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5일 수요일

갈라디아서 3:1-14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갈라디아서 3:1-14

1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3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6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12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3:1 오,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의 눈앞에 밝히 드러나 있는데 누가 너희를 미혹하였느냐? 

3:2 나는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고 싶다. 너희가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았느냐, 아니면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느냐? 

3:3 너희가 그렇게도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려 하느냐? 

3: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것들을 헛되이 경험하였단 말이냐? 정말로 헛된 일이었느냐? 

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들을 행하시는 분께서 너희의 율법의 행위로 그렇게 하시느냐, 아니면 너희의 듣고 믿음으로 그렇게 하시느냐? 

3:6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함과 같다. 

3:7 그러므로 너희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 곧 아브라함의 아들들인 것을 알아라. 

3:8 또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것을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 

3:10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누구든지 저주 아래있다. 이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항상 지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저주를 받는다." 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3:11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3:12 그런데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오히려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라고 하였다. 

3:1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받은 바 되셔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았다." 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3:14 이는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시고, 또한 믿음을 통하여 우리가 약속된 성령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 십자가만 바라보라

본문 1-5절에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따라서 믿음으로만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드는 것은 자기가 죽어지지 않아서 시험에 듭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만 나가면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또 성령으로 나갈 때에는 환난, 핍박가운데에서도 일심으로 나갑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라고 하였는데, 육체로 나가는 것은 세상주의로 기울어진 것입니다. 교회에 나가면 더워서 못나가겠다고 하는 것은 육체로 기울어진 것입니다.

이전에 부산 국제 시장에서 최유선 선교사님과 전도할 때에는 해가 쨍쨍 나도 시장에 나가서 전도했습니다. 너무 더워서 오늘 그만 두자고 하니까, 최유선 선교사님이 오늘 장사꾼 장사 안 해요? 하시길래, “해요” 했더니, “장사꾼이 장사 하면 우리도 해야 되요”하십니다. 아무리 쨍쨍 해가 나도 나가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했던 사람이 기도 못하고, 일심정력(一心精力)을 다하던 사람이 세상으로 마음이 다 기울어지는 것이 육체로 마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시작해서 좁은 길을 걸으며, 일심정력을 다해서 믿는 일에 힘쓰던 데에서 다시 육신중심으로 기울어지지 말고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가야겠습니다. 계속 힘써 나가야겠습니다.
생명이 거기에 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나갔다가 육체로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믿음으로 잘 나가다가 육체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사람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믿음으로 잘 나가다가 육신의 할례 받는 것으로 돌아 섰습니다. 그것이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신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과거에 믿음을 지키느라고 많은 괴로움을 받았는데, 이제는 왜 육체로 돌아서느냐는 것입니다. 좁은 길 걷느라고 많은 괴로움을 받았는데, 왜 요새는 넓은 길로 걷느냐는 말입니다. 과거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을 걷느라고 기도하기를 계속 힘을 썼는데, 요새는 왜 육체로 돌아서서 기도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육체로 돌아선 것입니다.

과거에 환란과 핍박을 받고 나가던 신앙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만 나가던 처음 사랑, 처음 신앙을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육체로 돌아서면 영적 생명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또 시험에 들어서 믿음이 떨어진 사람도 육체로 돌아선 것입니다. 성령으로 늘 나갈 때에는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 무시한다, 섭섭하다”고 하며 나가면 시험에 든 것입니다. 자기가 다 죽어져서 믿는 사람은 섭섭한 것이 없습
니다. 그저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2.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음

본문 6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5:5-6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의인이 된 것은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
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인으로 간주해 주셨습니다. “네 자손”이란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3:16에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장차 네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성도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장차 나실 것을 믿었습니다. 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을 사람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을 의롭다 여기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나셔서 장차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사람들이 많아 질 것을 아브라함이 믿을 때에 의인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의인입니다.

믿는 자는 아브라함의 아들이 됨

본문 7절에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이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의인이 되었으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 받은 것입니다. 로마서 4:16에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신앙인의 믿음의 조상이고, 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복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오게 되었습니다.

이방인도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복을 받음

본문 8절에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는데, 예수를 믿는 이방 사람도 아브라함의 신앙으로 인해서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3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이방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복 받을 것을 성경에 미리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습니다.

본문 9절에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복을 받았는데, 우리도 믿으면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삶

본문 10절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27:26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율법대로 항상 행치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했는데, 그러면 율법을 다 행한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다 행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으로 볼 때에 모든 사람은 다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성인군자라고 하여도 성경대로 다 행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일생동안에 혈기 부리지않고, 남을 미워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속으로 짓는 죄가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율법적으로 볼 때에 다 죄인입니다.

로마서 3:10-18에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모두 영혼이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죽은 영혼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하나님을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다 죄 아래 있습니다. 율법적으로 보면 전부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본문 11절에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박국 2:4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였지, 율법으로 산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함이 분명합니다. 왜 분명한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성경 구절을 보면 율법으로 의인이 될 수 없고, 믿음으로 의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이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믿음으로 의인이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인이 된 사람은 믿음으로 삽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이 성경에 4번 있습니다. 하박국 2:4, 로마서 1:17, 갈라디아서 3:11, 히브리서 10:38입니다. 의인은 예수 믿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가 행해서 의인이 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의를 받아서 의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믿음으로 삽니다.

부자는 돈으로 살고, 학자는 학으로 살고, 정치가는 정치로 살고, 장사꾼은 장사로 살고, 기술자는 기술로 삽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은 돈이 없어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또 기술이 없어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그를 의뢰하며, 하나님이 말씀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순종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해나가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 앞으로 살려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순종해 나가면 약속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세상 끝날까지 너와 같이 하신다고 약속하신 것(마 28:20)을 믿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에게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다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 네가 무슨 일을 만나도 모든 것이 합동해서 유익하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신 것(롬 8:28)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이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서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까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사자의 입에서도 건져 주셨으니까 믿습니다, 끝까지 붙들어 주시겠다고 하셨으니까 믿습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고 하셨으니까 믿습니다.”하며 믿는 것입니다. 믿으면 근심, 걱정, 염려가 뚝뚝 떨어져 나가고 평안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실제로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의 안식처에서 살게 해 주십니다. 또 하나님이 앞으로 모든 것을 잘 되게 해 주십니다. 아무것이 없어도 믿음을 지키면 잘 되게 해 주십니다.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고, 또 성경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제일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또 공부 잘하는 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또 기술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고 정치가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아무 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믿고, 성경말씀대로 순종을 하며, 하나님이 해주실 것을 믿고 나가면 반드시 합동해서 유익하게 만들어 앞길을 열어 주시고,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해주셔야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것으로 살려고 하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제일 행복한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다른 것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고통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것이 없다고 근심, 걱정하지 말고 또 실패하였다고 근심,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약속대로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나는 순종하며 나가겠습니다.”하며 나가면 영도 살고, 육도 삽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살 길을 열어 주십니다.

3. 예수님이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 하셨음

본문 12절에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은 행해야 산다고 했기 때문에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레위기 18:5에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21:23에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저주 받으신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저주를 받으셨습니까?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저주 받아야 할 것을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속량이란 값을 지불하고 거기서 사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었습니다. 율법으로는 우리가 다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다 저주 받을 우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대신 값을 피로 물어 주시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즉 피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저주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받은 자들입니다. 옛날 종으로 팔린 사람을 부모나 친척이 가서 종의 값을 물어 주고, 종으로 팔린 사람을 사서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즉 자유인이 되게 해주었는데, 그것이 속량입니다. 우리가 율법의 저주 아래서 평생, 율법의 종살이 하다가 멸망당할 뻔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값을 대신 물어주시고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사셨습니다. 즉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의 자유를 주시고, 저주에서 구원을 받게 하시고, 생명을 살려 주셨습니다.

4.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침

본문 14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예수님이 속량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고, 또 성령의 약속을 받게 했습니다. 성령의 약속은 능력을 행하는 것, 독실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으시면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는데, 이제는 속량 받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즉 믿음과 능력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믿음과 능력을 받아서,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은 성령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제일 행복하고, 제일 평안하고, 제일 즐겁고, 제일 복된 자리에 있는 자입니다. 평안은 예수 안에 있고, 믿음으로 살 때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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