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0일 금요일

고린도전서 3장 1-9, 히브리서 5장 12-14절 장성한 자로 자라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장성한 자로 자라나라
고린도전서 3장 1-9, 히브리서 5장 12-14절

(고전 3:1-9)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5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8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히 5:12-14) 12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13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3:1 형제들아, 내가 영적인 자들에게 하듯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말하였다. 

3:2 나는 너희에게 젖을 먹이고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않았으니, 너희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너희는 감당할 수 없다. 

3: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들이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이 있으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냐? 

3:4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는 바울에게 속한 자이다." 하고, 다른 이는 말하기를 "나는 아볼로에게 속한 자이다." 라고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냐? 

3:5 그러면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우리는 너희를 믿게 한 사역자들이며, 주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대로 일했을 뿐이다.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자라게 하셨다. 

3:7 그러므로 심는 자나 물을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3:8 심는 자와 물을 주는 자는 하나이며, 각자 자기 수고만큼 자기 상을 받을 것이다.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고,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건축물이다. 
 
히브리서
5:12 지금쯤은 너희가 선생이 되어야 마땅한데, 다시 누군가가 너희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요소들을 가르쳐야 할 형편에 있어, 젖만 먹고 단단한 음식은 못 먹는 자들이 되었다. 

5:13 젖을 먹는 자마다 의의 말씀에 익숙하지 못한 자이니, 이는 그가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5:14 그러나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들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과 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다.


1. 젖 먹는 어린 성도에서 장성한 성도가 되라

젖 먹는 어린아이로 있지 말고 자라나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에베소서 4:15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면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라고 하셨습니다.

자라나지 못한 성도는 오래 믿었어도 어린아이임

본문 히브리서 5:13절에 보면,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입니다. 본문 3:1절에는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아직 신령한 성도가 아니고, 육신에 속한 성도로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하면서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고 젖을 먹는 어린아이다’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중생을 하는데, 어린아이로서 중생합니다. 처음엔 어린영혼으로 중생했다가 점점 자라나서 장성한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본문 히브리서 5장에 보면, ‘너희가 예수님 믿은 때가 오래되었지만 자라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믿는 사람은 그 영혼이 어린아이와 같은데, 오래 믿었어도 자라나지 못한 성도는 그저 어린아이입니다. 몇 십 년, 혹은 일평생 예수님을 믿었어도 자라나지 못한 영혼은 어린아이입니다.

2. 육신에 속하지 말고 말씀의 인도를 받으라

육신에 속한 것을 떠나야 자라남

우리가 자라나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자라나려면 육신에 속한 것을 버려야 자라난다고 했습니다.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 했는데, 육신에 속한 자가 어린아이입니다. 우리가 육신에 속한데서 벗어나야만 자라납니다. 육신에 속한 성도라면 육신에 속한데서 떠나야 합니다. 육신에 속한 성도는 육신중심이고 자기중심으로 삽니다. 육신중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육신에 속한자입니다. 자기중심으로 믿는 사람이 육신에 속한자입니다. 또한 자기를 위하여 예수 믿는 것도 육신에 속한 것입니다. 자기 평안, 자기 유익대로 행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속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유익대로 행하고, 자기 평안을 따라가고, 자기를 위해서 하는 모든 것이 자기중심입니다. 그것이 육신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떠나야 자라납니다. 자기중심에서 자기위해서 사는 것과 자기 유익을 위해 구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다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떠나지 아니하면 자라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0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육신에 속한 것 15가지 나왔는데, 본문 2-3절에,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했습니다. 

‘바울에게 속했다’, ‘아볼로에게 속했다’하면서 사람에게 속한 당파 묻는 것, ‘나는 바울 파다’, ‘아볼로 파다’하면서 시기와 분쟁하고, 사람을 따라서 행하는 것이 육신에 속한 증거입니다. 그러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당파 짓는 것, 자기 지방 사람끼리 당파 짓는 것으로는 자라나지 못합니다. 지연, 학연, 혈연, 육신에 속한 것, 예수님 믿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믿는 것이 모두 육신에 속한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께서 구속해 주셔서 감사해서 믿는 것입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 믿
는 것이 아닙니다. 연보하는 것도 자기 명예 영광을 위해서 많이 하는 것은 육신에 속한 것입니다. 연보 안하는 것도 육신에 속한자입니다.
자기를 알아주면 좋아하고 알아주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는 것도 육신에 속한 것입니다. 명예 영광 중심으로 나가는 것도 육신에 속한 것입니다. 

그렇게 육신에 속한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오래 믿었지만 다 육신에 속하고 신령한 성도가 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자기중심, 자기 위해서 하는 것, 교회에서도 자기 명예 영광으로 하는 것,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에 불평하는 것, 당파 짓는 것이 다 육신에 속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어도 자라나지 못합니다. 그저 어린아이로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인도를 받아 신령한 성도가 되어야 함

자라나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라나려면, 말씀의 인도를 받아 신령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신령한 성도,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성도, 십자가를 지고 말씀만 따라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중심이 아닌 예수님 중심, 자기 영이 사는 것으로만 중심을 삼고 나가는 성도가 신령한 성도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나가는 성도, 이러한 신령한 성도가 되어야만 자라납니다. 

신령한 성도가 되려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중심이고 자기중심이 아닙니다. 중생한 영이 사는 것을 중심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자가 신령한 성도입니다. 신령한 성도가 되려면 먼저 육신에서 완전히 떠나야 합니다.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본문 히브리서 5:13-14절에 보면,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자라나는 성도가 되려면 신령한 성도가 되어야 하고,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자라납니다. 젖은 초보적인 교리를 가리킵니다.

본문 히브리서 5:12절에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3. 단단한 식물인 깊은 진리에 들어가라

젖은 초보진리임

하나님 말씀에 초보적인 것이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초보적인 신앙의 진리를 먹는 사람이 ‘젖을 먹는 자’입니다. 초보적인 진리는 초보적인 교리인데, 초보적인 신자에게 잘 이해가 되는 교리로서 젖으로 먹이는 것입니다. 아기는 나오자마자 젖을 먹습니다. 이가 없어도 되고, 다른 거 없어도 젖은 먹을 수 있습니다. 먹기 쉽습니다. 초보신자에게는 선지자들이 단단한 식물을 줘도 못 먹으니까 초보적인 것만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 “믿으면 된다”라는 것들인데,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도 ‘예수님을 믿으면 된다’라는 것까지만 주는 것입니다. 

세상 얘기하고, 과학과 정치 얘기를 하고 ‘믿으면 된다’까지만 하는 것이 초보적인 진리 입니다. 그런 것이 젖을 먹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천문학, 지리학을 말해도, 그 내용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는다’ 그것 까지만 하는 것은 젖을 먹는 것입니다. 요즘 신자들이 다 육신에 속해있기 때문에 말씀을 맛있게 해서 먹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좋다고 먹습니다. 하지만 자라나지는 못하고 육신에 속한 성도가 됩니다. 

단단한 식물은 깊은 진리임

단단한 식물은 무엇인가? 단단한 식물은 깊은 진리, 신령한 뜻이 단단한 식물입니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신구약 성경을 모두 젖으로 먹일 수도 있고, 신구약 성경을 단단한 식물로도 먹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백성이 모세의 인도를 받아서 광야를 통과한 것에 대해서 젖으로 먹이는 것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을 때에 유월절을 지키게 해서 유월절에 양 잡아먹고, 문설주에 피를 바르게 하고, 누룩 없는 떡을 먹게 하고 나왔다. 홍해바다 건넜다. 광야에서 물이 없을 때 물을 내서 먹었다. 먹을 것이 없을 때 만나로 먹였다”라고만 하는 것은 젖으로 먹이는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다’는 것만 말하는 것이 젖으로 먹는 것입니다. 

젖으로 먹는 것을 다 좋아합니다. 한번은 TV에서 모세에 대해 설명할 때에, 말씀을 젖으로 먹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를 낳았다. 갈대 사이에 있던 모세를 가져다가 공주가 길렀다. 자기어머니가 유모가됐다. 커서 바로에게 갔다”고 그대로 말하는 것이 젖으로 먹이는 것입니다. 젖으로 먹이니까 씹을 것도 소화할 것도 없이 꿀꺽 삼키기만 하면 됩니다. 

단단한 식물을 먼저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유월절에 양 잡아먹고,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고, 그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고 했는데,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다”라는 이것부터 내놓아야합니다. 고린도전서 5:7절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라고 하였는데 ‘유월절 양’은 예수님입니다. 

유월절 양을 잡아먹는다는 의미는 예수그리스도를 먹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자기 마음속 문설주에 바르는 것입니다 누룩 없는 떡은 죄 없는 예수님입니다. 누룩은 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몸은 죄 없는 몸이시고, 우리 성도는 누룩 없는 떡 덩어리로서 죄가 없이 한 덩어리가 되어야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또 출애굽과 홍해바다를 가르고 나온 이야기에서 ‘홍해바다’는 세상입니다. ‘애굽’도 세상인데, 세상을 지나서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수를 먹이시고 광야 길을 가게 한다는 뜻입니다.
‘만나’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신령한 양식이 되셔서 양식을 먹고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에서 불기둥은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이고,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인도를 말합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그 능력과 힘으로 나가야 합니다. 신령한 음료, 양식, 말씀의 인도, 성령의 인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로 나가야 합니다.

4. 장성한 자가 되는 법

힘써서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함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은 힘이 듭니다. 장성한 사람은 먹을 수 있으나, 어린아이들은 먹지 못합니다. 장성한 성도가 되기 위해 힘을 써야 합니다. 신구약 성경을 다 단단한 식물로 먹어야 합니다. 전체를 단단한 식물로 먹어야합니다. 그럴듯하게 말한다 해도 초보적인 진리로 먹이는 젖이 있습니다. 젖으로 먹이는 것은 여러 가지 세상의 철학과 과학 얘기를 다해도, 결과적으로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만 하는 초보적인 것으로만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육신중심, 향락주의, 오락주의, 방탕주의, 세상주의로 하는 것이 다 젖으로 먹이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자라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들이 자라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시고 탄식하십니다. 어린아이 때에는 젖을 먹고도 건강유지가 되지만 좀 자라나면 젖만 먹으면 안 됩니다. 6개월 뒤면 젖을 뗍니다. 그러고 나서 단단한 음식을 먹입니다. 이유식이나 밥이나 빵이나 먹입니다. 계속 젖만 먹이면 사람구실 못합니다. 20살 까지 젖만 먹으면 힘이 없습니다. 영양이 젖에 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라나면 장성한 자가 먹어야 할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자라나려면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자라난 사람은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건강이 유지됩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면 영양부족으로 가다가 힘이 없어서 쓰러집니다.

연단이 받아야 함

자라나려면 연단을 받아야합니다. 히브리서 5장 13-14절에 보면, “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연단을 받아야 자라난다고 했습니다. 연단을 받지 않으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시험이 들어오고, 십자가가 오고, 환난과 핍박이 오고, 갈 길이 막히고 어려운 일을 당하는 거기서 말씀을 끝까지 붙잡아야 합니다. 성령과 말씀의 인도를 끝까지 따라가려면 십자가가 오는데 승리로 통과하면 그것이 연단이 됩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연단이 안 됩니다. 우리가 ‘풀무에 연단한 은이나 금’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연단 되지 못한 것은 못씁니다. 

성도를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려고 연단을 시키십니다. 연단을 받지 못해서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어린아이인데 연단을 받아야 자라납니다. 성도가 육신중심에서 떠나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만 따라가면 환난과 핍박과 시험이 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가 핍박을 받고, 사람들이 욕하고 비방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시험과 연단이 옵니다. 그러나 말씀 안 따라가면 연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실 때에 인도를 끝까지 따라 가면 시험이 오고, 십자가가 오고, 연단이 옵니다. 이러한 연단이 있어야 자라나는 것입니다. 연단이 없으면 못 자라납니다. 성도가 자라나려면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하고,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연단 많이 받은 성도가 자라납니다. 

말씀을 많이 따라가고, 성령의 인도를 많이 따라가고, 연단을 많이 받고 환난을 많이 받은 성도가 자라납니다. 연단을 받을 때에 믿음과 승리로 통과해야합니다. 환난 핍박 시험이 올 때에 승리로 통과해야합니다. 실패하면 안 됩니다. 끝까지 양보하지 말고 끝까지 주의 인도를 따라가고,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고,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손해가 나고 쫓겨나도 따라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안 맞으려 하면 말씀을 못 따라갑니다. 말씀 따라가면 때리고 안 따라가면 안 때린다고 할 때에, 매 안 맞으려고 말씀 안 따라가면 연단 못 받습니다. 말씀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직장에서 말씀 따라가다가 손해 볼 때 많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따라가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더라도 끝까지 말씀대로 나아가면 자기에게 연단이 됩니다.
귀하게 쓸 수 있을 만큼 많이 자라납니다. 요셉이 감옥을 통해 많이 자라났습니다. 2년 동안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서 있었습니다. 아라비아 3년은 바울의 신학교이고, 애굽 감옥의 2년은 요셉의 신학교라 할 만큼 연단을 통해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말씀만 따라가는 것을 안 하면 시험이 없습니다. 양보하면 시험이 없고, 시험이 없으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연단이 없으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단단한 식물의 말씀을 들어도 모릅니다. 젖이나 먹으면서 꿀꺽 삼키면 단단한 식물은 자기와 상관이 없게 됩니다.

5. 연단의 유익

연단 중에 선악을 분변하는 자가 됨

연단을 받으면 의의 말씀을 경험하며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 됩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며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것은 옳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에 경험하고, 시험과 환난이 와도 끝까지 따라가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의의 말씀에 대한 경험이 생기고 자라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주시므로 말씀대로만 따라가면 된다는 것에 대한 경험이 생긴 것입니다.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했는데, 선악을 분변하는 분별력이 생깁니다. 자라난 사람은 분별력이 나오고, 자라나지 않은 자들은 분별력이 없습니다. 이것인지 저것인지, 자라난 사람은 보면 압니다. ‘선이다. 악이다’, ‘진리다. 비 진리다’, ‘이건 하나님의 뜻이다. 아니다’ 분별력이 생깁니다. 자라나지 않은 자들은 분별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기중심이고, 육신적이고, 세상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다 내버리고 자기중심으로 나가면서, 말씀은 떠나고 물질중심, 세상중심으로 떠났기 때문입니다. 

말씀중심으로 나가야 하나님께서 살려주십니다. 말씀만 따라오는 자를 하나님은 굶기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을 따라가는 엘리야를 살리셨습니다. ‘까마귀가 울면 좋지 않고 까치가 울면 좋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성경에 보니까 까치보다 까마귀가 낫습니다. 까마귀가 엘리야에게 떡과 물을 물어다 주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한번 쓰셔서 엘리야를 살렸기 때문에 저는 까마귀를 좋아합니다. 저는 잣나무도 좋아합니다. 노아가 잣나무로 방주를 지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가 되는 것은 말씀 따라가지 않아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험이 들어올 때 양보하는 사람은 경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생명 내놓고 따라가야 합니다. ‘욕하면 먹자, 때리면 맞자, 죽이면 죽자’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따라가면 경험이 생깁니다. 말씀 따라가니까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보호해주시고, 약속대로 모든 것을 해주십니다.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라 했는데 분별력이 생깁니다. 이것이 사는 길인지 죽는 길인지, 이게 마귀시험인지 마귀시험이 아닌지, 성령의 인도인지 아닌지에 대한 분별력이 생깁니다. 분별력이 생기면 말씀을 더 잘 따라 나갑니다. 더 신령한 세계로 들어가고, 육신의 것을 버리고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면서 더 장성한 성도가 됩니다. 점점 더 자라나서 예수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자라난 자는 하늘나라에서 큰 자로 영원히 남음

그렇게 자라나면 하늘나라에 가서도 큰 자가 됩니다. 하늘나라에는 큰 자가 있고, 작은 자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5:19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늘나라에도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는데, 하늘나라에 가서는 큰 자는 큰 자대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어린아이로 간 자는 어린아이대로 영원히 삽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어!, 어!’ 하면서 좋아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일 것입니다. 자라난 사람은 다 압니다.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도 장성한 사람은 세상의 것들을 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좋아는 하지만 사용하지는 못합니다. 

하늘나라에 갔을 때에, 장성한 사람은 큰 자가 되어서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큰 자입니다. 영원히 큰 자입니다. 영원히 자라난 자입니다. 자라나지 못한 자는 어린아이처럼 있다가 분별하지 못하고, 시험이나 당하고, 마지막에는 말씀대로 못해서 마귀에게 손해당하고, 세상에서도 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당에 가긴 가는데 어린아이인 상태 그대로 갑니다. 세상에서도 세상 따라가고 마귀 따라가면 망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기고, 육신에서 떠나서 신령한 성도가 되어
날마다 자라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