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히브리서 8:1-13 새 언약.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새 언약
히브리서 8:1-13

1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3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4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5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6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7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언약을 세우리라 9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10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12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8:1 이제 말하는 것들의 중요한 점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대제사장이 계시다는 것이다. 그분은 하늘에 계시며 위엄 있으신 분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다. 

8:2 그분은 성소와 참된 장막에서 섬기는 분이시니, 이 장막은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주께서 세우신 것이다. 

8:3 대제사장마다 헌물과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세워졌으니, 그러므로 그분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만 한다. 

8:4 그분께서 땅에 계셨다면, 결코 제사장이 되지 않으셨을 것이니, 땅에는 율법을 따라 제물을 드리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8:5 그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과 그림자를 섬기는데, 이것은 모세가 장막을 세우려고 할 때에 지시받은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보아라,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모형을 따라 모든 것을 만들어라." 말씀하셨다. 

8:6 그러나 이제 그분은 더 뛰어난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분은 과연 더 좋은 약속 위에 세워진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8:7 만약 저 첫째 것이 흠이 없었다면, 둘째 것을 요구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8:8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허물을 발견하시고 말씀하셨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아라, 날이 이를 것이다.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더불어 새 언약을 맺을 것이다.' 하시고, 

8:9 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던 때에 그들과 세운 언약과 같지 않다. 그들이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으므로 나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하셨고, 

8:10 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세울 언약이니,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생각에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새겨 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8:11 그리고 그들은 결코 각자가 자기 동료나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들 중에서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모두가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8: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 하셨다. 

8:13 '새 언약' 이라고 말씀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첫째 것을 낡게 하신 것이니, 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지게 된다.

1. 참 장막에서 봉사하는 예수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늘 간구하시는 예수님

본문 1절에, “이제 한 말에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더 좋은 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했는데,
당신의 몸을 드려서 속죄 제물로 드려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제사장이 되어주신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드리는 제사로 인해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좋은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제사를 드리시고, 하늘에 올라가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엄위하신, 그 두려우신 그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간구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에,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는 대제사장 예수님이 계시는데 그것이 큰 은혜이고 큰 복입니다.

본문 2절에,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소와 이 하늘 성소를 가리킵니다.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이라고 하였는데, 참 장막도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하늘 성소와 참 장막에서 예수님은 봉사합니다.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고 하였는데, 하늘 장막,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예수님이 제사장으로서 봉사하시는데, 이건 주께서 세우신 성소이고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그리스도께서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히브리서 7장 27절에,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마다 하나님께 제물 드리는 것이 있어야 되겠는데, 소나 양이나 비둘기로 구약 시대에는 드렸습니다.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당신의 몸, 자기 몸으로써 단번에 드려서 영원한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런 제물을 드렸습니다. 몸으로 하나님께 산 제물을 드렸습니다.

모형인 제사와 원형인 그리스도

본문 4절에,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못할 거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좇아 제사 드리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이 땅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땅위에 있었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못할 뻔했는데, 하늘나라 지성소, 신령한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갔기 때문에 영원한 제사장이 됐습니다. 

본문 5절에,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에서 ‘저희가 섬기는 것’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며 제사 드리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로써 제사를 드렸습니다. 구약 제사와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그림자 제사라는 말입니다.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제사 드리는 게 참 제사입니다.
모형적인 제사입니다. 원형은 그리스도입니다. 원형은 그리스도이고, 하늘에 있는 성소이고, 이 세상의 예루살렘 성전이나 대제사장은 다 모형이고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실체는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1-12절에,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더 좋은 제사장이 되어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인 하늘나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단번에 하늘 성소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4절에,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성소는 참 것의 그림자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성소는 참 것의 그림자이고 손으로 지은 것인데, 그런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셔서 이제부터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참 하늘 성소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그림자인 제사이고, 구약 성소는 그림자 모형적인 성소이고, 참 성소는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 성소에서 드리는 것이 영원한 제사이고, 참 제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 하반 절에,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고 했는데, 출애굽기 25장 40절에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 그것을 쫓아서 모든 성막을 짓고 모든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2. 더 좋은 중보자

본문 6절에,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는, 예수님이 아름다운 직분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에서, 더 좋은 언약이라는 것은 신약을 가리킵니다. 새 언약의 중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중보’라는 것은 가운데 서서 쌍방을 화목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사람이 원수가 되었던 것인데 중간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로써 그 중간에 막힌 담을 헐으시고,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시키는 중보의 역할을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3. 구약과 신약

성령께서 구약의 내용을 쉽게 가감하여 신약에 기록

본문 7절에,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고 했습니다. ‘첫 언약’은 구약입니다. 구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것이 없었을 거란 말입니다. 그러나 둘째 것을 요구한 것을 보면 첫 언약인 구약이 무흠한 것이 아니고 흠이 있기 때문에 둘째 언약인 새 언약을 하나님이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림자이기 때문에 완전한 제사가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 언약을 세워서 새 언약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해놓았습니다. 

본문 8-10절에,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으로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31장 31-34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예레미야 31장 31절로 34절을 여기에다 인용을 했는데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고 조금 다르게 인용을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 문제가 하나 생기는 것은 ‘성경 축자영감설’ 이게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입니다. 성경 글자 한 자, 한 자가 다 영감이 되었기 때문에 일점일획이라도 변경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점 하나 변경시키고 한 자 변경시켜도 그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역사입니다.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이 그대로 영감 되서 기록한 성경입니다. 

예레미야서를 여기 인용할 때에 왜 조금 다르게 인용을 했는가 하면, 그것은 구약을 기록한 이도 성령께서 사람을 통해서 기록을 하셨고, 신약을 기록한 이도 성령께서 사람을 이용해서 기록을 했습니다.
구약 기록한 것도 성령이 했고, 신약 기록도 성령이 했는데 우리에게 알기 쉽게 하느라고 성령께서 조금 쉽게 신약에 인용을 시켰습니다.
성령이 기록한 말씀이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그 내용을 이렇게도 할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못합니다. 사람이 변경했다가는 그건 저주 받습니다. 이 말씀에서 더하는 자는 재앙을 더 받는다고 그랬고, 이 말씀에서 조금이라도 감하는 자는 하늘나라 낙원에서 감한다고 그랬습니다. 일점일획이도 가감 못합니다. 

그러나 구약을 신약에 인용할 때에는 가감했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가감했느냐? 그것은 성령이 사람을 통해서 구약과 같이 이렇게 기록할 수 있고, 또 신약과 같이 사람을 통해서 저렇게 기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 것은, 구약도 전부 다 진리이고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신약도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는 진리입니다. 조금 다르게 한 것은 알기 쉽게 하느라고 성령께서 그렇게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언약 안에 있어야 하나님께서 돌보심

본문 8절에,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고 했습니다. 새 언약을 세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낡은 언약이 있으니까 새 언약이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새로운 언약, 즉 신약을 세우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에서 나올 때에 세운 언약은 구약입니다. 십계명, 구약으로 열조의 손을 하나님이 잡으시고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누가 인도하여 냈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어떻게 인도하여 냈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손을 잡고 애굽에서 친히 인도해 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이 손을 잡고 이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내십니다. 누가 손을 잡았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손을 잡고 오늘까지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 손을 잡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내신 데 대해서 항상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돌보지 않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약 시대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돌보지 않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돌보지 않고, 신약 시대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돌보지 않습니다. 구약 때에도 아무리 손을 잡고 인도해 냈을지라도 말씀 안에 거하지 않는 자는 돌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말씀 안에 거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돌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항상 그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됩니다.

4. 신약의 축복
새 언약이 중생한 영속에 있음

본문 10절에,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으로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새 언약입니다. 새 언약을 하나님이 세울 때에 그 새 언약의 법을 어디에 둔다고 그랬습니까? 저희 마음에 두십니다. 생각과 마음에 그 새 언약의 법을 기록했습니다. 

로마서 10장 8-10절에,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네 입에 있으며 또 네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네 입에 가깝고 네 입
술에 있으니까 네가 그 말씀을 믿으면 된다는 것인데, 신약 시대에는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에 이 말씀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또 생각에 이 말씀을 두었습니다. 마음에 새겼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중생한 영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앙 양심을 쓰면 그 말씀이 옳은 줄 알게 될 것이고, 또 말씀에 어긋난 것은 죄인 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젠 말씀이 우리 생각에 있고 마음에 기록이 됐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 말씀대로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믿고, 또 그 말씀을 우리가 좀 더 받아서 우리 심령 속에 말씀을 새기고, 그 말씀대로 이제는 살고, 그 말씀을 생명으로 삼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배우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 생각에 말씀 두었습니다. 또 마음에 그 말씀이 또 새겨져 있습니다. 중생한 사람에게는 다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좀 더 말씀을 받아야 되고, 좀 더 그 말씀이 우리 마음에 새겨져 있어야 됩니다. 새김질 하고, 말씀에 깊이
참여하려고 애를 쓰고, 말씀을 좀 더 받아서 말씀을 좀 더 마음에 새기려고 애를 쓰고, 새겨져 있는 말씀을 가지고, 이젠 생명을 삼으려고 애를 쓰고, 그 말씀대로 만들어지려고 애를 쓰고, 그 말씀대로 순종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애를 써야 되겠습니다. 

말씀을 마음에 두고, 우리 생각에 두고, 마음에 새겼는데, 그런데 새겨 놨지만 그걸 무시해 치우고 말씀을 떠나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새겨 놓긴 놨는데 그걸 무시해 치우고 육신의 생각대로 나가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항상 이 말씀을 묵상하고 새김질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새김질 하는 기도’라는 것은 자기가 말씀 들은 것을 꺼내서 그대로 못 한 것을 회개하고, 그대로 하게 해달라는 결심을 기도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김질 기도입니다.
받은 말씀을 새김질하고, 또 더 받으려고 하고, 더 많이 새기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열 가지 새겨 있으면 좀 더 새겨서 열한 가지 새기려고 해야 됩니다. 스무 가지 새기려고 해야 됩니다. 또 좀 더 배워서 서른 가지 새기려고 해야 됩니다. 좀 더 나가서 마흔 가지, 쉰가지 그 다음에 칠십, 팔십, 백까지 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겨서 이 말씀이 생명이 되고, 이 말씀이 등불이 되고, 힘이 되고, 자기 살과 뼈가 되고, 이 말씀이 능력이 돼서, 그 말씀대로 만들어지는 성도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 새겨져 있습니까?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믿는 사람의 마음에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 아닌 것은 자기 마음이 압니다. 자기 마음에 새긴 말씀과 맞으면 그건 하나님의 말씀이고, 자기 마음에 새긴 말씀하고 안 맞으면 그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 나가서 목사가 강도하는 것을 들을 때에 자기 심령에 맞느냐, 안 맞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심령에 맞느냐 안 맞느냐, 자기 신앙 생리에 맞느냐 안 맞느냐, 자기 중생한 영에게 그 말씀이 생명이 되느냐, 양식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것으로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청산유수같이 설교를 잘 한다고 해도 자기 심령에 안 맞는 것이 있습니다. 또 아무리 유식한 말을 많이 쓰고, 아무리 여러 가지 책을 많이 보고 여러 가지 말을 많이 한다고 해도, 그것이 자기 마음에 새긴 것 하고 안 맞는 교회에 나가면 영이 자라나지 못 합니다. 영의 양식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
분별력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가다가 미혹 받게 됩니다. 마음에 새겨진 말씀대로 이제는 나가고, 더욱 더 많이 받아서 새기면서 생명이 되는 길로 나가야 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되어주심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됐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나라, 그 나라의 백성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 얼마나 위대한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 내 하나님, 내 아버지인데,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만물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사람의 영혼을 냅다 불러가서 하늘나라에 데려가는 하나님이시고, 지옥에도 보낼 수 있는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만능으로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누구 하나님입니까? 우리 하나님, 또 우리 아버지, 우리 보호자, 우리 목자,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하면 벌써 얼마나 감사합니까? 또한 “우리 아버지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보호자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세상사람 보호자가 누구입니까? 보호자 없습니다.
우리는 누가 보호자입니까? 하나님이 보호자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걱정 있습니까? 걱정 없습니다. 감사할 것뿐입니다. 

천년왕국 시대에는 온 세상이 하나님을 섬김

본문 11-12절에,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천년왕국에서 될 것인데,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즉, 다 하나님을 아는데 “주를 알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천년왕국 시대에는 온 세상이 다 하나님을 알게 되고,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바다에 넘쳐 흐르고, 이쪽에서 저쪽까지 전부 다 하나님을 알게 되고, 초막절을 지키게 됩니다. 

스가랴 14장 16-21절에,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 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리라 그 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취하여 그 가운데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말방울에까지 온 세상이 다 하나님을 알게 되고, 땅 이 끝에서 저끝까지 전부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물이 넘치는 것처럼 평화가 넘치고,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천년왕국 시대를 가리킵니다. 악한 자를 심판하고 심판한 다음에 성도만 남습니다. 성도의 나라가 됩니다. 성도의 나라에서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하나님을 알고, 너희로 하나님을 알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부 하나님을 다 알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천년왕국 시대에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저희 불의 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5. 구약의 쇠퇴

본문 13절에,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의식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내용은 신약에 다 들어와있습니다. 우리가 새 언약의 이 말씀, 생각에 두고 마음에 새긴 이 말씀으로 생명을 삼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사야 11장 9절에,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물이 바다를 덮는 것처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됩니다. 온 세상이 다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년왕국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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