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9일 목요일

고린도전서 2:1-16 성령으로 전도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고 신령한 것을 분별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성령으로 전도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고 신령한 것을 분별하라
고린도전서 2:1-16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4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5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7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오직 하나님이 성령
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11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15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 말과 지혜의 훌륭한 것으로 하지 않았다. 

2:2 나는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2:3 내가 너희에게 갔을 때, 나는 약하였고 두려워하였으며 몹시 떨었다. 

2:4 나의 말과 나의 선포는 지혜의 설득력 있는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과 능력의 나타나심으로 한 것이니, 

2:5 이는 너희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가운데서는 지혜를 말하니, 이 지혜는 이 시대의 지혜도 아니고, 또 이 시대에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다. 

2:7 오직 우리가 말하는 것은 비밀 속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지혜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영원 전에 미리 정하신 지혜이다. 

2:8 이 시대의 통치자들 가운데 아무도 이 지혜를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다. 

2:9 기록되어 있기를 "눈으로 보지 못하였고, 귀로 듣지 못하였고, 사람의 마음에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여 주셨다." 라고 하였다. 

2:10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셨으니, 성령께서는 모든 것, 심지어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통찰하신다. 

2:11 사람 속에 있는 사람의 영 외에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겠느냐?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알지 못한다. 

2:12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2:13 우리가 그것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말로 하지 않고, 다만 성령께서 가르치신 말씀으로 하니, 곧 영적인 것을 영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며, 이해할 수도 없으니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이다. 

2:15 영적인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지만,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 

2: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서 주님을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1. 성령과 능력으로 십자가의 도만 전함

본문 1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지혜로운 말, 아름다운 말로 아니했습니다.

본문 2절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갈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고린도에 갔습니다. 사도행전 17:18에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쌔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헬라에서는 철학적인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전도 결과는 몇 사람 밖에 믿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로 넘어 갈 때는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로 작정하고 갔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십자가만 전해야 합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지혜로운 말, 아름다운 말, 논리적인 말로 전도하였을 때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때에 십자가만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3절에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십자가만 나타내려고 떨었습니다. 즉 사람의 아름다운 말, 지혜로운 말이 나올까봐 심히 떨었습니다.

본문 4-5절에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전도할 때는 아름다운 말로 하지 아니 하려고 힘을 썼습니다. 인간의 방법, 인간의 모든 것이 나올까봐 심히 떨면서 전도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전도 하려고 떨었습니다.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하려고 심히 떨면서 나갔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나타남이란 성령을 힘입어 성령의 역사로 전했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한다”는 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 능력의 역사로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지혜는 성령으로 알게 됨

세상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본문 6절에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세상지혜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바울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어떻게 받습니까?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 지혜와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는 것임

하나님의 지혜를 받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혜를 받습니다. “믿습니다”하면 하나님의 지혜를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도성인신해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대신해서 신구약 성경을 다 순종해 주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고,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서 주셨습니다”라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피 흘려 죽으신 것, 또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 재림, 천국을 “믿습니다”하면 하나님의 지혜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연구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생깁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만세 전에 감추었던 것인데, 하나님의 때가 되었으므로 “믿습니다” 하면 하나님의 지혜가 옵니다.

본문 9절에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과 영광에 참여하는 일들인데, 이것들은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듣지 못하고, 인간의 지혜로 연구해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알 수 있습니다.

주일에 교역자가 강단에서 설교할 때에 구속의 도리가 들어가야 합니다. 매 시간 안들어 가도, 여러 번 강도를 하면 한번은 들어가야 합니다. 즉 몇 시간에 한번은 반드시 구속의 도리가 들어가야 합니다.
마태복음을 보아도 구속의 도리가 들어갔습니다. 1장은 족보장인데 거기도 구속의 도리가 들어갔습니다. 임마누엘이 나옵니다. 2장은 동방박사가 예수님 찾아가 경배한 것. 3장은 세례요한이 예수님 증거 한 것. 4장은 시험. 5장은 팔복. 6장은 구제와 외식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 7장은 정로, 구제, 주기도. 8장은 백부장의 신앙. 9장은 마태를 부름. 10장은 열두 제자를 불러서 세우는 것. 11장은 세례요한의 질문과 문답. 12장은 안식일의 주인. 13장은 여러 가지 비유로 비유 가운데 보배, 고기 잡는 비유. 14장은 오병이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생명의 양식으로 준다는 것. 15장은 가나안 여인의 신앙. 16장은 시대를 분별하라. 17장은 변화산. 18장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 19장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 20장은 포도원 비유. 21장은 예수님이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 입성. 22장은 혼인잔치. 23장은 일곱 가지 화. 24장은 말세. 25장은 열 처녀 비유. 26장은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27장은 십자가와 구속. 28장은 부활로 구속의 도리가 매 장마다 다 들어가 있습니다. 구속의 도리가 들어가야 생명이 살 수 있습니다.

말씀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는 것임

본문 10-11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다고 하더라도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는 것을 예비하셨는데 그것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연구해서 받는다고 하면 연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받을 수 없습니다. 큰 복을 예비해 놓았는데 그 복을 받는 방법은 “믿습니다”입니다. 성경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다 받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학자들이 찾지 못하고, 연구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예비해 놓았는데 “믿습니다”하면 그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는 것임

또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하나님의 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 지혜대로 하면 실패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성령께서 가라고 하면 가고, 앉으라고 하면 앉고, 서라고 하면 서야 합니다. 성령께서 하라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봉사하라고 하면 봉사하고, 개척교회 하라고 하면 개척교회 하고, 선교사 가라고 하면 선교사로 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데, 사람이 자기 꾀로 가다간 제 꾀에 자기가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꾀와 지혜를 버려야 합니다. 무조건 성령의 인도대로 가라하면 가는 것입니다. 따라오라고 하면 따라가면 됩니다. 그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고기를 많이 잡았어도 따라 오라고 하면 따라 가는 것입니다. 고기를 팔면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어도 그것을 다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재물과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다 버리고 따라갔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셨을 때에 따라가는 게 중요한 겁니다. 자기 고집대로, 자기 유익을 위해 수단 방법을 써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고 나가다가는 마지막에는 크게 상합니다.

히브리서 12장에 사랑하는 자에게 징계가 온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30에는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자는 자는 죽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것을 가득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을 믿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오라고 하면 오고, 떠나라고 하면 떠나야 합니다. 십자가를 각오하고 따라가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하신 모든 것을 가득 채워서 다 주십니다. 얼마나 예비했을까요? 인간이 측량하지 못할만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좋은 것, 영원한 것, 신령한 것 등 세상 어느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순종 해야 합니다. 자기 고집대로 하면 안됩니다. 성령이 감동시키실 때에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하라고 할 때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것이 가득한데 그것을 성령의 인도를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3. 신령한 것을 분별하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분별할 수 있음

본문 12절에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습니다. 성도가 예수를 믿을 때에 보혜사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 성령이 언제나 성도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깨어 기도하므로 성령의 인도와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신령한 것을 분별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신령한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본문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분변함이니라”고 하였는데,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세상 것과 명예, 영광심을 다 내버리고 성령의 인도에 순종만 하면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을 다 주십니다. 제가 기도하러 산에 갔는데 어느 교회에서 수련회를 온 모양입니다. 하루 저녁은 캠프파이어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캠프파이어는 어떻게 하냐?고 하니까 장작에 불을 놓고 빙 둘러 앉아서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 천막 치고 기도하니까 여기서 하지 말고 이 산 하나 넘어가면 조용한 곳이 있으니까 거기 가서 하라”고 하였더니, 이 사람들이 말을 안 듣습니다. 말을 안 듣고 조금 내려가서 밤 열두시 사십분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예배드리려고 온 것이 아니고 놀러온 것입니다. 천막 사다 치고, 먹을 것 사다 먹이며, 상당히 비용을 많이 썼으나 결국은 놀러 온 것입니다. 예배는 그저 부속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성경 공부하는 것이 주력이고, 노라리는 부속입니다. 교회마다 이것이 다릅니다. 여름이면 여러 교회들이 수련회 갑니다. 이 교회도 가고, 저 교회도 가고, 우리 교회도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엇이 주력이냐?가 문제입니다. 노라리가 주력이냐? 예배가 주력이냐? 즉 성경 말씀 배우는 것이 주력이냐?가 문제입니다. 어느 것이 좋겠습니까? 예배드리고, 성경 보고, 교리 공부하는 것이 주력이고, 그 다음에 노라리는 부속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그렇게 하는데 아이들이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재미가 없어서 수련회에 못 간다는 겁니다. 다른 곳에 가면 재미가 많기 때문에 가지 말래도 가는 것입니다. 먹고, 놀고, 남녀가 짝을 지어가지고 돌아가면 재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전에 남녀 학생들이 배 타고 가다 가 배가 전복되어서 다 빠져 죽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 학생들이, 또 어디 기도하러 가자고 하니까 이젠 여학생들이 빠져 죽어서 재미가 없어서 안 간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무슨 수련회 하러가는 것입니까? 여학생들하고 놀러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주력이냐?가 중요합니다. 결국은 하나는 넓은 길이고, 하나는 좁은 길입니다. 즉 하나는 육신의 즐거운 길이고, 하나는 육신을 때려잡는 길입니다. 즉 영이 즐거운 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는 육신을 때려잡는 길이고, 하나는 영의 길을 걸어 가는 것이므로 우리는 좁은 길로 가자는 것입니다.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즉 영의 길을 걷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저 육신의 오락, 육신의 사교, 육신의 사랑을 좇아가려고 합니다. 어떤 교회는 사랑이 쩔쩔 넘친다고 합니다. 무슨 사랑이 넘치는가? 알아보면 그것은 전부 육신의 사랑입니다. 육신의 사랑이 쩔쩔 넘치는 것입니다. 육신의 사랑이 쩔쩔 넘치다가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육신의 사랑이 쩔쩔 넘치면 결국엔 영적 면은 빼빼 마릅니다. 영과 육은 언제나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판단을 받지 않음

본문 15절에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자는 영의 눈이 떠졌으므로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영의 눈이 뜨지 못한 자들은 신령한 자를 바로 판단치 못합니다. 신령한 자는 하나님이 영의 눈을 뜨게 해서 살 길, 죽을 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다 알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친구, 불신 부모 등, 영의 눈을 뜨지 못한 사람들한테는 물어보지 말
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가서 판단 받지 말아야 합니다.
판단은 신령한 자에게 받아야 합니다. 영의 눈을 뜬 사람에게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소경에게 가서 색깔을 물어보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신앙으로 판단하지 말고, 성경을 떠나서 판단하지 말고, 성경대로, 성령의 인도대로 판단해서 바로 가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고 그대로 순종하면,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에 쌓아놓은 모든 복을 받습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바로 안다는 말입니다. 또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즉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신령한 길을 걷는 것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신령한 길을 걷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으므로 모든 것을 바로 판단합니다. 신령한 눈이 떠졌으므로 영적 세계를 먼저 보고 다른 것을 보므로, 모든 것을 바로 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영적 눈이 감겼으므로 신령한 자가 하나님의 세계를 보고 들을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신령한 자는 영적 눈이 떠진 사람입니다. 영적 눈을 뜨고 보면 신령한 세계도 보이고, 세상도 바로 보입니다. 사람도 바로 보입니다. 그러나 영적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바로 보지 못합니다. 세상만 보고, 육신만 보고, 한 편만 보기 때문에 바로 못 보는 것입니다. 영적 면하고 합해서 보아야 바로 보이지, 영하고 합하지 못하고 육신만 보면 바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성도라고 합시다. 성도들을 육신만 보면 게달의 장막과 같이 한심한 것들이 모인 것처럼 보입니다. 즉 육신으로 보면 “화장도 하지 아니하고 어디서 꾀죄죄한 것들만 모였구나, 그것들 보기 싫어서 예배당 나갈 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을 뜬 사람이 보면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고,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들이고, 하나님 앞에 보배들입니다. 신령한 눈을 떠서 보면 성도가 하나님 앞에 아주 존귀하고, 보배로운 성도들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시므로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성도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모임이 제일 아름답고, 그 모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또 성도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아주 존귀하며 거룩합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만드셨습니다. 또 중생한 영이 살아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의 눈으로 보면 성도는 아주 아름다운 것이고, 아주 귀한 것입니다. 영의 눈으로 보면 게달의 장막 같은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아름답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 것 아닙니까? 육신으로만 보면 성도가 무엇입니까? 게달의 장막입니다. 즉 무식쟁이들로 보이고 보잘 것 없는 자들로 보입니다.

이것은 바로 못 본 것이 아닙니까? 신령한 눈이 떠진 자가 모든 것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영의 눈이 떠져서 영적 면을 보고, 그 다음에 모든 사물을 바라보아야 바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세상만 바라보므로 바로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바로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라

본문 16절에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는데, 이 지혜는 신령한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십자가의 구속,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 셋째는 성령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성도는 좀 더 많이 구속의 진리에 대해서 깊이 깨달아야 됩니다. 좀 더 성경 말씀을 많이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무궁무진한데, 이 신령한 도리를 많이 받고, 많이 배우는 그 세계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령의 인도를 온전히 받고, 성령의 감화를 소멸하지 말며, 성령의 인도만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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