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영혼의 잘 됨
요한삼서 1:1-2
요한삼서 1:1-2
1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1. 가이오를 사랑함
본문 1절에,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보낸 사도 요한의 편지입니다. 사도 요한이 자기를 장로라고 했는데, 장로는 원로, 나이 많은 지도급에 속한 사람을 말합니다. 가이오라는 사람은 고린도전서 1:14에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와, 또, 로마서 16:23에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에 등장하는 사람인데, 온 교회 식주인이라는 것은 밥을 해서 대접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뜻으로, 가이오가 자기 재산으로 온 교회에 음식을 대접하는 귀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한다는 것을 보면 요한이 가이오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 교회에 음식을 대접하면서 교회에 큰 유익을 준 그런 가이오를 참으로 사랑했습니다.
2. 영혼이 잘되는 것이 우선임
본문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될 수 있고 또 강건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우선인데, 영혼이 잘 못 되면 범사가 잘 못 되고 강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영이 잘 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영이 잘 되기 위해서 병도 나고, 징계도 와서, 회개시켜서 영이 잘 되게 하십니다. 영이 잘 되기 위해서 범사를 하나님이 징계하기도 하는데, 영이 잘 못 되면 결국 끝장입니다. 영이 잘 되지 못한 사람도 범사에 잘 될 수가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범사에 잘 될 수가 있지만, 성도에게는 그 영혼을 잘 되게 하시려고 여러 가지 환난과 고난과 핍박도 주고, 범사에 잘 안 되게 하여 회개하게 만듭니다. 영이 잘 못 될 때는 아무리 일꾼이 삯을 받아 전대에 넣어도 구멍 뚫어져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잘 순종하지 않으면 네게 저주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잘 순종하면 복이 임하고, 나가도 복, 들어와도 복, 자녀들, 손으로 하는 사업, 우양의 새끼 모두 잘 된다고 했고, 말씀 순종하지 않고 영이 잘 못 되면, 나가도 저주, 들어와도 저주, 우양의 새끼, 토지의 소산, 자녀들, 육체가 다 잘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영혼이 잘 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해질 수 있는데, 불신자도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경우가 있습니다.
시편 73:4-9에, “저희는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도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안 믿는 사람이 잘 된다는 말입니다.
욥 21:7-12에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 수소는 영락 없이 새끼를 베게 하고 그 암소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 그들은 아이들을 내어 보냄이 양 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 추는구나. 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악인이 여러 복을 누리고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 제일 많이 낳은 사람이 몇 명까지 낳나요? 어떤 집은 24명이라고 합니다. 제가 아는 분이 하나 있는데 자기 어머니가 102세인데 자기 어머니 자손이 다 모이면 130명이라고 합니다. 130명이면 얼마나 많은 것입니까? 그 할머니가 믿는지 안 믿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안 믿는 사람도 자녀 많은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또 사업도 잘 되고, 소도 잘 되고, 목축도 잘 되고, 양도 잘 되고 다 잘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범사가 잘 되는 것으로서 판단하지 못합니다. 범사가 잘 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영혼이 잘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강건하다고 해서도 영혼이 잘 되는 것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도 얼마나 강건합니까? 영혼이 잘 되는 것, 범사에 잘 되는 것, 강건한 것, 그 세 가지를 다 연결시키면 안 됩니다. 삼박자 구원이라고 해서 세 가지를 다 연결시켜 놓은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삼박자 구원은, 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한 박자, 범사에 잘 되는 것이 또 한 박자, 강건한 것이 또 한 박자로 모두 합하여 세 가지가 다 잘 되어 삼박자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범사가 잘 안 되면 영혼이 잘 안 된 것이며, 또 범사가 잘 된 사람은 영혼이 잘 된다라는 것인데 그럼 안 믿는 사람은 왜 강건합니까? 안 믿는 사람이 왜 범사가 잘 됩니까? 그러므로 삼박자 구원은 잘 못 된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도 고난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누구입니까? 욥이 얼마나 고난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욥의 자녀 십 남매가 하루 아침에 다 죽었고, 또 그 많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졌으며, 자기도 몹쓸 병이 들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잘 못 섬긴 것입니까? 욥이 물론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하시려고 여러 가지 고난을 주셔서 복을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범사가 다 안 되었다고 그 영혼이 잘 못 된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잘 되어서도 다 없어질 수 있고, 또 영혼이 잘 되었어도 병들 수도 있습니다. 삼박자 구원은 예수 믿는 사람이 잘 되어야 된다, 돈 많이 벌어야 된다, 부자가 되어야 된다, 사업도 잘 되어야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보다 나아져야 된다, 그래야 그게 잘 믿는 증거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잘 못 되는 사람은 못 믿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어땠습니까? 잘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거지 노릇했습니다. 부잣집
대문가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주워 먹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또 건강은 어땠습니까? 몸에 헌데가 나서 개가 와서 핥아먹었습니다. 잘 믿었지만 고난 당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박자 구원이 잘 못 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되고 또 강건하다는 것으로 연결시켜 놓는 것입니다. 범사가 못 되면 영혼이 잘 못 된 것이며, 또 강건하지 못하게 된다는 식으로 연결시키면 안 됩니다.
시편 73:4 절을 다시 살펴보면 저희는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도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다고 했는데 이와 같이 악인이 건강하기도 하고 죽을 때도 잘 죽는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을 때 잘 죽기를 원합니다. 갑자기 죽었으면 좋겠다느니, 오래 앓지 않고 죽으면 좋겠다, 혹은 죽을 때 아예 고생 안 하고 죽으면 좋겠다, 또는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자기도 고생 안 하고 갔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앓다가 간 사람도 잘 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앓지 않고 가는 사람도 잘 된 것이고, 앓다가 가는 사람도 잘 된 것입니다. 다 잘 된 줄 알아야 합니다. 삼박자 구원으로 말하면 오래 앓다 죽은 것은 잘 못된 것 아닙니까? 복 못 받은 것이 됩니다. 이렇게 삼박자 구원이 잘못 된 것입니다. 앓지 않고 죽은 사람은 잘 된 것이고, 오래 앓다 죽은 사람은 잘 못 되었다는 식 말입니다.
정말 안 된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 안 지키다 죽으면 바로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믿음 안 지키다 죽으면 아무리 자다가 죽어서, 자기도 고생 안하고 자식들도 고생 안 시켜도, 그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제 명 대로 다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고종명이라고 하고 오복에 들어가는데 원하는 대로 편안하게 죽지 못해도 몇 복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팔복에 들어갑니다. 그것을 알아야합니다. 죽을 때 앓지 않고 갑자기 죽거나, 편하게 죽는 건 오복에 들어갑니다. 그것이 세상 복이라고 한다면, 천국 복, 성도의 복은 죽을 때 잘 죽든지, 잘 못 죽든지 팔복에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죽을 때 잘 죽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자다가 죽든지, 기도하다 죽든지, 갑자기 죽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사람 볼 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 생각은 잘 못 된 생각입니다. 그것은 육신의 생각, 세상 생각만 하는 것이지, 영혼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갑자기 죽으면 자기가 하늘나라 가서 책망 받을 것이 없을까요? 갑자기 죽으면 좋겠다는 사람들, 죽을 때 앓지 않고 잘 죽으면 좋겠다는 분들께 한번 물어봅시다. 이 시간에 갑자기 죽는다면 하늘나라 가서 예수님 앞에 책망 받을 것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많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죽으려고 합니까? 책망 받을만한 것, 그것을 다 떼어놓고 죽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가서 책망 받을 것, 합당치 못한 것을 모두 회개하고, 다 내 버리고, 그것을 다 제거시키고 깨끗하게 만들어서 죽어야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죽으면 언제 그것을 하겠냐는 말입니다.
오늘 저녁에 잠을 자다가 갑자기 죽으면 그것을 할 수 있습니까? 세상 편으로 보면 오복이지만, 하나님 편으로 보면 복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죽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갈 때 책망 받을 것이 없을 만큼, 회개해서 정결케 되어 가야합니다. 대개 사람이 병들었을 때 회개를 많이 합니다. 평상시에 회개 못 하다가도, 병들었을 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죄를 찾아 회개합니다. 고난 중에 자기가 잘못한 것을 낱낱이 다 찾아서 하나 찾으면 하나 회개하고, 또 찾아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 다 하고 죽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시 73:6-12에,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 찬 물을 다 마시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악인인데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고, 또 건강하며, 교만하고 강포하며 자기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더 해서, 마음으로 돈이 얼마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 그 보다 더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살면 좋겠다 생각하면 더 큰 것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재물이 날마다 더해집니다. 항상 평안하고, 자녀들은 날마다 잘 되는 것입니다.
시 73:14절에,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라고 했는데,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서의 ‘나’ 는 이 시편을 기록한 성도를 말하는데 이‘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악인은 잘 되는데 성도는 종일 고난을 당하고 아침마다 징책을 보는 것입니다. 징책이라는 것은 징계, 책망을 말하는 것으로, 종일 재앙을 당하고 또 아침마다 징계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범사가 잘 된 것입니까? 강건합니까?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오히려 악인입니다. 악인이 잘 됐다는 말입니다. 악인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했습니다. 성도는 오히려 종일 고난을 당하고 아침마다 징책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기 때문에 성도에게 종일 고난을 당하게 만들고, 재앙을 당하게 만들고, 아침마다 징책이 되어서, 회개시키고, 바로 세워서,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만들어서 데려가려고 이렇게 재앙도 주고, 징책도 준다는 말입니다. 평안한 것이 언제나 복인 줄 알면 안 됩니다. 무조건 잘 되는 것이 복인 줄 알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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