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과 연단
베드로전서 1:5-9
베드로전서 1:5-9
5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6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하려 함이라 8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음
그리스도의 날까지 능력으로 보호해주심
본문 5절에,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라고 했습니다.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은 마지막 때에 나타내기로 예비한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라고 하였는데, 믿는 사람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항상 보호해주십니다. 잠시라도 보호하지 않으면 마귀가 우리를 삼키게 됩니다. 벧전 5:8절에, 우는 사자와 같이 마귀가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는데, 잠시라도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면 마귀가 즉시 와서 우리를 삼켜서 잡아먹고 맙니다. 한 시간, 일분, 일초라도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면 마귀가 와서 잡아 삼킵니다. 일 초라도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면 마귀가 와서 우리를 잡아 삼키고 멸망시킵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일 분 일 초라도 떠나지 않습니다. 매일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고, 막아주시고, 우리를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라고 하였는데, 믿는 사람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항상 보호해주십니다. 잠시라도 보호하지 않으면 마귀가 우리를 삼키게 됩니다. 벧전 5:8절에, 우는 사자와 같이 마귀가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는데, 잠시라도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면 마귀가 즉시 와서 우리를 삼켜서 잡아먹고 맙니다. 한 시간, 일분, 일초라도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면 마귀가 와서 잡아 삼킵니다. 일 초라도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면 마귀가 와서 우리를 잡아 삼키고 멸망시킵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일 분 일 초라도 떠나지 않습니다. 매일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고, 막아주시고, 우리를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호세아 2:6절에,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못 나갈 때에 가시로 길을 막아서 못 가게하고, 담을 쌓아서 그 길을 가지 못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미련하기 때문에 잘못된 길, 죄 짓는 길, 망하는 길을 걸어가는 때가 많지만, 하나님께서 못 가게 가시로 막아주시고, 잘못된 길을 가지 못하게 담으로 쌓아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이 지팡이로 인도해주십니다. 지팡이와 막대기로 저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잘못된 길로 가지 못하게 하고, 또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바른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어떤 때는 당나귀 같은 짐승들을 통해서 우리가 잘못된 길을 못 가게도 합니다.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통해서 회개시켰고, 발람은 당나귀를 통해서 책망을 했습니다. 잘못된 길로 가지 못하도록 항상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위태한 가운데 빠졌을 때는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우리 발을 붙들어서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있는 것, 오늘까지 믿음 안에서 사는 것도 순전히 하나님이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능력으로 보호해주시기 때문에 오늘까지 나온 것입니다.
가만히 놔두었으면 죄 가운데에서 멸망당했을 것이고, 벌써 구렁텅이 다 빠져서 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해서 망하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망할 곳에 못 들어가게 해주셨습니다. 계속 잡아당겨주시고 앞을 막아주시고, 실수로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는 천사를 보내서 건져주시고, 악한 마귀가 손도 대지 못하도록 항상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악한 자가 손도 대지 못하게 하십니다. 요한일서 5: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했는데, 마귀가 손도 대지 못하도록 항상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성령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해주시기 때문에 악한 자가 손도 대지 못합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를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해놓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피흘려주기로 예정했다가 피흘려주시고, 피를 뿌려서 정결케 해주시고, 성령으로 예수를 믿고 순복을 시켜서 오늘까지 인도해주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을 있게 하시고, 하늘에 기업을 쌓게 하셨습니다. 믿음을 주시고 능력으로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오늘까지 인도해줬습니다.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낫기 때문에 오늘까지 나온 게 아닙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해주셨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또 세상 끝 날까지 우리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해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그리스도의 날까지 지켜줄 것을 확신한다고 하였습니다.
착한 일을 시작하시면 실패가 없으신 하나님
빌립보서 1:6절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라고 했는데, 예수 믿는 게 착한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서 복음으로 중생을 시켜놨습니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의 날, 예수님의 재림하는 날까지 지켜줄 것을 확신합니다. 착한 일만 시작해 놓으면 그 다음엔 틀림없습니다. 예수님 재림하는 날까지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구원해주시고 인도해주십니다.
착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전도로 예수 믿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그 사람이 중생하는 것이고, 중생한 다음에는 착한 일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된 사람은 하나님이 버리지 않습니다. 끝까지 지켜주시는데,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길가에 떨어진 것은 새가 와서 먹어버리고, 돌밭에 떨어진 것은 그 뿌리가 안 붙었기 때문에 중생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시밭에 떨어진 것과 옥토에 떨어진 것은 뿌리가 붙었습니다. 착한 일이 시작이 됐습니다. 그건 실패가 없습니다. 가시밭에 떨어져서 열매가 잘 맺히지 못해도 그건 죽은 게 아닙니다. 옥토에 떨어진 것은 열매가 많이 맺힙니다. 복음을 전해서 예수 믿고 중생하여 거듭 난 그 사람은 착한 일이 속에서 시작되는데 실패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전도해서 한번 그 사람 속에 복음이 들어가서 중생하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으로 보호해주시고, 여러 가지 시험 속에서, 탄압 속에서, 환난 가운데서 건져 주시고 지켜 주십니다.
믿음을 시작해놨는데, 생명의 씨가 착근을 해서 싹이 나왔는데 죽일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능력으로 보호해줍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멀리 가서 이방사람 전도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되고, 또 자기 집 근처 다니면서 복음을 전해서 예수가 생명의 구주인 것을 믿게 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전도해 놓으면 성령께서 믿게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사람을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실패가 없습니다.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의 날까지 하나님이 능력으로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을까, 믿지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무조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하면 그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깁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이르렀을 때에, 강가에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갔습니다. 거기서 마침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전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과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전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그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루디아’라는 한 사람이 바울이 전하는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데 하나님이 그 마음을 열어줬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열어주고 길을 열어서 그 말을 옳게 듣고 그대로 믿게 만들어 놨습니다.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그게 신기한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하고 또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하면 믿겠습니까? 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믿겠습니까? 보통은 안 믿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깁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한번 받아들이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지켜주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하나님이 능력으로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전도합니다.
2. 시험과 연단
여러 가지 시험은 성도에게 유익함
본문 6-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험은 성도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해 성도의 믿음이 불로 연단된 금과 같은 믿음이 됩니다. “너의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함이라”고 하였는데, 불로 연단된 금과 같은 믿음은 존귀와 영광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에 그 시험을 믿음으로 잘 참고 이기면 불로 연단된 금과 같은 좋은 믿음의 성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을 받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거기서 자기가 깨어져 나가고,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됩니다. 시험을 통하여 교만과 허영심을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을 받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거기서 자기가 깨어져 나가고,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됩니다. 시험을 통하여 교만과 허영심을 버리게 됩니다.
시험이 들어올 때에 취하여야 할 태도
◉ 하나님께 바로 서라
그러면 여러 가지 시험은 하나님이 성도를 사랑하셔서 주시는데, 그 여러 가지 시험이 들어올 때에는 어떻게 하여야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께 바로 서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바로 섰기 때문에, 통에 가루가 얼마 안 되었고 병에 기름이 얼마 안 되었지만, 3년 6개월 동안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기름이 다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시험이 올 때에 하나님께 바로만 하면 하나님이 다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바로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 하나님을 의지하라
둘째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가므로 그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면 연단이 됩니다. 이기지 못할 것을 이기고, 참지 못할 것을 참고, 끊지 못할 것을 끊고, 사랑하지 못할 것을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할 것을 용서하고 나아가야 됩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공궤하지 못할 형편이었으나 그래도 엘리야를 공궤하고 나가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모든 것을 승리적으로 통과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시험이 올 때에 잠간 근심함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라고 하였는데, 시험이 올 때에 시험은 크고 자신은 연약하여 자기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잠깐 근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 앞에 바로서서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도와 주셔서 그 시험을 이기게 되며, 쓸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역자도 많은 환난을 받으면서 나가면 쓸만한 교역자가 됩니다. 온실의 화초와 같이 아무런 환난을 당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은 환난이 올 때에 그 환난을 이기고 나갈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이 들어올 때에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이겨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성도로 만들어집니다. 시험이 없으면 만들어지지 못합니다.
칭찬과 존귀와 상급을 받음
시험을 통해 연단을 받아 고상한 믿음으로 만들어진 성도는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상급을 받게 됩니다. 그 믿음은 금보다 더 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이 많이 올 때에 연단을 잘 받아야 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은 하나님이 좋은 선물을 주시려고 주시는 것입니다. 즉 연단을 시켜서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시려고 여러가지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승리적으로 통과하여야겠습니다. 시험을 승리적으로 통과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주시려는 것을 받지 못합니다. 즉 하나님이 주시려는 선물이 자기 것이 되지 못합니다. 또 자신이 만들어지지 못합니다. 도리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고, 마귀의 일만 해주게 됩니다. 방심부주의하면 시험에 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올 때에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하며 하나님께 바로 서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 시험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시험을 이기라
하나님은 이기는 자에게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7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겨야 합니다. 서머나 교회에는 이기면 무엇을 주신다고 하였습니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계 2:10). 이기지 못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지 못합니다.
버가모 교회에는 이기면 감추었던 만나와 예수님의 새 이름을 기록한 흰 돌을 주신다고 하였고(계 2:17), 두라디라 교회에는 이기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 별을 주신다고 했습니다(계 2:27-28). 그 다음에 사데 교회는 이기면 흰 옷을 입고, 생명책에서 이름이 흐리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계 3:5).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이기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계 3:12).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기면 예수님 보좌에 함께 앉도록 하여 주신다고 했습니다(계 3:21). 전부이기는 자에게 주신다고 했지, 진 자에게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기선 목사님도 이겨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도 이기기를 다 원하고 자기 아들이 씨름판에 나가서 씨름하면 자기도 허리를 꾸부리고 낑낑하며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영감님 왜 이러십니까?”하면 저기에서 씨름하는 사람이 “우리 아들이라”고 한답니다. 이기는 사람은 사랑이 충만합니다. 이기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잘 참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끊어 버릴 것을 끊어 버립니다. 이기는 사람은 희생, 봉사를 잘합니다. 이기는 사람은 가지 못할 곳을 갈 수 있습니다. 즉 소돔 고모라도 갈 수 있고, 아골 골짜기도 갈 수 있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어디든지 가서, 그곳에서도 이깁니다. 소돔 고모라에 가서 이기면 소돔 고모라가 소생합니다. 황무지에 가서 이기면 황무지가 소생합니다. 가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기려면 하나님께 회개하고 순종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흠이 있는 자는 흠이 없어지고, 부족한 것이 있던 자는 부족한 것이 없어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틀렸다고 하지 말고 자기부터 고치면 됩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먼저 대접하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대접하지 않는다”고 하지 말고, 대접을 받고자 하면 나부터 대접을 하면 대접이 돌아옵니다. 남을 대접했는데, 대접이 안돌아 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배로 받습니다. 사람에게 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받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나님께 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현세에서 받지 못하면 그것은 하늘나라에 저금이 된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은 성도를 연단시키시는데 그것을 잘 이겨야 됩니다. 여러가지 시험은 경제적인 시험, 사회적인 시험, 친구간의 시험, 가정적인 시험, 교회적인 시험, 국가적인 시험 등 많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에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큰 유익을 주시려고 시험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잘 이겨야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에 믿음을 지켜야만 이깁니다. 시험이 올 때에 이기지 못하면 자기가 만들어지지 못합니다. 욕심은 욕심대로 계속 부리면서 나갑니다. 욕심이 우상이 되어서 나가면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시험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 가라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즉 사랑이 충만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사랑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자비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불쌍히 여기는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참고 견디는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 만큼 예수님을 닮아간 것으로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나타납니다. 또 만들어진 것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고 마실까?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 마귀의 시험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에 염려하지 말고 거기서 연단을 잘 받아 만들어져야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으며, 시험을 승리적으로 통과합니다. 또 금보다 귀한 불로 연단된 믿음이 만들어지고, 그 믿음은 영원한 영광과 존귀와 칭찬과 상급을 받습니다. 참 좋습니다.
3. 성도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함
본문 8-9절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육 신의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믿고 사랑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고 믿는 것보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0:29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더 복 있다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신령한 것을 보지 못합니다. 또 본다고 해도 다 바르게 보지 못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정확하게 본다고 해도 눈의 착각이 있을 때도 있고, 또 어떤 것을 자꾸 생각하면 환상이 보이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눈으로 본다고 해서 다 바르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으로 보는 것은 확실합니다. 성경은 틀림없습니다. 마귀는 성경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성경을 잘못 해석하게 해서 우리의 신앙이 잘못된 길로 빠지게 하려고 합니다.
영으로 주님을 사랑함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사랑합니까? 그것은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였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예수님이 실상이 되었습니다. 즉 나와 함께 하시고,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으니까 예수님이 내게 실상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만나 보았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만나보고, 영으로 만나보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실상으로 주님과 교제하고, 실상으로 주님을 사랑합니다. 즉 영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압니다. 만일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보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아는 것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영적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 거할 때에 성도가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점점 커집니다. 그 사랑에 끌리워서 어디든지 따라가고 생명까지도 기쁨으로 바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14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강권하시도다”라는 것은 “끄는도다”라는 뜻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줄에 끌려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주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끌려서 할 때에는 힘들지 않고 즐겁습니다.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음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하였는데, 성도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영으로 교제할 때에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 즐거움은 영적 즐거움이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즐거움이며, 말씀을 지키므로 영이 자라나는 즐거움이며, 주의 뜻을 성취해 나가는 즐거움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고(요일 5:3), 말씀을 지킴으로 영이 자라나게 됩니다. 영이 자라나면 예수님이 좀더 발견되고, 예수님과 깊이 사귀게 됩니다. 그러면 영광스러운 즐거움과 기쁨이 우리의 심령속에 있게 됩니다.
즐거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죄악의 즐거움과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습니다. 죄악의 즐거움은 헛된 것이며(전 2:3-11), 사망의 즐거움입니다(딤전 5:6). 히브리서 11:24-25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의 모든 낙은 죄악의 낙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술 마시며 즐겁다고 떠들지만 속에는 쓴 것들이 다 있습니다. 기도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관광버스를 보았는데, 버스 안에서 남녀가 들썩들썩하며 춤을 추는 것입니다. 즐거워하긴 하지만, 그것은 죄악의 낙입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즐거움은 “내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나 같은 것이 무엇인데 이처럼 사랑하십니까?, 주님이 나를 사랑하니 내가 또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이 날 위해 죽어 주셨으니 나도 예수님을 위해서 죽겠습니다”하며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가운데서 나오는 낙입니다. 영광스러운 즐거움에 거하는 성도는 이 세상이 천국으로 변합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이 빼앗지 못하는 즐거움입니다.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가지려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자꾸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아니었으면 나는 벌써 멸망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지금까지 내가 살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날 사랑하시므로 나도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이 날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도 예수를 죽기까지 사랑합니다”하며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날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여야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이것만 밤새도록 해도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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