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일 금요일

베드로전서 1:19-25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피로 중생한 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피로 중생한 자
베드로전서 1:19-25

19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20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21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2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23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1:19 오직 흠 없고 티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것이다. 

1:20 그분은 창세전에 미리 알려지셨으나 너희를 위하여 마지막 때에 나타나셨다. 

1:21 너희는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이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다.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정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여라.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로 된 것이니, 곧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 것이다.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같고 그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1: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다." 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너희에게 선포된 말씀이다.


1. 그리스도의 피로 중생함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피

본문 19절에,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속이라는 것은, 죄 가운데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고 의롭다 함을 얻고 생명을 얻은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속은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가 구속을 받고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깨끗하게 죄 씻음을 받았습니다. 금이나 은을 가지고는 죄 씻음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고 죄가 다 없어졌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의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났습니다.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생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이런 것이 세상에 있습니까? 무엇으로 우리가 죄씻음을 얻게 되고, 죄인이 의인이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또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서 영생을 얻게 되는 이런 일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금 같은 것들, 보석과 같은 것들로는 그 근처도 오지 못합니다. 보석 가지고 어떻게 죄 사함을 받겠습니까? 보석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겠습니까? 제일 보배로운 것은 그리스도의 피 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만큼 보배로운 것이 없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죄 사함을 받고 죄 씻음을 받겠습니까? 다른 것으로는 씻음 받을 길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서만 죄 씻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큰 보배입니까? 양잿물을 가지고도 씻지 못하고, 무슨 다른 별 세제를 다 가지고도 씻지 못합니다. 무슨 하이타이, 표백제등을 아무리 가져다 씻어도 죄 씻음을 받지 못합니다.
죄는 다 새빨개진 것입니다. 우리에게 피와 같이 붉은 죄, 진홍같이 붉은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죄로 인해서 죽었습니다. 이 죄를 씻음 받아야겠는데 무엇으로 씻음을 받겠습니까? 주홍같이 붉은 죄, 피와 같이 붉은 우리의 죄들을 씻음 받는 길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피 입니다. 예수의 피 하나밖에 없습니다.
불교신자에게 전도를 하니까 선한 일을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죄를 안 져야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죄 지은 것은 어떡하느냐? 이제부터 짓지 않는 것은 몰라도 벌써 죄 지은 것은 어떻게 하느냐? 그 죄 때문에 지옥 간다. 그러므로 씻음을 받아야 한다. 이미 지은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은 예수의 피 밖에 없다. 피를 믿어야 씻음을 받는다”라고 하였습니다.

피 밖에 없습니다. 피로써 의인이 되고, 죄인이 깨끗해지고, 피와 같이 붉은 죄가 예수의 피를 믿음으로써 눈과 같이 됩니다. 진홍같이 붉은 죄가 예수의 피를 믿음으로써 양털과 같이 희어집니다. 그리고 예수의 피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 앞에 완전무결한 의를 입혀줍니다.
예수의 피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줍니다. 호적상에 자녀가 되게 하시는데, 호적상에만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되는 권세를 줍니다. 권세가 있습니다. 피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또한 권세가 나옵니다. 그 권세는 마귀를 다 이기고 세상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의 피를 믿는 자에게는 예수의 피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 피를 하늘나라에 갈 때 가지고 가면, 천사들이 천당 문지기를 하다가 “네가어떻게 하여 천당에 들어가려고 하느냐?” 물어보면,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다!”라고 대답하면, 천사들이 벌벌 떨며 “ 빨리 들어가세요”하면서 다 들어가게 합니다.
예수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면 하늘 문이 환하게 열리고,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곧바로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의 피로 모든 죄 사함을 받고,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늘나라 시민이 되므로 자신 있게 당당하게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만한 보배가 또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이러한 보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이아몬드 별거 다 있어도 그것 가지고 하나님 나라 갈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호적에 올라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을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예수의 피가 제일 큰 보배입니다.

피로써 정결함을 얻고, 피로써 씻음을 얻고, 피로써 유월절 심판을 면했습니다.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피가 발라진 집은 장자의 죽음을 면하지 않았습니까? 피가 있는 집에는 죽이는 자들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사망의 세력이 넘어갑니다. 예수님의 피가 있으면 마귀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마귀가 좀 들어가려고 하다가도 그 집에 예수의 피가 있으면 마귀가 “아, 이 집에 예수의 피가 있구나”하면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예수의 피를 늘 떠나지 않으려 하고, 예수님의 피를 늘 생각하고 늘 의지하며, 그 피를 늘 생명으로 삼고,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해 주신 구속의 은혜에 늘 감격하고, 또한 세상 떠날 때는 예수의 피를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피를 가지고 가면 재까닥 다 들어갑니다. 하나님 나라에 당당하게 들어갑니다. 천군 천사가 다 모시고 들어갑니다. 예수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면 그만큼 존귀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는 천하보다 귀하고 우주보다 더 귀합니다. 예수의 피로 구속 받은 성도들은 금이나 은보다 더 귀한, 흠 없고 점 없는 보배로운 피로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20절에,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창세 전부터 예정하셨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세라는 것은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 때 까지를 가리킵니다. 예수님 초림부터 세상 끝날 때까지를 말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말세지말’, 말세의 끝머리입니다. 초림 때부터 말세라고 했고, 세상 끝을 말세라고 한 데도 있습니다. ‘말세지말’을 말세라고 한데도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라고 하였는데, 너희를 위해서 그리스도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고 영광을 주심

본문 21절에,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어떤 하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께서 산 다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영광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또,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너희도 살려주고 너희도 영광을 주겠다’는 뜻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데,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들도 앞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 준다는 것입니다. 또 너희들도 영광을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서 죽으면 살려줍니다. 영광을 줍니다.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들은 다 부활을 합니다. 또 영광을 줍니다.

그리고 자기가 믿음 지킨 대로 영광이 다 다릅니다. 영광이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이고, 또 영광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음 지키는 사람과 순종하는 사람, 죽기까지 복종하는 사람을 살리시고 영광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주실 것을 믿습니까? 또 영광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믿음과 소망이 언제나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순종하고, 죽기까지 복종하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고, 믿는 일을 해나가고, 자신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2.중생한 영혼의 본질은 사랑임

하나님의 자녀는 사랑임

본문 22절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이 깨끗해집니다. 어떻게 해야 영혼이 깨끗해집니까?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이 깨끗해집니다. 중생할 때도 진리를 순종함으로 중생해서 깨끗해지고, 자라나는 것도 진리를 순종함으로 점점 깨끗해지고 점점 자라납니다.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라고 하였는데, 중생한 영혼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중생한 영혼에서는 사랑만 나옵니다. 그것은 거짓이 없고 진실합니다. 진짜입니다. 진짜이고 가짜가 아닙니다. 중생한 영혼은 사랑으로 된 것입니다.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말씀이 사랑 아닙니까? 또한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성령도 사랑 아닙니까? 중생한 영은 진리와 영감으로 되었는데 이제는 중생한 영혼에서 사랑이 나옵니다.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이 깨끗해지고 거기서 뭐가 나온다고 했습니까? 중생한 영혼에서는 사랑이 나옵니다.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으로 살 때에는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합니다. 모든 것을 다 용서해줍니다. 원수를 사랑합니다. 원수를 갚지 않습니다.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고 했습니다. 원수 갚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몇 번까지 용서하라고 했습니까? 베드로가 “일곱 번까지 하리이까?” 물으니까 뭐라고 하셨습니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라”라고 하셨습니다. 칠 수는 만수이므로 얼마든지 용서해주라는 말씀입니다. 일만 달란트 탕감을 받았으니까 너희도 일만 달란트를 다른 사람에게 탕감해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탕감 받은 것은 일만 달란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내게 대하여진 것은 백 데나리온입니다. 그것은 60만분의 1입니다. 60만 배를 내가 하나님께 탕감 받았는데, 다른 사람의 60만분의 1 이것 하나 탕감 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내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도로 다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으니까 다른 사람의 죄도 일만 달란트를 용서해주라는 것입니다.

다 용서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맞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조금 닮아가는 것입니다. 밴댕이 속 같아서 앙심을 품고 원수를 갚으려고 하고, 눈은 도끼눈을 하며 바라보고 인사도 하지 않는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마귀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고, 이 말씀이 사랑이고, 우리의 중생한 영도 사랑으로 되었는데, 중생한 영을 쓰며 살면 속에서 자동적으로 사랑이 나옵니다. 속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 쓰는 사람, 중생한 영을 쓰는 사람은 사랑이 자연적으로 나옵니다. 사랑이 계속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1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1만 달란트를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할 것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라고 하였는데,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뜨겁게 우리를 사랑했으니 우리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하며,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우리가 받았으니 우리는 이 사랑을 나누어줘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뜨거운 이 사랑을 나눠져야 합니다.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원수가 없습니다. 잘못한 것은 자기에게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내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는 가만히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쿡 찔렀겠습니까? 자기도 잘못을 했으니까 쿡 찔렀겠지요. 그러니까 자기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고난을 받았다면 그것은 하늘나라에 가서 상을 받을 것이지만, 대개는 다 자기가 잘못했기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 책임을 지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3. 중생은 거듭나는 것임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남

‘거듭났다’는 것은 중생했다는 말씀인데,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씀입니다. 믿기 전에 영혼은 다 죽은 영혼이므로 중생하지 못하면 하늘나라 갈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죽었는데 어떻게 하늘나라를 가겠습니까? 그래서 니고데모에게 “너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가 없느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중생하느냐 물어보니까 무엇으로 한다고 했습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요3:5).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했는데, 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하였고, 또 야고보서 1장 18절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으로 거듭납니다. 말씀으로 중생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았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썩지 아니할 씨가 뭐라고 했습니까? 말씀입니다. 거듭날 때 썩지 아니할 씨로 우리가 거듭나는데, 그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죽지 않는 항상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이 분명합니다.

한번 중생한 자는 다시 죽지 않음

본문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았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항상 살아있는 씨로 거듭났기 때문에 이것은 죽지 않습니다. 한번 중생한 영혼은 절대 지옥에 가지 않고 절대 죽지 않습니다.
한 번 살아난 것은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가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됩니까? 중생한 영혼이 죽습니까? 죽지 않습니까?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지 않습니다. 죄를 지어서 지옥가게 되면 또 중생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중생을 해야 하는데, 중생은 여러 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은 한 번만 하는 것입니다. 중생은 단회적으로 완성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죄를 지어도 중생한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구원은 받아 놓은 것입니다.

죄는 중생한 영이 짓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부패성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육신의 소욕, 육신의 부패성, 옛 사람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새사람은 중생한 영인데, 중생한 영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중생한 영은 언제나 의만 좋아하고 하나님만 즐거워하고 의만 이루어나가려고 합니다. 죄는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중생을 했는데 거기에 왜 죄가 있겠습니까? 말씀이 죄가 있습니까? 성령이 죄가 있습니까? 중생의 요소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인데 거기 어떻게 죄가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말씀 속에 어떻게 죄가 들어가고 성령 속에 어떻게 죄가 들어가겠습니까? 중생한 영혼은 죄가 없습니다. 죄는 육신의 부패성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욕심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욕심이 마음을 이용해서 나오는데 그것을 언제나 제해야겠습니다. 제하고 그 마음이 언제나 중생한 영혼에 이용당해야 됩니다. 그래야 선한 마음이 됩니다.

그 마음이 죄악성에게 이용을 당하면 악한 마음이 되고 중생한 영혼에 이용당하면 선한 마음이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선한 마음이 있고 악한 마음도 있습니다. 부패성에 이용되면 악한 마음, 중생한 영에 게 이용이 되면 선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악한 마음 선한 마음이 있는 것은, 마음이 하나인데 중생한 영에게 이용 될 때는 선한 마음이고 그것은 깨끗합니다. 죄악성에게 이용되고 욕심에게 이용이 될 때는 악한 마음인데 그것은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음은 하나인데 어디에 이용되느냐에 따라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생한 영은 말씀과 성령으로 되었기 때문에 항상 살아있습니다. 절대 죽지 않습니다. ‘항상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왜 죽겠습니까? 한번 중생한 영은 죽지 않습니다. 지옥 가지 않습니다. 타락되지 않습니다.

한 번 중생했어도 죄 지면 타락해서 지옥 간다는 설이 있는데, 천주교, 루터파, 알미니안파들이 한 번 중생한 사람도 죄지으면 지옥 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칼빈주의입니다. 칼빈주의는 한번 중생한 사람은 절대 지옥가지 않습니다. 이런 교리를 믿는 교회가 장로교입니다.
골로새서 1: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하늘나라에 옮겨 놓았다고 했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영이며, 하나님 나라에 옮겨 놓은 것이고, 하늘나라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털 끝 만큼도 더러운 것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라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중생한 영혼이 이미 구원받았고 지옥가지 않는다고 했으니, “그러면 예수님 믿는 사람이 마음 푹 놓고 죄를 져도 되지 않느냐?”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옛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인데, 그렇다고 지옥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죄를 지으면 징계를 하십니다. 아들이 잘못하면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그 아들을 바로 세우려고 합니다. 아들이 더러운 것을 묻히고 들어오면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아버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더러운 것들이 묻었으면 다 씻어서 고쳐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시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더 큰 징계를 주십니다. 쫄딱 망하게 됩니다. 영혼만 구원 받고 세상에서 쫄딱 다 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중생한 사람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지 않으십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시지만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절대로 가만히 두시지 않으십니다.


4. 육체의 영광은 시들지만 말씀은 영원함

풀의 꽃처럼 잠깐 지나가고 마는 인생
본문 24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했습니다.
모든 육체는 무엇입니까? 풀입니다. 또 모든 영광은 무엇입니까? 풀의 꽃입니다. 꽃이 아름답지만 그 꽃이 며칠을 갑니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라고 했습니다. 그 꽃이 아름답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시들어지고 떨어지는 날이 옵니다. 꽃은 아름답고 향기가 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도 풀과 같이 생생하지만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시들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꽃’은 아름다운 것으로 성공한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영광을 얻은 것이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거 며칠 가겠느냐는 말입니다. 꽃은 떨어지고 맙니다. 풀은 말라지고 맙니다. 잠깐 있다가 지나갑니다. 젊은 사람이 얼마 있다 보면 할머니가 다 되어있습니다. 명륜교회 가서 보면 섭섭한 것들이 많습니다. 내가 처음에 개척교회 할 때는 전부 색시들이었는데 지금 가서 보니까 다 머리가 새하얗게 되어서 너무 한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색시였던 사람들이 언제 이렇게 되었나 싶습니다. 또는 그 가운데 죽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얼마나 섭섭한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같은데 다 잠깐 지나가고 맙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는 말씀이 딱 맞습니다. 풀은 가을바람 불면 다 쓰러집니다. 영광도 잠깐입니다. ‘뭘 이루었다. 영광스럽다’하는 영광도 며칠가지 못합니다.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음

본문 25절에,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주의 말씀이 세세토록 있도다’라고 하였는데,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이 시들고 떨어지지만 주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즉 말씀대로 만들어진 것은 영원히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너희 영혼이 자라난 것은 영원히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가 쓰러지고 영광이 다 떨어져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들어진 것은 영원합니다. 자기가 말씀을 받고,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말씀으로 자라나고 말씀대로 만들어지고, 말씀대로 내 영이 자라났다고 하면 그것은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육체는 다 늙어도 괜찮습니다. 죽어도 괜찮습니다.
말씀을 많이 자기가 받아서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말씀이 자기의 살이 되고 뼈가 되어서 자라난 것은 죽어도 영원히 삽니다. 죽어도 이것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말씀을 받아서 말씀을 자기 생명으로 삼고, 자기의 살과 뼈로 삼고, 말씀대로 힘을 얻어 걸어 나가서 말씀대로 자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영이 자라고, 영이 새 힘을 얻어서 독수리와 같이 올라가고, 도덕적인 면에 의와 진리와 거룩으로 만들어지고, 또 말씀을 받아 점점 지식적 면이 만들어지고, 능력 면이 자라난 것은 하늘나라에 영원히 남습니다.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은 곧 이 말씀이니라’라고 하였는데, 육체 중심으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체는 조금 있으면 시들어지고 영광은 떨어져서 보기 싫어집니다. 그러나 말씀은 세세토록 남는 것입니다.
말씀 받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서 자기 영혼이 소생함을 얻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말씀에서 새 힘을 얻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말씀에서 능력을 받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말씀에서 새로운 지식을 깨닫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말씀에서 자기 영혼이 의와 진리와 거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너희에 게 전한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렇게 나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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