나 알아야 됩니다. “나” 하나만 살겠다고 거루를 타고 도망치면 안 됩니다. 

또 세계라는 배가 있습니다. 이 세계라고 하는 지구 덩어리는 우리가 보기에는 크지만 하늘에서 보면 조그만 한 덩어리입니다. 세계라는 배도 지금 항해하고 있습니다. 항해하는 배가 가다가 풍랑을 만나면 우리의 살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바로 서면 살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 하지 못하면 가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람을 귀히 여겼기 때문에 죄수도 살고 자기들도 살게 된 것처럼, 하나님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의 종을 귀히 여겨서 우리의 생명들이 손상을 받지 아니하고 신앙의 항해를 잘 해 나가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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