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6일 수요일

요한계시록 3:1-6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요한계시록 3:1-6

1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네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1. 생명의 역사가 없는 사데 교회

말세 교회에도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상태에 빠질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본문 1절에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라고 하였습니다. 일곱 영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일곱 별은 교역자를 가리킵니다. 성령을 가지시고 교역자를 손에 붙잡으신 주님으로 나타났는데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즉 실상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진 것은 여러 가지 잘 되는 면, 교회가 큰 교회가 되고 또 사업도 많이 하고 기관도 많이 있고 여러 가지 면으로 교회가 살았다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데 교회는 이단이나 무슨 니골라 당 같은, 발람 같은 그런 잘못된 교훈이 없습니다. 그래서 “보수다. 우리는 보수 교단 교회다. 또 우리는 이단이 없고 니골라 당도 없고 발람이나 이세벨도 없고 순전히 정통보수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바른 복음을 받았다. 전통적인 바른 교회다” 하는 그것이 살았다 하는 이름입니다. 또 “큰 교회다. 또 교회에서 사업을 많이 한다. 여러 가지 구제 사업이나 양로원 사업이나 고아원이나 많은 사회사업을 하는 교회다. 그래서 괜찮다. 좋은 교회다. 이 세상 사람이 보기에도 사데 교회는 아주 잘한다”라고 할 만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제 말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들이 많이 부흥되고 기독교 사업을 많이 하고 구제 사업도 많이 하고 사회사업도 많이 하니까, 자타가 살았다. 자기들도 살았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또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그 교회는 산 교회다”라고 칭찬받을 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보시기에 “실상은 죽은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외부적으로는 산 교회인데 내용적으로는 죽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신앙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죽은 믿음, 영적으로 죽은 생활, 생명의 역사가 없다는 말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없는 교회. 이것이 말세교회입니다.


2.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본문 2 절에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네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라고 하였습니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고 하였는데 ‘남은 바’ 하는 것을 보니까 아주 죽진 않았습니다. 다 죽었는데 아직도 생명은 그냥 있습니다. 호흡은 그냥 있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사지백체(四肢百體)가 다 죽은 사람같이 되었는데, 숨이 아직도 그냥 있다는 말입니다. 맥박이 아직도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 죽은 것입니다. 손과 발의 맥이 다 끊어지고, 또 눈도 죽은 사람의 눈같이 되고 정신도 없는데 심장만 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호흡만 안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고 하였습니다.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다. “일깨워” 하는 것은 “경성하여”, “정신 차려서”라는 말입니다.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 즉, 지금 거의 다 죽었는데 이제 호흡만 달싹달싹하게 안 끊어졌는데 이대로 나가면 이 사람은 죽은 사람인지 산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산 사람이라도 사지백체가 거의 다 죽었지만 그래도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하는 것은 더 이상 죽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힘이 없는데 아주
힘이 다 끊어지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믿는 일 못하는데 아주 믿는 일 못하도록까지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쓰러졌는데 아주 일어서지 못하리만치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대로 나가면 안 되겠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옳지 않다. 산 신앙생활이 아니다. 그것을 깨닫고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해야 합니다. 더 죽지 않게 해야 합니다. 더 내려가지 않게 해야 합니다. 더 퇴보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경성해서 일어나서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2 절 마직막에 “네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라고 하였는데 행위가 온전치 못했다는 것입니다. 행위의 온전한 것은 무엇입니까? 산 믿음의 행위, 역사하는 믿음의 행위, 믿음 지키는 행위, 하나님께 기도하는 행위, 예수님을 사랑하는 행위, 하나님 앞에 바치는 행위, 주를 위해서 충성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3. 과거 신앙과 비교해 보라

본문 3 절에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라는 것은 네가 전에 받은 진리와 받은 신앙을 생각해보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배웠는가를 생각하고 그 신앙을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이 타락된 다음에는 전에 타락되기 전의 신앙을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타락되기 전 초대교회의 신앙과 초대교인들이 어떻게 신앙생활 했는가, 또 과거에 한국 교회가 어떻게 신앙을 지켰는가, 어떻게 기도 생활했는가를 솔직히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또 비교해 보라는 것입니다.

6.25 사변 때에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했는가 어떻게 성도들이 회개했는가 어떻게 하나님께 매달렸는가 그것을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 네가 어려운 일 당할 때에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했는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졌을 때에 어떻게 하나님께 부르짖었는가, 과거에 어떤 신앙을 가지고 나왔는가, 우리 선조들이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나왔는가, 바로 믿은 사람들이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나왔는가, 그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해 봐라, 이 처음 믿음, 처음 사랑, 처음 은혜, 한국 교회의 처음 믿음, 6.25 사변 후의 처음 믿음, 처음 사랑, 그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6.25 사변 후에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는 성도가 많았습니다. 명륜교회 윤 할머니 같은 분은 머리에다 수건을 싸매고 아예 강대상 강단 앞에 와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분 따라 다른 여러 사람들도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과거에 어떻게 신앙 생활했는가, 어떻게 믿음을 지켰는가를 생각하며 과거에 생명 내어 놓고 믿음 지킨 신앙과, 지금의 신앙생활을 비교해 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비교해 보고, 그 신앙을 다시 찾으라는 것입니다.

요새 신앙 가지고 나가지 말고 옛날 그 잘 믿은 신앙, 은혜로 말하면 처음 은혜, 처음 사랑, 처음 기도하던 생활, 믿음 바로 지킨 사람들의 생활, 산 믿음, 생명의 역사가 있는 믿음, 그 생활과 한번 비교해보라는 것입니다.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현재대로 두면 잘 모르는데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그러므로 전에 미끄러지기 전에 그때의 일을 생각하고 거기에 비교해서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처음 행위 가지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처음 믿음, 처음에 기
도하던 생활, 처음에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던,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고 바쳤던 생활, 거기에 비교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보다 얼마나 떨어져 나갔는가 알 수가 있습니다.

4. 잠자지 말고 취하지 말고 깨어 있으라

본문 3 절을 다시 보면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일깨지 아니하면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이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에 대해서는 우리가 좀 두려워해야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 절에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저희에게 홀연히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라고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도적같이 예수님께서 오시지만 여기에는 “너희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그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그날이 도적같이 임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사람은 낮에 속하고 빛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자는 자는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잠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깨어 근신하여야겠습니다. 그러나 낮에 속한 사람도 낮에 낮잠 자면 그것은 밤과 같습니다. 또 취한 사람도 밤과 같습니다. 낮에 속했으니까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임하시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낮잠 자면 그것은 밤에 속한 것과 같으니까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입니다. 취하면 그 사람에게도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오시게 되어있습니다. 여기 오늘 본문에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도적같이 온다는 말은 알지 못하게 갑자기 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갑자기 온다, 또 동시에 심판도 갑자기 온다, 징계도 갑자기 온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취하지 아니하고 잠자지 않는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취해있는 성도, 잠자는 성도에게는 도적같이 온다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시간에 온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님의 징계도 갑자기 온다
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갑자기 온다는 말입니다.

본문 2 절에 “네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 하는 말은 잠자고 있었다 하는 말입니다. 또 취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분명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도적같이 임하십니까? 잠자는 사람, 취하는 사람에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낮에 속한 자요, 또 빛 가운데 속한 자입니다. 낮에 속해있고 예수님을 믿지만, 잠자고 취하면 그때에는 도적같이 온다는 것인데 “네 행위가 온전치 못하다” 하는 말은 “네가 잠자고 취해있다”는 말입니다. 낮에 속하긴 속했는데, 예수 믿어 빛에 속하긴 속했는데, 잠자고 취하고 있으면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잠자는 것과 취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술 취하고, 또 세상에 취하는 일입니다. 포도주는 괜찮습니까? 포도주는 보지도 말라고 그랬습니다. 맥주 다 마찬가지입니다. 술 먹는 사람은 회개해야 됩니다. 술 먹고 담배 먹는 사람은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취하지 말고 또 잠자지 말아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은 요한계시록 17장에 인본주의 세상에 도취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세상에 도취되면 그것은 술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 어떤 교회에 교인이 하나 있는데 교회 잘 받들어나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다단계 계에 가입을 하면 이자를 많이 준다는 말을 듣고 자기 있는 재산 다 갖다 다단계에다 투자했습니다. 다단계 들면 이자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1000만원인가 갖다 내면 한 달에 이자 200만원씩 받는답니다. 그래서 다른 데서 빚을 얻어다가 1억을 갖다 투자했습니다. 1억 다른 데는 이자 얼마 하겠습니까? 그러나 한 달에 20%씩 받으면 그건 굉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단계가 깨졌다고 합니다. 그것 안 깨지게 생겼습니까? 그러다 쫄딱 망하고 빚 얻어 온 것도 못 주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잘 안 나온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 사람이 20% 이자 돈 주고 그 돌을 이용하겠습니까? 그것 간단한 것입니다. 천만원 내면 한 달에 200만원씩 딱딱 받았다는 것입니다. 몇 달 잘 받았답니다. 몇 달 잘 받으니까 자기 어머니
돈까지 다 갖다가 넣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질 확률이 100%입니다. 시간문제입니다. 석 달 있다가 깨지겠는가, 넉 달 있다가 깨지겠는가, 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하여간 그것도 다 취하는 것입니다.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돈 버는 데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락에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락에 취하는 사람 그것 다 마찬가지입니다. 취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오십니다. 점점 예수님이 멀어집니
다. 돈 버는 데에 도취가 돼서 돌아가는 사람, 오락에 도취된 사람, 세상 명예영광에 도취된 사람, 그 사람들에게 전부 도적같이 오시는 것입니다. 취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고, 음란과 호색하지 말고, 쟁투와 시기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 도적같이 오십니까? 잠자는 사람은 신앙에 잠이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에 잠들면 깨야 됩니다. 잠깐 잠들 수 있지만 깨어나야 됩니다. 잠든 것이라는 것은 세례 요한이 진리에 대해서 모호하게 생각이 된 것, 오실 이가 당신이십니까? 다른 사람을 기다리렵니까? 그것이 잠든 것입니다. 엘리야처럼 로뎀 나무 아래에서 쓰러져서 죽기를 구하는 것, 그것도 잠든 것입니다. 신앙에 잠들기 쉬운데 영적 생활하지 못하고 영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육신의 생각으로 돌아서는 것은 다 잠드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또 무슨 집을 장만할까, 그것들은 다 잠든 것입니다. 잠들고 도취되는 생활을 하면, 도적같이 오셔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언제 하나님의 징계가 올지도 모르고 예수님 재림도 도적같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5.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자가 그래도 있음

본문 4 절에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사데교회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가 몇 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데 교회에 다 죽었는데 그래도 죽지 않는 자 몇 명이 있습니다. 죽지 않은 사람 몇 명입니까? 몇 명이라고 한 것을 보니까 소수입니다. 옷을 안 더럽힌 사람이 소수입니다. 다 옷을 더럽혔는데 그 몇 명은 안 더럽혔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은 합당하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들은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라는 말입니다.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신앙의 정조를 지켰다는 뜻입니다. 왜정시대로 말하면 신사 참배하지 않은 사람이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또 8.15 해방 이후에 이북에서는 1946년도 어느 주일날에 선거를 했는데 그 선거 안 한 사람이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입니다. 1962년도에 군사 혁명 후, 화폐 개혁을 했는데 주일날 신고 안 하면 돈이 다 무효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일날을 지키기 위해, 신고 안 한 사람이 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주일날 신고한 사람은 다 옷을 더럽힌 것입니다. 주일날 시험치는 것, 무슨 자격시험, 순위시험, 주일날 시험 칠 때에 다 시험 치지만 시험 안 친 사람이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대학교 입학시험도 주일날 칠 때에 주일날 안 친 사람이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대학교 못 가면 못 갔지 주일날 시험 못 친다는 생각으로 시험을 안 친 사람 말입니다.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는데 주일날 나오라고 할 때 직장 떨어져도 주일날 안 나가는 사람이 옷을 더럽히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옷을 더럽히지 않는 것은, 시험 들어올 때마다 대개 다 압니다. 요셉이 여자가 음행하자고 할 때에 음행 안 한 것이 옷을 더럽히지 않은 것입니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주일 날 범하자고 할 때에 주일날 안 범한 것이 옷을 더럽히지 않은 것입니다. 이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가 하나님께 합당한 자입니다. 이 사람에게 흰 옷을 입혀줄 것이고 이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다닌다고 했습니다.

6. 양보하지 않고 말씀 지키는 자를 인정해주심

본문 5 절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는다는 것은 믿음 지킨 것을 생명책에 다 기록해 놓는다는 것입니다. 흰 옷을 더럽히지 않을 때에 그 영혼이 자라납니다. 영혼이 자라난 것은 절대 흐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음 지킬 때 영혼이 자라납니다. 흰 옷을 입힌다는 것은 성결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성결을 입혀주며 성결에서 성결로 자라납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자라납니다. 능력에서 능력으로 자라납니다.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는다는 것은 자라난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생명책에 다 올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서 예수님께서 시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인데 그의 영혼이 자라나고 성결이 자라나고 성화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생명이 자라났다는 말입니다.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있다는 것은 생명책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서도 시인한다는 것은 하늘나라에서도 인정해준다는 말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까지 인정받는 신앙, 흰 옷을 더럽히지 않는 신앙, 신앙의 정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양보하지 말고 신앙양심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한 말씀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알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생명책에 기록했다가 다 인정해준다는 것입니다.

본문 6 절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귀가 아니고 귀때기들입니다. 신령한 말씀을 듣는 영적 귀를 가진 사람, 이런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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