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빌립보서 4:1-9 같은 마음을 품고 항상 기뻐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같은 마음을 품고 항상 기뻐하라
빌립보서 4:1-9

1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4:1 그러므로 나의 기쁨이며 면류관인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아, 이같이 주님 안에 서라. 사랑하는 자들아, 

4:2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니,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라. 

4:3 참 동역자인 너에게도 부탁하니, 이 여자들을 도와라. 이들은 클레멘트와 나의 다른 동역자들과 함께 복음 안에서 나와 함께 수고하던 자들이다.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4:4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여라. 내가 다시 말하니 기뻐하여라. 

4:5 너희 관용을 모든 이에게 알게 하여라. 주께서 가까이 계신다.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라. 

4:7 그러면 모든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다. 

4:8 마지막으로 형제들아, 무엇이든지 참되고, 무엇이든지 경건하고, 무엇이든지 의롭고, 무엇이든지 거룩하고, 무엇이든지 사랑할 만하고, 무엇이든지 칭찬할 만하고, 무슨 덕이나 무슨 칭찬이 있거든 이것들을 생각하여라. 

4:9 너희는 내 안에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이것들을 행하여라. 그러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다. 

1.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함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사랑하고 사모했습니다. 또한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울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는 특별히 바울이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사랑하고, 사모하고, 기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인들을 사모한 교회입니다.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심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너희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심령 속 깊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심장으로 사랑하고 또 사모하였습니다. 빌립보교인들을 사도바울이 사모합니다. 또 교인들은 바울을 사모합니다. 어린아이가 있는 어머니가 아이를 사모합니다. 아이는 또 어머니를 사모합니다.

바르게 가르침으로 서로 면류관이 됨

또한 “나의 기쁨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면류관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4절에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 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재림하는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 자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자랑이 되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자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서 배웠으므로 고린도 교회가 잘 되는 것은 바울의 자랑입니다. 또 면류관입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자랑입니다. “바울이 잘 배워줘서 우리가 이만큼 됐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날에 고린도 교회가 자랑이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잘됐으니까 자랑거리가 된다는 말입니다. 면류관이 된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20절에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누군가가 잘 배워서 그대로 믿는 일을 잘 하면 가르쳐 준 사람의 면류관이요, 자랑이 됩니다. 또 자기를 가르쳐 준 사람이 잘 되면 가르쳐 준 사람이 배운 사람의 면류관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에게 바른 복음을 잘 배위서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면류관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면류관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잘 배워줘서 그만큼 됐으므로 빌립보 교인들은 가르쳐 준 바울을 그들의 면류관으로 여긴 것입니다. 

또한, 잘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잘 배워서 그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가르쳐 준 사람도 배운 사람들의 면류관이 되고, 또 배운 성도들은 자기들을 가르쳐 준 사람의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배워준 사람은 교인들이 면류관인 것입니다. 잘 배우지 못하면 잘 되지 못합니다. 잘 배우지 못해서 잘 되지 못하면 면류관이 되지 못합니다. 잘못되었는데 무슨 면류관이 되겠습니까? 교인들도 가르쳐 준 사람의 면류관이 못 되고, 가르쳐 준 사람도 교인들의 면류관이 못 됩니다. 잘 배워서 그대로 믿는 일 잘 하면 피차간에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잘 배우는 것이 큰 은혜이고, 그대로 사는 것이 또한 큰 면류관입니다. 우리도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유오디아와 순두게

본문 2절에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아주 충성된 여자가 두 사람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유오디아고, 또 한 사람은 순두게였습니다. 이 여자들은 특별히 믿음이 좋고, 교역자를 잘 받들고 교회를 잘 받들어 나가고, 연보도 많이 하고 대접도 잘하는 충성된 여자들 인 것 같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그 교회에서 두드러진 대표적이라고 할 만한 그런 여자들입니다. 교회의 기둥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교회 기둥이 된 남자들에 대하여는, 갈라디아서에 말씀하기를 초대교회의 기둥을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에는 유오디아와 순두게, 이 두 사람이 기둥이었습니다. 이들은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또 특별히 교회를 잘 받들어 나가고 교역자를 잘 받들고 교회에 연보도 많이 하며, 아주 힘쓴 부녀들입니다. 특별히 나서서 교회를 잘 받들어 나가는 부녀들은 여걸(女傑)종이라 할 수있습니다. 믿음이 특별히 좋고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잘 받들어 나갔습니다. 바울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또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데 많이 도와준 여자들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는데 둘이 서로 맞지 않았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았습니다. 화목이 안 됩니다. 이렇게 충성스럽게 봉사 잘 하는 사람들이 서로 라이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로 경쟁하였던 것 같습니다. 서로 더 잘 하려고, 서로 더 인정 받으려고, 서로 더 많이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연보하는 것도 한 사람이 하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보고 조금 더 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연보할 때 그냥 안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연보 한 다음에 아무개는 얼마 했느냐고 물어 봅니다. 그래서 아무개가 1억 했다고 하면, 자기는 1억1천만 원으로 올려서 연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라이벌 의식으로 마음이 맞지 않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서로 교회 잘 받들고 교역자 잘 받들어서 봉사 잘 하는 것은 좋은데,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바울이 권면했습니다. “같은 마음”은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에 가능합니다. 

빌립보서2:5-8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화목하지 못하는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지 못해서 화목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자기 명예와, 자기 자존심과, 자기 영광과, 자기 위신을 다 내어 놓고 지극히 낮아져서 종노릇 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자기가 대접 받으려는 생각은 전혀 없고,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달게 받고, 지극히 낮아져서 종살이 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피차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하나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전에 어떤 한국 학생이 일본에 공부하러 가서 교회에 나갔다고 합니다. 교회에 나가니까 어떤 사람이 신발장에 서서 사람들의 신을 받아서 신발장에 넣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어떤 사건이 생겨서 재판하는데 가게 되었는데, 그 재판장에 판사가 바로 그 신발장에서 신을 받아서 넣던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신발을 받아 신발장에 넣던 사람이 판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세상에서는 판사이지만 교회에 와서는 종살이 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종살이 하면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다 내어 놓고, 낮아지고, 멸시와 천대를 달게 받고, 종살이 하는 마음이 되면 하나가 됩니다. 종살이 해 주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왕으로부터 거지까지 자기에게 종살이 해주면 다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언제나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남을 섬기는 자리에 서야겠습니다.

3.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
생명책에 기록되었음을 확신할 것

본문 3절에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라는 것은 빌립보 교회 교역자를 말합니다. 

빌립보 교회 교역자가 있었습니다. 목사가 있었습니다. 교역자에게 구하기를,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도우라’고 한 것입니다. ‘저 부녀들’은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말합니다. 이들이 바울과 같이 복음에 힘쓰던 자들입니다. 교회 세우는데 힘을 많이 썼습니다. 이런자들을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의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유오디아, 순두게, 글레멘드, 그 외에 바울의 동역자의 그 이름들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 있어야 합니다. 생명책에 있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생명책에 없으면 탈락이 됩니다. 못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이나 명부에 없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어떤 시험이라 해도 시험 쳐서 합격한 사람은 합격자 명부에 있어야 합격이 인정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했다고 해도 명부에 없으면 탈락입니다. 합격자 명부에 있어야 됩니다. 주민등록이 있어야 되고 시민증이 있어야 됩니다. 그 나라에 가려면 그 나라 사람이라는 증명이 있어야 됩니다. 증명이 없는 사람은 불법 체류자와 같은 것으로, 불법 체류자는 쫓겨납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에 이름이 있어야 됩니다. 하늘나라에서도 불법 입국자는 쫓겨납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만 하늘나라에 남게 되어 있습니다.

혼인 잔치를 하는데 여러 사람이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사람 하나가 쫓겨났습니다. 주인이 와서 보니까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여, 왜 예복을 입지 않고 왔느냐?”고 하니까 그 사람이 유구무언이었습니다. 입은 있으나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사람을 결박해서 어두운데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찬송가 532장 끝에 가사에는, ‘생명책에 기록하셨을까?’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찬송가를 지은 것입니다. 찬송가 532장 마지막에 “기록하셨을까?”라고 했는데, 기록했다는 것입니까 안 했다는 것입니까? 확신이 없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찬송가를 지은 것입니다. 후렴에 “주가 나의 이름 보좌 앞에 놓인 어린양 생명책에 기록 하셨도다”라고 해야 맞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가사를 고쳐서 부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셨도다’로 부릅시다.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중생한 자는 속에서부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름

그러면 생명책에 우리 이름이 있는지 어떻게 압니까? 동회 서기가 와서 주민등록 조사 하는 것 같이 이름을 조사해서 써 갔습니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인지 아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으로서 아는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납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중생한 사람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8절에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중생하는데, 요한일서 5장 8절에는, 피가 하나 더 들어 갔습니다. 중생하는 것은 물과 피와 성령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피는 예수의 구속의 피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말씀과 예수님의 피를 믿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성령으로 믿으면 중생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중생한 사람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생명이 살아난 사람입니다. 중생한 영, 산 영, 산 생명입니다.

산 생명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한테 ‘주여’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아버지’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산 생명이 없는 사람은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또 ‘주여’라고 부르지도 못합니다.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자기 속, 중생한 영에서 본능적으로 우러나오는 사람은 산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물과 성령과 피로 중생한 사람은 산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피와 말씀은 하나입니다. 피와 말씀은 하나라야 됩니다. 말씀 속에 피가 있으므로 물과 성령으로나, 물과 피와 성령으로나 하나입니다. 같은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 영혼이 살아난 사람, 죽었던 영이 살아난 사람은 생명책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주여, 아버지’하고 부르짖는 것이, 죽었던 사람이 산 증거입니다. 살았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5장 1절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사랑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주님을 향하여 ‘주여’ 하고 부르짖습니다. ‘주여, 아버지, 아바 아버지’라고 합니다. ‘아바 아버지’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하고 부르짖는 것이 ‘아바 아버지’입니다. 본능적으로 하는 것이지 들은 풍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속에서 우러나와서 아버지를 부르짖으니까, 그것은 진짜 아버지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말입니다. 

생명책에 언제 기록되었느냐 하면, ‘주여’ 하고 ‘아바 아버지’ 할 때 기록이 되었습니다. 창세전에 기록된 것도 맞지만, ‘아바 아버지’라고 할 때 기록하는 것이 진짜 맞는 것입니다. 창세전에 예정하고 택해 놨지만 안 믿고 돌아갔단 말입니다. 안 믿고 돌아가다가 이제 물과 피로 중생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때, 그때 진짜 생명책에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창세전에 기록해 놓은 것은 예정록에 기록해 놓은 것이고, 아바 아버지라 할 때 진짜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말입니다. 국가로 말하면 시민증 탈 때 진짜 그 나라 백성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다음에 하늘나라 가면 “네 이름 무엇인가?”하면 “아무개입니다”할 것입니다. 이름이 생명책에 있으면 “합격, 넌 들어가라” 하고, 생명책에 없으면 “너는 불합격이다 못들어간다”하는 것입니다. 

제사장도 생명책에 없으면 제사장 일을 못했습니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제사장이 포로 잡혀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제사장들이 왔는데, 느헤미야 7장 64절에 “이 사람들이 보계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 고로 저희를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제사장이 와 보니까 자기 이름이 족보에 없었습니다. 제사장은 제사장인데 족보에서 이름을 다 대조해 봅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할 때, “아무개입니다”하면 어떤 사람은 “네 이름이 족보에 있다”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네 이름이 없다”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족보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제사장의 일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범죄하면 생명책에서 지움

그리고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 버린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32-33절에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려 달라고 하니까, ‘그렇지 않다. 누구든지 범죄하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믿는 일한 공로와, 인격을, 범죄하면 다 지워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고 거기에 믿는 일한 것을 다 기록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범죄하면 생명책에서 지워 버린다는 말은 본 이름을 지워버린다는 것이 아니고, 기록되어 있는 믿는 일한 것을 지운다는 말입니다. 믿는 일 잘했다, 연보 많이 했다, 봉사 많이 했다, 전도 많이 했다, 믿음 잘 지켰다, 핍박과 환란 받으면서 믿음 잘 지켰다, 순교의 신앙을 가지고 나갔다, 이런 것들을 다 기록해 놓았는데 범죄하면 이들을 지워 버립니다. 그리고 이름만 남게 됩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과거에 바울을 도와서 하나님의 일을 잘 하였습니다. 그러나 범죄하면 그 잘 한 것이 없어집니다. 그냥 이름만 남게 됩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의 기쁨

생명책에 기록이 되었다는 것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있다는 것은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으로 말하면 시민권이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시민증 장부에 기록이 되어 있으면, 시민증을 잃어 버려도 괜찮습니다. 잃어버려도 신고하면 원 시민증 장부에 이름이 있기 때문에 다시 발급해 줍니다. 

우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입니다. 요한계시록 21:27절에 보면 이 다음에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만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가지고 예수님께 들어갑니다. ‘세상에서는 환란 당하지만 생명책에 내 이름이 있다, 순교 당하지만 생명책에 내 이름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얼마나 좋습니까?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내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다 도와주십니다. 미국 정부에서도 시민권 있는 사람은 책임지고 도와줍니다. 갑자기 병이 나서 돈 하나 없이 병원에 가도, 메디케어(Medicare)라는 보건복지 시스템으로 무료로 다치료해 준다고 합니다. 돈 하나 없어도 다 치료해 줍니다. 또 나이 많은 사람들은 웰페어(Wel-fare)라는 것을 탑니다. 웰페어는 65세부터 받는데, 가난한 사람, 돈 없는 사람들도 한 달에 약 650불씩 받습니다. LA에서 650불이 한국 돈으로 65만원인데, 매달 초하루에 준다고 합니다. 병나면 병원비가 무료, 또 약도 무료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민간 할머니들이 그저 조금 감기만 들어도 병원에 간다고 합니다. 입원하면 미국정부에서 책임지고 무료로 돌봐주고 치료해 준다니, 집에 있는 것보다 거기 가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시민증 있는 사람도 그렇게 좋다고 하는데, 우리의 천국은 어떠하겠습니까? 생명책에 이름이 있고 하늘나라의 시민증이 있는 사람은 미국시민보다 몇 억만 배 더 나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감사합니다. 다 하늘나라에서 책임을 지고 돌봐 주십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다 돌 봐줍니다. 천사를 보내서 다 구출해 줍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죽어도 감사합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것을 믿습니까? 이름이 있는 것을 믿으면, 이제 자다가라도 기뻐해야 합니다. ‘내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 하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내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이것만 해도 100만 불짜리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돈 주고 못사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해야 됩니다. 이름이 생명책에 있으니까 괴로우나 즐거우나 환란을 당하나 핍박을 당하나 상관없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으면, 죽으면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북에 있는 성도들이 감옥에 갇히고 수용소에서 고역을 당하지만 ‘내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 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고역 당하다가 죽어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죽어도 괜찮습니다. 우리 이름이 생명책에 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생명책에 우리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4. 항상 기뻐하라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본문 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는 모두 4장으로 되어 있고, 또 감옥에서 기록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뻐하라”는 말이 18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신령한 신앙에 선 증거입니다. 영적신앙에 서면 항상 기뻐합니다. 그 세계는 늘 기뻐하는 세계입니다. 하늘나라는 기뻐하는 세계이고, 감사하는 세계입니다. 영적 신앙에 서지 못한 사람은 육신중심, 세상중심, 물질중심이므로 기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령한 신앙의 세계에서 사는 자,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항상 기뻐합니다.

관용하라

본문 5절에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관용이란 너그러움입니다. 즉 다른 사람이 내게 악을 행하거나 손해를 줄 때에 잘 참고 용납하여 유순한 마음으로 대해주는 것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는 것은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라’는 뜻도 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좁혀 서로 화목하지 못하고 원수가 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면 모든 사람에게 화목 할 수 있습니다. 넓은 바다는 장마
때에 사방에서 개천물이 들어오고, 강물이 흘러 들어오고, 모든 흙탕물을 다 받아도 언제나 청청 합니다. 물이 흐려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넓기 때문입니다. 하도 넓으니까 들어와도 들어오나마나 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 마음을 넓게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과 다투지도 않습니다.

염려하지 말고 주께 맡기라

본문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였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 하는 것은 마귀의 올가미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염려”라는 올가미를 목에 씌워 잡아당깁니다. 그러므로 염려가 들어오면 주께 맡기고,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것입니다. 

심을철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주에 가면 길가에 버드나무가 쭉 있는데 거기에 도적이 숨어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버드나무 잎사귀가 땅에까지 내려와 닿기 때문에 거기에 숨으면 안 보인다고 합니다. 거기에 숨어 있던 도적이 길 가는 사람에게 올가미를 목에 걸어서 잡아당기면, 사람이 끌려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호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빼앗고 내보내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주에 갈 때에는 지팡이를 하나 가지고 가야 된다고 합니다. 지팡이를 앞에 들고 가다가 도적이 올가미를 목에 걸면, 지팡이로 올가미를 걷어 벗겨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도적이 끌고 들어가지 못한답니다. 이와 같이 마귀는 “염려”라는 올가미를 성도에게 갖다가 씌우려고 합니다. 마귀가 염려라는 올가미를 갖다가 목에 걸면, 도적의 올가미를 지팡이로 벗겨내듯이 “주께 맡겨 버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이 들어오면 주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에게 끌려가지 않습니다. 모든 염려를 맡기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본문 6절 하반절에,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였는데, “기도, 간구, 구할 것” 이 세 가지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일반적인 기도이고, 간구는 특별한 사건을 두고 하는 기도입니다.

본문 7절에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면”이란 위에서 말한 세 가지를 말합니다. 즉 기도, 간구, 구할 것입니다. 이 세 가지로 하나님께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안에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옵니다. 조그마한 것을 주실 줄 알았는데 큰 것을 주십니다. “지각에 뛰어난”이란 상상도 못한 것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가서 애매히 누명을 쓰고 감옥에도 갔고, 종살이 했지만 하나님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 줄 꿈이나 꾸었겠습니까? 꿈도 꾸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각에 뛰어난 모든 것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믿음에 바로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며, 행하며 나갈 때에 지각에 뛰어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 주십니다. 

저는 6.25 전쟁 피난 중에 중공군에게 잡힐 뻔했고, 청천강을 건널 때에는 유엔군 비행기 폭격으로 죽을 뻔했습니다. 또 평양의 대동강을 건널 때에는, 대동강 다리가 다 끊어지고 다리 테두리만 물위에 올라와 있었는데, 그리로 벌벌 기어 올라가서 내려갈 때에는 미끄럼을 타듯이 내려가며, 다리를 건너 이남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지각에 뛰어난 모든 것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됩니다. 그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에 뛰어난 것을 주십니까? 지각에 뛰어난 것을 주십니다. 즉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주십니다. 작은 것을 생각했는데 큰 것을 주십니다. 

5. 도덕적 열매를 맺으라

본문 8절에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에든지 참되며”란 진실하라는 말입니다. “무엇에든지 경건하며”란 하나님께 바로 하라는 말입니다.
“무엇에든지 옳으며”란 옳게 하라는 말입니다. “무엇에든지 정결하며”란 정결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란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란 하나님 앞에 칭찬 받을만 하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로마서 4장18절에,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는 사람은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무엇이나 칭찬 받을만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사랑으로 하고, 신앙양심을 써서 깨끗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무엇에든지 옳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익이 될까?’하며 이익을 보려는 데로만 따라 가면 실패합니다. ‘어떻게 해야 옳게 할까?’ 생각하여 옳게 하면 성공입니다. 몇 가지입니까? “첫째는 참되며, 둘째는 경건하며, 셋째는 옳으며, 넷째는 정결하며, 다섯째는 사랑할만하며, 여섯째는 칭찬할만하며”로 여섯 가지입니다. 무엇에든지, 누구에게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익을 따라가지 말고 무엇에든지 참되게, 경건하게, 하나님께 바로 해야 합니다. 무엇에든지 옳게, 신앙양심을 써서 하고,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또 무엇에든지 하나님과 사람에게 칭찬 받을만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하였는데, 이것들이란 무엇입니까? 위의 여섯 가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위의 여섯 가지를 생각해서 그대로 하라는 말입니다. “무슨 덕이 있든지”라고 하였는데, “덕”이란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것으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베풀 때에 여섯 가지를 생각해서 그대로 베풀라는 것입니다. 또 “무슨 기림이 있든지”라고 하였는데, “기림”이란 자기가 예찬 받는 것으로, 자기가 예찬 받을 때에 여섯 가지를 늘 생각하여, 그 여섯 가지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대인 관계에 있어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덕을 베풀어야 할 때에, 즉 좋은 일을 할 때에 옳게, 경건하게, 참되게, 정결하게, 사랑할만하게, 칭찬할만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 때에 옳게 베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옳게, 참되게, 진실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 때에 외식하지 말고, 자기 자랑하지 말고, 또 자기 칭찬 받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 때에 옳게, 진실하게,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기림을 받을 때에도 즉 예찬을 받을 때에도 이것들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예찬은 다른 사람에게 받는 것입니다. 예찬을 받을 때에도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하였는데,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위에서 말한 여섯 가지로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할만하며, 칭찬할만한 것입니다. 즉 받을 때에도 바로 받고, 줄 때에도 바로 주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 때에 양심을 바로 써서 옳게 하여야 합니다. 바르게, 경건하게, 더러운 생각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인심을 사서 한 몫 보려고 하는 것은 옳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또 무엇을 주고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고받으려고 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대인관계에 있어서 늘 베풀어야 할 것이 많은데, 즉 내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 할 것,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야 할 것,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할 것 등이 많이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옳게 하고, 정결하게 하고, 선하게 하고, 사랑할만하게 하고, 칭찬 받을만하게 해야합니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관계를 가지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이기주의로 나가지 말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지 말고, 남을 멸시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남을 도와주며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자기가 예찬 받을 때에 몇 가지 생각하라고 하였습니까?
여섯 가지를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옳게, 경건하게, 참되게, 정결하게, 칭찬할만하게, 사랑할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대접 받을 때에 경건하게 받아야 합니다. 대접을 받는다고 해서 거기에 빠져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옳게 받으라는 것입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공경할 때에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옳게 공경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공경을 옳게 받으라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정결하게, 사랑할만하게 받으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내가 칭찬을 받든지, 욕을 먹든지, 고난을 받든지, 다 “옳게, 정결하게, 경건하게, 사랑으로, 칭찬 할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이 여섯 가지가 참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줄 때에도 이 여섯 가지대로 주고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또 남을 도
와 줄 때에도 이 여섯 가지대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받을 때에도 이렇게 받아야 합니다. 즉 옳게, 정결하게 받아야 합니다. 저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내게 줄까? 무슨 딴 생각을 가지고 주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저 정결하게, 옳게, 바르게, 경건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각에 뛰어난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조그마한 것을 바라보았는데 큰 것을 주십니다. 예를 들어 만 원 짜리를 바라보았는데 몇 억을 주십니다. 이처럼 지각에 뛰어난 모든
선물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대인관계에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어야 하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형제 우애를 더하고,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여야 합니다(벧후1:5-7). 우리가 덕이 있어야 합니다. 덕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욕을 먹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못 받습니다. 믿음에 덕을 더하라 하였는데, 믿음은 있는데 덕이 없는 사람은 못 씁니다. 사람이 덕
망이 있어야 합니다. 덕이 없으면 남에게 욕이나 먹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저따위가 예수 믿는 사람이냐? 네가 천당을 가면 나는 만당을 간다”는 욕만 먹습니다. 또 덕은 있는데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덕이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좋게 하고 칭찬을 받는데, 믿음이 없어서 뼈가 없는 사람 같이 바로 서 나가지 못합니다. 

출애굽기 18:21에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세울 때에 이드로가 모세에게 재덕이 겸전한 사람, 즉 재주와 덕이 겸전한 사람을 택하고, 진실 무망한 사람, 즉 진실하고 망령되이 행치 않는사람,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몇 가지 입니까? 
첫째는, 재덕이 겸전한 사람, 
둘째는, 진실 무망하고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사람, 
셋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택하라고 했는데, 그런 사람을 구하기가 힘듭니다. 어떤 사람은 재간은 있는데 덕이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덕은 있는데 재간이 없어서 매사를 비뚤게 합니다. 그러므로 진실 무망하고, 불의한 재물을 취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덕이 있어야 합니다. 덕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올 때에도 남을 도와주는 정신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6. 바른 진리를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본문 9절에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에게서 바른 진리를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진리를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른 진리를 배우고, 그 다음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여야 합니다. 행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평강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듣기만
하지 말고 행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인간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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