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음을 기뻐하며 복음을 전한 사도들
사도행전 5:29-42
사도행전 5:29-42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사람에게 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5:30 너희가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살리셨다.
5:3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 용서를 베푸시려고 이분을 오른손으로 높여 통치자와 구주로 삼으셨으니,
5:32 우리는 이 일들의 증인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성령께서도 증인이시다."
5:33 그러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는데,
5:34 율법 교사로서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한 바리새인이 공회에서 일어나 사도들에게 잠깐 밖에 나가 있도록 명령하고,
5:35 공회원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스스로 조심하여라.
5:36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서 스스로를 자랑하며 선전하니, 사백 명쯤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으나, 그가 죽임을 당하자 그를 따르던 자들이 모두 흩어져 없어졌다.
5:37 이 일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사람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자기를 따르게 하였는데, 그가 죽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모두 흩어졌다.
5: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이 사람들에게서 손을 떼고 그들을 내버려 두라. 만일 이 사상이나 행위가 사람에게서 왔다면 없어지겠으나,
5: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며, 도리어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의 말을 옳게 여겨,
5:40 사도들을 불러다가 때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한 후 풀어 주었다.
5:41 이에 사도들이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당하기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에서 떠나갔다.
5:42 그들이 날마다 성전과 각 집에서 가르치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 전하는 것을 쉬지 않았다.
5:3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 용서를 베푸시려고 이분을 오른손으로 높여 통치자와 구주로 삼으셨으니,
5:32 우리는 이 일들의 증인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성령께서도 증인이시다."
5:33 그러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는데,
5:34 율법 교사로서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한 바리새인이 공회에서 일어나 사도들에게 잠깐 밖에 나가 있도록 명령하고,
5:35 공회원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스스로 조심하여라.
5:36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서 스스로를 자랑하며 선전하니, 사백 명쯤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으나, 그가 죽임을 당하자 그를 따르던 자들이 모두 흩어져 없어졌다.
5:37 이 일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사람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자기를 따르게 하였는데, 그가 죽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모두 흩어졌다.
5: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이 사람들에게서 손을 떼고 그들을 내버려 두라. 만일 이 사상이나 행위가 사람에게서 왔다면 없어지겠으나,
5: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며, 도리어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의 말을 옳게 여겨,
5:40 사도들을 불러다가 때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한 후 풀어 주었다.
5:41 이에 사도들이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당하기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에서 떠나갔다.
5:42 그들이 날마다 성전과 각 집에서 가르치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 전하는 것을 쉬지 않았다.
1.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께 순종한 사도들
사도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다가 그 다음날에 죽이든지 어떻게 처리하려고 했는데, 그 잡혀온 날 밤에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감옥에서 놔주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오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성전에서 가르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성전에서 또 가르쳤는데 다시 그들을 잡아왔습니다.
사도들을 다시 잡아다가 공회원들이 모여서 본문 28절에,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라고 책망을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뭐라 대답했습니까? 본문 29절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을 다시 잡아다가 공회원들이 모여서 본문 28절에,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라고 책망을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뭐라 대답했습니까? 본문 29절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공회의 사람들은 죽일 수 있는 권세가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이 사람들이 정죄해서 빌라도에게 허락 맡아서 죽인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까지 죽였는데 제자들 죽이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다시 예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할 때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뭐라고 했습니까?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4장에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사도행전 4:19-20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라며 아주 담대히 말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생명 내놓고 한 말입니다. 옥에서 나와서 예수이름으로 전하지만 않으면 석방하고 자유롭게 놔주겠다고 공회에서 말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여기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아주 담대히 말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말한 것입니다. 또한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순교의 제물로 자신을 바칠 각오를 하고 담대히 이 말씀을 증거 한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여 담대히 전함
본문 30-31절에,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너희가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셔서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32절에,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고 했는데,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고 또 누가 증인입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를 보면, 성령을 어떤 사람에게 준다고 그랬습니까?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불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임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성령은 당신의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시려고 하는데, 우리가 거역하면 어떻게 인도하시겠습니까? 성령께서 오른쪽으로 가자 그러시면 오른쪽으로 가야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면서, 성령이 오른쪽으로 가자고 그러시는데 왼쪽으로 가면 성령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동도 못 받고 인도도 못 받습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를 보면, 성령을 받는 방법은 성경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릴 인도하시려고 계속해서 감동을 시키시고 인도하시는데, 순종을 하면 그 성령의 능력과 인도를 받게 되는 것이고, 거역을 하면 성령의 인도를 못 받습니다.
순종을 해야만 받는다는 말입니다. 성경말씀을 순종해야 되고,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를 언제나 순종해야만 성령의 능력이 같이하십니다. 순종해야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고자 하시는 그 뜻을 다 이루어 나가실 수 있습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해야 된다는 것인데, 바울이 아시아 비두니아에서 전도하려고 애를 쓰는데 성령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마게도냐에 대해 환상 가운데서 한 사람이 도와달라고 한 것에 대해 하나님의 뜻인 걸 깨닫고 빌립보로 갔습니다. 거기서 루디아를 만나고 거기에 빌립보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복음이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말입니다.
그와 같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바울이 갔습니다. 사람의 인도를 따른 게 아닙니다. 또한 그 곳에 가서 대접을 받으려고 간 것도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순종하면 성령께서 큰 역사를 나타내셔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2. 공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죽이려 함
본문 33-34절에,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라고 했는데, 저희 공회가 아주 격분했습니다. 자기들이 전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계속 ‘전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하고,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렸다’고 하니 얼마나 격분했겠습니까?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렸다”는 말에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했습니다.
사도들을 없애 죽이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바리새인 교법사 가말리엘이라고 있었는데, 교법사라는 것은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 성경학자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성경교사인데, 그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제안하기를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자기들끼리 말하자고 한 것입니다.
본문 35-39절에,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드다라는 사람이 자기를 자랑하니까, 사람들이 한 4백명 즈음 드다를 따라가다가 결국 다 흩어졌다고 했습니다. 드다가 죽으니까 좇던 사람들이 다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자기를 좇게 하다가 그가 망하니까 다 흩어져 없어지고 말았다는 말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일시에 일어나서 자기를 자랑하고, 좇게 하다가 그 사람 망하니까 사람들이 흩어진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나온 미혹하는 사이비들
한국에도 그런 일이 많습니다. 철산에 김성도라는 할머니가 자기가 재림주라고 그랬습니다. 재림주라고, 새로운 주라고 하고는 자기는 죽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결국 죽었습니다. 그리곤 좇던 사람들이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또한, 평양에 허우빈이란 여자가 자기 복중에 예수님이 왔다고 그랬습니다. 결국 그 여자도 사기죄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여자를 좇던 사람들이 다 흩어졌습니다. 그 사람을 좇아 다니던 사람 중에 문선명이라고 한국에서 나왔는데, 그는 두 가지 이단을 다 좇아다닌 사람입니다. 문선명이 여기서 나와서 자기가 재림주라고 한 것입니다. 그게 통일교인데, 이제 문선명이 죽으면 거기도 흩어지고 맙니다. 자기가 예수라 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뭘 따라가겠습니까. 요새도 만왕의 왕이라는 사람이 나왔는데, 만왕의 왕이라고 하고 다녀도 그 사람이 죽으면 다 없어집니다. 그것을 따라가던 사람들이 없어지고 만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가 무슨 하나님이 되는 것처럼 하는 그런 사람 따라가는 사람들이 꽤나 되지만, 그 사람이 죽고 나면 다 흩어진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이름으로 기도하지 말고 자기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겁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자기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죽으면 다 없어집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이 요새 있는데, 다른 사람들을 망하게 만들고 자기도 망하는 것입니다. 뭐 때문에 남도 망하고 자기도 망하려고 그러는지, 또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해서 자기를 많이 따라오게 하면 뭘 하겠는지 말입니다. 그렇게 대접 잘 받으면 뭘 하겠는지, 남 망하게 만들고는 아주 그거 참 마귀의 종들입니다.
박태선은 자기가 감람나무라고 했는데, 박태선이 세상 떠나고 나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감람나무가 죽었는데 그래도 따라가는지 어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박태선이 하나님이라고 중앙청 앞에 흰두루마기 입고 갓 쓰고 나와서, 여자들은 띠를 두르고 하나님이라고 서울역 앞에서 선전하던 때가 몇 년 안 지났는데, 한 3년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박태선이 죽었으니 그 사람들 다 어디로 갔느냐는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데, 사람 따라가다가 그 사람 죽고 나면 다 흩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공회가 사도들을 때려서 놓아줌
본문 38-39절에,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라고 하면서 그 사상과 소행이 하나님께로 났으면 무너뜨릴 수 없다고 합니다. 만일 그것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께로 났으면 무너뜨릴 수 없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봐 두렵다고 하니까 본문 40절에,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라고 했습니다.
공회가 가말리엘의 말을 들어보니 가만히 있자는 말이 옳단 말입니다. 사람에게로 났으면 가만 내버려 둬도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하나님을 무너뜨릴 수도 없고 대적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까, 가만 내버려 두라는 게 옳습니다. 그래서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다시는 하지 말라고 금하고 놓아주었습니다.
사도들은 말하지 않겠다고 안 했습니다. ‘말하지 않겠다고 하면 놓아주겠다’고 공회가 말했다면, 사도들의 대답이 뻔했을 것입니다. 사도들은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대답할 것이 뻔하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말하지 말라고 공회가 일방적으로 했던 것입니다. 채찍질하면서 다시는 하지 말라고 하곤 내보냈다는 말입니다. 사도들이 매를 많이 맞고 나왔습니다.
3. 매를 맞고 나오면서 기뻐한 사도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능욕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김 받음을 기뻐함
그런데, 매 맞고 울며 나왔습니까? 본문 41절에,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 했습니다. 울며 나오지 않고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왔습니다. 사도들은 뭘 기뻐했습니까?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습니다.
‘예수를 위하여 능욕을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한다’ 는 것은, 예수를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자기들이 당선이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가 예수를 위하여 능욕 받을까 살펴보시다가 ‘이 사람들이 예수를 위하여 능욕 받는 게 합당하다’ 하시며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이 이 일에 합당하다고 고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해서 능욕 받는 일에 사용을 하셨다는 말입니다.
능욕 받는 일에 사용을 했다는 것이 대단히 기쁜 일이라는 말입니다. 누구나 그러한 능욕을 받을 순 없습니다. 누구나 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능욕 못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능욕을 받는 일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만 능욕을 받게 해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주시는 예수님을 위한 능욕을 받으면 하늘나라에서 벌써부터 상급이 커집니다. 그것을 당한 사람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관한 면류관을 준비해 놓으셨는데, 누가 이 면류관에 합당한 자가 되겠는가 하고 하나님께서 살펴보십니다. 그러시던 중에 이 베드로와 사도들이 받으면 되겠다고 정하셔서, 그들을 위해서 면류관 예비해 놓으시고 그 다음에 능욕 받게 만드신다는 말입니다. 그 면류관을 주려하시는데 거저 줄 순 없습니다. 능욕을 받고, 환란 받고, 고난 받고난 그 다음에라야 줘야 그게 합당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거기에 합당한 자로 택함을 받은 일을 기뻐하면서 나왔습니다.
하나님 앞에 합격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능욕
이것을 보면 누구나 다 환란 받는 게 아닙니다. 예수를 위해서 능욕받고, 환난 받고, 핍박받는 일은 하나님께서 거기에 합당한 자로 합격된 사람에게만 예수를 위해서 능욕 받도록 하나님께서 해 주십니다.
왜 능욕을 받도록 해주십니까? 상 주시려고 그런 것입니다. 상을 줘야 되겠는데, 능욕을 받아야 상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합당하다”하시고 ‘네가 상 받을거다’라는 합당한 자로 선택이 되었는데, 그 상 받을 순서로 능욕을 받고나서야 상 받는 것입니다.
예수를 위해서 매 맞고, 능욕 받는 것은 하늘나라 가서 상 받을 증거입니다. 그건 누구나 다 받는 게 아니고 합격 된 사람만 받는 것입니다. 그것에 합격한 사실은 큰 복입니다. 큰 복인데, 누가 여기에 합당한 자일까 하고 하나님께서 살펴보시다가 ‘이 사람이 합당하다’ 그러시면 그 사람에게 상 줄 것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그 상을 위해 그 선택받은 사람이 능욕을 받고, 예수를 위해 매도 맞게 해 놨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순서를 통해서 하늘나라에서 상급을 받습니다.
이를 보면 예수를 위해 매 맞고 능욕 받게 된 사람은 하나님에게 합격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합격된 사람들은 시험 치고 합격하여 기뻐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령 학교에 합격이 되었다고 하면 학교에서 돈 얼마 내라 그럽니까? 등록금 얼마입니까? 6개월에 220만원, 한 학기에 200만원 정도라고 하면, 그 돈이 없는 집 많을 것입니다. 백 명이 합격되었다 하면 220만원 집에 마련해 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는 몰라도, 그래도 기뻐합니다. 이백 이십 만원 내라는데도 아주
기뻐합니다. 돈 내는 것만 생각하면 슬퍼하겠는데, 돈 내는 건 생각 안하고 그래도 합격한 것을 생각하니까 기쁘다는 말입니다.
그것과 똑같습니다. 매 맞는 것만 생각하면 슬프겠는데 매 맞고, 능욕 받는 것보다 합격된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매 맞는 것만 보는게 아닙니다. 매 맞고 능욕 받는 것이 저기 하늘에 가서 하나님께서 예비한 것을 주시려고 하는 거니까 아주 기뻐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위해서 매 맞았습니까? 또, 예수를 위해서 욕먹고 능욕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아주 기뻐하십시오. 합격된 사람들입니다. 합격되었기 때문에 능욕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를 위해서 전도하느라고 욕먹고, 환난을 당하거나, 주일학교 아이들 아침에 심방하느라 반장들이 밥도 못 먹고 나가는 이런 고난을 당합니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합격된 자입니다. 하나님이 합격시켜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조그만 고난이라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난은 누구나 다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교사 보내는데, 선교사는 그런 어려운 고난을 당하는 자리인데도 고난당하려고 간다는 말입니다. 그들도 하나님께 합격된 자입니다. 또한, 보내는 사람들도 모든 정성을 다해서 보냅니다. 그것 역시 합격된 사람입니다.
그런 교회가 합격된 교회입니다. 선교비를 내고, 설교할 사람을 보내는 교회를 가는 사람도 합격된 사람이고, 보내는 교회도 안 보내는 교회보다 합격된 교회입니다.
그렇게 안보내면 하늘나라에 상이 없습니다. 보내야 그것이 하늘나라에 남아있습니다. 합격된 교회만 선교 보냅니다. 합격된 사람만 선교 갑니다. 합격 안 되면 못갑니다. 금년에도 한 두어 명 보내려고 하는데, 하나님 앞에서 합격된 사람만 가고, 합격 되지 않은 사람은 못 갑니다. 예수를 위해서 욕먹고, 핍박받고, 능욕 받고, 매 맞고, 이런 것은 어떤 사람만 다 받는다고 했습니까? 합격 된 사람만 받습니다.
합격 안 된 사람은 그런 고난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 기도원 짓느라고 고난 당했는데, 그런 것도 합격된 사람에게만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합격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합격 된 사람만 받는 것입니다. 합격 되었나 못되었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매 맞는지, 능욕 좀 받는지, 고난 받는지 그런 게 문제가 아니고 합격 되었는지가 문제입니다.
학생들은 학교에 합격 되었으면 돈 이백이십만원 내고, 돈 드는 책값 등, 값을 내는 게 많을 텐데 그래도 기뻐합니다. 돈 내라는데 기뻐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돈 내라 하면 자라 모가지처럼 쏙 들어 가는데, 돈 내라는데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그건 돈을 내긴 하지만 합격된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합격된 것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원 짓는 것에 합격되었습니다. 나가서 일하는 사람도 합격되었기 때문에 일해서 고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전도하는 일에는 능욕이 따라오고 고난이 오지만 합격되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도들이 기뻐했습니다. 기뻐하면서 공회를 떠났습니다. 본문 42절에,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쉬지 아니하고 전도했습니다. 우리도 쉬지 아니하고 전도해야 되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