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4일 월요일

요한이서 1:1-13 진리(眞理).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진리(眞理)
요한이서 1:1-13

1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2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3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4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5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6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7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8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9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10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11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12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13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1. 문안축복
본문 1절에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이라고 했습니다. ‘장로’는 사도 요한 자신을 가리킵니다. 장로라는 직분은 원로급 지도자를 말합니다. 사도 요한이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한다고 했는데, 믿음 좋은 부녀와 자녀가 살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뿐만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했는데, 참 좋은 신자였던 것 같습니다.
옛날 사르밧 과부와 같이, 또 한나와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와 같이, 믿음이 좋은 부녀가 자녀와 같이 살면서 믿는 생활을 잘 하니까, 그 가정을 사도 요한이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 가정을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사랑하느냐에 대해 2절에서 말씀합니다.

본문 2절에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를 인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부녀와 자녀가 참 진리, 바른 진리를 받아서 진리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참으로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3절에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속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긍휼과 구원의 평강이 우리와 항상 있기를 기원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은 바른 진리와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항상 은혜가 있고, 하나님의 긍휼이 있고, 구원의 평강이 있기를 축원했습니다.


2. 사랑하라는 권면

진리에 행하는 자를 기뻐함

본문 4절에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을 볼 때 기쁘다고 하였습니까? 진리에 행하는 자입니다. 진리에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진리를 깨닫는 그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 진리에서 믿음으로 행하는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진리에서 떠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안타깝고 걱정스럽습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심히 기쁘다는 말씀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잘 행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기쁩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진리에서 떠나 세상에서 죄만 짓고 방탕하면 상당히 걱정하게 됩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진리 안에서 행하면 가르치는 사람이 기뻐하고, 지도하는 사람이 기뻐하고,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예수님도 기뻐하십니다. 모든 성도도 다 같이 기뻐합니다.

진리를 바로 깨달아서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을 보면 기쁘다는 말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인도해 나갈 때, 자녀들이 성경대로 잘 순종하고 믿음을 잘 지키고 교회를 잘 받들고 하나님을 잘 섬기게 됩니다. 그러면 부모가 심히 기쁩니다. 그런 자녀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말 안 듣고 불순종하고 방탕하고 교회도 잘 안 나가고 집안에서 싸움이나 하면, 그 부모가 심히 걱정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그 자녀가 돈 잘 벌어서 좋은 집이 있다고 해도, 그런 자녀를 부모가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못살아도 서로 화목하고 서로 사랑하고 교회 잘 받들고 진리를 잘 순종하면 부모가 그런 자녀를 기뻐합니다. 우리도 이런 성도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보니 기쁘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자

본문 5절에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사랑하자’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미워하는 것은 마귀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주신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막힌 담을 풀고 용납해주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자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6절에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계명을 좇아 행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3. 이단에 대한 경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

본문 7절에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신 것을 부인하는 자는 미혹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미혹하는 자가 이 세상에 많이 나왔다고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가 미혹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육체로 임한 것이 아니라 비슷하게 왔다고 주장하는 이단들이 이 때에 많았습니다. 노스틱주의는 물질은 다 악하다고 주장합니다(물질대악설). 예수님이 육체로 왔다고 하면 육체도 다 물질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죄가 있다고 생각해서 예수님은 육체로 오지 않고 육체와 비슷하게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입니다. 또한 미혹하는 자입니다. 그런 이단들이 그때에 많이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런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영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속에 있고, 육신은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몸을 가지신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가 낳았기 때문에 똑같은 사람의 육신입니다. 그러나 죄는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육신은 다 죄라고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육신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육신과 비슷하게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미혹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

기독론에 대하여 잘못 주장하는 것은 다 이단입니다. 육체를 부인하는 것도 이단이고, 신성을 부인하는 것도 이단입니다. 자기가 예수라고 하는 것도 이단이며, 예수님의 대명사를 붙여서 스스로를 감람나무다, 인 뗀 자다, 의인이라고 하는 것도 다 이단입니다. 예수님의 인성, 신성을 부인하거나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은 다 이단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는 자들도 미혹하는 자입니다. 이슬람교는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주장을 합니다. 마호메트교에서는 예수님을 실패한 자로 규정합니다. 예수님은 실패하였고 진짜 선지자는 마호메트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마호메트교는 하나님은 믿지만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하나님을 알라라고 부르고 코란경을 믿는데, 마호메트가 아라비아를 다니며 계시를 받아 코란경을 기록한 것이고, 마호메트를 최후의 선지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마호메트교를 전할 때에 코란을 받든지 검을 받든지 둘 중 하나를 정하라고 합니다. 한 손에는 코란경을 들고 절하고 한 손에는 검을 들고 안 받으면 죽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한 사상 속에서 내려와 계속해서 악한 짓을 합니다. 그런 것들이 다 적그리스도들입니다. 성경에서 탈선되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복이 떠났습니다. 백성들은 자유가 없고 여자들은 학교도 못 다니게 하고, 밖에 나갈 때 얼굴을 가려야 합니다. 또 여자들은 남자들의 이용물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복음이 들어가면 되겠는데 복음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반대하는데도 교회가 들어갑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도 교회가 간혹 있습니다.

요즘 현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일 뿐이며, 선생 가운데 제일 훌륭한 선생일 뿐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부인하는 신신학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이면 어떻게 우리를 대속했겠습니까? 또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은 ‘정신적 부활이다, 재림도 정신적 재림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잘못 주장하는 자들이 다 이단이고 미혹하는 자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주장합니까? 여호와의 증인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성령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속죄를 부인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피 흘려 죽으심을 부인합니다. 매우 악독한 이단입니다. 여호와의 증인 같은 사람들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집에 찾아오면 어떻게 할까요?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이라 밝히면서 다가오지 않습니다. 성경공부하자, 잠깐만 들어가자고 해서 들어옵니다. 들어와서 성경공부 한답시고 이단 사상을 말합니다. 이단사상은 독창과 같습니다. 독창을 자꾸 뿌려놓으면 그 독창이 옮습니다. 악한사상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을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인사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른 데나 가보시오' 하는 말도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자꾸 들어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기가 밖에 나가면 됩니다. 주인이 밖으로 나갔는데 빈집에 들어와 앉겠습니까? 주인이 밖에 있는데도 기어이 들어와 앉아있으면 남의 집에 와서 뭐하느냐? 왜 빈집에 들어 와 있느냐? 파출소에 전화 해야겠다고 하면 더 이상은 이단 사상을 전파하지 못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악독한 이단으로, 예수는 벌써 재림했다, 지상에서 영원히 산다, 성령부인, 예수님의 속죄 부인, 부활이 없다는 등 예수님에 대하여 잘못 전합니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이단 사상이 있는지 모릅니다. 신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부인합니다. 인간의 교훈으로 압니다. 예수님을 사람 가운데 좋은 선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이단입니다. 요즘 현대주의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좋은 선생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좋은 교훈이라고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 이단입니다. 미혹하는 적그리스도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자유가 생겨 발전함

어느 나라나 복음이 들어가고 예수가 들어가고 자유가 들어가야 나라가 됩니다. 조선말에 우리나라는 외국 사람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쇄국 정책을 썼습니다. 그 때문에 복음이 못 들어오고 혹시 천주교가 들어와도 잡아 죽이는 바람에 뒤떨어졌다는 말입니다. 일본은 서양문화를 받아들이고 그 때 복음이 같이 들어왔습니다. 예수가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일본은 한국보다 썩 앞섰습니다. 한국이 이만큼 된 것도 복음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들어오고 예수를 믿고, 예수를 믿고 보니까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영의 자유가 오고 정치적 자유가 왔습니다. 민주주의가 종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종교적 자유, 정치자유, 그래서 대통령선거를 하고 이만큼 된 것입니다.

이북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북이 해방 전에는 한국보다 앞섰습니다. 60년대까지 한국보다 앞섰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없고, 자유가 없고, 자유경제가 아니니까 뒤떨어진 것입니다. 러시아가 왜 이렇게 뒤떨어졌습니까?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탈린이 70년간 독재하고 자유가 없어지니까 백성들이 일할 의욕이 다 없어졌습니다. 시간만 채우고 배급만 타다 먹으면 되는 것으로 인식이 굳어진 것입니다. 농사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잘 하려는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잘하나 못하나 배급은 같습니다. 농사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삼분의 일은 곡식을 논에서 흘리고 삼분의 일은 길바닥에다 흘리고 삼분의 일만 가져간다고 합니다.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논에다 흘렸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장사할 때도 많이 팔든 적게 팔든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장사를 잘 하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안 될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요새도 러시아는 그 습관이 남아있어서 일하다가도 시간만 되면 문 딱 닫고 다 돌아갑니다. 물건 파는데 가서 한꺼번에 여러 개를 사려고 하면, 그렇게 하지 말고 다른 사람도 살 수 있도록 조금만 사라고 한다고 합니다. 자유경제인데도 옛날 습관이 남아 있어서 그러니 장사가 되겠습니까? 계속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유 경제가 들어가서 조금 낫습니다. 중국에도 교회가 많이 들어가고 자유경제가 되어서 조금 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들어가야 일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안 들어가면 그 나라가 안 됩니다. 흑암 속에서 헤매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안 됩니다. 미혹 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는데 미혹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입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 하는 자들이 미혹 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라

본문 8절에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고 하였습니다. 바른 교훈을 가르친 것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른 교훈을 그대로 지키면 이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상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9절에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성경보다 지나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나치는 것도 잘못된 것이고, 미치지 못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성경보다 더 잘하겠다, 더 좋은 것이다, 신기한 것이다 하면서 없는 얘기를 하는 것은 이단인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성경보다 감하는 것도 이단입니다. 1% 믿지 않고 99% 믿어도 이단입니다. 성경에서 1% 잘못 되어도 이단입니다. 전도서 7:16에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느냐" 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성경보다 더 나가면 안 됩니다. 또 사람이 연약하여 못한다고 하면서 성경보다 덜 나가도 안 됩니다. 덜 나가면 회개해야 합니다. 덜 나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 교훈 안에 거하는 자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게 됩니다. 성경이 가라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서라고 하는 곳에 서야 합니다. 성경이표준입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은 전부 다 마귀역사입니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든지, 계시를 받았든지, 환상을 봤든지 성경에 없는 것을 말하면 전부 마귀역사입니다. 성경에 맞으면 어떻게 할까? 맞아도 성경만 믿어야 합니다. 성경이 아닌 것은 다 마귀역사인 줄 알고 꿈이 성경에 맞아도 꿈 믿지 말고 성경만 믿어야 합니다. 오직 성경만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지나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0-11절에,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6:15에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합할 수 없습니다. 마귀와 하나님이 합할 수 없습니다. 바른 교훈을 가지지 않고 나오는 자들과는 합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사하며 교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 가운데 이단에 넘어간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족하고도 인사하지 말라는 것일까요? 신앙적인 교제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족 가운데 이단에 넘어간 사람이 있으면 상당히 위험합니다. 그 사람을 망하게 하고 또 그 가족을 망하게 하는 것이므로 절대로 신앙적 인사나 교제를 하지 말며 성경토론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단에 넘어갔다고 가족을 내어 쫓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적인 교제를 하는 것은 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성경공부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 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성경을 가르쳐준다는 곳에 가면 안 됩니다. 가면 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어느 기도원이 계시를 받아 잘 가르치는데 거기 가보자 하는 미혹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기도 많이 하는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더더라, 한번 가서 물어보자 해도 안 됩니다. 가보지도 말고 인사하지도 말고 성경토론 하지도 말고,성경에 잘못된 줄 알고 끊어버려야 합니다.
이단자들이나 그 교리를 전하는 자들을 성도로 대우하여 인사하면 그 악독한 이단 사상을 용납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하면 다른 교인들도 그 이단들과 교제하여 미혹받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이단을 용납하는 것은 그 이단을 도와주는 결과가 되고 악한 일에 동참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고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말하려고 합니다. 편지로 할 것이 따로 있고, 전화로 할 것이 따로 있고, 만나서 해야 할 것이 따로 있습니다. 편지로 해야 할 것은 편지로 해도 괜찮습니다. 전화로 해야 할 것은 전화로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만나서 해야 할 일은 만나서 해야지 전화로 하면 안 됩니다. 만나서 할 이야기, 만나서 부탁할 것, 만나서 들을 것, 만나서 지도 받을 것들이 다 따로 있습니다. 전화로 해서는 안 될 일들이 많습니다. 만나서 해야 할 것은 만나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심방도 가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서로 문안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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