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1)
레위기 11:1-12
1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육지 모든 짐승 중 너희의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3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 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4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약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5사반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6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7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8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9물에 있는 모든 것 중 너희의 먹을 만한 것은 이것이니 무릇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것 중에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10무릇 물에서 동하는 것과 무릇 물에서 사는 것 곧 무릇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11이들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니 너희는 그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을 가증히 여기라 12수중 생물에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너희에게 가증하니라
레위기 11:1-12
1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육지 모든 짐승 중 너희의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3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 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4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약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5사반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6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7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8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9물에 있는 모든 것 중 너희의 먹을 만한 것은 이것이니 무릇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것 중에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10무릇 물에서 동하는 것과 무릇 물에서 사는 것 곧 무릇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11이들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니 너희는 그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을 가증히 여기라 12수중 생물에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너희에게 가증하니라
1. 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을 수 없는 짐승
본문 8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육지 모든 짐승 중 너희의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 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약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사반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8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육지 모든 짐승 중 너희의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 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약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사반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쪽발이 갈라지지 않은 짐승은 부정함
짐승들 중에 먹을 수 없는 것과 또 먹을 수 있는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 성도가 먹을 수 있는 짐승이 무엇입니까?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 하는 짐승은 먹을 수 있습니다. 쪽발 갈라지지 않고 새김질 하지 못하는 짐승을 먹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부정해 지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런 짐승을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까? 성도는 쪽발 갈라진, 곧 온전한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소의 발처럼 두 쪽으로 갈라져야 합니다. 소의 발과 양의 발처럼 두 쪽으로 갈라지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개의 발처럼 여러 발로 갈라지면 안 됩니다. 성도는 두 쪽으로 갈라진 생활, 구별된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갈라놓으라고 하는 것입니까? 진리와 비진리를 갈라놓는 생활을 하는 것이 성도의 자격이 되고, 진리와 비진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도의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옳지 못합니다.
또 무엇을 갈라놓아야 합니까? 마귀와 성령의 역사를 갈라놓으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압니까? 성경에 맞아야 합니다. 성경에 맞으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경에 맞지 않으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중간에 하나 더 넣으면 안 됩니다. 세 쪽으로 나누면 안 됩니다. 다 두 쪽으로 갈라져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냐, 아니냐 입니다. 성령의 역사인 것 같아도 성경에 안 맞으면 성령의 역사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맞아야 됩니다. 성경에 맞지 않아도 큰 일을 많이 하고, 선한 일도 많이 하고, 또 병도 고치고, 여러 가지 희한한 능력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도 그것을 인정하면 안됩니다. 딱 딱 맞추어도 인정하면 안 되고, 이적이 일어나도 안 되고,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병이 나았다 해도 또 무슨 역사가 나타났다고 해도 성령의 역사가 아닐 수가 있습니다. 병을 고치는 것은 불교에서도 고치고, 통일교에서도 고치고, 마호메트교에서도 고치고, 천리교에서도 고칩니다. 천리교란 일본에서 나온 교입니다. 남묘호렌케쿄(南無妙法蓮華經)에서도 고치고, 의사도 고치고, 기도원에서도 고치는 것입니다. 통일교에서 기도해서 병 많이 고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 고치러 많이 갔습니다. 통일교가 좋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아들 병 고치려고 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또 병 나은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병 고치려고 찾아
가면 안 됩니다. 병은 어디서든지 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 나으러 천주교도 갔다가, 통일교도 갔다가, 전도관에도 갔다가 합니다. 또 절에도 많이 갑니다. 그러나 병 고치는 것이 표준이 아니고 성경이 표준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맞느냐, 안 맞느냐에 표준을 두어서 쪽발 갈라진 것처럼 구별해야 합니다.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냐, 마귀의 역사냐,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성경에 맞아야 하는데, 안 맞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라 하겠습니까? 성경 에 안 맞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면 성경을 왜 믿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이 거짓말인데, 성경을 믿을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성경을 이렇게 안 믿기 시작하면, 차차 신비주의로 기울어집니다. 희한한 모든 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박태선씨가 처음에는 성경에서 조금 어긋나고 많이 어긋나진 않았습니다. 장로교에서 장로안수를 받은 사람이었고, 처음에는 많이 탈선된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맞지 않는 운동을 하다 보니까, 차차 탈선되어 나가더니 요즘은 성경을 다 버렸습니다. 요즘은 박태선씨가 천상천하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조금 틀리지만, 성경과 틀리게 나가게 되면 자꾸 틀리는 것입니다. 성경이 아닌 것을 다 잘라서 쪽발을 갈라내야겠는데, 안 내버리고 조금씩 용납하니까 결국 전부 탈선되어서, 마지막에는 자기가 천상천하 하나님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성경을 잘라 버리고 그 해석이 조금 잘못되어도, 결국에는 아주 크게 달라지고 비참한 상태로 빠지게 됩니다.
가면 안 됩니다. 병은 어디서든지 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 나으러 천주교도 갔다가, 통일교도 갔다가, 전도관에도 갔다가 합니다. 또 절에도 많이 갑니다. 그러나 병 고치는 것이 표준이 아니고 성경이 표준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맞느냐, 안 맞느냐에 표준을 두어서 쪽발 갈라진 것처럼 구별해야 합니다.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냐, 마귀의 역사냐,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성경에 맞아야 하는데, 안 맞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라 하겠습니까? 성경 에 안 맞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면 성경을 왜 믿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이 거짓말인데, 성경을 믿을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성경을 이렇게 안 믿기 시작하면, 차차 신비주의로 기울어집니다. 희한한 모든 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박태선씨가 처음에는 성경에서 조금 어긋나고 많이 어긋나진 않았습니다. 장로교에서 장로안수를 받은 사람이었고, 처음에는 많이 탈선된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맞지 않는 운동을 하다 보니까, 차차 탈선되어 나가더니 요즘은 성경을 다 버렸습니다. 요즘은 박태선씨가 천상천하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조금 틀리지만, 성경과 틀리게 나가게 되면 자꾸 틀리는 것입니다. 성경이 아닌 것을 다 잘라서 쪽발을 갈라내야겠는데, 안 내버리고 조금씩 용납하니까 결국 전부 탈선되어서, 마지막에는 자기가 천상천하 하나님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성경을 잘라 버리고 그 해석이 조금 잘못되어도, 결국에는 아주 크게 달라지고 비참한 상태로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쪽발을 갈라놓아야 됩니다. 인본주의냐, 신본주의냐, 갈라 놓아야 되고, 하늘이냐, 땅이냐, 둘로 갈라놓아야 됩니다. 영의 운동과 육의 운동을 갈라놓아야 되고, 영적 감동과 육적 감동을 갈라놓아야 됩니다. 감동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육신의 감동과 영적 감동이 있습니다. 또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를 갈라놓아야 합니다. 진리와 비진리, 성경에 맞느냐 안 맞느냐를 둘 가운데 갈라서, 성경에 안 맞는 것은 다 버리고 성경 말씀대로 바로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의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쪽발이 갈라져야 합니다. 인본주의냐 신본주의냐, 하나님을 위한 것이냐 자기를 위한 것이냐, 갈라놓으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느냐, 이세벨을 따라가느냐를 갈라놓으라는 것 입니다. 말씀을 따라가야만 성도는 바른 신앙을 끝까지 달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쪽발이 갈라지지 않는 것은 먹지 말고 쪽발이 갈라진 것은 먹으라는 것입니다. 쪽발이 갈라진 생활을해야지 갈라지지 않는 것은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갈라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비진리와 갈라져야 합니다. 갈라져야 성도의 길을 바로 걸을 수 있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참여 할 수가 있습니다.
갈라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서 두아디라 교회가 이사벨을 용납하였다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세벨을 침상에 던지고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자녀는 사망으로 죽인다고 하였습니다. 또 버가모 교회도 갈라놓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검을 가지고 나타나셔서 싸우신다고 하였습니다. 발람과 니골라당을 분별하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비진리를 갈라놓지 못하고 용납하고 같이 나가면, 예수님께서 검으로 싸우십니다. 성도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신신학과 합해서 나가고, 그릇된 신비주의와 합해 나가고, 새로운 신학도 합해 나가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합해서 나가다가 망하게 됩니다. 세계 교회가 연합하려는 운동인 WCC 운동과 같은 것은 아예 쪽발이 갈라지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쪽발이 갈라져서 진리와 비진리를 갈라놓아야 합니다. 아니면 ‘아니다’ 하고 떠나야 되고, 옳으면 ‘옳다’고 해서 따라 가야만 성도가 바른 신앙의 길, 바른 구원의 길을 걸어 나갈 수 가 있습니다.
새김질하지 않은 짐승은 부정함
그 다음에 쪽발로 갈라졌어도 새김질 못하는 짐승은 부정하다고 하였습니다. 새김질을 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쪽발로 갈라진 짐승 중에도 새김질을 하여야 합니다. 새김질은 어떻게 합니까? 소가 새김질하는 것 봤습니까? 소가 먹을 때는 바쁘니까 씹을 시간 없으니 그냥
다 삼킵니다. 그 위가 좋습니다. 소가 음식물을 위에 저장해 두었다가 쉴 때 위 속에 있던 것을 한 덩이씩 꺼내서 이빨로 한참 씹다가 또 다시 다른 데에 넣습니다. 소의 목을 보면 압니다. 소가 먹으면 한 덩어리가 올라옵니다.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그리고 한참을 씹습니다. 껌을 씹듯이 한참을 씹다가 그 다음에 다시 들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또 한참 되어서 올라옵니다. 또 한참 씹다가 한참 뒤에 내려갑니다. 또 다른 것 한 덩어리가 올라옵니다. 그것이 새김질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일단 먹어 뒀다가 그 다음에 쉬는 시간에 한 덩어리를 꺼내서 새김질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새김질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속에 넣어 두었다가 하나씩 꺼내서 다시 되새기는 것입니다. 또한 되지 못한 것을 계속 회개하고, 다음에는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속에 넣어 두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씩 꺼내서 기도하는
생활을 계속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김질하는 생활입니다. 기도할 때는 성경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들어둔 것을 꺼내서 ‘하나님이시여, 제가 이전에 무엇을 잘못하였습니다’ 하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속에서 하나씩 꺼내서 그것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새김질입니다. 먼저 한 덩어리를 꺼내서 번제로 드립니다. 번제는 단에서 불사르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내 죄 때문에 죽으셨으니, 나도 예수님과 같이 번제로 드리게 하옵소서’ 하고 새김질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소제로 드릴 것을 속에서 또 하나 꺼냅니다. 소제는 가루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일생 동안 희생하시며, 다 깨져나가고 가루가 되어서 완전한 의를 세워 주었으니 감사합니다. 내가 의롭지 않지만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의로, 주님이 희생하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의를 받아서 의롭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나도 예수님을 따라서 다 깨져 나가고, 내 자신이 없어지고 가루가 되게 해주시고, 보이지 않게 해주시고, 오직 주께 희생하며 이제 주의 말씀을 죽기까지 복종하며, 주 앞에 제물로 바쳐 드리는 의를 이루어 나가는 생활을 하게 해 주옵소서.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다, 지극히 작은 것까지 충성하게 해 주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또 무슨 제사가 있습니까? 화목제가 있습니다. 또 하나를 꺼냅니다. ‘화목제물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 하나님과 화목하고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처럼 내가 죽어야 하고 희생하여야 화목해집니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는 죽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서 돌아갑니다. 회막문으로 들어가려면 회막문에서 제물에 안수하고 잡아야 되겠는데, 제물인 내가 죽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회막문에 들어가려면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이 아니면 못 들어갑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구속을 힘입어서 회막문에 들어가게 해주시옵소서. 그리고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해 주시옵소서. 내가 화목하지 못한 까닭은 내가 죽어지지 않아서 화목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어주셨는데, 내가 일만 달란트 탕감 받았는데, 형제에게 백 데나리온 탕감 해주지 못한 것을 다 용서하여 주옵시고, 화목하게 해주시옵소서’ 하고 새김질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받은 말씀을 꺼내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또 속건제가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도 하나를 꺼내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물을 내가 범한 것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주일을
지킨다고 하고는 제대로 못 지켰습니다. 또 금년 중에 부지중에 범한 것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죄은 죄가 많습니다’ 하면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한참 기도하고 이제부터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남의 물건에 대해서 또 꺼내서 ‘주여, 남의 물건을
가져간 것 있사오니 용서해 주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또 남의 돈을 잘라 먹은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꺼내서 새김질 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남의 물건에 대해서 그 손에 든 것은 돌려보내야 되고 십 분지 이를 더해서 주어야 돌려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남의
돈을 십 만원 축냈으면, 십이 만원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지킨다고 하고는 제대로 못 지켰습니다. 또 금년 중에 부지중에 범한 것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죄은 죄가 많습니다’ 하면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한참 기도하고 이제부터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남의 물건에 대해서 또 꺼내서 ‘주여, 남의 물건을
가져간 것 있사오니 용서해 주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또 남의 돈을 잘라 먹은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꺼내서 새김질 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남의 물건에 대해서 그 손에 든 것은 돌려보내야 되고 십 분지 이를 더해서 주어야 돌려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남의
돈을 십 만원 축냈으면, 십이 만원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어떤 집사님에게 기도 하라고 하면 우리가 다 압니다. 그 집사가 기도하면, 첫마디는 뭐가 나오고, 둘째 마디는 뭐가 나오고, 셋째 마디는 뭐가 나오는지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제든지 그 집사는 그것 밖에 못하기 때문입니다. 첫 마디부터 셋째 마디까지 꼭 그렇게만 하는 것입니다. 그 집사가 하는 기도는 세절 토끼기도입니다. 세절토끼는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닙니다. 다른 길로 못 갑니다. 그러면 사냥꾼에게 당장 잡힙니다. 그렇게 기도하지 말고, 무슨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까? 새김질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새김질하는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매일 한 가지씩 새김질 하면 됩니다.
신앙생활도 새김질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되새기고, 회개를 반듯이 하고, 결심을 새로이 하고, 말씀대로 새 출발하는 생활을 날마다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새김질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면 새김질하는 것만큼 점점 심령이 새로워집니다. 그리고 죄는 점점 떠납니다. 못된 버릇이 점점 고쳐집니다. 새김질하므로 고쳐지는 것입니다. ‘저의 못된 버릇을 고쳐주시옵소서. 제가 혈기가 많습니다. 제가 시기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분통 내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에 부정한 것이 많습니다’ 하고 새김질하고 나가면 나아집니다. 기도하면 조금 나아집니다. 그리고 또 새김질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좀 나아집니다. 또 새김질 하면 또 나아집니다. 점점 나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못된 버릇을 점점 고치고, 점점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새롭게 만들어져 나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새김질 하는 생활을 하면 점점 개운해지고 새사람 되어 자라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고 자기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서 먼저 속죄제를 드리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드려야 합니다. 문제는 자기가 문제지, 남이 무슨 문제입니까? 내가 잘못했으니 내가 고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하니 나도 잘못한다’는 것은 안 됩니다. 이것은 마귀역사 입니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못하니 내가 먼저 해야 합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면 대접을 먼저 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도 안 하니 나도 안 한다’는 것은 마귀 방법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마귀의 아들입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이 안 하니 내가 먼저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방법입니다. 다른 사람이 사랑하지 못하니 내가 먼저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네가 미워하면 나도 미워한다’, ‘네가 인사 안 하면, 나도 안 한다’는 것은 마귀의 방법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마귀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인사 안 하니, 내가 먼저 해야 되겠다’, ‘다른 사람이 나를 미워하니, 나는 사랑해야 되겠다’라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수 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어주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속죄제를 드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유년부에 다닐 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니라 로마서 5장 8절”이라고 외웠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여서 나도 따라서 한 것입니다. 그때 외운 것이 아직도 있습니다.
내가 유년부 다닌 것이 몇 십 년 되었겠습니까? 한 오십 년도 넘었는데 안 잊어버렸습니다. 잠언 20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알게 가르치면 그러면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않으리라”고 하였는데,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좋습니다. 유년부에 힘을 써야 합니다. 유년부를 가르치는 데에 힘을 써야 되고, 아이들에게 성경을 바로 가르쳐야 됩니다.
성경 요절을 외우라고 하고 성경말씀을 가르쳐줘야 합니다. 다른 것을 가르치면 안 됩니다. 성경말씀을 가르쳐야 그 아이에게 성경이 들어갑니다. 다른 것은 아무리 재미나게 가르쳐도 다 달음질하려다 마는 것입니다. 달음질 하려다 하나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빈털터리입니다. 성경을 가르쳐야 됩니다.
찬송가도 어린 아이들에게 그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어린이 찬송가가 따로 있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찬송가를 그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나 속죄함을 받은 후 한없는 기쁨을 다 헤아릴 수 없어서 늘 찬송합니다’,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하는 찬송이 얼마나 좋습니까? ‘내 평생 소원’ 하나만 가르쳐도 좋습니다. 당시에 학교 다닐 때, 사람들의 평생 소원은 세계일주 하는 것이었는데, “그 시시한 것 가지고 평생 소원하느냐? 나는 내 평생소원 주의 일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고 천당 가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세계일주 백 번 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래서 지옥가면 뭐합니까? 세계일주 안 하고 천당 가면 됩니다. 구속의 자유가 풍성합니다. 얼마나 구속의 자유가 풍성합니까? ‘이 몸에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그 다음에 또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네. 얼마나 좋습니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어린이 찬송가에서 하나를 다 불러도 이 찬송 한 절만도 못합니다.
유년부에서 다른 것을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듣든지 안 듣든지 성경을 가르치면 성경이 들어갑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성경을 알게 됩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을 자꾸 가르치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압니다. 삼위일체가 무엇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압
니다. 몇 달 가르치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압니다. 설명을 하라고 하면, ‘설명을 잘 못해도 삼위일체다’라고 하면 됩니다. 설명을 다해야 믿습니까? 설명을 안 해도 믿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것을 설명합니까? 어떻게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것을 설명합니까? 어떻게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가신 것을 설명 합니까? 설명할 것이 없습니다. 실천했는데, 올라가셨는데 무슨 설명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믿는 것입니다.
또 밥을 할 때 중간에 뚜껑 열었다 닫았다 하면 김이 다 새어 나가서 밥이 안 됩니다. 아예 뚜껑 꾹 닫아놓고 시간을 다 채워야 밥이 제대로 됩니다. 중간에 되었나 보고 안 되어 있으면 또 닫고, 다시 되었나 보고 안 되어 있으면 닫고 그러면, 밥이 김이 다 나가고 밥이 되어도 맛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경회, 산기도, 수양회 등 집회가 있는데, 중간에 가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기한을 채워야 합니다. 교역자들은 삼일 저녁 예배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합니다. 직장에 다녀서 사경회에 계속 있을 수 없는 장로나 집사에게
맡겨놓고 와야 합니다. 왔다 갔다 하면 김이 다 새나갑니다. 기한이 다 하기 전에 왔다 갔다 하면 안 되고, 일심정력을 다해서 우리가 기한을 채워야 합니다.
새김질 하는 생활과 쪽발 갈라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먼저 자기 죄를 찾아서 새김질 하는 생활을 하고, 또 남을 위해서는 희생하는 생활이 성도에게 합당한 생활입니다. 요즘은 어떻습니까? 돼지고기를 먹습니까? 돼지의 발은 쪽발이 되어 두 쪽이 갈라졌습니다. 그러나 새김질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새김질을 못하니까 구약시대에는 먹으면 안되었습니다. 또 사반과 토끼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안 갈라져 있습니다. 그것도 안 됩니다. 한 가지만이 아니라 두 가지를 다 만족시켜야 합니다. 새김질도 하고 쪽발도 갈라져서 둘 다 해야 합니다. 하나만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의식은 폐하였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어도 괜찮습니다. 토끼도 먹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담겨있는 진리는 신약시대에서도 지켜야 합니다. 의문과 증서는 폐했지만, 진리는 절대 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점이라도 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약시대에는 새김질 안하고 쪽발 안 갈라진 짐승을 먹어도 괜찮지만 그 진리는 절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이 절대 새김질 하는 생활이 되어야 하고, 절대로 쪽발 갈라진 생활을 해야 합니다. 굽이 갈려져 쪽발이 된 것처럼 우리도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신본주의냐 인본주의냐, 영적 유익이냐 육의 유익이냐, 성령의 인도이냐 성령의 인도가 아니냐를 갈라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새김질을 계속 해서 진보되고 점점 전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 먹을 수 있는 물고기와 먹을 수 없는 물고기
본문 9-10절에 “물에 있는 모든 것 중 너희의 먹을 만한 것은 이것이니 무릇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것 중에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무릇 물에서 동하는 것과 무릇 물에서 사는 것 곧 무릇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이들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니 너희는 그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을 가증히 여기라 수중 생물에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너희에게 가증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물에 사는 모든 것 중에서도 먹지 못하는 가증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의문과 제도는 폐하였으나 진리는 폐하지 않았음
골로새서 2장 14절에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 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의문이라는 것은 율법의 제정 규정이고, 증서라는 것은 수기, 수서, 차용 증서와 같은 것인데, 구약의 의문과 제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도말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의 진리는 일점일획이라도 변함이 없습니다. 천지가 변할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17절에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율법을 온전케 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의문만 도말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에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 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의문이라는 것은 율법의 제정 규정이고, 증서라는 것은 수기, 수서, 차용 증서와 같은 것인데, 구약의 의문과 제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도말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의 진리는 일점일획이라도 변함이 없습니다. 천지가 변할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17절에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율법을 온전케 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의문만 도말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결코 도말한 것이 아닙니다. 내용은 신약에 와서도 다 살아있습니다. 신약이 구약에서 나왔습니다. 구약 안에 신약이 다 들어가있습니다. 구약의 일점일획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없어질 것도 아니고,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완전케 함입니다.
의문과 제도만 폐하였습니다. 할례는 폐하였습니다. 그것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또 소를 잡아 제사하고 양을 잡아 제사하고 비둘기 잡아 제사하는 것도 의문입니다. 그것은 폐하였습니다. 또 쪽발 갈라지지 않는 짐승을 안 먹는 것과 새김질 하지 않는 짐승을 안 먹는 것도
의문입니다. 그것을 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절대 폐하지 않았습니다. 소로 제물 삼는 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피 흘려서 속죄 제물 되었다는 것은 절대 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할례는 신약에서 무엇으로 바뀌었습니까? 할례는 세례로, 유월절 지키는 것은 성찬예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구약의 제도만 폐했지 그 내용은 신약시대에도 살아있습니다. 쪽발 갈라지지 않은 짐승은 구약시대에는 안 먹었지만 신약시대는 먹어도 괜찮습니다. 또 새김질 하지 않은 것 먹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 진리는 절대 폐하지 않았습니다.
의문입니다. 그것을 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절대 폐하지 않았습니다. 소로 제물 삼는 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피 흘려서 속죄 제물 되었다는 것은 절대 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할례는 신약에서 무엇으로 바뀌었습니까? 할례는 세례로, 유월절 지키는 것은 성찬예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구약의 제도만 폐했지 그 내용은 신약시대에도 살아있습니다. 쪽발 갈라지지 않은 짐승은 구약시대에는 안 먹었지만 신약시대는 먹어도 괜찮습니다. 또 새김질 하지 않은 것 먹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 진리는 절대 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쪽발 갈라지는 생활을 해야 되고 새김질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새김질하고 죄를 멀리 떠나고 점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자라나야 됩니다. 새김질하여 점점 새사람 되고, 쪽발 갈라진 생활을 해야만 죄를 떠납니다. 죄를 떠나서 쪽발로 갈라지는 생활하고 불의에서 나와서 새김질 하면서 점점 새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말씀으로 만들어져 나가야 합니다.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자라나기 위해서 새김질을 많이 하여야 됩니다.
비늘 없는 고기는 가증함
물에 사는 것 중에서 무엇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비늘 없는 고기입니다. 물에 사는 것들 중 비늘 없는 고기는 먹지 말아야 되고, 지느러미 없는 것도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비늘은 물고기의 갑옷입니다. 갑옷을 입고 나가면 창으로 찔러도 안 들어가고 칼로 찔러도 안
들어갑니다. 큰 물고기는 비늘이 아주 단단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비늘 있는 생활을 하라는 것은 성도가 언제나 전신 갑주를 입고 마귀의 창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를 들추고 찌르고 활로 쏘고 칼로 찔러서 넘어지게 하는데,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마귀의 화살을 날마다 막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귀가 없는 세상은 없습니다. 언제나 마귀가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막는 생활만 잘하면 됩니다. 막지 못하는 사람은 비늘이 없는 사람과 같아서 여기서 쿡 찌르면 꿈틀하고 저리로 가고, 저기서 쿡 찌르면 꿈틀하여 꼼짝 못하고 죽습니다. 그러나 비늘이 단단하면 쿡쿡 찔러도 툭툭 막아내고 나가는 것입니다.
물에 사는 것 중에서 무엇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비늘 없는 고기입니다. 물에 사는 것들 중 비늘 없는 고기는 먹지 말아야 되고, 지느러미 없는 것도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비늘은 물고기의 갑옷입니다. 갑옷을 입고 나가면 창으로 찔러도 안 들어가고 칼로 찔러도 안
들어갑니다. 큰 물고기는 비늘이 아주 단단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비늘 있는 생활을 하라는 것은 성도가 언제나 전신 갑주를 입고 마귀의 창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를 들추고 찌르고 활로 쏘고 칼로 찔러서 넘어지게 하는데,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마귀의 화살을 날마다 막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귀가 없는 세상은 없습니다. 언제나 마귀가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막는 생활만 잘하면 됩니다. 막지 못하는 사람은 비늘이 없는 사람과 같아서 여기서 쿡 찌르면 꿈틀하고 저리로 가고, 저기서 쿡 찌르면 꿈틀하여 꼼짝 못하고 죽습니다. 그러나 비늘이 단단하면 쿡쿡 찔러도 툭툭 막아내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늘을 많이 대고 다녀야 합니다. 고기가 비늘로 다 덮여 있어서, 쿡 찔러도 툭툭 막고 나가는 것입니다. 비늘을 단단하게 해 나가면, 바깥에 나가서 찔려도 툭툭 막아내고 집안에서 찔려도 툭툭 막아내고 직장에 가서 찔려도 툭툭 막아내고 다 막아내고 나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찔러대도 찌르는 사람의 손만 아픕니다. 입으로 콱 쏘아도 자기 입만 아프지, 비늘이 하도 든든하니까 괜찮습니다.
그러므로 전신 갑주를 든든히 입고 나가면 약한 시험이 들어와서 찌르고 물어도 끄떡없습니다. 갑옷을 입고 나가는 사람은 화살을 쏴도 화살이 뚫고 들어가지 않습니다. 또 입으로 물어뜯어도 이빨이 안 들어갑니다. 창으로 찔러도 안 들어갑니다. 턱턱 막습니다. 전신 갑주를 잘 입고 나가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괜찮습니다.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찔러대도 찌르는 사람의 손만 아픕니다. 입으로 콱 쏘아도 자기 입만 아프지, 비늘이 하도 든든하니까 괜찮습니다.
그러므로 전신 갑주를 든든히 입고 나가면 약한 시험이 들어와서 찌르고 물어도 끄떡없습니다. 갑옷을 입고 나가는 사람은 화살을 쏴도 화살이 뚫고 들어가지 않습니다. 또 입으로 물어뜯어도 이빨이 안 들어갑니다. 창으로 찔러도 안 들어갑니다. 턱턱 막습니다. 전신 갑주를 잘 입고 나가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괜찮습니다.
전신 갑주만 입고 나가며 새김질 하면서 쪽발 갈라지는 생활하면, 집에서 부모 섬길 때도 괜찮고, 형제들이 시기해서 팔아먹어도 괜찮고, 종살이해도 괜찮고, 감옥에 가도 괜찮고, 어디를 가도 다 괜찮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어딜 가나 하늘나라” 입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니까 아무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신 갑주를 입고 나가기 때문에 아무리 시험이 많아도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 할 때 로마 교황청은 루터를 파문하고 심판대에 세웠습니다. 의회에 출두하라는 명령에, 가
면 죽는다고 제자들이 다 가지 말라고 하는데, 루터는 심문 받는 장소인 보름스를 향해 가면서, “보름스에 있는 지붕 위의 기왓장들처럼 수 많은 마귀들이 나를 겨냥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나는 보름스를 향해 말을 타고 가리라”고 하였습니다. 마귀가 큰 소리 치고 죽이려 하고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나가니까 다 막았습니다. 안 죽었습니다. 그리고 루터는 성경 말씀의 증거가 확실하기에 그의 주장을 철회하는 것은 양심에 거역하는 것이라고 하고는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아멘”이라는 말을 남기고 회의장을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도 환난을 피해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환난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전신 갑주를 입지 않은 미꾸라지와 뱀장어 같은 자들입니다. 환난이 조금만 와도 불덕불덕, 꿈질꿈질 합니다. 전신 갑주를 입고 든든한 비늘을 입고 나가면 아무 곳이나 가도 괜찮습니다. 어떤 산이라도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겨야 성도구실을 합니다. 거기서 전진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면 죽는다고 제자들이 다 가지 말라고 하는데, 루터는 심문 받는 장소인 보름스를 향해 가면서, “보름스에 있는 지붕 위의 기왓장들처럼 수 많은 마귀들이 나를 겨냥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나는 보름스를 향해 말을 타고 가리라”고 하였습니다. 마귀가 큰 소리 치고 죽이려 하고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나가니까 다 막았습니다. 안 죽었습니다. 그리고 루터는 성경 말씀의 증거가 확실하기에 그의 주장을 철회하는 것은 양심에 거역하는 것이라고 하고는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아멘”이라는 말을 남기고 회의장을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도 환난을 피해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환난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전신 갑주를 입지 않은 미꾸라지와 뱀장어 같은 자들입니다. 환난이 조금만 와도 불덕불덕, 꿈질꿈질 합니다. 전신 갑주를 입고 든든한 비늘을 입고 나가면 아무 곳이나 가도 괜찮습니다. 어떤 산이라도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겨야 성도구실을 합니다. 거기서 전진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지느러미 없는 고기는 가증함
그 다음에 무엇이 있어야 됩니까? 지느러미가 있어야 합니다. 지느러미는 물고기의 꼬리와 배 가슴부분에 달린 것인데, 방향을 잡아주고 전진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지느러미 없으면, 전진하지 못하고 또 방향도 못 잡습니다. 그러므로 지느러미가 있는 고기를 먹으라고 하는 것은 지느러미 있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지느러미를 가지고 나아가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치면서 쌩쌩 나가지 않습니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우리도 나아가야 합니다. 지느러미로 술술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느러미가 똑바로 서서 방향을 바로잡고, 뒤에서 싹싹하면서, 저 높은 곳으로 쓱쓱 앞으로 나가고 올라가고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지느러미가 없는 뱀장어나 미꾸라지 같은 것들은 흙에 붙어서 슥슥 하며 흙탕물로 돌아다니는데, 그것이 고기 노릇을 하겠습니까? 뱀장어와 미꾸라지 같은 것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대로 물고기 구실을 하는 것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물고기 구실을 하려면 뭐가 있어야 합니까? 지느러미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지느러미가 있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뱀장어와 같이 배를 땅에 대고, 배를 하나님으로 삼는 먹자주의로 살지 말고, 가지 않아야 할 곳은 가지 말고, 세상에 배를 부치고 살지 말고, 거기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 지느러미를 다 쓰라는 것입니다. 지느러미를 쓰고 고기 구실을 하면 올라갑니다.
먹지 못하는 물고기를 정해 주신 것은 이렇게 신앙생활 하라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의문은 다 십자가에 못 박아 도말하였기 때문에 구약시대의 부정한 음식을 먹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의문에 가지고 있는 진리는 영원불변입니다. 성도는 항상 비늘이 있는 생활, 곧 전신갑주를 입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지느러미로 나가는 생활로 항상 방향을 바로 잡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11절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또 에베소서 6장 14-17절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말씀을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검, 구원의 투구, 믿음의 방패,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 의의 흉배, 진리의 허리띠, 이런 것들이 다 전신 갑주입니다. 그러므로 전신 갑주를 입고 진리에 바로 서서 날마다 전진하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