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와 복음의 직분
고린도후서 3:1-18
고린도후서 3:1-18
1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바라 3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4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6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7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12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것 같이 아니하노라 14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17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8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 예수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편지
본문 1절에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도가 되었다는 추천서를 너희에게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는 신앙적으로 깊은 관계에 있기 때문에 추천서 같은 것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즉, 사도 바울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것입니다. 즉 전도한 사람으로 인하여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말입니다.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십계명은 돌비에 썼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편지는 돌비에 쓴 것이 아니고 육의 심비에 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의 내용
편지의 내용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죽었던 영혼이 살아났다는 것, 또 믿으면 죄 사함 받고,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다 그리스도의 편지 내용입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편지인데, 편지가 가는 곳 마다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읽고 압니다. 이 사람은 그리스도의 편지로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편지에 써서 보내 주신 것이다, 그 말씀대로 하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는다, 또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권세를 얻는다”라는 것을 압니다. 쓰기는 전도한 사람이 쓴 것입니다. 즉 오늘날 우리에게는 성경 말씀을 가르쳐 준 사람이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본문은 그리스도의 편지인 동시에 사도 바울의 편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는 다른 사람이 보고 읽습니다. “저 사람은 그리스도의 편지이다, 예수를 믿으면 하늘나라에 간다, 죄 사함을 받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가진다, 슬프고 낙심되는 일 가운데에서도 기쁘고 즐거움이 된다, 죽을 지경에 빠졌을지라도 사는 길이 있다”는 편지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2장에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였습니다. 가는 곳 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는 편지입니
다. 그저 종이에 쓴 것이 아닙니다.
2. 그리스도의 편지로 사는 법
바른 진리를 전하고, 바른 진리대로 행하고, 예수님을 본받아 가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됩니다. 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편지를 보내서 다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편지에 무엇이 묻어서 글자가 잘 안보이면 안 됩니다. 더러운 것이 묻어서 글자가 안보이면 안 됩니다. 묻은 것을 잘 닦아 내어야 합니다. 육체의 더러운 썩어져 냄새나는 것을 늘 회개하여 정결하고 깨끗한 심령이 되어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다른 사람이 보고 다 읽고 잘 알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에 더러운 것이 묻어서 글자가 안 보이도록 하면 그리스도의 편지이긴 편지인데 효과가 없습니다. 욕심, 시기, 분쟁, 원수 맺고 돌아가면 그리스도의 편지로 효과가 없습니다.
우리 창광교회에 처음 나온 신자를 내 쫒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내 쫒았는지 압니까? 처음 교회 나온 신자가 앞자리 의자에 앉았는데, 늦게 교회 온 창광교회 교인이 내 자리라고 비키라고 해서 다른 자리로 가서 앉았는데, 그 자리에도 뒤에 온 교인이 또 내 자리라고 비키라고 하여, 처음 나온 신자가 무슨 이런 교회가 다 있냐? 하며 다른 교회로 가고 말았습니다. 내 자리가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벌써 썩은 냄새를 피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에 자기 사진 갖다 붙
여 놓고 다른 사람이 읽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희생하고, 봉사하고, 자기는 보이지 않고, 그리스도만 보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그리스도의 편지 노릇을 잘 할 수 있습니다.
3.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음
본문 4-5절에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사도 바울의 편지이긴 하지만 그것은 바울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바울적인 진리가 있고, 베드로에게는 베드로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득구(以信得救)”를 강조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소망의 사도이고, 사도요한은 사랑의 사도입니다. 요한은 요한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날에도 편지 쓴 사람의 요소가 있습니다. 즉 장로교는 칼빈적이 요소가 있고, 감리교나 성결교는 알미니안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칼빈적인 요소는 인간의 전적부패,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적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궁극적 구원입니다. 칼빈적인 요소를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입니다. 알미니안적인 요소, 즉 감리교나 성결교는 자유의지, 즉 자기가 믿으면 천국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지옥가고 천국 가는 것이 자기에게 달렸습니다. 믿으면 천국가고, 안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 칼빈적인 요소는 대속하신 은혜를 배반하고 자기의 길로 갈지라도 강제로 돌려서라도 하나님 앞으로 다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칼빈적인 요소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일입니다. 즉 자라나는 것, 만들어 지는 것, 성경말씀을 혼잡케 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인본주의를 섞지 않습니다.
4. 복음의 직분은 영으로 된 것임
의문은 죽이는 것임
본문 6절에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새 언약은 신약입니다.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란 사도 바울이 복음의 일꾼이 된 것은 외부적인 의문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영의 직분을 맡기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 하였는데, “소를 잡아 제사하라, 유월절을 지키라, 할례를 받아라”는 등의 구약의 모든 의문과 제도는 죽이는 것이고, 살리는 것은 영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의문적 요소를 가지고는 살리지 못합니다. 로마서 4:15에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밖에 쌓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대로 다 못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20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하였고, 5:20에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9:9에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섬기는 자를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즉 구약의 의문으로 온전케 하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저주 밖에 받을 것이 없습니다. 율법은 온갖 것을 행하지 않으면 저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의문의 직분, 즉 율법의 의식적인 직분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은 살리는 것임
우리가 새 언약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즉 신약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일꾼은 교역자, 전도자 등 전도하는 교인들이 다 일꾼입니다. 즉 새 언약의 일꾼들입니다. 전도하면 일꾼들이 되는 것입니다. 전도했습니까? 그러면 새 언약의 일꾼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의문으로 하지 않고 영으로 했습니다. 성령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중생한 영을 성령으로 감동시켜서 새 언약의 일꾼으로 삼았습니다.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몽학선생이요, 껍데기입니다. 구약에 소나 양을 잡아 제사하는 것이 다 의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영은 말하지 않고 외부적인 의식만 말하게 되면 그것은 영을 죽이는 것입니다. 살릴 수가 없습니다. 율법의 제사로는 너희를 온전케 할 수 없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저주 밖에 받을 것이 없습니다.
영은 살린다는 것은 성령께서 복음을 가지고 우리의 영혼을 살려 놓았고, 영이 산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우리의 영혼을 살리셨고 성령께서 늘 같이 하시므로, 나가서 이 복음을 전하면 다른 사람을 살려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문만 가지고 나가면 그것은 껍데기이기 때문에 영을 죽이는 것입니다. 의문에 내포해 있는 영적 진리가 있습니다. 이 진리를 버리고 의식만 가지고 나가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유월절 양을 잡는다” 하면 그것은 의문입니다. 양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영적 진리가 있습니다. 즉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신다는 영적 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소나 양을 잡아 제사하면 되는 줄 알았지, 그리스도가 오셔서 유월절 양으로 피를 흘려주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모세와 같이 혹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모르고 의식을 지킨 것입니다.
5. 복음의 직분의 영광
영의 직분이 의문의 직분보다 영광이 큼
본문 7-8절에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았는데, 그 십계명을 모세가 가지고 내려올 때에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서 다른 사람들이 감히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다시 하나님께 들어 갈 때에는 수건을 벗고 들어갔습니다. 나와서는 얼굴에 광채가 나므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율법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면 돌에 써서 새긴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는데, 즉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는데,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않겠습니까? 성령께서 우리 중생한 영을 감동시켜서 하는 영의 직분이야 말로 얼마나 더욱 영광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본문 10절에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더 큰 영광이 온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광을 말합니다.
영의 직분의 영광은 영원히 있음
본문 11절에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 율법에 나타난 영광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영의 직분은 없어질 것이 아니고 길이 있습니다. 항상 빛나고 더욱 빛나는 영원히 빛나는 영의 직분입니다.
본문 12-14절에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받아 가지고 올 때에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은 너무 광체가 나니까 모세의 얼굴을 바라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율법을 반포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너무 얼굴에 광채가 나니까 다른 사람들이 얼굴을 쳐다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수건으로 가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세 얼굴의 광채는 차차 없어질 것인데 광채가 차차 없어지면 백성들이 따라오겠습니까? 그러므로 율법의 광채가 차차 없어지는 것을 백성들에게 안 보이려고 모세가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모세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은 좋은데 차차 광채가 없어지는 것을 보고 백성들이 “그것 별것 아니구나”하면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좋아하며 따라오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모세가 얼굴을 수건으로 가린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이 완고하여 구약을 읽을 때에 수건이 벗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수건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으면 모세 율법의 광채가 없어질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주께로 돌아가면 모세 율법의 광채는 없어짐
본문 15-16절에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로 돌아가서 예수를 믿으면 구약의 광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예수를 믿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구약의 의식은 효과가 없게 됩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구약의 세력이 강했는데 예수를 믿으니까 구약의 의식은 차차 없어집니다. 그러나 거기에 내포해 있는 영적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약 시대에 계속 됩니다.
6.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음
구약의 광채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없어짐
본문 17-18절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구약의 광채가 임시로 났다가 없어질 것임을 분명히 압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구약의 광채가 영원히 갈 줄 압니다. 그러면 신약시대에 구약이 필요없는가? 신약시대에도 구약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필요한가 하면 구약의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이 없으면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라고 하였는데, 수건을 쓰고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수건을 쓰고 있지 말라는 것은 구약의 광채가 계속 나갈 줄 알고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광채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수건을 쓰고 있지 말라는 것은 구약의 광채가 계속 나갈 줄 알고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광채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자유함이 있음
주의 영을 받은 사람은 영의 자유,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 생명의 자유함이 있습니다. 누가 제제하지 못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고 중생한 영으로 사는 사람은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라는 것은 영의 자유인데 영의 자유대로 할 권리가 있습니다. 영의 자유를 막을 자가 없습니다. 영의 자유가 막히면 죽습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는데, 자유의 법을 따라서 우리가 나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제재를 하여도 영의 자유를 따라서 “나는 교회에 간다, 하나님 앞으로 나간다, 하나님의 인도대로 나간다, 전도한다, 선교사로 나간다”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자유함이 있습니다. 그 자유대로 나가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시에 예수님과 같은 형상으로 화함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란 예수님과 같은 형상으로 화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2-3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영광이 충만한 형상, 즉 예수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서 우리도 예수님의 얼굴과 같은 영광의 얼굴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깨끗함과 같이 자기도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형상과 같은 영광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조금 깨끗케 된 사람, 많이 깨끗케 된 사람, 이제 시작하는 사람, 깨끗에서 깨끗으로 계속 나가서 깨끗이 많이 자라난 사람 등 자라난 것만큼 영광이 다릅니다. 즉 부활체의 영광이 다릅니다.
고린도전서 15:41에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 몸의 영광과 부활체의 몸의 영광이 다르다는 뜻이 있고, 또 한 가지는 부활체간에 영광이 다르다는 뜻이 있습니다. 자기를 많이 만들어 나간 사람, 더러운 것을 다 제거하고,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다 깨끗이 잘라버리고, 예수님을 많이 닮아 간 사람은 영광이 큽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주를 위해서 희생당하고, 고난당하고, 매를 많이 맞으며 형편없는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까? 그러므로 그 영광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예수님을 위해서 매 한 대도 맞지 않고 살았던 사람은 바울에 비하면 어림도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위해서 매를 맞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쫓겨나고, 핍박받고, 멸시당하고, 고난 받고,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핍박당하고, 주일에 시험치지 않아서 직장을 얻지 못하는 것 등의 고난이 다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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