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9일 일요일

에베소서 2:11-22 예수를 믿음으로 진리 안에서 성전 건축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수를 믿음으로 진리 안에서 성전 건축하라
에베소서 2:11-22

11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
는 자이더니 13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2:11 그러므로 기억하여라. 그때에 너희는 육체적으로 이방인들이었고, 육체에 손으로 행한 할례자라고 불리는 자에 의해 무할례자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2:12 너희는 그 당시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에서 제외된 자들이고, 약속의 언약들과 무관한 외인들이며,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다. 

2:13 그러나 그때에 멀리 있던 너희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 

2:14 그분은 우리의 화평이시다. 자신의 육체 안에서 둘을 하나로 만드시고, 중간에 막힌 담, 곧 원수 된 것을 제거하신 분이시며, 

2:15 여러 규정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신 분이시니, 이는 그분께서 자신 안에서 그 둘로 한 새 사람을 창조하여 화평을 이루게 하시고, 

2:16 또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 둘을 한 몸으로 만들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는 것이다.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2:17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화평을 전하셨을 뿐 아니라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도 화평을 전하셨다. 

2:18 이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2:19 그러므로 너희는 이제 더 이상 외국인들이나 나그네들이 아니라, 오히려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다.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받은 자들이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다. 

2:21 그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 주님 안에서 함께 성전이 되어 가고,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다.


1. 성도의 믿기 전 상태

본문 11절에, “그러므로 생각하라 그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믿기 전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믿기 전에는 어떤 자였습니까? 
에베소서 2장 1절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하였는데, 믿기 전에는 죽었던 자입니다. 
둘째는,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를 따라가던 자’들이고, 
셋째는 에베소서 2장 3절에 ‘욕심을 따라 행했다’고 했습니다.

믿기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첫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였고, 
둘째는 마귀를 따라가던 자였고, 
셋째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행했던 자입니다. 
넷째부터는 본문 11절부터 설명하고 있습니다. 넷째는 우리가 믿기 전에는 이방사람이었고, 
다섯째는 무할례당이었고, 
여섯째는 그리스도 밖의 사람이었습니다. 
일곱째는 이스라엘 밖의 사람이었고, 여덟째는 외인이었습니다. 
아홉째는 소망이 없었고,
열째는 하나님도 없는 자였습니다. 
전에 우리가 어떤 자였는가를 늘 생각하면서, 현재의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보혈로 화목하게 됨

은혜로 우리를 죽음에서 살려주신 하나님

죽은 자를 하나님이 살려주었고, 마귀 따라가던 자를 하나님 따라가게 만들어 주었고, 하나님을 알게 해 주었고, 욕심대로 살던 것을 이제는 영으로 예수님을 따라가게 해 주었고, 이방사람이었던 자들을 영적 이스라엘이 되게 만들었고, 육체의 무할례당이었는데 영적 할례를 받게 했고, 이제는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죽었던 것이 살았고, 하나님이 예수의 피로 살려 놓았고, 예수님의 피로 구속해서 하나님과 화목시켜 주셨고 중생시켜서 산 생명이 되었고, 마귀 따라가던 우리가 이제는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었고, 육체의 소욕대로 살지 않고 중생한 영의 소욕대로 살게 되었고, 이방사람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되었고, 신령한 할례를 받아서 하나님께 속했고,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고, 영적 이스라엘 사람이고, 외인도 아니고, 손도 아니고, 하나님의 권속이고, 하나님
께 대한 내세의 소망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와 같이 이루어 주신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받은 하늘의 시민증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권속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족속들입니다. 하나님의 권속들은 하나님의 가족, 한 식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권속입니다. 한 형제, 자매, 식구, 한 동생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그 안에서 한 형제인 권속이 된 것입니다.
또한 시민증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시민증이 있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빌3:20). 하늘나라 갈 때에 시민증이 있어야 하늘나라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신령한 시민증을 받았습니다. 그 시민증을 내면 즉시로 무사통과입니다. 시민증이 없는 사람은 가다가 쫓겨납니다. 하늘나라 가는 시민증 우리가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바울이 로마 시민증을 가졌다고 했고, 천부장은 돈을 많이 들여서 로마 시민증을 받았듯이 이 세상의 시민증 받는 것도 힘이 드는데 우리는 하늘나라 시민증을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저 받아서 이제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감사하는 믿음을 항상 가져야 합니다.

3. 성전 건축
성경 말씀위에 건축할 것

본문 20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고 했는데,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터가 무엇입니까? 사도와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웠다고 했는데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라는 것은 성경말씀을 가리킵니다. 사도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성경말씀을 기록했기 때문에 이 성경말씀은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너희는 이 성경 말씀위에 성전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 위에 세워야 합니다. 말씀위에 세우지 않으면 그것은 다 모래 위에 세운 것이 되고, 말씀 위에 세우지 아니한 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모래 위에 세운 것은 다 무너집니다.

성경말씀에서 하나라도 가감하지 말 것

요한계시록 22장 18절에,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성경에서 한마디라도 더하고 믿으면 이 성경에 기록한 재앙을 그 사람에게 다 내린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 책에서 얼마를 제하고 믿으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신다고 했습니다. 제거 당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절대적인 표준입니다.
조금이라도 성경에 없는 걸 가지고 보태서 믿으면 성경에 기록된 재앙을 그 사람에게 내릴 것이고, 조금이라도 제하고 믿으면 하나님께서 낙원의 거룩한 성과 생명나무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영적 생명의 역사에서 중단됩니다. 생명의 세계에서 쫓겨납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에 가감할 수 없습니다. 말씀에 조금이라도 더 가해도 안 되고 감해도 안 됩니다. 또 성경말씀을 신령한 말씀으로, 성령의 말씀이므로, 성경말씀을 육신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세상적으로 육신적으로 인간의 지혜로 성경말씀을 해석하면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가감하면 안 됩니다. 껍데기만 성경이고 속에는 다른 것이 들어가도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절대로 표준화해야 합니다. 언제나 신앙양심을 써야 합니다. 마귀가 미혹을 시킬 때에 성경을 떠나게 만들어서 미혹을 시킵니다. 처음엔 조금 떠나게 합니다. “이 동산에 있는 선악과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 “참으로 먹지 말라고 하더냐?”라고 묻습니다. 하와가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했다”고 대답합니다. “죽을까 하노라”고 대답합니다. “정녕 죽는다”하는 것을 가
지고 조금 변경시킨 것이기 때문에 마귀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성경을 조금만 변경시켜도 그것은 마귀에게 넘어가는 줄로 알고, 성경을 절대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100% 다 그대로 믿어야지 조금이라도 가감하면 망합니다. 마귀에게 넘어갑니다. 내용이 다른 것을 가져다 놓아도 안 됩니다. 껍데기는 성경이고 내용을 다른 것으로 바꿔 놓으면, 그것은 마치 껍데기는 칠성사이다이고 속은 칠성사이다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시계도 껍데기는 로렉스이고 속은 로렉스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껍데기는 성경을 가져다 붙이고 속은 전부 다른 것입니다. 이것이 신신학자들, 신비주의자들입니다. 신비주의자들은 감정주의입니다. 영적인 것 같고, 영적인 은혜 같지만 영적은혜가 아니고 감정주의이며 외부적으로 오는 일시적인 감정입니다.
진리, 말씀에서 나오는 생명이 아니고, 일시적인 흥분에서 나오는 위안입니다. 흥분적 위안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폐병에 걸리면 열이 나고 식은땀이 납니다. 그런데 링게르 한대 맞고 해열제 사다 먹으니까 열이 다 내리고 힘도 좀 납니다. 그런데 다 나은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날 되면 또 열이 나고 식은땀이 납니다. 그 다음날 또 링게르 한대 맞고 해열제 사다 먹으니까 또 다 나은 것 같습니다. 당장은 힘도 나고 식은땀도
안 나서 폐병이 다 나은 것 같지만, 그 다음날 되면 또 열이 나고 식은땀이 납니다.

그런 것이 말하자면 신비주의자들이 은혜 받았다는 것입니다.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은혜 받았다는 것을 보면 힘이 난다는 말입니다. 링게르 맞았으니까 해열제 맞았으니까, 모든 게 나은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이 되면 또다시 아프게 되고, 또 가서 링게르 맞아도 또 아프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신비주의자들은 부흥회 참석 전문가가 됩니다. 보따리 싸 놨다가 부흥회 한다고 하면, 짐 이고 가서 한 주간 쉬다가 옵니다. 그렇게 부흥회 참석 전문가가 됩니다. 부흥회 참석을 안 하면 시들어 지는데, 차차차 시들어지고 폭삭 수그러지고 맙니다. 그러다가 부흥회 가려고 어디서 하는지 알아보고는 저기 한다하면, 보따리 이고 다시 가서 한 주간 손뼉을 쳐야 또 기운이 번쩍 납니다. 이것이 신비주의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목마를 때에 소금을 먹는 것과 같고, 또 폐병 걸렸을 때 다른 방법으로 치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병이 나으려면 아주병이 나아서 이제는 열이 안 나고 힘이 나야 하는데, 해열제 먹이고 링게르 맞는 것으로 나아지는 병이 아닙니다. 그것은 임기응변 책입니다.

성경을 사람의 지식으로 풀지 말 것

성경말씀은 성령으로 아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지식으로 아는 것이아닙니다. 인간의 지식으로 성경말씀을 해석했다가는 멸망당한다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6절에는,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멸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20절에는,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생각대로 풀면 가다가 스스로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요새 성경을 사람의 지식대로 푸는 사람이 많이 나왔습니다. 구원을 사회구원이라고 해석하고, 영적해방을 제도적인 육신적인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억지 부리는 해방신학자들이 나왔습니다. 사회구원을 목적으로 기독교가 모여서 사회운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신령한 나라운동, 천국운동을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신령한 나라운동, 천국운동은 하지 않고 사회운동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정의, 평화, 창조, 보존을 갖다 붙이는데, 평화라는 이름은 좋지 않습니까? 정의, 얼마나 좋습니까? 창조,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내용은 다 사회주의입니다. 미군 철수해야 정의가 온다고 하고, 핵무기 철수해야 정의가 온다고 합니다. 무기는 전부 다 군비 축소해서 없애든지 줄이라고 합니다. 또한 자본가들은 다 이익을 분배하라고 합니다. 가진 것을 다 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엔 성경에 없는 그른 말만 하는 것입니다.

남북통일 하는데 세계 기독교가 도와줘야 한다고 하고, 외세는 제거하라고 하고, 당사자들끼리 적극적으로 협상하라고 합니다. 거기에 뭐 영적 구원운동이나 회개하는 것이나 복음 전도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신앙 면은 하나도 없고 전부 사회운동입니다.

성경말씀을 다 뒤집어 놓았습니다. 껍데기는 양의 가죽을 쓰고 속은 전부 이리입니다. 평화, 정의와 같은 양의 가죽을 쓰고 나왔지만 속에는 전부 이리가 들어 있어서 자본주의 타파하고, 미군 타파하고 철수하고,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정신 나간 사람들입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왜 그런 일에 가담합니까? 지금 이북에서 땅굴 뚫어 놓고서 하루면 삼만 명이 내려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지금 20개나 뚫고 있다는 데, 언제 뚫고 이북이 쳐 내려 올지 모르는데 어떻게 하려고 미군 철수 하라고 합니까? 한국 기독교인들 정신이 다나간 것입니다.

우리를 성전으로 세우신 하나님

그 다음에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놓았는데 뭘 세워 놨습니까?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영적 성전을 세우심을 입은 자라는 것입니다. 영적 성전으로서 우리가 세우심을 입었고, 하나님께서 그 안에 계시려고 영적 성소로 우리 자신들을 이 성경 말씀 속에 세워놓았습니다.

우리는 성전입니다. 각자 각자가 다 성전으로써 예수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시고 성전을 건축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16-17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전적으로 예수께 나갈 때에 생명의 역사가 넘쳐남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나타나시기 위해서 우리를 성전으로 세워놓은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모퉁이 돌이 되셔서 우리에게 생명과 능력을 공급해 줍니다.
베드로전서 2장 4-5절에,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야 합니다. 우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것으로 세워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산 돌입니다. 사람에게는 버림받은 산 돌인데 그러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산 돌이십니다. 산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산 돌, 너희도 그 산 돌에게 나와서 너희도 산 돌과 같이 되라는 것입니다. 산 돌에게 나오면 산 돌의 생명과 능력이 그 사람에게로 온다는 것입니다. 산 돌에게 나온 사람은 생명과 능력이 산 돌에게서부터 나와서 그 사람에게도 생명과 능력의 역사가 계속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퉁이 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모퉁이 돌은 예수그리스도이시고, 그 모퉁이 돌을 의지하고 지어야합니다. 그 모퉁이 돌을 의지하고 거기서부터 힘을 얻어서 지어야 하는데, 그 모퉁이 돌을 의지하면 모퉁이 돌에서 능력이 나오고 생명이 나옵니다. 거기서부터 또한 생명의 역사가 나가고 거기서부터 능력이 계속 나갑니다.

지남철이 큰 것이 있다고 하면 지남철에다가 못을 가져다 대면 붙지요? 지남철에 못을 가져다 붙이니까 붙었습니다. 이 못에 다른 못을 대면 어떻게 될까요? 또 붙습니다. 지남철에서 힘이 못에 전달되어 또 다음에 갖다 댄 못을 끌어 당겨 붙게 합니다. 여기다 또 못하나 가져다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또 붙습니다. 못은 자기 스스로는 아무 힘이 없는데 지남철에서 힘이 나와서 힘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산 돌이신데 우리는 아무 힘이 없지만 산 돌에게 가서 붙으면 산 돌에서 능력이 나오고 생명이 나오고, 또 가서 붙으면 거기서부터 능력이 나오고 생명이 나옵니다. 산 돌에서부터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능력 있습니까? 모퉁이돌에 붙은 사람은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전적으로 예수를 의지해야 합니다. 모퉁이 돌에 나가서 전적으로 의지하여 붙으면 거기서부터 그 사람에게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고,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평안이 있고, 사랑이 나오고, 생명의 역사가 넘쳐 나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와서 계실만한 예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성전이 점점 만들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성도가 서로 연합하여 성전건축 할 것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라고 했는데, 건물 하나씩, 하나씩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해야 합니다. 연합, 서로 합심, 교통, 그렇게 서로 연결이 되어야합니다. 사도신경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고 하는 말이 있잖습니까? 성도가 서로 교통하고 서로 기도해 주고, 잘못한 것은 용서해주고, 서로 사랑해주고 서로 도와주는 연결을 해야 합니다. 연결, 연합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큰 성전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벽돌 하나하나 서로 연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큰 성전이 이루어져 나갑니다. 서로 연합하여야만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교단에서 일 년에 하나씩 개척교회를 하고 우리 교회에서도 일 년에 개척교회 하나는 해야 합니다. 명륜 교회에서는 도봉구 창동에 금년에 개척교회 하나 했습니다. 작년에는 우리 개척교회를 여수 광양에다 했는데, 지금 가건축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땅을 7~80평을 사서 20평짜리 가건물을 지었습니다. 교인들이 2~30명 모이고, 아이들도 그 정도 모입니다. 이제 27일 날 입당예배를 가서 하려고 합니다. 순천에 또 개척교회 하나 하게 될 것입니다. 천안에도 교단적으로 힘을 모아서 개척교회를 하려고 하는데 한 오천만원 교단에서 부담하려고 합니다. 상임위원회에서 결정하여 교단 각 교회에 부담시켰습니다. 창광교회는 천만 원 부담시켰습니다. 명륜교회는 600만원, 다른데 몇 백 만원씩 다 부담시켰습니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다 힘을 합하도록 하였습니다. 서로 이렇게 협력을 해서 복음운동을 해 나가고, 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하고, 서로 교통하고 사랑으로 힘을 모아서 하나님의 일도 해 나가고, 또한 자기 구원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남도 도와주면서 자기도 도움 받고, 이렇게 하면서 성전이 지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각기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며 연결이 되어야 성전이 건축되어 나갑니다. 벽돌 하나 굴러다니면 무슨 성전이 되겠습니까? 벽돌 하나하나부터 놓고, 하나, 하나 쌓아야합니다. 쌓아서 몇 천 장 몇 만장 되어야 성전이 됩니다. 우리교회는 건축할 때 벽돌 몇 장 들어갔을 것 갔습니까? 거의 30만장입니다. 엄청난 벽돌이 서로 연결이 되어야합니다. 벽돌이 제각각이면 무슨 소용입니까? 서로 다 제자리를 지키고 자기 힘을 쓰고 해야 성전
이 됩니다. 서로 연결해서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고, 도와주는 자리에 나가라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가 다른 교회 가서 기도하라고 하니까, “하나님이여 이 교회 오니까 사랑이 빼빼 다 말랐습니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기도를 잘못한 것입니다. 사랑이 말라빠졌으면 자기부터 먼저 사랑하면 될 텐데, 자기는 남 사랑할 생각 안하고 말라빠졌다고만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사랑을 먼저 주면 사랑이 있지 않습니까? 사랑이 없으면 주라는 것입니다. 주면 있다는 것입니다. 돈 없으면 주면 돈이 있다고 했습니다. “돈 없다. 돈 없다”하지 말고 자기부터 돈을 주면 있습니다. 없는데 가서 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준 것이 또한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을 내가 주면 그 사랑이 거기 있다가 내게 돌아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어떤 때는 이자가 붙어서 돌아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돌려보내 줍니다. 더 많은 것으로 돌려주십니다. 그러니까 서로 사랑으로 연결하고, 서로 하나님의 일이 잘되기를 위해서 도와주고, 믿는 일 잘 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하셨습니다.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혼자 짓는 것이 아닙니다. 같이 이 영적 성전을 지어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영적 성전, 자기자신 속에 예수님을 모시는 성전, 개인 성전을 지어져 나가야겠습니다. 또한 서로 연결해서 큰 성전, 교회마다 서로 연결해서 좀 더 큰 성전을 지으며,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
께 지어져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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