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9일 일요일

에베소서 2:10 선을 행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선을 행하라
에베소서 2:10

10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백성
악한 세상에 선을 베풀라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심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우리는 예수 안에서 새 창조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려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디도서 2장 14절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신다 했습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마귀는 악한 일을 행하는 자이고, 믿는 우리는 선한 일을 행할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은 전부 ‘선’입니다. 마귀에게 속한 것은 전부 ‘악’입니다.
선한 일을 하라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으므로, 선한 일을 행해야만 우리는 본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악한 세상에 선을 나누어 주어야만 합니다. 점점 선한 세상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선으로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2장20-21절에,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적극적으로 선을 베풀면 선의 세계가 커짐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선을 자꾸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계속 선을 나누어주면, 악한 세상이 선한 세상으로 됩니다. 선을 베풀어서 상대방이 선을 받으면 그만큼 선의 세계가 넓어집니다. 선을 받은 사람이 선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만큼 선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상대방이 선을 안 받으면 자기에게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베푼 선을 상대가 받지 않으면 그 선이 자기에게도 돌아옵니다. 그런데, 돌아올 때에는 이자가 붙어서 돌아옵니다. 자신이 베푼 선이 하나, 돌아온 선이 하나, 또 이자까지 치면 이익이 많습니다. 선을 베푸는 것을 상대가 받든 받지 않든지 베푼 자에게는 이익이 많습니다. 선이 돌아온다는 말은 선이 자기에게서 커진다는 말입니다. 주먹만한 선을 주었다면 상대가 안 받을 때에 자신에게서는 그것의 배나 커
진다는 말입니다. 사랑을 했는데 상대가 안 받았다고 하면 돌아와서 더 커집니다. 상대가 안 받으면 그만큼 더 큰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더 커지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자신이 베푼 선을 받으면, 그만큼 선의 세계가 넓어지기에 그것도 자신의 것이 됩니다. 자신이 베푼 선, 그 사람이 받은 선 모두가 자기 것으로 돌아옵니다. 축복을 해주는 것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로 가고, 안 받으면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이자로 몇 갑절이 됩니다. 자신을 통해 간 것이 전부 자신의 것인 줄 알면 됩니다. 그렇게 자꾸 나누어주면, 자기 것이 많아집니다.

무조건 선만 베풀면 자신의 것이 자꾸 많아지지만, 안 베푸는 사람은 손해가 많습니다. 안 베푸는 것은 본전 그대로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저 한 달란트만 내내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네 까짓 것이 뭐냐? 내가 누군 줄 모르냐?”하면서 선을 베풀 줄 모르고, 사랑을 베풀 줄 모르며 삽니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믿는 일한 게 없습니다. 주었어야 뭐가 있을 텐데 주었어야 뭐가 돌아오는데, 주지 않으니까
거기에도 없고 돌아오는 것도 없습니다.

2.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목적

미워하는 세계를 사랑의 세계로 변화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는 선물을 주신 까닭은 악한 세상을 선한 세계로 만들라고, 또한 미워하는 세계를 사랑하는 세계로 만들라고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마귀의 세계를 하나님의 세계로 만들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게 해 주신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고, 너만 믿고 너만 구원받을 것이 아니라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위해서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복, 하늘의 복을 받은 사람이 자기만 복 받고 말면 되겠습니까? 받은 그것을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나누어 줄 때에 상대방이 받으면 넓어지고, 안 받으면 배나 돌아옵니다. 또 전할 때에 상대방이 받으면 또 넓어지고, 안 받으면 또 배나 돌아옵니다. 이것은 양통입니다. 이렇게도 먹는 것이고 저렇게 해도 먹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면 상대가 받아도 내 것, 안 받아도 내 것입니다.

사랑 한 덩어리가 있는데 그것을 남에게 주면 그 한 덩어리가 없어지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었던 사랑을 상대가 안 받으면 도로 본전이 되는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자신에게 열 냥짜리 사랑이 있다고 합시다. 그것을 나누어주면 자기의 열 냥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 것은 그대로 있고 거기에서 나누어주는 것이 배가 되는 것입니다. 나누어 줄 때에 배가 됩니다. 그게 돌아오면 이십 냥짜리가 됩니다. 상대가 받았다고 해도 그 상대가 받은 그 열 냥이 자신의 것이니까 자기 것과 합해서 이십 냥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서 나갈 때에 커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나누어줄까?” 그 궁리만 하십시오. 어떻게 해야만 하나님께서 주신 그 신령한 복을 나누어 줄지, 선을 남에게 좀 나눌지, 사랑을 나눌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선을 나누면 자꾸 나옴

에베소서 2장 7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선을 나누어주라는 말이나, 복음을 나누어주라는 말이나 다 같은 말입니다.

복음을 나누어 주는 것이 선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선한 일이 또한 복음에서 나옵니다. 혼자 먹는 것이 큰 게 아니고 나누어 줘야 커집니다. 아까 누군가가 “주면 없어지는 게 아니냐?”고 물었는데, 주면 그 조금 있는 게 없어질 까봐 걱정입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집에 갔을 때에, 가루 조금하고 기름 조금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을 엘리야에게 주었을 때에 계속 나왔습니다. 또 해주니까 또 나왔습니다. 그렇게 3년 6개월 동안 나왔습니다.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나눌 때에, 떼어주니까 떡이 나왔습니다. 또 떼어주니까 또 나왔습니다. 그렇게 자꾸 떼어주고 나오고 하면서 5천명이 다 먹도록 나왔습니다. 그러고도 부스러기가 일곱 광주리나 나왔습니다.

부스러기라도 버리지 말 것

그런데, 자꾸 나오니까 부스러기는 버리라고 했습니까? 부스러기도 버리지 않고 다 담으라고 했습니다. 부스러기라도 모아서 사용해야 합니다. 부스러기라고 해서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더 안 주십니다. 시간도 부스러기 시간 잘 사용해야 믿는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시간 없다, 없다 하지 말고, 부스러기 시간 잘 모으면 일곱 광주리가 됩니다.
자기 노력도 부스러기 노력, 정력도 부스러기 정력을 다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사경회 오는 것도 부스러기 시간 사용해서 올 수 있습니다. 일 다 해놓고, 휴가 받아서 오는 것입니다. 휴가 한 달에 하루씩 휴가를 준다고 하는데 그것을 모아서 나오는 것입니다. 한 달의 하루 부스러기 나오는 것으로 사경회를 세 번도 할 수 있습니다.

빼앗기는 것이 잘 되는 것임

그렇게 떼어주라는 것입니다. 선을 베푸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계속 주십니다. 더 많이 주십니다. 받아먹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까? 주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까? 주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계속 주면 계속 나오니까 주는 사람이 복이 있지 않습니까? 빼앗아먹는 것은 못삽니다. 주는 사람이 사는 것입니다. 빼앗기는 사람이 사는 것입니다.

매가 꿩을 늘 잡아먹지만 꿩이 많습니다. 고양이가 쥐를 늘 잡아먹지만 쥐가 더 많습니다. 만날 잡혀먹어서 없을 것 같지만 많습니다. 큰 고기가 작은 고기 잡아먹지만 작은 고기가 더 많습니다. 잡아먹는 것, 빼앗아 먹는 것은 흥하지 못합니다. 그저 잡아먹히는 것, 계속 주고 잘리고, 그저 계속 주고 죽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잘 되는 것입니다.

씨를 뿌릴 때에 길가에 뿌린 것은 실패, 돌밭에 뿌린 것은 실패, 가시밭에 떨어진 것은 완전 실패는 아니어도 거의 다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나 옥토에 떨어진 씨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100배의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네 알갱이를 뿌렸는데, 세 개는 실패했지만 한 개가 100배, 60배, 30배 성공을 했으니 얼마나 많이 결실했습니까? 그렇게 주는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주는 사람, 뿌리는 사람, 나가서 전도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개척교회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 주시고, 선교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 주시는 것입니다.
자꾸 주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더 많이 주십니다. 돌아올 때에는 하나님께서 또 주시고, 다른 것도 더 주십니다.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3. 적극적으로 선한일, 주는 일을 할 책임

중국에 선교하러 가는 일

우리가 중국선교 할 때에, 교대로 목사님들 몇 사람씩 보내서 가르치고 오게 합니다. 그것을 4년째 하고 있는데, 이번에 중국 다녀온 송목사 말로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여러 곳에 쫙 깔려있다고 합니다. 어디를 가나 우리에게 강습 받은 사람이 교회 인도하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다른 곳에 교회 세운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어디에 가보니까 거기도 우리에게 강습 받은 사람이 교회 세워 인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좍 깔려있다고 합니다.

다른 교단에서도 여러 가지로 많이 노력하지만, 우리에게서 배운 사람들이 인도를 하는 교회가 많다고 하니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목사님들이 한국에 있는 자기 교회 두 주간씩 비워놓고 교대로 중국에 가르치러 갈만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배운 사람이 여기저기 깔려있다고 하니 참 좋습니다. 교역자 자꾸 중국에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주어야 합니다. 주는 사람이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 교회만 잘 먹겠다고 “목사님 중국 가지 마십시오. 지난번에 목사님 중국 가신동안 다른 목사님 와서 하는 거 보니 안 좋았습니다.”라고 하며 못 가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주어야 자꾸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녀오면 갔다 오는 자신에게도 은혜가 있습니다. 많이 배우고 옵니다. 꾸어서 다녀와도 하나님이 다 갚아주십니다.

잘라먹는 자는 망하고 주는 자는 잘 됨

선을 행하라고 다 주셨는데, 왜 남에게 줄 생각은 안하고 이기주의로 “나만 믿고 천당 간다. 나만 구원 얻는다.”고 합니까? 다른 사람은 다 필요 없고 나 하나만 잘하면 된다는 그런 생각은 안 됩니다. 연보할 때에는 십일조만 하고, 다른 건축연보나 기도원 연보는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하는 자기가 손해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안 해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손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손해입니다. 하나님께 받을 복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연보할 때에 자신의 힘을 써서 해야 합니다. 연보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면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면 자신에게 더 돌아오고 자꾸 많아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일을 할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그저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잘리어도 그저 주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잘라먹는 사람은 망하고 주는 사람은 잘 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계속 선을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가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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