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일 수요일

누가복음 4:1-24 예수님 승시(勝試)와 가버나움 전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수님 승시(勝試)와 가버나움 전도
누가복음 4:1-24

1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서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10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13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14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16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신 곧 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1.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심

본문 1-2절에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 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어 기도하실 때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본문 2절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사십일 동안 시험을 받으셨으나 성령에게 이끌리어서 모든 것을 다 이겨 나가셨습니다.

물질시험

본문 3-4절에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시험은 마귀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하는 물질시험을 했습니다. 언제나 초계단시험이 물질 시험입니다.
마귀가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할 때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신명기 8:3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이겼습니다. 산다는 것은 영혼이 산다는 말입니다. 영혼이 사는 것이 진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이 삽니다. 말씀만 있으면 영혼도 살고 또 육신도 하나님이 살려주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
다”는 것은 영혼은 말씀으로 살고 육신은 떡으로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말씀 하나만 가지고 다 산다는 말입니다. 말씀으로 영혼도 살고, 영이 살면 또 육신도 먹을 것을 주어서 살린다는 말입니다.

영광시험

본문 5-7절에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것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셋째 번 시험인데 여기는 둘째 번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 있는 것이 맞습니다. 여기서는 순서가 바뀌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4:4-6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번 시험은 성전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이고, 셋째 번 시험은 천하 만국을 보이면서 절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순서가 바뀌어 있습니다.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준다”는 것은 마귀가 권한 밖의 것은 못주고, 권한 안의 것을 자기에게 절하면 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하에 모든 것이 다 있는데 마귀가 일시적으로 하나님이 허락한 권한 안에서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마귀에게 한번 절했다면 실패합니다. 마귀에게 절하면 그것은 벌써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는데 마귀에게 절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을 양보 하는 것이며 신앙 양심을 양보 하는 것이며, 진리를 양보 하는 것입니다. 즉 진리 양보, 신앙양심 양보, 믿음을 양보하는 것은 마귀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팔아먹는 일, 진리를 팔아먹는 일, 신앙양심을 팔아먹는 일 등이 다 마귀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신명기 6:13의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말씀을 가지고 마귀를 이겼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하였습니다. 마귀에게 경배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또 “다만 그를 섬기라”에서 “다만”이란 다른 것은 다 떨어져 나가고 그것 하나만 하는 것이 “다만”입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 하나만 합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습니다. 다른 것은 다 없어도 됩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 하나만 나는 한다”는 신앙을 가지고 나갈 때에 마귀는 떨어져 나갑니다.

명예 시험

본문 9-11절에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귀가 이번에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 올
라간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시험 받은 것입니다.
마귀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고 하였는데 왜 뛰어 내리라고 하였습니까? 뛰어 내리라는 것은 자기가 높아지기 위한 것입니다. 뛰어 내려도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고 상하지 않으면 높아진다는 말입니다. 자기 위하는 것, 자기 인기와 인심 얻는 것, 자기가 위대해 지는 것, 자기가 큰일 하는 것, 뛰어 내려도 발이 상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 앞에 인심을 얻고, 위대해지고, 또 모든 사람 앞에 큰일 할 수 있다는 그런 인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뛰어 내리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높아지고, 위대해지고, 대접받고, 자기가 모든 사람 앞에 존귀함을 얻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 뛰어 내리라는 것입니다.

시편 91:11-12에 “발이 상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마귀가 말씀을 갖다 댄 것은 성경을 이용한 것입니다. 뛰어 내리는 원목적은 자기가 높아지기 위해, 자기 인심을 얻기 위해, 자기가 위대해지기 위해, 자기가 커지기 위한 것입니다. 즉 교만입니다. 또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겠다고 했으므로(시 91:11-12), 그대로 되나 해보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명예, 교만, 자기 위하는 것을 갖다 넣어주고 거기에 성경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마귀도 성경을 가지고 와서 시험 하는 것을 우리가 언제나 알아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신명기 6:16의 “말씀하시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세 번째도 성경으로 이기셨습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한 후에 얼마동안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2. 가버나움 전도

본문 14-16절에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라고 하였습니다. 각 동네에 회당이 있었는데 회당은 제사 드리는 곳이 아니고 성경을 공부하는 곳입니다. 누구든지 나와서 성경에 대해서 한마디 하겠다고 하면 “하라”고 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이사야 61:1의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본문 18-19절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있는 말씀은 예수님에 대해서 한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나시기 전 약 700년 전 사람인데 벌써 장차 그리스도가 나서 이와 같은 일을 하겠다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해 놓은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그리스도가 났기 때문에 오늘날 너희에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본문 18절의 말씀처럼 죄와 마귀에게 영적 포로 된 자에게 영적 자유를, 즉 영적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그리스도가 주신다는 것입니다. 죄와 마귀에게 눌린 자를 자유케 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란 그리스도가 복음 전파하는 것은 은혜의 해란 말입니다. 이렇게 영적 자유, 영적 해방, 영적 은혜, 영적 눈이 밝아지는 일, 이런 것을 그리스도가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방신학자들은 제도적인, 사회적인 것으로 오역을 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에게 눌린 사람을 해방 시키는 것이 예수님의 정신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부자에게 눌린 사람, 권력에 눌리운 사람. 정치적 억압에 눌리운 사람, 이런 사람들을 해방하는 것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이것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방신학자들이 자본주의 제도나 정치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기독교의 할 일이다 하며 계급투쟁, 해방운동 등 각종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정치적 기관으로 사용하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영의 자유, 영의 해방, 영의 눈 뜨는 일에 육신운동을 붙이는 것은 기독교를 악용하는 죄가 됩니다.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본문 22-24에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는데 고향에서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후회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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