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겸손히 구원의 비밀을 전함
에베소서 3:8-12
에베소서 3:8-12
8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12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3:8 모든 성도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가 주어진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하심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고,
3:9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지 모두에게 밝히게 하시려는 것이다.
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여러 가지 지혜를 알게 하시려는 것이니,
3:11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안에서 이루신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이다.
3:12 우리는 그분 안에서 담대함을 얻고, 그분을 믿음으로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다.
3:9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지 모두에게 밝히게 하시려는 것이다.
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여러 가지 지혜를 알게 하시려는 것이니,
3:11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안에서 이루신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이다.
3:12 우리는 그분 안에서 담대함을 얻고, 그분을 믿음으로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다.
1. 바울의 자기부인과 겸손
본문 8절에,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겸손하여 모든 성도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를 아이라 합시다. 바울은 그 아이보다 더 작아 아이의 아이가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9절에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전에 지은 죄를 늘 생각하고,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죄인 가운데 괴수’라고 했습니다. 자기 부패성을 늘 붙들고 괴수라 했고, 또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다 이루어 드리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만점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무리 잘 했다고 해도 그래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만점을 맞도록 다 했느냐?”에는 답변을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4절에,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말했습니다.
주께서 오시는 그날에 우리를 판단하십니다.
바울이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래도 하나님 앞에 언제나 자기는 부족한 것이 많은 줄로 알았습니다. 사랑을 해도 오히려 사랑이 부족할 줄 알고, 충성을 해도 오히려 충성이 부족할 줄 알았고, 복음 전하는 일에 힘을 썼어도 오히려 좀 더 힘을 쓰지 못한 것을 언제나 부끄럽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매를 맞아도 좀 더 많이 맞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언제나 죄인 가운데 괴수로 생각했습니다.
전도를 많이 했어도 더 많이 못한데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을 하고, 죄인 가운데 괴수로 생각합니다.
바울이 전도하는 데에는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장애물인 눈병이 가시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전도하는데 많은 지장이 있었습니다. 눈병으로 눈이 늘 축축하여 남 보기에 부끄럽고, 또는 이따금 쿡쿡 쑤시는 것 때문에 복음 전도하는데 많은 지장이 따랐습니다. “그렇게 실력이 좋으면 자기 눈병부터 고치지 왜 못 고치느냐?”고 비방도 받았을 것이고, 그래서 복음 전하는데 좀 더 좋은 성적이 나타나지 못한데 대하여 늘 바울은 자기의 부족한 것을 깨닫고 회개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바울의 겸손, 전에 지은 죄, 믿기 전에 지은 죄, 또한 믿은 후에 지은 죄, 속에 있는 죄, 그리고 하나님께 좀 더 충성하지 못하고, 좀 더 사랑하지 못하고, 좀 더 맞춰드리지 못하고, 늘 기도했지만 좀 더 기도하지 못한 이런 것들에 대하여 늘 바울은 회개하였고, 늘 자기 부족을 깨닫고 나아가며, 죄인 가운데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전에 지은 죄가 없습니까?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했다고 해도 또 하여야 합니다. 매일 하여야 합니다. 한번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한 번만 회개했어도 이미 다 용서하여 주셨지만, 그 다음에 또 하여야 합니다. 왜 또 하여야 하는가 하면, 용서 받은 죄라 하여도 또 회개하면 큰 은혜가 됩니다. 그것이 거름이 되고, 전에 지은 죄를 또 회개하고 나가면 밑거름이 되어, 그 거름에 힘을 의지해서 잘 자라나게 되며, 또 자기를 부인하게 됩니다.
전에 지은 죄를 끌어다 회개 하여야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줄을 알게 됩니다. ‘내가 전에 아무 죄를 지었지...’하면서 자기를 부인하게 되며, 또 자기 속에 되지 못한 것과 하나님 앞에 오히려 부족한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늘 붙들고 자기를 부인하는 생활을 하여야겠습니다. 바울은 늘 자기를 부인하는 생활을 했기에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충성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과 같이 또한 겸손하여야 합니다. 겸손하여야만 끝까지 하나님에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모세가 끝까지 하나님께 이용되었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겸손하였기에 하나님께 끝까지 이용될수 있었습니다. 교만하면 망합니다. 망한 사람은 대개 다 교만하여 망한 것입니다. 겸손하면 하나님이 끝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교만은 무엇이 교만입니까? 내가 남보다 낫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왕의 교만이 무엇이었습니까? “이 큰 바벨론은 내가 건설했다. 또 이것은 내 것이다. 내 위엄을 나타내는 바벨론이다”(다니엘4:30)라고 생각한 것이 느부갓네살 왕이 망한 원인인 교만입니다. “내가 했습니다. 내 것입니다”라고 하며 자기영광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이 느부갓네살 왕이 망한 죄입니다.
누구든지 제가 했다고 하면 안 됩니다. 제가 하려고 해도 안 되고, 제가 했다고 해도 안 됩니다. 내 것이라 해도 안 됩니다. 다 하나님의 것이어야 합니다. 내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기가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심부름 했지만 오히려 부족한 것뿐입니다.
또한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은 한마디로 말하면 '나'라는 것입니다. ‘나’를 나타내는 것이 교만입니다. ‘나’가 죽어야 하는데 ‘나’가 살아있으면 그것이 교만입니다. 내가 죽으면 겸손이고, 내가 살아 있으면 교만입니다. 내 것은 다 없어지고 하나님의 것만 남아 있어야 합니다.
전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주만물이, 땅 위의 모든 것이, 교회나, 기도원도 또 자기의 집도, 자기의 자녀도, 자기의 돈도, 자기의 기업체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저 나는 하나님의 종, 심부름꾼으로서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는 자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도 없고, 한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빈 털털이로 하나님이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살라 하면 살고, 죽어라 하면 죽는 그저 절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피동 되어 이용당하는 생활이 겸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끝까지 쓰십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끝까지 쓸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비밀
이리와 타조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
본문 9절에,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이 있는데, 그 비밀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이방인이 구원 받아서 하나님께 같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 성령으로 같이 나아가서, 아버지 하나님을 같이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 같이 짓는 것, 연합하여 큰 성전이 되어 나가게 하는 일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본문 10절에,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이란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을 보고 천사가 놀란다고 했습니다. 천사도 알지 못하던 비밀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1-12절에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복음으로 성도들이 구원받을 것을, 천사들도 몰랐던 것이고, 천사들도 놀라면서 허리를 굽히면서 살펴본다고 했습니다. “아! 이렇게 큰 하나님의 비밀이 있었구나”라고 말입니다. 이리와 타조가 벌벌 기어들어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았습니다.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천사들이 “야! 참 굉장하구나”라고 할 것입니다. 천사가 이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 이리와 타조들이 벌벌 기어들어와 그 다음에는 변화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같이 앉았는데, 한 지체가 되고 한 후사가 되었는데, 정말 굉장한 일입니다.
요새도 그런 일이 있으면 얼마나 굉장하겠습니까? 이리와 타조가 벌벌 기어들어와 사람이 되어서 왕의 자리에 올라와 왕의 아들이 되어 같이 즐거워한다면 구경 갈만 합니다. 그런 구경을 어디서 할 수있겠습니까? 우리가 과거에 이리와 타조와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잘났어도 우리는 이리와 타조들이었습니다. 이사야 43장 19-20절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 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시랑’은 이리입니다. 무정한 타조와 이리와 같이 잔인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슬슬 변화가 되어 하나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 보좌에 앉았으니, 천사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천사들이 보고 놀라며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천사들이 흠모하는 구원입니다. 우리가 천사들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천사가 하나님 보좌에 같이 앉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보좌에 앉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천사보다 우리가 낫다는 것입니다.
천사들도 우리가 구원받을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었는데, 구원받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런 큰 구원을 우리가 받았는데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특별히 이방인으로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은 도저히 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이방인을 볼 때 개와 같이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변화가 되어 이스라엘과 합하여 둘이서 성령 안에서 한 하나님 앞에 같이 나아간다는 것 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
이것이 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것은 미리부터 예정하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영원 전부터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방사람들도 이러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성도나 이방 성도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갑니다. 하나님 아들이 되었기에 당당히 나아갑니다. 부끄럽지 않습니다. 또한 나아갈 때에 하나님이 무어라 하시지 않습니다. 아들로 삼아 주었는데, 시민증을 다 주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 호적을 올려놓았고, 한 후사가 되게 하였고, 한 지체가 되게 만들어 놓았는데, 이제는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나아갑니다. 천국 시민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로 이제 나아갑니다. 담대하고 당당히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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