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로마서 9:1~13 교회를 사랑하는 신령한 성도가 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교회를 사랑하는 신령한 성도가 되라
로마서 9:1~13

1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
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2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
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
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
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
멘 6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
심을 받느니라 9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10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
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9:1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내게 이것을 증언하는 것은, 

9:2 나에게 큰 근심이 있고, 내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는 것이다. 

9:3 나는 내 형제, 곧 육체를 따라된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께로부터 끊어진다 해도좋다. 

9: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심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9:5 조상도 그들의 것이며, 육체로 하면 그리스도도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분은 만물 위에 계셔서 영원토록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다. 아멘. 

9: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들이 모두 이스라엘이 아니고, 

9:7 아브라함의 씨가 모두 그 자녀가 아니다.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고 불릴 것이다." 라고 하셨으니, 

9: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 

9:9 약속의 말씀은 "내년 이때에 내가 오겠으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라고 한 이것이다. 

9: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9:11 그 자식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서게 하시려고, 

9:12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시기를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다." 라고 하셨다. 

9:13 기록된 것과 같으니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라고 하였다. 


1. 바울의 이스라엘을 위한 근심과 애통
항상 진실해야 함
본문 1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안 하
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애통이 있
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고 했습니다.
바울이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한다고 했는데, 언제나 진실과 사
실 그대로 말하는 게 가치가 있고 하나님이 같이 하십니다.
우리는 가감이 없이 사실을 그대로 나아가도록 힘을 써야 되겠습니
다. 과장을 한다든지 사실에서 좀 덧붙여서 말하는 것은 진실을 떠나
는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다른 사람이 인정하지 않습니
다. 얼마가면 다 드러납니다. 남을 속일 때는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믿지만, 첫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얼마 지나면 다른 사람도
그 사람 말하는 걸 믿지 못하고 신용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증거하노니’라며 바울이 큰 근심과 고통이 있
다고 그랬습니다. 근심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근심하는 게 옳은가? 고
린도후서 7장 10절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
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에 이
루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고 일반 근심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근심은 하지 않아야겠
습니다.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고 근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
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말하자면 영적 문제, 신앙문제, 구
원문제 이런 것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하는 길에 이
르는 열매를 맺는다고 그랬습니다. 큰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열매가 맺
혀진다고 그랬습니다.
바울의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인데, 본문 3절 보면 “나
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
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근심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근심이고 고통이었습니다. 얼
마나 근심하고 고통하고 있었냐하면,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
도에서 끊어지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간절히 사모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자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민족을 위한 애국심
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애국심이라고 합니다. 민족주의, 애
국자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사
람들은 또한 예수님도 애국자다고 하면서, 예루살렘을 위해 눈물 흘린
걸 보면 예수님도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애국자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도 이스라엘을 위해 눈물 흘린 걸 보면 예레미야도 애국자라고 말하
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민족을 초월하는 예수님의 구원운동
예수님의 구원운동은 민족을 차별하는 게 아니고 민족을 초월합니
다. 국경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어
떤 민족은 더 사랑하고 어떤 민족은 덜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온 천
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다 같이 사랑하시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천하 만민을 위한 구원이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준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
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하는 말씀은
전도하는 순서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하라’고 한 말도 순서를 말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더 사랑하고, 유대백성을 둘째로 사랑하고, 사마리아를
셋째로 사랑하고, 이방을 넷째로 사랑한 게 아닙니다. 전도하는 순서
로서 자기 가까운데 있는 사람부터 복음을 전하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민족적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야만
이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에게나 차별이 없습니다. 차별이 없는 게 복음
입니다. 바울이 곧 이스라엘을 위하여 근심과 고통을 받은 것은 이스
라엘 민족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2. 교회사랑
이스라엘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한 바울
본문 4-5절에,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
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
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이라고 했
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양자됨과 영광과 능력이 있고 예배
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와 율법과 양자됨,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위해 애통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스라엘은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애
통,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근심,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입니
다. 바울의 근심은 진정으로 교회를 사랑하는데서 나오는 애통과 근심입니다.
본문 3절의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하는 말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면 멸망 받는 것인데 ‘그럴지라도’ 하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이 자기가 끊어지
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한 것입니
다. 이스라엘이 끊어지는 것은 자기가 끊어지는 것과 같다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한 신앙상태입니다. 

교회가 자기 몸인 줄 알아야 함
우리가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교회
가 자기 몸인 줄 알고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고, 교회가 안 되는 건
자기가 안 되는 것인 줄 알고, 교회의 일이 자기 일인 줄 알고, 교회
의 근심이 자기의 근심인 줄 알고, 교회의 할 일이 자기의 할 일인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가운데 있는 그것이 참된 신앙입
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예수께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그렇기 때
문에 교회가 끊어지는 것은 자기가 끊어지는 것으로 여기는 이런 신앙이 참된 신앙입니다.
교회가 어려움 당하는 것이 자기가 어려움 당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자기와 같이 여기고, 예배당 짓는 것을 자기 집 짓는 것과 같이 여겨
야 합니다. 예배당 수리하는 것을 자기 집수리 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
하게, 교회문제가 곧 자기 문제인 것처럼 여기는 그런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교회 일은 내가 안 해도 되겠지’, ‘내가 안 해도 다른 사람이 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건 신앙을 떠난 상태입니다. 그 마음 자체가 믿음에서 떠난 것이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데서 떠난 것이고, 그리스도에게서 떠난 상태입니다. 교회를 자기 몸과
같이 여기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택한 백성이 그리스도에
게서 끊어진 것은 자기가 끊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그만큼 고통당하고
근심하며 안타까워하는 그런 신앙을 바울이 가졌습니다. 우리가 이런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책에서 이름이 지워짐의 의미
출애굽기 32장 31-33절에 “여호와께로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
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함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
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
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섬긴 다음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그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했습니
다. ‘사해주시지 않으면 주의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라
고 했습니다. 이름 지워버리면 멸망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 하여
주의 성령에서 떠나게 된 걸 자기가 성령에서 떠나게 된 것처럼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고 하셨는데, 생명책에 이름이 올라갔다 지워졌다 그러는 것은 아닙니
다. 창세전에 이름을 벌써 기록하여 놓았고, 한 번 기록된 것은 영원
히 지워버려지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범죄 하던 자의 그 믿음 지킨 행
위가 지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름은 확실히 기록되는 것이지만, 믿음
지키는 공로가 지워진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한 것에 대해, 사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자기 몸같이 사랑했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3. 모든 선택을 하나님께서 미리하심
참 이스라엘은 약속의 말씀과 영적 선택으로 됨
그 다음은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 나오는데, 본문 6-7절에 “또한 하
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
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라고 했습니
다. 이스라엘은 다 아브라함의 자손인지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
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도 다 이스라엘이 아니고, 아브
라함의 자손이라 해도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본문 7-8절에,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
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
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고, 또 아
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전통적 이스라엘도 아니고, 의식적 이스라엘도
아닙니다. 다만 약속의 이스라엘,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말씀대로 믿
는 신앙, 말씀에 선 신앙, 바울의 약속의 말씀에 선 신앙이 참된 이스
라엘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9-11절에,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
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
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자만 이스라엘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선 자가 참 이스라엘이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가 이스라엘입니
다. 그 다음엔 영적 이스라엘이 참 이스라엘입니다. 육이 아니고 전통
이 아니고 의식이 아니고, 말씀과 선택과 영적으로 이스라엘이 됩니
다. 말씀에 선자가 이스라엘이고, 선택을 받은 자가 이스라엘이고, 영
에 선자가 이스라엘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부적인, 육적인, 전통적인 것이 있
는 게 참교회가 아닙니다. 천주교는 전통 따라가고 있지만 옳지 않습
니다. 또한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의 의식과 행위가 있다고
해서 참교회가 아닙니다. 참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됩니다. 말씀을 바로 가르쳐야 하고, 하나님의 선택이 있어야 되고, 영
적인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말씀에 바로 선 교회, 영적인 교회를 사
랑하는 마음은 참된 신앙입니다. 의식적인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예
배를 드린다는 것,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린다고 해서 다 참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참 교회를 분별할 줄 알고 참 교회를 사랑할 줄 알아야겠습
니다. 참 교회를 위해서 노력을 하고 애를 쓰고, 진정으로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고 참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해 힘쓰는 생활, 그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보통 성도와 신령한 성도가 이미 정해짐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리브가가 이삭으
로 말미암아 쌍둥이를 잉태했는데, 그의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않고
선과 악을 행하기 이전인데도, 그 때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이르시기
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자는 먼저 난 에서를 가리키는 것이고 작은 자는 야곱을 말합니다. 야곱은 행위 때문에 선택된 게 아닙니다. 복중의 아이가 뭘 행하겠습니까? 이걸 보면 순전히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되는 것이지 사람의 행위 때문에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에 믿게 된
것입니다. 말씀의 교회를 세움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됩니
다. 영적인 사람으로 택함 받은 사람이 영적인 길을 걷게 됩니다. 그
렇게 다 종류가 다릅니다.
예수 안 믿을 사람들은 안 믿게 되고, 믿을 백성은 믿습니다. 말씀
을 던져 보면 따라 올 사람은 따라오고 안 따라올 사람은 안 옵니다.
신령한 말씀을 따라오게 되어있는 사람은 그 말씀이 좋아서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아가서를 보면 술람미 여자와 예루살렘 여자가 있는데, 예루살렘 여
자는 보통 교인입니다. ‘예루살렘 여자’는 예수님을 멀리서 보고 따라
가고 멀리서 보고 섬기고 좋아하기만 한 교인입니다. 좋아하지만 영적
인 세계는 못 들어간 교인입니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은 영적인 세계
에까지 들어간 교인입니다. 침궁에까지 들어가고 예수님과 더불어 동
행, 동거, 동락한 교인입니다.
그렇게 교인도 종류가 다릅니다.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는 믿음이 예
정된 사람은 성경말씀이 자기에게 딱 맞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따라가
게 됩니다. 보통으로 믿기로 예정된 사람은 어느 정도 좋아하긴 하지
만 말씀 그대로 따라가진 못합니다. 하나님이 다 그렇게 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상하게도 같이 말씀을 들었는데도 어떤 사람은 그 말
씀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안 좋아하게 됩니다. 

말씀 깨닫는 종류를 하나님께서 선택하심
제 경험에 제가 이십 몇 살 때인데, 한 번은 이기선 목사님이 성경 해석한 책을 최동로 조사가 가창교회를 갔다 오다가 우리 본 교회에들러서 제게 보여 주었습니다. 보니까 이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보배가 여기 있구나’ 싶어서 그걸 어떻게 살 수 없냐고 물으니까 일
제시대는 출판을 안 하던 때라 살 수 없는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필기를 할 생각을 하고 며칠 빌려달라고 했는데 책
은 빌려주면 잃어버리고 마니까 빌려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조사님 떠나기 전까지 오늘 밤에라도 좀 베낄 수 없냐고
하니까 그러면 그렇게 베끼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밤새도록 자지
않고 그걸 베꼈습니다. 그 때 여러 조사들 많았는데 다른 사람은 그
책 봐도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습니다.
또, 김현봉 목사님 가르치는 걸 여러 목사가 다 들었는데, 제게 하나님이 아주 귀하게 깨달아지게 해주셨습니다. ‘아주 귀한 보배가 여기 있구나’ 해서 목사님 세상 떠날 때까지 그 말씀을 끝까지 다 들으려고 했습니다.
그 때 일 년에 두 번씩 집회를 했는데, 제가 여러 목사들을 초대했
습니다. 초대장 몇 백 장을 해가지고 우리 신학교 동창생, 이북에서
나온 아는 교역자들, 전부 다 오라고 초대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역
자들이 와서 들었습니다. 한 번은 임마누엘 기도원에서 할 때에 목사
들이 안방에 가득 했었습니다. 한 100여 명이 왔었는데, 그 말씀을 어
느 정도는 좋아하면서도 그 말씀대로 따라간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그중에 끝까지 이 말씀이 좋다 하고 따라간 사람들이 있었지만 몇 사람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받는 귀가 다 다르고, 하나님이 말씀 받게 만들어 놓
은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물고기도 지렁이 좋아하는 물고기
가 있고, 구더기 좋아하는 고기가 있듯이, 낚시질 할 때도 그 종류대
로 좋아하는 미끼를 가지고 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신신학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신비주의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또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의식적으로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종류가 다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한 종류는 하나님의 선택으로 되는 것이고 영적으로 되는 것입
니다.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으로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복중에 있을 때 행함이 있어서 하나님이 에서보다 야곱을 더
사랑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택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도 택함으로 된 것이고,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따라가게 된 것
도 남보다 나아서 따라가게 된 것이 아니고 택함으로 된 것입니다.
행위로 택함 받는 것이 아님
본문 13절에 “기록 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했는데, 이것도 무슨 행위로 사랑한 게 아니고 본
래부터 사랑하였다는 것입니다. 말라기 1장 2절부터 4절 상반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
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
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
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찌라도 나는 헐리라”고 했습니다.
행위를 보면 야곱이 에서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야곱이 자
기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자기가 작은 아들이면서 눈이
어두워 잘 못 보는 아버지 이삭 앞에 가서 큰 아들 에서라고 속이고,
또 외가에 가서도 한 행동을 보면 잘한 것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장
인의 양 먹일 때에 장인의 양 빼앗으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에서는 자기 부모를 봉양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끝까지 부모를 모시고 있었고, 자기 아내가 이스마엘 사람인데 부모 공경 잘 못하니까 부모 공경 잘하게 하려고 힘을 많이 썼습니다. 또한 자기 동생 야곱을 다 용서해주었습니다. 

성도의 잘못된 행실을 징계하시는 하나님
야곱은 20여 년 만에 돌아올 때에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야곱은 젊
어서부터 늙어서까지 거짓말만 했습니다. 에서는 끝까지 부모를 모시
고 있었는데, 행위를 보면 다만 믿음이 없어서 그렇지 에서가 야곱보
다 낫습니다. 야곱은 가는 데마다 속였으니까 믿음 하나 빼고는 아무
래도 몹쓸 사람입니다. 형 속여 먹고, 아버지 속여 먹고, 장인 속여 먹
고 그랬으나 야곱은 택함을 받았고, 믿음이 좋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그랬습니다.
야곱은 가족에게 거짓말하고 속인 죄 값을 사실은 세상에서 다 받
았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잘 공경하고 믿었기 때문에 믿음의 축복을
받았고, 행위로는 거짓말하고 속였기 때문에 그 대가도 다 받았습니
다. 야곱은 나중에 자기 자식들에게 속임을 당했습니다. 요셉이 죽지
않은 걸 죽였다고 아들들이 속이지 않았습니까? 요셉이 죽었다고 몇
년을 눈물 흘렸습니다. 얼마나 자식들에게 속았습니까?
세상에서 보면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보다 행위가 못날 때가 많
습니다. 그러나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세상
에서 행위를 못되게 한 것에는 그 죄 값을 다 받게 하십니다. 어떤 방
법으로든 징계를 하시게 되어있습니다. 나중에는 야곱이 정 회개하지
않으니까 죽을 고비에 빠뜨립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니까 천사하
고 밤새도록 씨름하게 하십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니까 환도 뼈를
쳐서 회개시킵니다. 하나님은 그를 회개하지 않을 수 없게 하셔서 회개시키십니다.

교회를 내 몸 같이 사랑하고 회개할 바를 회개할 것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
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예배당에서 하는 일을 자기 집 일처럼
생각해야겠습니다. 예배당 수리할 때에는 자기 집 수리할 때보다 먼저
해야 하고, 자기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에서 떨어
져 나가도 된다는 것과 같은 생각입니다. ‘나는 예수님 사랑하지 않아
도 된다. 나는 신앙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 일이 내 일이다’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신령한 교회, 말씀의
교회, 영적인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기 생명을 다 바쳐놓고 이
일을 받들어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일을 맡은 것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야곱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지만 못된 행실을
많이 한 것에 대해서는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긴
사랑하시지만 못된 행실을 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징계하신다고 그랬
습니다. 나중에 원수를 통해 징계하시고, 그래도 말 안 들으면 몸을
쳐서라도 징계하십니다. 그러니까 회개할 바를 회개하고, 바로 설 바를 바로 서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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