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일 금요일

베드로전서 1:10-18 구원받은 자의 생활.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구원받은 자의 생활
베드로전서 1:10-18

10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
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13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15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나그네,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그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를 쓴다.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지어다.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자. 그분은 자신의 풍성한 긍휼을 따라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게 하셔서 우리에게 산 소망이있게 하시고, 

1:4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신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받게 하셨다. 

1:5 너희는 마지막 때에 나타내려고 예비된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고 있다. 

1:6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가지 시험 때문에 잠깐 근심하게 되었으나 이제 크게 기뻐하니, 

1:7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단련하지만,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1:8 너희가 그분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한다. 지금도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믿으며,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즐거워하니, 

1:9 이는 너희가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1:10 이 구원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에 대해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부지런히 조사하고 연구하였다. 

1:11 그들은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께서 당하실 고난과 이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실 때, 그 영이 무엇을 가리키며 어느 때를 가리키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1:12 그들이 섬긴 것들은 그들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한 것임이 그들에게 계시되었으니, 그것들은 이제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전파된 것들이며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들이다.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너희가 받을 은혜를 끝까지 바라보아라. 

1:14 너희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알지 못하던 때에 따르던 정욕을 본받지 말고, 

1:15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들이 되어라. 

1:16 이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1:17 또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각자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너희가 아버지라고 부르니, 나그네로 사는 동안에 두려움으로 지내라. 

1:18 너희가 아는 것처럼 조상들이 전한 헛된 생활 방식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1. 구원예고

선지자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장차 오실 것을 예언함

본문 10-11절에,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고 했습니다.
여러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폈는데, 그들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셨습니다. 그 받으실 고난과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선지자 속에서 예언하였습니다. 선지자 속에 계셔서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언하고, 받으실 고난을 예언하고, 얻으실 영광을 예언하며 어느 시, 어떠한 때인지 상고해 봤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시는 큰 은혜를 여러 선지자들이 연구했습니다.

본문 12절에,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해줬고 기록해줬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예언해 줬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 그리스도가 계셔서 말씀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여러 선지자들이 우리를 위해서 예언해줬습니까? 선지자들이 자기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했다는 것인데 참 감사합니다.
그 예언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와 진리를 가지고 와서 고난 받으실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참여 못했지만 우리는 참여했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들은 하늘로부터 성령을 힘입어 전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전하는 게 아닙니다. 성령으로 전하고 성령의 능력과 역사하시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20절에,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이리와 타조가 걸어 들어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이리와 타조와 같이 무정하고 잔인하고 강팍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너무 크고 너무 놀라워하며 부러워했습니다. 자녀가 되니까 천사보다 귀해집니다. 천사들도 이 큰 구원을 살펴보고 흠모한다고 했습니다.


2. 구원받은 자의 생활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것을 기다림

본문 13절에,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라는 것은 이 큰 구원을 받았으므로, 사랑을 받았으므로, 이제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것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허리를 동이라’는 말은 방심 부주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단속하라는 것입니다. 잠언 4: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으로 흐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따라가고, 사모하고, 즐거워하는 데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마음이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을 따라가면 다 틀어집니다.
언제나 마음을 하나님께 복종시켜야 합니다. 근신이라는 것은 방탕과 반대입니다. 방탕하면 안 됩니다. 술 먹고 방탕하고 노라리하는 데에다 마음을 빼앗기면 안 됩니다. 근신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라고 하였는데, 삼가 조심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실 때 가져올 은혜가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이 오실 때에 가져올 은혜가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면서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져오실 은혜가 다 같은 게 아닙니다. 기본구원은 다 같지만 상급과 영광은 다릅니다. 여러 가지 시련 가운데서 자기를 잘 만들어낸 사람, 믿음으로 잘 이겨낸 사람은 예수님이 오실 때 큰 선물을 가지고 옵니다.

바울이 선한싸움 싸우고 달려갈 길 마치고 믿음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도 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선한 싸움 잘 싸우고 범사에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사사건건 믿음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통과하고 어려운 게 있으면 이기면서 주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통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찾아서 그대로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믿사오니’하고 열심히만 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서 찾고, 신앙양심과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고, 성령의 감동으로 잘 찾아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참을 것을 참고 여러 가지 환난도 참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잘 이뤄 나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희생하고,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동정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지킨 사람에게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큰 은혜의 선물을 가져오십니다.

고린도전서 15:41절에,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라고 했습니다.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의 영광이 다르고,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각 사람이 만들어진 만큼 하늘에 쌓아 놓은 만큼 상급을 가지고 오십니다. 그것 가지고 오실 때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존귀할지 너무 즐겁습니다. 계속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예수님 재림할 때 가지고 오실 그 은혜를 쌓아놓으면서 소망으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좀 더 쌓아놓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일이 바쁩니다. 고생스러울 때 콱 죽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옳은 생각이 아닙니다. 죽지 못해 어쩔 수없이 살지 말고, 현실에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현실에서 바로 하는 것이 믿음 지키는 것입니다. 현실을 믿음으로 통과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 가져오실 은혜를 부지런히 쌓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가 맡긴 모든 사명을 부지런히 감당해야 합니다. 내게 있는 모든 생명, 재산, 시간을 다 투자해서 주가 맡긴 사명을 다 감당하면서, 보화를 쌓으면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가져오실 은혜를 바라보면서 날마다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잘 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사욕을 버리고 거룩한 자가 됨

본문 14-15절에,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사욕, 욕심을 본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욕심으로 사는 게 아니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알지 못할 때는 욕심 부리면서 살았지만, 사람 사는 것이 재산의 넉넉한 데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받아서 말씀대로 걸어 나가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덤으로 주십니다. 어떤 부자가 농사 잘 짓고 여러 해 쓸 것을 다 쌓아 놓고는, “내 영혼아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면서 재산이 많으니까 잘 살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불러 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쌓아두고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자가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눅12장). 오늘밤에 하나님이 부르시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늘나라에 쌓아놔야지 하나님이 불러 가면 세상에 쌓아 놓은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죄에서 멀리 떠난 것입니다. 죄에서 멀리 떠나서 거룩한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를 부르신 자처럼’이라고 하였는데 ‘부르신 자’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닮아서 거룩한 자가 되고, 진실한 자가 되고, 사랑이 충만한 자가 되고, 의로운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냄

본문 17절에,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 사는 것은 나그네 생활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3-16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생활입니다. 아브라함도 나그네 생활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 등, 믿음의 조상들이 이 땅에서는 외국인이고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자신을 ‘행인,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산 것이 우리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나그네 생활하는 사람은 본향에 돌아갈 생각을 할 것이 아닙니까? 나그네 생활을 하는 사람은 돌아갈 준비를 늘 합니다. ‘얼마 있으면 돌아가겠지. 이제 한 주간 있으면 돌아간다. 비행기 다 예약해 놨다’하며 아침부터 보따리 싸고 돌아가려 할 것입니다. 나그네 생활하는 사람은 보따리 다 풀어놓지 않습니다. 본향만 생각하는 생활을 합니다. 나그네 생활은 늘 본향을 사모하고 생각합니다. 본향 찾는 게 나그네 생활입니다. 보따리 다 풀어놓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는 잠시만 살고 나는 간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했습니다. 나그네로 있을 동안 실수하면 어떻게 합니까? 나그네로 있다가 불량배나 만나고 불행한 일 당하면 어떻게 합니까? 잘 지내다가 가야하는데 항상 조심하고 항상 자신을 단속해야 합니다. 사방으로 자기가 손해 안 받도록 언제든지 두려움으로 지내야 합니다.

나그네로 있을 때 실수하면 안 됩니다.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옷을 더럽히지 않고 가야 합니다. 항상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다가 “오너라!” 할 때 “예!”하고 가야 합니다. 나그네 생활하면서 쓰고 살던 모든 것은 다 내놓고 가야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가져갈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저 얼마동안 살면서 빌려 쓰는 것입니다. 집도 얼마동안 쓰다가 내놓고 가야합니다.

조상의 망령된 행실을 떠나 다 한 형제로 지냄

본문 18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고 했습니다. 우리 조상에게서부터 유전 받은 망령된 행실이 있습니다. 원죄가 있고, 본죄가 있고, 날 때부터 부패성을 가지고 났고, 죽은 영혼으로 났습니다. 전부다 날 때 죽은 영혼으로 난 것입니다. 중생해야 살아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조상으로부터 유전 받은 망령된 행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조상 때부터 내려오던 풍속 습관, 우상 섬기는 일, 이기주의 등, 망령된 행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조상 때부터 원수 되었던 것들로부터 벗어남을 받았습니다. 이제 원수가 없어지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조상 때부터 원수 되었던 것들로부터 구속받은 사람인데, 원수 맺는 생각을 가지고 나가면 믿음을 배반한 사람입니다. 원수된 것, 원한을 품은 것에서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았는데, 그것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나가면 믿음에서 떠나서 육신으로 기울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용서하고, 통일하고,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망령된 행실, 죄짓는 것, 못된 습관에서 다 구속을 받았습니다.

구속받은 세계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다 하나가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3:11절에,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나는 헬라인이다. 너는 유대인이다’하는 것은 구속받은 사람들에게서 떠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받은 세계는 서양 사람이나 동양 사람이나 다 형제입니다. 다 같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았으니까 한 형제입니다 야만인이나 헬라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만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고, 의를 세워나가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한 생명 받았고, 예수님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것에 차별이 있을 수없습니다. 차별이 있다고 하면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조상 때부터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사람이니까 조상 때부터 있던 원한을 다 치워야 합니다. 자기 원한도 아닌데 조상의 원한을 왜 품고 나갑니까? 그것을 품고 나가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사람도 원한 품고, 저 사람도 원한 품고 나가면 결과적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 안 믿는 사람은 국가의 법과 민족적 테두리 안에서 하나입니다. 미국은 여러 민족이 모였지만 나라 안에서 하나가 되어나갑니다. 여러 민족이 다 섞여 사는데 국가 테두리 안에서, 법 테두리 안에서 하나입니다. 거기는 민족적 싸움이 없습니다. 서로가 합해서 나라를 건설하고 잘 꾸려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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