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벨을 용납지 말라
요한계시록 2:18-29
요한계시록 2:18-29
18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9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22볼찌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23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25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8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1. 심판하시는 예수님
본문 18절에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셨는데 눈이 불꽃같고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모양의 예수님으로 나타났습니다. 눈이 불꽃같다는 건 사람의 모든 행위를 다 보시고 심령 골수를 통찰하시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죄, 숨은 죄, 뼈 속에 들어있는 죄, 마음 속 한 구석에 있는 죄들을 다 들여다 보신다는 말입니다. 순종치 못한 죄를 다 들여다 보십니다.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주님으로 나타난 것은 우리 죄를 다 예수님이 통찰하시고 심판하시는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 숨은 죄를 다 들여다 보시고 큰 것, 작은 것, 드러난 것, 안 드러난 것 모두를 심판하시는 예수님으로 나타났습니다.
2. 두아디라 교회가 잘한 일
본문 19절에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잘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선한 사업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사랑이 많고 믿음이 좋은 교회입니다. 봉사 잘하고 잘 참고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은 아름다운 교회란 말입니다.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이 있는데 ‘머리는 용이고 꼬리는 뱀이다’라는 말인데, 처음에는 잘하다가 마지막에는 뱀 꼬리처럼 가늘어져 가지고 흐지부지해서 그만두는 것을 용두사
미라고 하는데 이 교회는 반대였습니다. 처음에는 사업을 적게 했지만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은 그런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20절에 책망할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미라고 하는데 이 교회는 반대였습니다. 처음에는 사업을 적게 했지만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은 그런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20절에 책망할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3. 두아디라 교회를 책망하심
이세벨을 용납한 죄를 지음
본문 20절에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이세벨 용납한 것을 책망했습니다. 이세벨은 자칭 선지자라 하지만 하나님이 세운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자칭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은 하나님이 세운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워 놓은 선지자가 아닌데 자칭 선지자라 하면서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다는 말입니다. 여기는 행음이 먼저고 우상의 제물이 나중입니다. 버가모 교회의 발람의 교훈은 무엇이었습니까? 거기는 우상의 제물이 먼저이고 행음이 나중이었으나 여기는 행음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우상의 제물이 나중입니다. 순서가 바꿔졌습니다. 이세벨을 용납
한 것을 주님께서 대단히 노여워하시고 책망하며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회개하라고 했는데 회개하지 아니하면 침상에 던지고 큰 환난 가운데 빠뜨리고 그들의 자녀는 다 죽인다고 했습니다. 이세벨 용납한 것이 아주 잘못된 죄입니다. 이세벨은 아합 왕의 아내로 시돈 나라 왕의 딸이었습니다. 시돈 나라 왕의 딸을 아합 왕이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세벨이 시돈 나라에서 아합 왕에게로 출가올 때에 시돈 나라 우상을 가지고 왔습니다. 바알 신 섬기는 것, 아세라 목상 섬기는 것, 그 나라의 우상들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아합 왕의 아내가 되어가지고는 자기 나라에서 가지고 온 우상들을 보급시켰습니다.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말입니다. 이스라엘에 바알신 섬기는 선지자가 450명, 아세라신 섬기는 선지자도 400명이나 있었습니다(왕상18장19절). 이렇게 하나님 섬기는 나라를 우상 섬기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람이 이세벨입니다.
이세벨의 정체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도 이세벨을 용납했다고 했는데 초대교회에서 어떻게 이세벨을 용납할 수 있었을까요? 아합 왕은 다윗 왕보다 상당히 후에 있던 왕입니다. 실제 다윗 왕은 예수님 1,000년 전 왕인데 아합이 그보다 상당히 내려와 있으니까 아마 한 주전 7~800년 전에 있던 왕이 아니겠는가 생각됩니다. 이세벨이 예수님 나기 약 7~800년 전에 있던 아합 왕의 아내인데 여기서도 이세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에 이세벨이 있다 그것을 용납하면 안 된다’고 하였는데, 이세벨은 국가의 세력을 배경으로 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섬기게 만들고 행음하게 만드는 무리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국가의 세력을 등에다 업고 교회를 타락시켜서 우상 섬기게 하고 행음하게 하고 세상과 짝하게 하는 무리가 바로 ‘이세벨’입니다. 이러한 이세벨 세력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과거에 왜정시대로 말하면 일본이 기독교를 자기 이용물로 삼으려고 일본 기독교단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지부고 일본에 있는 모든 기독교는 다 하나라고 하며 교단을 다 불문하고. 장로교, 성결교, 감리교 할 것 없이 다 기독교단 안에 다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교단을 일본 정부가 지배했습니다. 그래서 신사참배는 죄가 아니다, 또 구약은 유대인의 역사다, 요한계시록은 요한의 꿈
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찬송가도, 예를 들면, ‘믿는 사람들은 군병같으니’ 하는 가사를 ‘믿는 사람들아 큰일 났으니’라고 고쳐가지고 부르게 하며, 교회를 온통 일본 정권의 이용기관으로 삼았습니다. 그것이 일본 기독교단이었습니다. 해방 후에 다 탈퇴해가지고 장로교는 장로교로 돌아오고 감리교나 침례교도 다 돌아갔는데 아직도 일본에는 단체가 있습니다. 그 단체 이름을 ‘니끼’라고 합니다. 일본 기독교단. ‘일’자를 하나 따고 기독교단에서 ‘기’자를 하나 써서 ‘니끼’인데 그 교단이 아직도 있습니다.
또 이북에 기독교도연맹이라는 것을 조직을 했습니다. 기독교도연맹위원장이 강양욱입니다. 강양욱은 김일성의 외삼촌인데 목사입니다. 그는 ‘모든 기독교는 다 기독교도연맹에 가입하고 국가에 협력해야 된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래서 교도연맹에 많은 교회들이 가입했습니다.
가입하지 않은 교회가 조금 있었는데 가입하지 않은 교회는 다 없앤다고 협박했습니다. 이북에서 황해도 그 유명한 김익두 목사가 교도연맹 선전하러 다녔습니다. 내가 직접 들었는데 김익두 목사는 “교도연맹이 죄가 아니다. 여기에 가입해야 된다”며 선전하였습니다. 김익두 목사가 왜정 때에는 신사참배가 죄가 아니라고 선전하고 다니다가 해방 이후에는 기독교도연맹이 죄가 아니라고 선전하고 다녔습니다. 그것 참 안 됐습니다. 차리리 그 당시에 순교 당했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라가 앉았겠습니까? 돈 좀 받아먹느라고 기독교도연맹 선전해주고, 일본기독교단 선전하고 다녔으니 이것이 다 이세벨을 용납한 것입니다. 거기 가입하면 기독교가 세상 나라의 한 기관이니까 세상과 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상과 짝하니까 영적으로 행음하는 것이 됩니다. 성경말씀 어기고 우상을 선전하고 다녔으니 우상의 제물 먹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도연맹이 그런 것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세벨이 분명히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다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날에는 교회를 세상 나라의 이용물로 삼고자 하는 것이 이세벨입니다. 교회를 세상 나라의 이용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세상 나라의 이용물로 삼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세계기독교연합회(WCC), 그리고 한국기독교연합회(KNCC)라고 하는 한국지부가 있습니다. 이들의 설립목적은 신신학과 짝하는 것이고 세상 나라와 짝하는 것입니다. 거기 신신학자들이 다 가입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속죄를 믿지 않고 재림도 믿지 않고 부활도 믿지 않는그런 교회들이 다 거기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해방신학자들과 잘못된 신학 사상가들이 다 거기 가입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기독교를 이 세상 나라를 바로 세우는 한 기관으로 생각을 합니다. “해방도 억압받는 데서 해방시키는 거다”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말하는 해방은 죄악에서의 해방인데 그 사람들은 억압받는 데서 해방시켜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자본주의의 억압, 인종억압, 정치적 억압에서 해방시켜야 된다고 주장하며 그 해방신학자들이 다 기독교연합에 다 가입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교회들이 가입되어 있는 것은 이세벨에 참여하는 것이 분명한데 세계교회들이 WCC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큰 교회, 큰 교단, 미국에도 큰 교단들이 거기 다 가입되어 있습니다. 한국에도 WCC에 가입되어 있는 교단들이 여러 교단이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구세군대한본영, 기독교대한복음교회,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한
국정교회가 거기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기독교가 세상 나라의 이용물로 전락된 것입니다. 이것이 이세벨인데 오늘날 이세벨을 분별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바로 못합니다. 이세벨을 용납하면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바로 하겠습니까? 세상 나라에 이용당하는 기독교는 전부 이세벨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가서는 이세벨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이세벨과 싸우는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이세벨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라고 하였듯이 행음과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기 때문입니다.
4. 회개하지 않는 자에 대한 징계
본문 21~23절에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볼찌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회개 안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회도, 일제시대가 끝나고 8.15 해방을 통하여 우리 한국교회에 회개할 기회를 주셨는데, 그래도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그냥 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기독교단에서 목사를 목사라고 하지 않고 정교사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목사들이 가서 일본천조대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다시 받았습니다. 그렇게 나가다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어서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그대로 나갔습니다. 목사들이 신사참배하고 일본 신으로부터 세례 받은 것을 회개하지 않고, 일제시대가 끝난 후에는 오히려 공산주의의 기독교도연맹을 선전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일제 해방 후에 감옥에서 나온 후에, 신사 참배한 목사들은 6개월간 근신하라고 하면서, 6개월간 근신하며 회개할 기회를 가지면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6개월간 강단에 서서 설교할수 있다, 그러나 회개하는 설교,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 이기선 목사님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혁신 복구해야 된다고 주장했는데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WCC에 가입한 목사들이 회개하라고 하면 회개하겠습니까? 도리어 그 단체가 점점 커갑니다. 그들은 구제사업을 많이 하면서 세계적으로 점점 커가고 있습니다. WCC 해방신학자들이 남미에 공산주의 투쟁하는 사람들을 많이 도와줬습니다. WCC에서 공산주의 운동하라고 도와준 것입니다. 그것이 WCC 입니다. 거기 가입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일들을 도와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 KNCC라는 한국기독교연합회에 여러 교단이 많이 가입되어 있고, 또 KNCC는 WCC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세계기독교연합회에 가입되어 있단 말입니다.
침상에 던짐
본문 21절에 “볼찌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회개 안 하니까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징계가 무슨 징계냐 하면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즉 침상에 던지는 징계입니다. 병이 나서 침상에 눕게 된다는 것입니다. 침상에 던지는 징계가 내려오게 됩니다.
큰 환난 가운데 던짐
본문 22절에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 그들이 잘못된 것인 줄 알고도 따라가는 자는 큰 환난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말입니다.
그의 자녀를 죽임
본문 23절에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들을 사망으로 죽인다고 하셨습니다. 자녀라는 것은 그들에게 동화된 사람입니다. 이세벨과 음행하는 자는 그들이 잘못된 줄을 알고도 따라가는 사람이고, 자녀는 거기에 동화되어서 그것이 옳은 줄 알고 따라가는 자입니다. 예를 들면 해방신학이 옳은 줄 알고 따라가는 자들이 자녀입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용납하고 나가는 사람은 간음하는 자입니다. 즉, 일제시대의 기독교단이나 공산주의 시대에 교도연맹이나 오늘날의 WCC 등, 이런 것들을 잘못된 줄 알면서도 따라 가는 자는 간음하는 자입니다. 또한 거기서 배운 사람들, 그것에 완전히 동화가 되어서 그것이 옳은 줄 아는 사람은 그들의 자녀입니다.
잘못된 것이 옳은 줄 알고 따라가는 사람은 사망으로 죽인다고 했습니다. 어른들은 알고도 따라가지만, 자녀들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거기서 가르쳐준 대로 그것이 옳은 줄 알고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그는 사망으로 죽인다고 하였습니다. 이세벨은 침상에 던지고, 이세벨과 더불어 간음하는 자, 알고도 따라가는 사람은 환난 가운데 던지고, 자녀들은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자녀들은 다 죽습니다. 사망으로. 새까매집니다. 그것이 옳은 줄 알고 가니까 회개할 기회도 없습니다. 하나님 징계가 무섭습니다.
5. 바른 신앙을 굳게 잡고 나가라
본문 24절에,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아라”고 하였습니다. 이세벨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 이세벨을 안 따라간 사람들, 이세벨과 더불어 싸우는 사람들, 이들에게는 다른 짐으로 지울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안 따라 갔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오실 때까지 그 신앙을 굳게 잡으라고 명하십니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이세벨 안 따라가는 신앙을 굳게 잡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세벨 안 따라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대개 이세벨인지 알지 못하고 다 따라갑니다. 또 기묘하게 속이니까 웬만해선 다 따라갑니다. 김익두 목사가 평북 정주에 와서 사경회를 했는데 내가 그때 참여했었습니다. 부흥사니까 아주 말씀을 잘합니다. 사경회 하다가, 기독교도연맹이 괜찮다고 말합니다. 다른 성경 잘 가르치다가 “기독교도연맹 괜찮다, 그건 국가의 의식이고 나라를 받들어나가는 거다. 성경에도 권세를 복종하라고 그러지 않았느냐?”고 가르치니까 웬만한 사람은 다 따라가는 것입니다. 안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이세벨을 알지 못하고 안 따라가는 사람은 다른 짐으로 너에게 지울 것이 없다. 네게 있는 것, 현재 신앙, 보수, 신신학 반대하는 신학, 기독교도연맹 반대하는 신앙, 안 따라가는 신앙은 잘한 것이니 다른 짐으로 지울 것이 없다. 네게 있는 것을 굳게 잡아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굳게 잡아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북에서 아마 6.25 사변이 나지 않았다면 기독교도연맹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전부 숙청 당했을 것입니다. 이북 정부에서 시킨 대로 안 하면 밤에 와서
데려갑니다. 밤에 잠깐 좀 만나자고 나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잠깐 만나고 들어오려고 나가면, 그 사람들이 어디론가 끌고 갑니다. 끌고가 놓으면 그 다음날 찾아도 없습니다. 경찰서 가도 안 왔다고 하고, 동회에 가서 찾아도 안 왔다고 하고, 아무 데 가도 안 왔다고 합니다. 그들을 어떻게 했냐면 기차를 태워서 러시아로 다 데리고 갔습니다. 함경북도로 해서 두만강 넘어서 블라디보스톡으로 해서 우즈벡 그런 곳으로 다 끌고들어가서 다 쏴 죽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세벨 안 따라가다가 순교 당했습니다. 이세벨 안 따라가려면 순교의 신앙을 가져야 안 따라갑니다. 보통 신앙을 가지고는 안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아라”고 했는데, 이세벨 안 따라가는 신앙이 좋은 신앙이고 바른 진리이니, 예수님 재림할 때까지 그 신앙을 굳게 잡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바른 신앙을 굳게 잡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데려갑니다. 밤에 잠깐 좀 만나자고 나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잠깐 만나고 들어오려고 나가면, 그 사람들이 어디론가 끌고 갑니다. 끌고가 놓으면 그 다음날 찾아도 없습니다. 경찰서 가도 안 왔다고 하고, 동회에 가서 찾아도 안 왔다고 하고, 아무 데 가도 안 왔다고 합니다. 그들을 어떻게 했냐면 기차를 태워서 러시아로 다 데리고 갔습니다. 함경북도로 해서 두만강 넘어서 블라디보스톡으로 해서 우즈벡 그런 곳으로 다 끌고들어가서 다 쏴 죽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세벨 안 따라가다가 순교 당했습니다. 이세벨 안 따라가려면 순교의 신앙을 가져야 안 따라갑니다. 보통 신앙을 가지고는 안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아라”고 했는데, 이세벨 안 따라가는 신앙이 좋은 신앙이고 바른 진리이니, 예수님 재림할 때까지 그 신앙을 굳게 잡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바른 신앙을 굳게 잡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6.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두 가지
본문 26~28절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심
이세벨과 싸워서 이기는 자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철장을 가지고 질그릇 깨뜨리는 것 얼마나 쉽습니까? 철장을 가지고 질그릇 깨뜨리는 것처럼 앞으로 만국을 다 예수님과 같이 심판한다는 말입니다. 철창을 가지고 질그릇 깨뜨리면 툭 깨질 것 아니겠습니까?
새벽 별을 주심
“새벽 별을 주리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6절 말씀에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벽 별이란 말입니다. 이기는 자에게 새벽 별을 준다는 것은 예수님을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세벨을 이겨야만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갈 수가 있고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또 받을 수 있습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십니다. 이렇게 이세벨이 어느 시대나 나오는데 그와 더불어 싸워 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새는 이세벨 이기는 것 사실 쉬운 것입니다. 일본 시대에 이기려면 기독교단에 가입 안 하면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또 공산주의 시대에 기독교도연맹에 가입 안 하면 가입 안 한 교회는 다 없앤다고 했습니다.
요새는 이기기 쉽습니다. WCC나 KNCC에 가입 안 하면 됩니다. 거기 참여 안 하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입을 안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입 안 하면 다 몰아칩니다. ‘저것들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몰아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이기는 자에게 내가 새벽 별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새벽 별을 준다는 것은 예수님을 준다는 것이고 예수님의 형상을 준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권세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입니다. 철장을 가지고 질그릇 깨뜨리는 것처럼 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준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이기는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지는 자가 되지 말고 말입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무엇을 준다고 하였습니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 별. 네게 있는 것 굳게 잡아라. 변치 아니하고 끝까지 굳게 잡고 나가는 이기는 신앙을 가져라.
7. 말씀을 깨달아 이세벨 용납하지 말라
본문 29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귀, 말씀을 깨닫는 신령한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말씀을 듣고서 이세벨을 용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 암만 다 잘했어도 이세벨을 용납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위에 잘한 것 얼마나 많습니까? 잘한 것 많이 있습니다. 믿음도 있고 사랑도 잘하고, 사업도 잘하고 또 처음 것보다 나중 것이 많고 봉사도 잘하고 참기도 잘 참고 다 잘했지만, 이제 이세벨 용납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침상에 던지고 환난 가운데 던지고 자녀는 죽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이세벨 용납하는 자는 다 즉살(卽殺)되는 것입니다. 아이들 다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납하지 않고 바른 진리로 나가는 사람은 끝까지 바른 진리를 잡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면 뭘 준다고 하였습니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 새벽 별 준다고 했으니까 언제나 이겨서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받아나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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