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빌립보서 3:18-22 성도의 나라는 하늘에 있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성도의 나라는 하늘에 있음
빌립보서 3:18-22

18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3:18 내가 너희에게 여러 번 말을 했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지만, 많은 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동하고 있다. 

3:19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이며, 그들의 신은 배이고,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운 것에 있으며, 그들은 땅의 것을 생각하는 자들이다. 

3:20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니, 그곳으로부터 오실 구원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 

3:21 그분께서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실 수 있는 능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런 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키실 것이다.


1.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

본문 18절에,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역(舊譯)성경에는 ‘안 믿는 사람 가운데 십자가의 원수가 많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 안 믿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전부다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믿는 사람 가운데, 교회 다니는 사람 가운데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 때문에 바울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교인들에게 권면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원수로 행하는 사람 가운데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미혹 받지 말아야 됩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다니는 사람은 어떻게 다니는 사람들입니까? 

본문 19절에,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이 세 가지. “저희의 신은 배요”란, 배를 하나님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 영광은 저희 부끄러움에 있고”란, 부끄러운 일로 영광을 삼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는 것은, 세상 일만 생각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구역성경에는 “다니는 사람 가운데 십자가의 원수가 많으니 저희는 배로 하나님을 삼고,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고, 세상일만 생각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원수가 이런 것들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도 십자가의 원수가 많은 데, 어떤 자들인가요? 배로 하나님을 삼는 자들,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는 자들, 땅의 일만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즉 십자가를 안지고 자유방종 생활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십자가의 길을 걷지 아니하고 ‘먹자주의’로 ‘방탕주의’로 나가고, 땅의 일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십자가 안지고 예수 믿겠다는 것은 사탄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자’라고 하였는데, 넘어지게 하는 자가 십자가의 원수가 분명하지 않습니까? 십자가 안 지고 이렇게 ‘자유, 방종주의’로 나가는 것은 십자가의 원수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고 했는데, 십자가를 안 지면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십자가 안 지고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안 지고 따라 가겠다는 그것이 사탄이고, 넘어지게 하는 자이며,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오늘날에도 십자가 안 지고 예수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 또 방종주의로 나가는 사람들, 먹자주의로 나가는 사람들, 이것이 십자가의 원수인줄 알아야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인 가운데에도 많다는 말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나가는 자가 무엇이 되겠습니까? 예수님의 구속의 자리를 무너뜨리는 자가 됩니다.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예수님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고, 예수님의 구원운동을 넘어지게 하는 자이니까 십자가의 원수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바울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믿는 사람들, 교회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참된 십자가의 도를 무너뜨리면서도, 믿는다고 하니까, 바울이 볼 때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로 하나님을 삼는 자

배로 하나님을 삼는다는 것은 ‘먹자주의’로 나가는 것입니다. ‘먹자주의’는 그저 먹고 살자, 기름을 칠해야 된다, 주일날도 사다 먹여라, 찬양대도 먹여야 한다, 기름을 쳐야 돌아간다, 주일에 한 턱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 정신이 빠져나가 주일 범하면서, ‘먹이면 잘한다, 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배로 삼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는 것 아닙니까? 주일에 사다 먹으면 안됩니다. 주일에 외상으로 거래하는 것도 절반은 사는 것이니까 절반은 죄진 것입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왜 사다 먹죠? 주일날 왜 사다 먹습니까? 돈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것입니까? 배로 하나님을 삼으려고요? 주일날 굶으면 어떻습니까? 하루 굶으면 못 삽니까? 열흘도 금식기도를 하는데 하루 굶는다고 그것을 사 먹습니까? 그러니까 배로 하나님을 삼지 말라는 말입니다. 먹자주의로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는 자

그저 모여서 먹자, 친목회하자, 뭘 하자, 이건 전부 다 놀자주의이고 먹자주의이고, 방탕주의입니다. 어느 목사가 집사들 데리고 야외 예배 가면서, 부부간 함께 나오라고 하더랍니다. 혼자인 사람은 다른 남자하고 짝하고 나오라고 하더랍니다. 과부는 남자 홀아비하고 짝하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가서 손잡고 춤추고, 별에 별 것을 다 했다고 합니다. 남자 집사들을 뽑아서 여자 집사들을 업어오라고 그랬답니다. 아무게 여자 집사를 업고 오라고 하면, 업고 가야 합니다. 목사는 어떤 여자 집사 하나 업어오라고 뽑혔답니다. 그거 업고 갔겠어요? 뽑았으니까 안 하면 안 된답니다. 그래서 업고 갔답니다. 자 이게 다 뭡니까?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은 것 아닙니까? 

세상 일만 생각하는 자

세상 일만 생각하는 자는 현실주의자입니다. 기독교 현실주의, 내세는 이대로 가면 가는 거고, 못 가면 관두고, 현실에서 재미나게 하고, 현실에서 잘 살고, 현실에서 그저 친목 잘하고, 서로 그저 사랑하고 현실에서 도와주자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전부 십자가 없이 믿는 것 아닙니까? 십자가 없이 믿는 것이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십자가 없이 자유, 방종, 방탕, 먹자주의, 놀자주의 이렇게 나가면서 믿는 것이 모두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십자가 안 지고 믿고, 그저 방탕하고 놀러 다니며, 이 세상에서 잘 살아야겠다고 예수 믿는 것 전부가 다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요새 그런 교회가 많습니다. 거기에 미혹 받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경건 생활을 해야 합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는다고 했는데 핍박을 받을 각오를 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이 다음에 상급이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달음박질 할 거 아닙니까? 바울은 십자가를 져도 예수님만한 십자가를 지겠다고 했는데, 우리는 조그마한 것도 안 지겠다고 방탕하게 나가는 것은 잘못입니다. 십자가를 질 때에,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다 져야 할 텐데, 조그마한 것도 하나 안 지겠다고 방탕하게 나갑니까? 향락주의로 나가고, 안일주의로 나가고. 기독교 안일주의, 향락주의. 이런 것들이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2.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
나그네와 행인으로 사는 세상

본문 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하늘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나라는 나그네로 온 나라이고, 여행 온 것입니다, 여행자들이라고 베드로전서2장 11절에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는데 우리는 나그네와 행인입니다. 잠시 잠깐 지나가는 나그네, 길 지나가는 사람 행인, 잠깐이면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여야 하겠습니다. 또 히브리서 11장 13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야곱을 가리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은 이 세상에서 살 때에 외국인으로 살았습니다.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들의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잠시 잠깐 후에 본향으로 간다. 본집으로 간다. 나그네로 왔는데 나그네 끝마치면 잠깐이면 우리 본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나그네로 생활할 때는 언제나 장막 집에서 살았습니다. 뭐 잘 차려 놓지 않았습니다. 나그네로 있는데 뭘 잘 차려 놓겠습니까? 잘 차려 놓아도 어차피 떠나면 없어지는데 말입니다. 나그네로 왔을 때에는 좀 불편해도 불편해 하지 않습니다. 며칠 후에 가면 되니 말입니다. 좀 괴로워도 괴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며칠 후면 가면 되니까 뭘 괴롭다고 할 게 있습니까? 좀 배가 고파도 뭐 배고프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먹을 거니까 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는 나그네요, 행인이요, 지나가는 것입니다. 잠깐 있으면 우리 본향인 하늘로 가는데, 이 세상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서 거기서 사는 것이 내 나라요, 내 집입니다. 그 나라를 우리가 사모하고 날마다 준비해야 합니다.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삶

‘하늘에 있는지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언제나 하늘에 있다는 것을 알고, “조금 있으면 간다, 잠시 잠깐이면 간다, 조금만 참자, 어려워도 참고, 또 뭘 잘 해먹자, 배로 하나님을 삼자고 하면 안 된다, 난 배로 하나님을 삼을 자가 아니다, 난 좀 있으면 갈 자인데, 요기나 면했으면 됐지, 뭐 하러 배로 하나님을 삼겠나, 나는 가는 거다, 나는 거기 가서나 잘 살아야 되겠다”고 하는 겁니다. 준비하다 가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준비를 우리는 매일 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우리 본향인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매일 그 나라 갈 생각과,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주님 언제 오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매일 기다리고, 주님 맞을 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 오기를 기다리는 지혜 있는 다섯 처녀와 같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했습니다.

3. 예수님 재림하실 때, 영광의 몸의 형체로 올라감

본문 21절에,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변화되어 공중으로 올라감

우리를 변화 시켜서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공중 재림이 먼저 있고, 그 때 자던 성도가 부활해서 올라가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런데 어떻게 올라갈까요? 예수님은 공중에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고, 자던 성도는 무덤이 터져 올라가고, 살아남은 성도도 다 변화돼서 공중에 올라갑니다. 올라가는데 예수님의 능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강대상만한 지남철을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바닥에 바늘을 많이 뿌려 놓으면, 바늘이 훌떡훌떡 다 올라가 버립니다. 바늘이 무슨 날개가 있나, 프로펠러가 달렸나, 제트 엔진이 있나, 어떻게 공중에 올라가겠죠? 지남철 자석의 힘으로 바늘이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아무 날개가 없지만 예수님의 능력으로 쑥 들려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때 공중으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면 다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재림할 때 올라가면 과거에 앞서간 성도들을 다 만납니다. 다 변화돼서 올라가서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변화돼서 올라갑니다. 예수 믿고 죽은 성도는 우리보다 먼저 올라가서, 산사람보다 먼저 올라가 있으니 우리는 올라가서 만납니다.

“하늘공중 바라보니 두 팔을 펴고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맞아주도다, 잘 있거라 세상아 나는 가노라 환난 핍박 다 받고서 나는 가노라.”하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올라가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올라가세, 올라가세 구름을 타고, 성신 바람 불어오매 높이 올라가” 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공중에서 세상을 심판함

그리고 올라가서는 이 세상나라를 심판합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고,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세상나라를 심판합니다.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깨뜨려 내버린다고 그랬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마지막에 보면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깨뜨려 내버리는 그런 심판을 공중에 있는 동안에 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심판합니다. 성도가 올라간 후에 세상나라는 일곱 번째 나팔이 부는 동시에 일곱 대접의 후반기 종말 재앙이 임하여 세상에 큰 환난이 옵니다. 우리는 전반기 환난을 받은 후에 예수님 공중 재림하실 때에, 공중으로 들려올라가고, 후반기 대환난은 받지 않습니다. 그 때는 우리가 하늘에서부터 일곱 대접재앙을 쏟아 내리 붓습니다. 이 세상은 전부 독창이 나고, 흑암을 만나고, 해가 어두워져서 다 타서 죽고, 다 아마겟돈 전쟁으로 형편없이 멸망합니다. 무기를 불사르고, 시체는 다 장사지내는데 우리는 공중에서 그러한 일들을 다 하게 됩니다. 세상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천년 왕국에서 왕노릇함

그래서 후반기 대 환난 다 지나간 후에는, 이 세상에 지상 재림을 하게 됩니다. 공중에 올라가 있던 성도들이 하늘에서부터 다 내려오게 됩니다.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듯이 내려옵니다. 공중에 있던 성도가, 열두 문이 있고, 금, 은, 보석으로 꾸며놓은 새 예루살렘성으로 다 들어갑니다. 그렇게 새 예루살렘 성은 공중에 있던 성도들이 다 탄 다음에 쑤욱 이 세상에 내려와 앉습니다. 그 때부터 이 세상의 마귀는 잡아 무저갱에 가두고, 하나님이 미가엘 천사를 보내서, 세상의 죄악은 다 없어지게 됩니다.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이 성도와 같이 내려와 앉은 다음에, 그 때부터 이 세상나라가 천년왕국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잡아 가뒀고,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니까, 천년왕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 때는 죄가 없습니다. 마귀를 잡아 무저갱에 가두었기 때문입니다. 죄악의 뿌리인 마귀를 잡아 가두었으니까 이 세상나라에는 죄가 없게 된 것입니다. 죄는 다 마귀가 일으키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천년동안은 의가 충만하고, 평화가 가득하고 다시 전쟁이 없습니다. 이 세상나라에서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농사만 해서 먹고 살게 됩니다. 각자가 자기 포도원에 앉아서 자신의 집을 짓고 자작농해서 먹고 삽니다. 반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성도들은 다 변화된 성도들인데 그들은 농사해서 먹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성 밖에 있는 사람만 농사해서 먹고 사는 것입니다. 성 밖에 있는 사람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성 밖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진 사람인데, 농사해먹고 밥 해 먹어야 되고 자녀를 낳으면서 밖에서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맞고 새 예루살렘을 타고 내려온 사람들은 변화된 사람들이므로, 시집이나 장가가지 아니하고 신령한 몸들이며, 먹지 않아도 되고 다 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밖에 나가서 왕 노릇 하다 들어오고, 또 왕 노릇 하다 들어오곤 합니다. 이 세상나라, 즉 새 예루살렘 성 밖에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죽지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그대로 천년왕국의 세계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은 죄가 없는 세계인데 사자가 소와 같이 풀을 먹고 서로 안 잡아먹습니다. 이리와 양이 서로 풀을 먹고 같이 눕고 아이가 독사를 잡아 가지고 놀아도 독사가 물지 아니하고, 거기는 해함도 없고, 서로 잡아먹는 것이 없는 시대입니다. 의가 충만합니다. 즉 에덴동산과 같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천년을 갑니다. 

새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사람들은 육신을 가지고 살며 천 년을 삽니다(이사야65:20). 혹시 100세에 죽는 자가 있으면, 젊은이가 죽었다고 말합니다. 100세 된 사람이 죽은 것을 젊은이가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는 사람들은 천년왕국 들어가기 전에 지은 죄가 있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사람들은(혹 죽는 사람들이 있지만) 천년동안 죽지 않고 계속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습니다.
할머니가 아이를 낳고, 증조할머니가 아이를 낳고, 고조할머니가 아이를 낳고 그렇게 계속하여 낳습니다. 아마 천년동안에 아이를 한 300명 낳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300명 낳고, 250명 낳고, 200명 낳고, 100명 낳으며 천년이 지나는 가운데, 새 예루살렘 성 밖에는 사람들이 가득해 집니다. 예수님이 공중재림하신 후에 성도들은 다 들려 올라가고 난 후, 후반기 대 환란 때 아마겟돈 전쟁에 다 죽고 살아남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천 년을 죽지 않고 아이를 낳으니까 이 세상이 사람들로 가득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사람은 변화한 사람들로 예수님이 같이 계십니다. 

이것을 말해 주는 이유는 말세에 대한 것을 바로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림에 대한 것을 바로 알아야 되고 천년왕국도 바로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모르면 소경이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한 가지만 알면 안 됩니다. 여러 가지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우리의 구원을 바로 이루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말해주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없다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무천년론자들입니다. 성경에 천년왕국이 있다고 하는데 없다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없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둘 중 하나가 진짜인데, 진짜는 하나입니다. 천년왕국이 있다면 없다고 하는 것이 가짜이고 그건 잘못 믿은 것이고, 또 없다면 있다고 하는 것이 잘못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다음에 천년왕국이 없을 것 같은가요? 성경에 있다고 그랬으니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성경을 바로 배워서 바로 믿어야지 성경 바로 못 배우면 이 다음에 수치를 당합니다.
믿어도 헛 믿은 것입니다. 있는 것을 없다고 했으니 헛 믿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바로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장로회 신학교인데 거기에서 무천년설을 가르칩니다. 천년왕국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에서 신학공부한 사람들이 합동측 총회 신학대학에 많이 가서, 또 무천년설을 가르칩니다. 또한 그들이 다른 신학교에도 많이 들어가서 거기서 또 무천년설을 가르칩니다. 한국교회는 무천년설이 계속 팽창해 나가고 있습니다. 총회신학교는 대체로 무천년설을 배운 교수들이 배운 대로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합동신학의 교수들도 웨스트민스터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도 무천년설을 가르칩니다. 미국 Faith 신학교가 웨스트민스터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그들은 전천년설입니다. 천년세계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또 웨스트민스터는 술과 담배를 용납합니다. 하지만 Faith 신학교는 술, 담배를 반대합니다. Faith 신학교는 천년왕국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교리적으로 우리와 맞습니다.

천년왕국은 분명히 있는데 천년왕국 시대에 우리 성도는 왕 노릇합니다. 백성보다 왕이 많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왕이 많으면 뭐 어떻습니까? 왕의 권세를 가지고 있고, 왕의 권세를 행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고 우리 믿는 사람은 왕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라난 사람이 진정 왕의 권세를 갖는 것이지 자라나지 못한 사람은 바보 왕 같이 됩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힘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고, 그저 이름만 왕입니다. 우리가 좀 더 자라나야 천년왕국에서 왕권을 가지고 제대로 왕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곡과 마곡의 전쟁

천년왕국 다 지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천년이 다 지나간 다음에는 하나님이 사탄을 잠깐 놓아 줍니다. 마귀를 놓아주는 이유는 천년동안 세상에서 번창한 지상에 남은 자들 중에서 택자와 불택자를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천년동안에 태어난 자 가운데 불택자와 택자가 섞여 있습니다. 불택자를 갈라 놓으려면 마귀가 나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갈라 놓을 수 없습니다. 가만 있다가 넌 지옥가라 하면 ‘내가 지옥에 왜 갑니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뭐라고 답하겠습니까? 그러나 마귀를 놔주면 마귀에게 붙어서 마귀 짓을 하고 죄를 짓는 자가 생깁니다. 그들은 죄 값으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천년왕국 끝에 마귀를 잠깐 놓아 줄 텐데, 그러면 마귀세력이 형성이 되고 무신론자들이 생기고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가 생기고 죄가 들이차고 이들이 뭉칩니다. 그리고 성도는 성도대로 뭉칩니다. 두 패가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새 예루살렘 성은 그대로 있고, 마귀에게 미혹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곡과 마곡의 진이 따로 있고, 그들의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 나가는 성도의 진이 또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그 곡과 마곡세력은 바다 모래와 같은 수를 모
아서 기독교 박멸주의를 써서, 교회와 성도를 없애기 위해 성도의 진을 다 포위합니다. 또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새 예루살렘 성도 침범하려고 둘러쌉니다. 그 성에는 예수님도 계시고 왕들도 있는데, 염치가 없지 그게 어디라고 둘러쌉니까? 마침내 곡과 마곡 세력이 다 성도들의 진을 포위하고,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새 예루살렘성을 포위해서 점령하려고 할 때에, 유황불이 내려 와서 곡과 마곡세력을 불로 다 지져서 죽입니다. 유황불로 곡과 마곡세력들을 지져서 다 멸망시킵니다. 지질 때 머리부터 지질 것 같은데, 그래서 요새 머리 지지는 것이 아마 그 때 지지는 것 연습하나 봅니다.

백보좌(白寶座) 심판

이제 세상은 멸망시키고 성도는 다 데리고 올라갑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성도들이 같이 올라가고 성 밖에 있던 믿는 성도들도 변화돼서 공중에 올라갑니다. 예수님도 올라가서 백보좌 심판대에 앉아서 공중심판을 합니다. 공중에 올라간 모든 성도는 다 예수님의 오른쪽에 섭니다. 이때 불신자도 다 부활하는데 창세로부터 죽은 모든 사람이 다 부활합니다. 그들은 다 왼쪽에 섭니다. 가인, 사울, 김일성, 스탈린, 가룟유다, 빌라도 등 지옥에 간 사람들이 다 나옵니다. 오른쪽에 전부 아담, 셋, 에녹, 아브라함, 노아 쭉 오른쪽에 다 섭니다. 노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브라함이 어떻게 생겼는지 다 볼 수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심판합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아라, 너희는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감옥에 있을 때 돌봐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고 병들 때 돌봤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그랬습니까?’ 물어보면, 예수님은 ‘나를 믿는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대접한 것이 전부 나한테 한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영원한 하늘나라에 올라간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도들은 “올라가~, 올라가~~, 천당에까지~!” 노래하며 천당에 가면 모든 천사가 마중 나와서 “딩동댕~~!” 하면서 이리 오라며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왼쪽에 있는 불신자들에게는 ‘이 염소 새끼들, 너희는 창세로부터 예비한 불에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안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안주고, 병이 났을 때 감옥에 갇혔을 때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합니다. 그럼 이 사람들이 ‘우리가 어느 때에 예수님을 대접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하면 예수님은 ‘여기 있는 소자 하나에게 행치 아니한 것이 내게 행치 아니한 것이다. 너희는 마귀와 같이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안 믿은 자들은, “내려가~, 내려가~, 지옥에까지... 아따 뜨겁다, 뜨거워!!!” 할 것입니다. 요새 댄스 하는 것 그 때 가서 연습하는 것입니다. 천당에 가는 사람들은 댄스 연습 할 필요 없습니다. 즐거움으로 찬송만 하고 “딩동댕~”만 하는 것입니다. 의인들은 영생을 얻게 되고, 달음박질 잘하고 달려갈 길 많이 간 사람은 상급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넌 면류관 하나 받아라, 넌 금 면류관 받아라, 넌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라, 넌 의의 면류관을 받아라, 넌 영광의 면류관 받아라, 넌 썩지 않을 면류관 받아라, 넌 시들지 않는 면류관 받아라” 하시며, 그 때 면류관을 많이 주실 텐데 면류관 받는 사람은 참 좋습니다. 너무 감격에 넘쳐서 “내가 어떻게 이 면류관을 받겠습니까?”라고 할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안 한 사람은 뻔뻔합니다. 면류관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금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쓰고 찬송을 하는데, 뻔뻔주의로 앉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잠시 잠깐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영원한 것을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영원한 면류관, 영원히 자라나는 일, 천당 갈 준비, 그것이 중요합니다. 잠시 잠깐이면 가는데, 나그네 생활인데, 그저 이 세상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제 영원한 것을 우리가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달음박질을 잘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되는 자리까지 달음박질하고 전진하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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