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로마서 8:36-39 믿음을 지키는 자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김.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믿음을 지키는 자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김
로마서 8:36-39

36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1. 믿음 지키는 사람에게 환란이 옴

본문 36절에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란 죽임을 당케 되는, 도살할 양 같이 끌려가는 일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나 신약시대에나 성도가 환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진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환난 받는 것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일반인데, 너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므로 거기서 이기고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란 이기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기근이나 핍박이 와도 하나님께 버림받은 증거 아니며 또 도살할 양같이 끌려가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진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살려주시고,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역사상 성도들은 믿음 지키다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됩니다. 구약시대에도 죽임 받으려고 들어가는 도살한 양과 같이 환난 받았습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믿음 지키다가 환난 받는 것은 통례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세상과 타협하는 신자에겐 환란이 없다

그러나 성도로서 환난을 하나도 안 받은 것은 건달 신자로 나가는 것입니다. 왜 환난을 안 받겠습니까? 믿음 지키면 환난이 다 오는데 믿음을 안 지키니까 환난이 안 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믿음 지키려 하면 어느 시대나 환난이 옵니다. 말씀 대로만 하려고 하고, 양보하지 않고, 믿는 일만 하려고 하고, 믿음 잘 지키려고 하면 환난이 오는 것입니다. 환란이 없는 것은 세상시험에 그냥 넘어가니까 환난이 안 오는 것입니다.
결심 하십시오, 결심! 하나님께서 이렇게 폭포수와 같은 사랑을 쏟아 부어 주시면서 이기라고 하시는데, 예수님께서 믿음 지키면서 이기라고 기도해주시는데, 의를 이뤄나가라고 기도해 주시는데, 환난이 무서워서 세상에서 안일주의로 살려고 하고 믿음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시편 44장 22절에도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한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함과 같으니라”고 했고, 신약시대 초대교회 때에도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한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함과 같으니라”고 본문에 나옵니다. 핍박하는 나라, 정부, 정권 하의 교회들이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한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일과 향락에서 믿음지킴으로 돌아서라

안일주의, 자유주의, 향락주의에서 사는 성도들은 그런 향락주의로 나가지 말고, 믿음 지키다가 환난 들어오면 달게 받아야 합니다. 성도로서 환란 받지 않는 것을 너무나 부끄럽게 생각해야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환난 다 겪고, 곤고나 핍박이나 환난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을 받은 성도가 많은데, 난 이것 무엇하고 있나?’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너무나 안일주의에 빠지고, 너무 게으르고, 세상 중심이고, 육신 중심이고, 방탕한 것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주시고, 예수님께서 기도 해주시고, 능력으로 보호해주시고, 성령께서 탄식으로 기도해주시는데, 이렇게 믿음 안 지키고 뻔뻔하게 양심은 마비가 된 채로 나가서는 안됩니다. 심령에 감동이 없고, 양심 안 쓰고, 믿음 안 지키고, 세상에 취해서 자기 볼 장만 보고 다니는 이게 말이 됩니까? 이제는 결심합시다.

2. 믿음 지키는 법
 
본문 말씀 28절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어떤 것이 와도 그 자리에서 믿음 지키면 모든 것이다 합동해서 유익하게 되고, 자기 구원이 잘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잘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전도

전도하는 것도 믿음 지키는 것입니다. 전도하다가 매 맞는 것, 욕먹는 것도 믿음 지키는 것입니다. 전도하다가 욕 먹어봤습니까? 그런 것이 믿음 지키는 것입니다. 매 맞아 봤습니까? 여기 있는 사람 매 맞아보지 못한 모양인데, 전도하다가 매 좀 맞아봐야 됩니다. 믿음 지키다가 감옥에도 좀 들어가 봐야 되고, 직장에서 떨어져서 먹을 것이 없는 기근을 당해봐야 됩니다. 적신, 이것은 과거에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안일주의에 빠져있습니다. 그런 것 당해보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렇게 방탕과 세상주의와 육신주의로 나가느라 기도하지 못하고, 믿음 지키지 못하고 건달 따위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내리워서라도 회개시키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연보

십일조 드리는 것, 연보 하는 것도 믿음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연보를 연보함에 주일날 올 적에 갖다 넣습니다. 연보는 안 넣는 사람 없이 다 넣어야 됩니다. 안 넣으면 믿음 안 지키는 것입니다. 안 넣어도 누가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우리는 연보를 정성껏 준비했다가 하나님께 연보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 지키는 것입니다.

선교

또한 선교사로 나가는 사람 그것도 믿음 지키는 것입니다. 자원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아예 환난과 핍박당하는 것을 결사 각오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선교사로 나가는 것은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함과 같으니라’는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종일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으며’, 믿음 지키다가 이렇게 됐는데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가면 상급이 크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그 사람에게 많이 왔겠습니까? 얼마나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났겠습니까? 얼마나 그리스도께서 기도해 주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기도 제일 많이 해준 사람이 성도 가운데 누구가 있겠습니까? 스데반일텐데, 스데반을 위해서 기도해주실 때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기도하시다가, 그가 순교 당하는 순간에 예수님께서 너무 급해가지고 일어서셔서 기도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 많이 받는 사람에게 기도 제일 많이 해주십니다. 스데반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제일 기도 많이 기도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선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끌리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 밀리어가기를 폭포수에 밀리어 가는 것처럼 밀리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끄는 대로 가고, 미는 데로 가고, 하나님 하시는 대로 이용당하고 순종하는 그런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을 지켜야 됩니다. 범사에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이 죄라 그랬습니다. 범사를 다 믿음으로 하고 하나님 섬길 때에는 아예 환란을 결사 각오하고 섬겨야 됩니다.

예배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믿음 지키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진리대로 예배드려야 하고, 준비를 많이 하고 예배드려야 됩니다.
‘모든 직장에서 토요일 날, 주일 날 쉰다’고 신문에 났는데, 토요일날 일하지 않고 이틀을 쉬는 것 좋습니까? 믿음 잘 지키는 성도에게는 좋고, 믿음 안 지키는 사람에게는 아주 손해가 날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토요일 날부터 논다고 했을 때 금요일 날 저녁부터 아예 놀러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놀러가고 저기 놀러가고, 그렇게 다 가는 것입니다. 가서 “하하, 호호”하면서 놀다가, 주일날까지 “하하”하고 놀고는 저녁에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 조금 있던 것이 다 어디 가겠습니까? 마귀가 이제는 믿음을 다 집어치우게 만들려고 토요일 날 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 지키려는 사람은 토요일 날 쉬는 것이 유익합니다. 토요일 날부터 믿음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날부터 기도하고, 성경 말씀보고, 믿는 일 준비하다가 주일 날 아침에 일찍이 나와서 하루종일 예배드립니다. 토요일에 쉬는 것이 믿는 일 잘하는 사람에게는 유익이 될 것이고 믿는 일 못하는 사람에게는 손해가 날 것입니다.
또한, 국가적으로 볼 때에는 막대한 손해입니다. 토요일 날까지 일해도 지금은 다른 나라하고 경쟁에서 지는 상황입니다. 인건비는 자꾸 올려달라고 데모하는데, 토요일 날 일 안하고 놀러 가면 다른 나라하고 경쟁해서 이기겠습니까?
중국이 지금 한국보다 상당히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중국으로 자꾸 일이 떨어집니다. 인건비가 한국보다 어떤 것은 십분의 일, 오분의 일, 사분의 일인데, 공장이 다 중국이나 동남아로 갑니다. 그런데 여기 한국에서 엿새 일해도 안 될 판인데, 닷새 일하고서는 놀려고 하고, 또 인건비 올려달라고 하는 것은 아르헨티나와 같이 될 우려가 있습니다.
아르헨티나가 과거에는 많이 발전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백성들이 정신 안 차리고, 아르헨티나 정부도 잘못 판단했기 때문에 지금은 후진국이 됐습니다. 하여간 우리는 믿음 지키는 일을 해야 됩니다. 

3.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김

본문 37절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겨우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란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과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넉넉히 이긴다는 것”은 구역에는 “이기고도 남는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큰 환난이 오고 죽을 양과 같이 끌려가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이기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깁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권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칼, 또 종일 죽임을 당하게 되고, 도살할 양같이 될지라도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는 것입니다. 즉 이기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모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능력으로 부은바 되고,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이 합력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도록 하십니다. 즉 우리의 믿음을 길러나가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갑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연단을 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그 사랑을 힘입어 나아가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대속하신 은혜를 버리고 어그러진 길로 갈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다시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을 버리고 가도 예수님의 사랑은 계속 따라와서 폭포수와 같이 내려 부어 주시므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워 잘 때에도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하고 자야 합니다. 그리고 환난이 들어올 때에도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하며, 핍박이 와도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하며 잘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지켜주시는데 사람이 내게 어떻게 하겠느냐? 또 도살할 양 같이 끌려가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보호해 주신다”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갈 것이고, 하나님이 안 죽이면 안 죽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데려가신다고 하면 천당 가는데 좋지 않습니까? 금세일이단이면(今世日이短이면), 내세일이장이라(來世日이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 하루가 짧아지면 즉 하루 먼저 죽으면 내세가 길어진다는 뜻입니다.

4.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본문 38-39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것도 끊지 못합니다. 사망, 생명, 천사, 권세, 현재 일, 장래 일, 능력, 높음, 깊음, 죽음 이런 것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에서 넉넉히 이기는 것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어떤 것 닥쳐와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토요일 날부터 놀아도 우리가 믿음으로 그걸 이용하면 이길 수 있고, 어떤 환난이 와도 우리가 믿음으로 하면 넉넉히 다 이깁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신 줄로 믿고,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나갈 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을 이 자리에서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고,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 잘 이루어져 나가는 것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잘 건설되어나가도록 해서 하나님 앞에 갈 때에 책망 받지 않고 상급 받는 저희가 되어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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