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4일 화요일

갈라디아서 3:1-4 뒤로 돌아가지 말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뒤로 돌아가지 말라
갈라디아서 3:1-4

1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3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3:1 오,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의 눈앞에 밝히 드러나 있는데 누가 너희를 미혹하였느냐? 

3:2 나는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고 싶다. 너희가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았느냐, 아니면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느냐? 

3:3 너희가 그렇게도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려 하느냐? 

3: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것들을 헛되이 경험하였단 말이냐? 정말로 헛된 일이었느냐? 


1. 바울의 책망
갈라디아 교회가 십자가를 따라가다가 율법으로 돌아섬

본문 1절에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어리석도다” 하며 책망을 했습니다. 또 3절에는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하며 책망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성도의 눈 앞에 밝히 보입니다. 십자가만 바라보는 생활, 그리고 십자가의 도를 걷는 생활이 믿는 사람들의 생활입니다. 이렇게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가다가 다른 것을 바라보면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또 그것은 꾀임에 빠지는 것입니다. 십자가 하나만 바라 보아야지 다른 것을 바라보는 자는 미혹받은 것이고, 어리석은 가운데 빠진 것이고, 육체로 기울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바라보는 생활, 십자가만 자랑하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2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만 알기로 작정을 했다는 말입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또 갈라디아 6:14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것이 바울의 신앙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다가 다른 것을 바라보면 그것은 꾀임에 빠지는 것이고, 그게 어리석은 자입니다. 또 육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뭘 바라 보아야 합니까? 십자가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만 따라가다가 율법으로 돌아섰습니다. 즉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어 보려고 할례를 받았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전에는 십자가만 바라보고, 십자가로만 구원받고, 십자가만 자랑하고 나갔는데, 이제는 율법을 바라보고,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것이고, 꾀임에 빠진 것입니다.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가다가 사람의 행위로 구원 받으려고 하는 것이 어리석은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구원받는 것이지, 사람의 행위로 구원 받는 게 아닙니다. 또 여기 가야 구원 받는다, 저기 가야 구원받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미혹입니다

구원은 십자가에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만 따라가야 되고, 십자가만 자랑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23-24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고 하였는데, 여기 가야 된다, 저기 가야 된다는 것 등이 다 잘못된 거라는 것입니다. 요새 미혹하는 사람들이 “여기 가야 된다, 저기 가야 된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할렐루야 기도원에 가야 된다, 또 어디 가야 된다”는 등,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늘나라에 전권대사인데, 그 전권대사가 하늘나라에 가게 해주면 가고, 못 가게 하면 못 간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인 떼는 사람, 흰 돌, 동방에서 나온 의인 등 별별 사람이 많이 나왔습니다. 또 자기가 예수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전부 다 옳지 않습니다. 오직 십자가만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따라가야 됩니다. 십자가에만 구원이 있지, 어떤 사람에게 가야 구원받는다, 어떤 장소에 가야 된다는 것 등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고, 십자가 외에는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바라보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미혹을 받는 자입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침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란 “믿음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는 말과 같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시작을 합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육체로 돌아갑니다. 베드로는 세상 물결을 바라보다가 빠졌고(마 14:30),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했습니다(딤후 4:10). 그것이 다 육체로 돌아간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10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라고 하였습니다. 또 제자들이 물고기 잡으러 간 것도 다 육체로 돌아간 것입니다(요21:3). 
이와 같이 믿음으로 나가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가다가, 예수님을 생명으로 삼고 나가다가, 성령으로 나가다가 육체로 돌아서는 사람이 많습니다. 즉 돈 따라가는 사람, 사람 따라가는 사람, 죄악의 길로 걷는 사람, 세상에 빠지는 사람 등 많이 있습니다. 또 학연, 혈연, 지연 등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다 육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만 바라보고, 다른 것은 바라보지 않아야 됩니다. 십자가 하나만 바라보고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육신의 것에 얽매이다 보면 신앙의 달음박질을 하지 못합니다. 즉 십자가만 바라보고 달음박질하다가, 여기 얽매이고 저기 얽매이고, 이것 바라보고 저것 바라보고 하다가는 달음박질을 하지 못하고, 발목이 잡혀서 점점 빠져들어 갑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왜 육체로 돌아서서 어리석은 생활을 하느냐?”고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즉 믿음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육체의 안일주의, 방탕, 향락주의 등으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술 끊었다가 다시 술 마시는 데로 돌아서고, 담배 끊었다가 다시 담배 피우는 데로 돌아서면 안 됩니다. 그것은 돼지가 씻었다가 다시 더러운 구렁텅이에 눕는 것과 같고, 개가 토했다가 다시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항상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나가야 됩니다.

갈라디아 5:19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육체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따라갈 때에는 이런 것들을 다 안 했는데, 이제는 육체로 돌아서니까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 등을 합니다. 갈라디아서 5:24-25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하였는데, 욕심을 버려야 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 보고 복장부터 고치라고 합니다. 욕심을 버려야 예수를 믿습니다. 야고보 1:15에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미국에 가니까 82세 되신 할아버지 한 분이, 나보고 “욕심이 잉태한즉 뭐를 낳는다고 성경에 있지 않느냐” 하시길래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니까, 그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다는 것입니다. 이 노인이 젊었을 때부터 예수를 믿었지만 성경을 많이 읽지 않고, 건달로 예수 믿은 것입니다, 즉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그저 예배당은 가끔 간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하늘나라 갈 때가 가까우니까 잘 믿어보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알아야 말이죠, 많이 읽지도 못하고 배우지도 못했으니까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지 못하고 있다가, 나를 만나니까 첫 마디가 욕심이 잉태한즉 무엇을 낳느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젊었을 때부터 배우는 것이 큰 복입니다. 젊었을 때에 성경을 배워야 기억하기도 좋지,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다 쇠퇴 합니다. 그러므로 기억력이 쇠퇴하기 전에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배워두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튼 욕심을 버려야 됩니다. 또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됩니다. 자기를 죽여야 예수님이 자기 속에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자기를 죽이지 않으면 예수님이 그 속에 들어와서 역사하시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낮아져야 합니다. 또 자기가 없어져야 됩니다. “나”라고 하는 게 나타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적이 됩니다. 언제나 내가 나타나지 않아야 합니다. 야고보서4:6에 교만한 자는 물리치신다고 하였습니다. 항상 겸손해서 나는 없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만 살아서 역사하는 자리에 있어야 됩니다.

2.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고,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은 것임

본문 2절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이란 갈라디아 교인들이 다 성령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믿음으로 받았느냐? 율법을 행함으로 받았느냐?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증거는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2: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지는 것은 성령으로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육신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한국 사람도 아니고 유대 사람이고, 또 현대 사람도 아니고 2000년 전 사람이고, 또 사형 받아서 죽은 사람입니다. 육신적으로 보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이 “나의 구주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시므로 나를 구원해 주셨다, 삼일 만에 살아나셨다, 승천하셨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은 육신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예수께서 우리의 구주 된 것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즉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았느냐? 또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았느냐? 한번 생각해 보면 안다는것입니다. 무엇으로 받았습니까?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고, 성령을 받았으므로 또 믿었는데, 어째서 율법의 행위로 돌아가려고 하느냐? 어째서 사람의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느냐?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으로 예수를 믿게
해 주셨는데, 이제 육신으로 돌아서면 안됩니다. 성령으로 예수를 믿게 했고, 성령으로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셨으므로,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가야 합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신으로 돌아서면 그것은 어리석은 자이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자이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일입니다. 육신으로 돌아서면 안 되겠습니다.

3. 육체로 마치는 15가지 죄

본문 3절에 “너희가 이렇게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육체로 마친다는 것은 갈라디아 5:19에 15가지의 육체의 일을 행하는 것이 육체로 마치는 것입니다. 첫째가 무엇입니까? 첫째 음행, 둘째 더러운 것, 셋째 호색, 넷째 우상 숭배, 다섯째 술수, 여섯째 원수 맺는 것, 일곱째 분쟁, 여덟째 시기, 아홉째 분내는 것, 열째 당 짓는 것, 열한째 분리, 열두째 이단, 열셋째 투기, 열넷째 술 취하는 것, 열다섯째 방탕입니다. 술 한잔 마시는 것 괜찮습니까? 술 취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석 잔은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취하는 것은 한 잔부터 취하는 줄 알아야 됩니다. 한 잔에 하나도 안 취하면 백 잔도 안 취하여야 하고, 만 잔도 안 취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술 취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한 잔 마시면 한 잔 마신만큼 취하는 것인 줄 알고, 한 잔부터 마시면 안 됩니다. 포도주는 괜찮습니까? 또 맥주는 괜찮습니까? 잠언 23:31에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라고 하였고, 또 32절에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주나 맥주를 마시면 안 됩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입니다. 또 분내는 것, 시기하는 것, 시기는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 사촌이 논과 밭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입니다. 또 싸우고 다투는 것, 방탕, 방종생활, 향락주의 등이 다 육체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에 기도 하지 않고, 쓸데없는 세상 노래 틀어놓고, 오랫동안 연속극보다가 새벽 기도도 못나오는 것도 육체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또 성경을 매일 읽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5-9에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직무를 다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로 기울어지지 말고, 선한 싸움을 잘 싸워야겠습니다.

4. 과거 환란 속에서 믿음 지킨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말라

본문 4절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갈라디아 교인들이 믿음을 지키느라고 환난과 핍박, 궁핍 등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왜 그 신앙 내어 버리고 육체로 돌아가느냐는 것입니다. 과거에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걸으며, 환난과 궁핍을 달게 받으면서 많은 환난 속에서도 믿음 지키려고 애쓰고 나가던 그 신앙이 어디 갔느냐는 것입니다. 과거의 고난이 헛되느냐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믿음을
지키려고 환난을 많이 받으면서 좁은 길을 걸어갔습니다. 성경 한 말씀 지키려고 생명을 내놓고 나갔습니다. 또 말씀 한 마디 지키기 위해서 죽을 각오를 하고 나갔습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지키려고 고난을 받으면서 나갔는데, 이제 와서 육신으로 돌아선다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과거를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과거에 어떻게 믿었느냐? 과거에 어떻게 진리를 받고 기뻐하였으며, 이 진리를 지키느라고 얼마나 고난을 많이 받고, 핍박을 많이 받았는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믿음 지키려고 좋은 직장이 있어도 안가고, 고난을 받으면서 생명 길을 걸으려고 하던 그 신앙을 왜 다 버리고 육신 중심으로 나가느냐는 것입니다.

요새 미국 사람들이 육신 중심으로 다 기울어졌습니다. 과거에 조상들이 많은 환난과 고난을 받으면서 믿음을 지켜 나갔는데, 요새는 다 향락주의로 기울어졌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기도원을 만들어 놓은 게 여러 곳이 있습니다. 시애틀에도 내가 아는 기도원이 세 곳입니다. 아마 10년이 넘었겠는데 내가 처음으로 시애틀에 갔을 때에 그 곳에 최용걸 목사님이라고 이북에서 나와 같이 피난 나오신 목사님인데, 나보다 연세가 좀 많습니다. 그 목사님이 시애틀에서 교회를 보셨는데 내가 거기를 찾아갔습니다. 가니까 기도원에 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송완규 장로에게 그 때는 집사였는데, 최 목사한테 가자고 하여, 자동차를 타고 한 시간 가서 또 배를 타고 들어갔습니다. 자동차가 배로 올라갑니다. 그 배를 타고 삼십분 가서 바다를 건넜습니다. 거기서 또 자동차로 한참 가니까 나무가 우거진 평야에 기도원이 있습니다. 옛날에 지어놓은 기도원인데, 그 곳에 가니까 최 목사님이 사모님과 기도하시고 계셨습니다. 그 분들은 아이가 없고 두 내외만 삽니다. 기도원에 가니까 한 곳에 밥 해먹는 방이 하나 있고, 침실이 있습니다. 여기 언제 오시냐고 하니까 월요일에 오셨다가 토요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월요일에 또 오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 목사님 상팔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최목사님도 자기가 상팔자라는 것입니다. “그것 참 아주 좋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시애틀에 가보니까 기도원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좋은 기도원이 폐지가 되었습니다.

또, 시애틀에서 한 시간 쯤 가면 기도원이 또 하나 있는데, 거기는 아주 아늑합니다. 쭉쭉 올라간 나무들이 많고, 백향목들도 많습니다. 그 기도원은 미국 사람이 운영하는 곳인데 기도원 사용료가 하루 7불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원에도 사람들이 이제 안 오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놀다 가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기도원 한 곳이 있는데 그곳은 한국 사람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몇 십억 들여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길도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기
도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어 폐지가 되었습니다. 교회도 점점 사람이 줄어들어서 예배당을 팝니다. 한국 사람은 그것을 사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 미국 사람들 교회를 많이 샀습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살기 좋아지니까 이제는 향락주의로 기울어졌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여름에 기도하러 가는 게 아니라 바닷가에 다 놀러갑니다. 그래서 교회도 방학한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는 한 달 방학하는 교회도 있고, 어떤 교회는 두 달 방학하는 교회도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 아닙니까? 한국 사람들도 이제 점점 살기가 좋아지니까 차차 육체로 기울어집니다. 과거에 기도하던 사람이 기도 안하고, 좁은 길 걷던 사람이 점점 넓은 길로 걷습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힘을 써야 됩니다. 우리는 시종일관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고,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가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가고, 전도인의 일을 하고, 고난을 받으며,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충성하다가 가야 됩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서 충성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세상일은 아무리해도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24-25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서 일한 것, 또 말씀대로 자기가 만들어진 것은 영원히 하늘나라에 가도 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제일 귀한 것입니다. 교역자 기르는 게 귀한 것이고, 신학교를 세우는 게 귀한 것이고, 교회를 세우는 게 아주 귀한 것입니다. 세상 일 아무리 하면 뭐하겠습니까? 세상 일은 다 지나가고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돈 벌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생각을 가져야겠습니다. 돈 벌어서 세상에 아무리 쌓아 놓아야 다 없어집니다. 좀이 먹고, 도적이 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한 것만 남습니다. 내가 아는 어느 분이 자기가 땅이 한 만평 있는데 전부 다 팔면 약 30억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가만 두지 말고 한 절반 팔라고 했습니다. 절반 팔면 15억은 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사용하면 하늘나라에 영원히 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게 제일 귀한 것입니다. 교역자 기르는 것, 나가서 전도하는 일, 교회 세우는 일, 신학교 세우는 일, 선교사 보내는 일 등이 귀한 것입니다. 이것 하다 하나님께 가야 됩니다. 성령으로 시작 했다가 성령으로 마쳐야지, 육체로 마치면 뭘 합니까? 그러므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고, 또 자기가 전도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므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지 말고,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생명을 바쳐놓고, 육체를 따라가지 말고,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 십자가만 바라보며, 좁은 길을 걸으며, 하나님 말씀만 따라가는 일을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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