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고린도후서 6:1-18 지금은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지금은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1-18

1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3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5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6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8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11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12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13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14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15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17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라. 

6:2 말씀하시기를 "은혜를 베풀 때에 내가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 라고 하셨다. 보아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 

6:3 우리는 이 직분이 비난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누구에게도 거리낌이 되지않게 하고, 

6:4 오직 모든 일에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임을 보여 주었으니, 곧 많은 인내와 환난과 궁핍과 곤경과, 

6:5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굶주림과, 

6: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과, 

6: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과 오른손과 왼손의 의의 병기로, 

6:8 영광과 수치로 비난과 칭찬을 통하여 보여 주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 되고, 

6:9 이름 없는 자 같으나 유명하며, 죽는 자 같으나, 보아라, 우리가 살아 있으며,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고,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며,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다. 

6:11 고린도 사람들아,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려 있으며, 우리의 마음이 넓게 열려있다. 

6: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의 마음 안에서 좁아진 것이다. 

6: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니, 너희도 이에 대한 보답으로 마음을 넓혀라.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마라. 의와 불법이 어떻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떻게 사귈 수 있겠느냐?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떻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떻게 몫을 나눌 수 있겠느냐?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떻게 일치 될 수 있겠느냐?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으니 "내가 그들 가운데 살고 그들 가운데 걸어 다닐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6: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떨어져 있어라. 주가 말한다.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6:18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나의 자녀들이 될 것이다. 전능한 주가 말한다." 라고 하셨다.


1. 지금은 은혜 받을 때임

은혜의 때 뒤엔 반드시 구원의 때가 있음

은혜는 하나님께서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베풀어 주셨고 구속받은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도 은혜이고, 택해주신 것도 은혜이고, 믿음 주신 것도 은혜이고, 하나님께서 가까이 해주시는 것도 은혜이고, 사랑해주시는 것도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삼아 주신 것도 은혜이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로 우리를 인도해주시는 것도 은혜입니다. 전부 은혜입니다. 그 은혜의 내용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본문에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는 말씀은, 이사야 49장 8절에서도,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때’를 주십니다.

구약시대에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때가 특별히 있었고 구원의 날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 하던 때는 ‘은혜의 때’입니다. 출애굽 할 때는 ‘구원의 날’입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감옥에 갇힐 때는 ‘은혜의 때’이고, 그 후에 요셉을 건지셔서 애굽의 총리대신을 삼으실 때는 ‘구원의 날’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도망하여 40년간 미디안 생활을 할 때는 ‘은혜의 때’이고, 바로 왕 앞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낼 때에는 ‘구원의 날’입니다.

이렇게 구약시대에는 ‘은혜의 때’가 있었고, ‘구원의 날’이 그 뒤에 오곤 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전체가 다 ‘은혜의 때’입니다. 본문에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으니까 신약시대 전체가 다 은혜의 때이고, 구원의 날입니다.

본문 1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을 주셨는데, 이것을 헛되이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을 주셨는데, 그 때에 은혜받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때를 헛되이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실패하는 자가 됩니다.

본문 2절에,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때에 ‘너를 듣고’라고 했습니다. ‘너를 듣고’라는 말은 응답하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때가 은혜의 때이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구원해주시는 때가 구원의 날입니다. 신약시대는 전체가 다 ‘은혜의 때’이고 전체가 다 ‘구원의 날’입니다.

고난도 은혜로 주심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에는 은혜를 받을만한 환경을 만들어주십니다. 은혜를 받을만한 환경에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부르짖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면 구원의 날이 옵니다.
이 세상에서 성도를 연단시키실 때에 여러 가지 환란, 고난, 시험, 풍파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이런 것들을 주시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게 만들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들고, 회개하게 만드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들어주시고, 응답하여 구원해주십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오더라도 은혜를 베풀어주시려는 줄로 알면 됩니다. 여러 가지 일이 올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려는 줄로 알고 헛되이 보내면 안 됩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고난도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평안한 것만 은혜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도 은혜로 주는 이유는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은혜의 때가 됩니다. 고난 받는 중에서 자기를 부인하게 되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게 되고, 하나님을 찾기 때문에 고난이 은혜입니다.

은혜의 때에 오는 10가지 고난

본문 4-5절에,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라고 했습니다. 10가지 고난이 오는데, 이것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은혜의 때가 되어서 주신 것입니다.
첫째가 ‘많이 견디는 것’이고, 
둘째는 ‘환란’, 
셋째는 ‘궁핍’한 것입니다. 
넷째는 ‘곤란’인데, 곤란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게하시기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매 맞음’인데, 이를 통해 더욱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려고 하게 됩니다. 
여섯째는 ‘갇힘’인데, 감옥에 갇히는 것이나 전쟁 나는 것이나 다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는 ‘요란한 것’이고, 
여덟째는 ‘수고로움’이고, 
아홉째는 ‘잠자지 못함’, 
열 번째는 ‘먹지 못함’입니다.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할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지 아니하겠습니까? 하나님만 찾으려고 애를 쓰지 아니하겠습니까? 그렇게 부르짖고 애쓸 때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때입니다. 이렇게 열 가지 어려움이 오는데, 모두 은혜 주시려고 주시는 어려움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고난, 많이 견디고 환란당하고 궁핍하고, 곤란당하고 매 맞고 갇히고, 요란함을 당하고 수고롭고, 잠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것을 당할 때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때입니다.
그 때에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일이 잘 안 될 때에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그 때에 은혜 받지 못하면 그 때를 헛되이 보내는 것입니다.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열 가지 고난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주시는 줄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하고 돌아오라고 이러한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고난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느라고 고난을 주시는 줄로 알아야 합니다.
고난의 때가 은혜의 때입니다. 잘 안 되는 때가 은혜의 때이고, 요란한 일이 생길 때가 은혜의 때입니다. 요란한 것, 전쟁과 같은 일이 있는 때가 은혜의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느라고 그러한 일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의 때 뒤에 구원의 날이 옴

그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안식을 얻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날은 그 다음입니다. 은혜의 때가 지난 다음에는 구원의 날이 옵니다. 은혜를 받으니까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십니다. “그만했으면 됐다”하시며 구원해주십니다.

여러 가지 징계를 받아서 죽을 고생에 빠졌는데, 그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그렇게 부르짖는 것이 무슨 때라고 했습니까? 바로 은혜의 때입니다. 은혜를 받지 않고는 나갈 수가 없는 때입니다. 전에는 자기 힘으로 하는 줄 알았다가 고난 중에서 자기 힘으로 할 수가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세상 따라가고 돈 따라가도 안 될 것을 알고, “이것 가지고는 안 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야 산다”는 것을 알고 돌아서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것이 은혜의 때입니다. 징계를 받아 죽을 고생에 빠졌을 때에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가 은혜의 때입니다. 그런 뒤에 구원의 날이 오면 우리를 구원해주십니다.

원망 없이 은혜의 때를 지낼 것

세상은 환란이 많고 풍파가 많은 세상입니다. 이렇게 환란과 풍파 많은 세상에서 저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하십니다. 환란과 풍파도 저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 자체가 은혜가 됩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많이 입혀주시고자, 은혜 속에 들어가게 하시고자, 은혜 속에서 강건하게 하시고자 이 모든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뒤에 하나님의 구원의 팔이 나타납니다. “됐다. 건져 주어야겠다”하시며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홍해바다가 가로막혔었습니다. 홍해를 앞에 두고 부르짖게 되는데, 이 때가 은혜의 때입니다. 부르짖으니까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4:16에,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홍해를 건넌 날은 구원의 날입니다.
이스라엘이 먹을 것이 없어서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백성들은 원망을 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때를 하나님께서 은혜의 때로 주셨는데, 모세는 그 때가 은혜의 때인 줄 바로 알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더욱 은혜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을 그 은혜의 때를 원망함으로 지냄으로 죄만 지은 것입니다.

원망하는 것은 죄입니다. 망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은혜를 받는 방법입니다. 부르짖으니까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시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또한 물이 없어서 다 목 말라 죽게 되었을 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원망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은혜의 때를 그만 죄만 짓는 때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반석에서 생수가 나왔습니다. 그것이 구원의 날입니다. 이외에 불뱀이 나와서 문 것도 은혜의 때이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당한 일 등, 여러 가지가 은혜의 때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날마다 은혜의 때이고, 날마다 구원의 날입니다. 사건마다 은혜의 때이고 사건마다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한 은혜의 때를 헛되이 보내지 말고, 그 은혜의 때에 죄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 몸에 병나는 것, 환란, 궁핍, 전쟁 나는 것, 감옥에 갇히는 것, 먹을 것이 없는 것 등이 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때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때를 주실 때에, 그 때를 은혜의 때로 만들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은혜의 때를 보내는 세 종류의 사람이있습니다.
첫째, 은혜의 때를 헛되이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째, 은혜의 때에 죄짓는 것으로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은혜의 때를 죄로 보내는사람은 원망하는 것, 불평하는 것, 자포자기 하면서 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때를 죄짓는 것으로 보내면 안 됩니다. 
셋째, 더욱 더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되지 않을 때에 세상으로 더 나가려 하다가 머리 다 깨지고 그만두는 사람입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자신이 잘못 나가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바로 세우려 하시는 것을 알고, 찾아보고 회개하고 돌이키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의 때에 주시려는 그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2. 구원의 날에 주시는 선물
세상적인 면의 선물

그런 다음에 구원의 날이 옵니다. 건져주십니다. 세상 면으로 건져 주시는 것도 있는데, 병을 낫게 해 주시거나, 먹을 것이 없을 때 먹을 것을 주시는 것은 세상 면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데 나오게 해 주시거나, 죽을 고통에 빠졌던 것을 건져주시는 것은 세상적인 면으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영적인 면의 아홉 가지 선물

영적 면으로 건져주시는 것은 더욱 큽니다. 구원의 날에 영적 면으로 건져주시는 것은, 고린도후서 4:16에,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는 말씀처럼, 외부적으로는 잘 안 되더라도 속사람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셔서 날마다 새로워지게 하고 강건하게 하고,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게 하시고 모든 것을 더욱 잘 이기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구원의 날에 주시는 참된 구원입니다.

본문 6-7절에, 은혜의 때에 은혜 받은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아홉 가지 선물로서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라고 했습니다. 은혜의 때에 헛되이 보내지 않고, 은혜의 때에 죄짓는 데로 나가지 않고 참으로 은혜를 받으면, 겸손히 하나님께 매일 앉아서 기도하고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부인하고, 세상 의지했던 것인 물욕 정욕 사욕을 회개하고, 떠나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려고 하고,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능력의 장중에 붙들리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그 결과가 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있습니까? 본문 6절에, 
첫째, 깨끗함을 받고 
둘째는 지식을 얻게 됩니다. 
셋째는 오래 참음으로 인내가 이루어집니다. 
넷째는 자비, 
다섯째는 성령의 감화가 있습니다. 
여섯째는 거짓이 없는 사랑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일곱째는 진리의 말씀을 많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덟째는 은혜의 때에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
이 입혀집니다. 
아홉째는 의의 병기로 좌우한다고 했는데, 자신의 몸이 의의 병기가 됩니다. 로마서 6장에, ‘의의 병기’와 ‘불의의 병기’가 있는데, 우리 몸으로 의를 행하면 의의 병기가 되고 우리의 몸으로 불의를 행하면 불의의 병기가 된다고 합니다. 은혜의 때에 은혜 받은 사람은 의의 병기가 됩니다. 의로운 사람, 의를 행하는 사람, 의를 입는 사람, 다른 사람도 의를 이루어나가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은혜의 때에 은혜를 받으면 아홉 가지가 이루어집니다. 깨끗함, 지식, 오래 참음, 자비함, 성령의 감화, 거짓이 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음, 의의 병기가 됩니다. 따라서 고난이 올 때에 원망과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은혜로서 주신 줄로 알고 감사히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8:11에,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인 줄로 알고 여러 가지 고난이 와도 달게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자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십자가와 환란과 궁핍과 감옥에 갇히는 것과 전쟁이 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좀 더 깊은 기도를 시키시려고 주시는 줄로 알아야 합니다. 좀 더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히는 사람이 되게 만드시려고 주시는 줄로 알아야 합니다. 좀 더 의의 병기가 되게 만들려고, 좀 더 성령의 감동 속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좀 더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려고 모든 것을 주신 줄로 알아야 합니다.

3.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을 보낸 자의 결과

영적인 아홉 가지 선물을 받은 사람의 인격

은혜의 때에 은혜를 받고 구원의 날에 구원해주실 때에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 본문 8-10절에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은혜의 때에 은혜를 받으니까 구원의 날에 아홉 가지의 신령한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했습니다. 이런 아홉 가지 것들이 다 은혜의 때에 은혜 받은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아홉 가지를받은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첫째는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라고 했습니다. 한쪽으로는 욕을 먹지만 한쪽으로는 영광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라고 했는데, 한쪽으로는 악한 이름이 오지만 그 속사람은 아름다운 이름이 옵니다. 아름다운 이름은 ‘너는 내 사랑하는 자다’, ‘너는 내 기뻐하는 자다’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속이는 자 같다고 했는데, 천국이 없는데 있다고 한다고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다. 그렇게 속이는 자 같아 보이지만, 그 속은 참됩니다.

넷째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겉으론 핍박받고 무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유명한 자입니다. 바울이 핍박을 받고 멸시를 받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유명한 자입니다. ‘사람들을 다 네게 주었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유명한 자인 것입니다.

다섯째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예수 믿는 사람은 죽는 자 같습니다. 핍박만 받고 끌리어 다닙니다. 죽는 자 같지만 속은 어떻습니까? 사는 자 같습니다. 육신은 핍박과 환란을 받아서 죽는 자 같지만, 심령은 날마다 살아서 역사하는 산 생명의 길로 걸어가게 됩니다.

여섯째는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은혜의 때에 은혜를 받고 구원의 날에 구원을 받는 사람은 여러 가지 환란을 받기 때문에 징계를 받는 자 같습니다. 그러나 죽임을 당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보호를 받고 그곳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죽임을 당치 않게 됩니다.

일곱째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환란을 받을 때에는 외부적으로는 근심하는 자와 같습니다. 다 빼앗기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병도 나게 됩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징계를 받는 자와 같이 됩니다. 그러나 속은 항상 기뻐합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이 얼마나 징계를 많이 받았습니까? 그러나 욥은 그 심령 속에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항상 기뻐합니다.

여덟째는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가난하지 않았습니까? 입을 것이 없어서 작년 겨울에 입었던 외투를 가져오라했던 것을 보면 얼마나 가난합니까? 그렇게 가난한 자 같으나 바울은 항상 기뻐했습니다. 감옥에서도 기뻐하고 어디서든 기뻐했습니다. 은혜의 때에 은혜를 받고 구원의 날에 구원을 받는 사람은 외부적으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했습니까?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어서 많은 사람이 부요해졌습니다.

아홉째는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머리 둘 곳이 없으셨었습니다. 믿음 지키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자 같습니다. 또, 실제로도 없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자와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21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지만, ‘다 너희 것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 우리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은혜의 때에 은혜를 받고 구원의 날에 구원을 받는 사람은 만물이 다 그 사람의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은혜 속에 있고,또 구원을 받았고, 심령이 살아났고 강해졌고, 하나님의 능력이 이루어졌습니다. 항상 기뻐하게 되었고, 유명해졌고,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만물이 다 저희의 것이 되었습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라고 하십니다.

만물이 다 우리 것임을 알고, 신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주시는 시대, 구원해주시는 시대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고난 중에 베풀어지는 은혜 가운데서 영혼이 자라나고 영적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져 나가고, 사랑가운데 들어가고, 능력이 이루어지고, 항상 기뻐하고 인내가 이루어지는 것들은 하나님 앞에 가더라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그 가운데서 주신 영적 구원이 하나님 앞에 가서 남아있습니다. 은혜의 때를 헛되이 보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인데, 더욱 더 은혜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세상 더 따라가다가 망하지 말고, 영적 구원을 받고 날마다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은혜의 때에 은혜를 받으면 아홉 가지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본문 6절로 7절까지에 나온 아홉가지가 은혜의 때에 은혜 받은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렇게 이루어진 사람에게는 양면으로 인격이 이루어져 나갑니다. 외부적으로는 욕됨이 오지만 영광스럽고, 외부적으로는 악한 이름이 오지만 속에는 아름다운 이름이 있는 자가 되고, 외부적으로는 속이는 자 같지만 속에는 참되고, 외부적으로는 무명한자 같지만 속사람은 점점 유명한 자가 되고, 외부적으로는 죽는 자 같으나 살고, 외부적으로는 징계를 받는 자 같지만 죽음을 당치 않고, 외부적으로는 근심하는 자 같지만 영으로는 항상 기뻐합니다. 외부적으로는 가난한 자 같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합니다. 외부적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하십니다. 부자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때에 은혜를 받고 구원의 날에 구원을 받는 사람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마음이 넓음

그 다음 은혜 받은 사람은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11절에 마음이 넓다고 했습니다. 본문 11절에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마음이 넓습니다. 본문 12-13절에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13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라고 하였습니다.
마음 넓히면 천국이고 좁히면 지옥입니다. 마음을 넓히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넓히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좁혀 놓으면 늘 고통이고 근심걱정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여러 아들 중에서 막내만 사랑하지 말고 다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막내만 사랑하는 것은 마음이 좁은 것입니다. 그러면 집안이 편안치 않습니다. 야곱이 막내만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사람을 다 같이 사랑하는 것이 마음이 넓은 것입니다. 저도 이런 죄를 짓고는 합니다. 신학생 가운데 못되게 행동하는 사람을 시원찮게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회개합니다. ‘내가 마음을 넓게 해야겠구나. 그도 내 아들과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는가?’라고 회개합니다. 마음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잘못 나가는 것, 마음을 잘못 쓰는 것, 못되게 나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때에 내가 그러한 사람을 안 좋게 보면, 그 사람이 ‘목사님이 나를 미워한다’하면서 돌아갑니다. 그러면 저는 ‘아, 내가 잘못했다. 아들은 다 같이 사랑해야지, 잘 해주는 아들은 사랑하고 못 해주는 아들은 사랑하지 않으면 되겠느냐? 마음을 넓혀야겠다.’하고 회개합니다. 마음을 넓혀서 다 사랑해 나가는 것입니다. 다 용납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마음으로 다 용납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같이 비취게 하시지 않습니까?(마 5:45) 비를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에게 같이 내려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용납하고 이해할 수 있고 담을 막지 말고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줄 수 있는 마음을 넓혀야겠습니다. 마음을 좁히면 지옥이 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비 진리와 타협하지 않음

은혜 받은 사람은 타협하지 않습니다. 본문 14-16절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15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죄와 불의와 비 진리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넓다고 해서 불의를 용납하는 것이 넓은 것이 아닙니다. 비 진리와 죄를 용납하는 것은 넓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두움, 불법, 믿지 않는 불신앙, 우상, 이런 것들과 타협하면 안 됩니다. 타협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어두움과 빛이 어찌 함께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겠습니까? 벨리알은 사악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탄의 별명입니다. 그리스도와 악한 것이 어찌 함께 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겠습니까? 참된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진리가 아닌 것은 다 끊어버려야 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에 속하지 않은 것은 다 끊어 버려야 합니다. 불법, 비 진리, 어두움의 세력, 벨리알, 사악한 것, 우상, 이런 것은 다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 앞에 옳지 않은 것은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다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자기 남편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남자를 자기 남편처럼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 남편같이 사랑하는 것은 남편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불신앙의 세력, 비 진리, 어두움의 세력, 불의한 일, 불법, 이런 것들을 끊어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본문 16-18절에 “…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부정한 곳에서 나오라는 말씀입니다. 비 진리와 불법, 인본주의에서 다 나오라는 것입니다.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접하여, 나는 너희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되고, 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겠다. 너희는 나로 말미암아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되고,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참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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