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3일 금요일

레위기 10:1-20 다른 불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다른 불
레위기 10:1-20

1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3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4모세가 아론의 아자비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 밖으로 메어 가라 하매 5그들이 나아와 모세의 명대로 그들을 옷 입은 채 진 밖으로 메어 내니 6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아서 너희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케 하라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의 치신 불로 인하여 슬퍼할 것이니라 7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문에 나가지
말아서 죽음을 면할지니라 그들이 모세의 명대로 하니라 8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9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10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11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12모세가 아론과 그 남은 아들 엘르아살에게 와 이다말에게 이르되 여호와께 드린 화제 중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하니 너희는 그것을 취하여 누룩을 넣지 말고 단 곁에서 먹되 13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네 응식과 네 아들의 응식인즉 너희는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 내가 명령을 받았느니라 14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희생 중에서 네 응식과 네 자손의 응식으로 주신 것임이니라 15그 든 뒷다리와 흔든 가슴을 화제의 기름과 함께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너와 네 자손의 영원한 응식이니라 16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는지라 그가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가로되 17이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뇨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18그 피를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였으니 그 제육은 너희가 나의 명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할 것이니라 19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 제육을 먹었더면 여호와께서 어찌 선히 여기셨으리요 20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

1.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리다 죽음

본문 1-2절에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 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고 하였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장으로 위임을 받았고(레 8:6), 위임식 후 제 8일에 제사드릴 때에 제사장인 그의 아버지를 수종들었습니다(레 9장). 그런데 그들이 제사장 위임을 받자마자 여호와의 명하지 않은 불로 분향하다가 벌 받아 죽었습니다.

교만하여 임의대로 다른 불을 드림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장 직분을 받고, ‘나도 이제는 제사장이 되었다’는 특권 의식을 가지고 교만해졌던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갑자기 직분을 받으면 ‘나도 되었다’는 교만이 들어오기 쉬운데, 이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교만한
자는 대적하신다고 하였습니다(벧전 5:5). 또 자기가 항상 부족한 줄 알고 잘못될까봐 벌벌 떨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사장이 됐다고 해서 다 된 줄로 알고, 아버지의 인도를 받지 않고 제 마음대로 하게 되면 그 결과는 죽음밖에는 올 것이 없습니다. 이들이 앞의 9장에서 여호와께서 응답해주시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제사드릴 때 여호와께서 불로 응답해주시는 것을 봤으니까, 자신들도 제사만 드리면 응답이 오는 줄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이다. 제사만 드리면 응답이 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젊은 사람이 자기를 낮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아직도 되지 못한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또 많이 배워야 될 것도 알지 못하고, 이렇게 날뛰다가 그만 죽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젊은 사람이 직분을 맡은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많이 배워야 됩니다. 교역자가 되면 처음에는 햇병아리와 같은 것입니다. 많이 배워야 되고, 많은 지도를 받아야 됩니다. 자신에게 실수도 많을 줄 알아야 되고, 자기가 많이 만들어져야 될 것을 알아야 되는데, 그저 하
면 되는가보다 하고 나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무조건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들이 전에 아버지가 하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또 다 수종 들어줬다는 것입니다. 보니까 뭐 별것이 없습니다. 수종을 들면서 보니까 그저 피를 받아 뿌리고, 소를 잡고 불사르고 하였는데, 그것을 왜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그것이 간단한 것 같아 보이지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 깊은 뜻이 있고, 한 가지라도 잘못되면 죽습니다. 이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 같아도 모르는 줄 알아야 되고, 된 것 같아도 되지 못한 줄 알아야 합니다.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아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12절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선 줄 압니까? 뭐가 좀 된 것 같고 또 아는 것 같고, 할 것 같습니다. 또 하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된 것이 아닙니다. 한번 해서 됐다고 해서 된 것이 아니고, 뭘 좀 아는 것 같아도 아직도 알 것을 채 모르는 것입니다. 안다고 해도 알 것을 채 몰랐습니다.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알 것이 또 있습니다. 몇 가지를 알아서 했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맹장 수술을 하는 것을 몇 번 보고, 또 하는 것 좀 배우면, 자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맹장 수술하는 것을 보면 쉬운 것 같습니다. 마취하고 배를 째고 맹장을 꺼내서 딱 잘라버리고 다시 가져다 꿰매면 되는 것 같습니다. 아주 쉬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맹장수술을 자기가 할 줄 안다고 하면 안 됩니다. 심부름 좀 했다고 해서 자기가 한 줄 알면 안 됩니다. 맹장 수술을 한 번 하려면 신체에 대한 학문을 전부 다 알아야 됩니다. 그 생리를 전체 다 알아야 됩니다. 원리를 모두 다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맹장을 꺼내서 꿰
매는 것만 알면 사람을 죽입니다. 어떤 의사는 의과대학을 나오고 오랫동안 수술한 의사였지만, 맹장 수술하다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전도부인이 하나 죽었습니다. 왜 그랬는가 물어보니까, 혈압을 재지 않고 수술을 해서 죽었다고 합니다. 혈압이 낮았는지 높았는지 모르겠지만, 혈압이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수술하다 그만 죽은 것입니다. 깨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맹장을 째서 꿰매는 것만 알면 안 됩니다. 혈압도 알아야 되고, 다른 것들도 알아야 됩니다. 심장이나 혈압, 그밖에 다른 것도 다 알아서 해야지 무조건 그곳만 째면 된다고 생각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젊은 제사장이 위임식을 했으니 꽤 올라간 것 같으니까 대단한 사람이 된 줄 알고 임의대로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면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모르는 줄 알아야 합니다. 되지 못한 줄 알아야 합니다. 아직도 알 것을 채 모르는 줄 알아야 합니다. 아직도 배워야 됩니다. 지도를 받아야 됩니다. 작은 아버지인 모세가 있고 아버지도 있고 제사장이 있는데, 곧 자기의 인도자가 있는데, 왜 인도를 받지 않고 제 마음대로 제사 했느냐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해봤다는 것입니다. 그 하는 것을 봤다는 말입
니다. 그러나 보고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몇 십 년 동안 참 많이 배우고 연구해야 겨우 조금 되나가는 것입니다. 연수가 걸려야 됩니다. 제사장 예식은 7일간입니다. 교역자들도 연수가 걸려야 됩니다. 육신의 것도 알려면, 의사의 경우 의과대학을 나오고 인턴, 레지던트를 거처야 합니다. 다 연수가 걸려야 되지 않습니까? 의과대학은 6년을 해야 졸업합니다. 예과 2년, 본과 4년을 해야 하고, 졸업하기 전에는 아무리 아는 것 같아도 안 됩니다. 수술하는 것을 도와줘서도 안 됩니다. 또 하라고 했다고 해도 안 됩니다. 반드시 졸업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졸업하면 또 무엇을 해야 됩니까? 인턴을 해야 됩니다. 인턴을 몇 년 해야 됩니까? 인턴을 2년하고 또 레지던트는 몇 년 합니까? 3년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학을 6년 하여 졸업하고, 그 다음에 5년을 더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부 몇 년 입니까? 11년이 지나야 의사가 됩니다. 의사도 11년이 돼야 되는데, 교역자들도 반드시 신학교를 나와야 됩니다. 졸업하기 전에는 아직 되지 못한 것입니다. 뭐가 좀 된 것 같아도 된 것이 아닙니다. 신학교를 반드시 나와야 되고, 나온 다음에는 의사의 인턴, 레지던트에 해당하는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조사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전도사 보다 사실 조사가 옳습니다. ‘전도사’라고 해서 또 올라가 려고 하지 말고 ‘조사’라고 해야 합니다. 조사는 ‘도와줄 조(助)’, ‘일 사(事)’ 입니다. 목사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가방 들고 다니는 사람인 것입니다. 목사 가방을 몇 년 들고 다녀야 인턴, 레지던트를 졸업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마치는 것입니다. 가방 좀 들고 다녀야 합니다. 아무리 대학교 나오고 박사학위가 몇 개 있어도, 목사 가방을 몇 년 들고 다녀야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배워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교역자가 좀 되는 것입니다. 조사 과정을 거치지 못한 사람은 가다가 많은 시험을 당합니다. 또 실수도 많이 하고, 어떻게 하는 줄 몰라서 가다가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교역자가 그냥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역자가 위임식을 받았다고 해서 된 줄 알고 나가다가 큰 일이 난 것 아닙니까? 자기가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드려서 죽음

무슨 불을 드렸다고 했습니까?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죽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 불을 드려야 되는데,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분향하기는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는 섬겼는데, 또 예배를 드리기는 드렸는데, 여호와의 명령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된 불로 여호와의 명령대로 분향을 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해야 하고, 말씀대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하고, 또 여호와의 말씀대로 하는 기도가 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명한 불입니다. 여호와의 명한 불로 드려야 됩니다. 여호와의 명한 불이라는 것은 말씀대로 된 기도, 말씀대로 되는 예배, 말씀대로 세워나가는 교회, 여호와의 말씀대로 말씀 안에 있는 열심, 여호와의 말씀대로 된 성령운동, 여호와의 말씀대로 된 종교운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명한 불입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씀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어긋납니다. 성경말씀에 어긋난 것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된 불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명하지 않은 불이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말씀에 어긋나면, 전부 여호와의 명령대로 된 불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됐습니까? 성경대로 됐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했더니 뭔가 잘 됐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대로 됐냐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부흥됐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됐냐는 말씀입니다. 부흥됐다는 소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병이 낫습니다.
‘성경대로 됐나?’ 병 낫다는 소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요새 마음이 기쁩니다’라고 합니다. 마음이 기쁘다는 소리하지 말고, 성경대로 됐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열매 맺었습니다. 이것도 성경대로 됐느냐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됐어야지, 그것은 상관없이 그저 많은 열매 맺었다, 교인이 많이 모였다, 기쁘다, 병이 나았다, 신기하고 희한한 능력이 나타났다는 것은 무엇을 해도 다 쓸 데 없습니다. 여호와의 명대로 된 불이 아닙니다.

에스겔 13장 6-7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또 여호와께서 보내셨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어떠한 큰 역사가 나타났다고 해도 그것이 여호와의 말씀에 맞는지를 언제나 봐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맞지 않으면,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미혹입니다. 우상이 말을 했다고 해도 여호와의 말씀에 맞지 않으면 미혹입니다. 또 큰 이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모든 병이 나았다고 해도, 여호와의 말씀대로 된 것이 아니면, 그것은 다 미혹의 세력입니다. 표준은 성경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3-14절에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큰 이적이 일어났으나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상을 만들라고 하고, 15절에는 우상이 또 말했다고 했습니다. 또 마태복음 7장 22-23절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다, 또 귀신을 쫓아냈다, 여러 가지 능한 일, 이적과 기사를 행했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
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불법을 행한다는 것은 성경에 안 맞는 것입니다. 성경에 안 맞는 자들은 다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대로 된 것이 아니니까 말씀대로 된 것이 아니면 하늘나라에 못 들어갑니다. 아버지께서 심은 것이 아니면 다 뽑아버리십니다(마 15:13). 아버지의 말씀대로 된 것이 아니면 전부 다 다 뽑아버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만, 또 하나님께서 하신 것만 남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뽑아치우십니다. 신명기 13장에도 여러 가지 능한 일을 행해서 그 사실이 다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 말씀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미혹이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10절에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기 때문에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사와 불의의 모든 속임을 좇아가게 만들어놨다는 것입니다. 큰 능력이 나타나고 표적이 나타납니다. 또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사랑치 않는 사람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말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가 일하지만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레위기 16장 12-13절에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음을 면할 것이며”라고 하였
습니다.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하나님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이 아닌 다른 불을 가져다가 드렸다는 것입니다. 또 민수기 16장 46절에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단 위에 불을 담아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단 위에 불을 드린 것이 아니고, 다른 불을 갖다가 드렸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이 아니고 다른 불을 가져다가 분향하였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이들이 다른 불을 드린 것은 하나님을 섬기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또 향로도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또 향불을 가져다가 분향하는 것도 옳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말씀대로 된 것도 아니고, 여호와로 말미암아 된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대로 된 것인가 아닌가를 분별해야 되고,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인가 자기로 말미암은 것인가,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에 이용당하는 것인가 제가 하는 것인가를 분별해야 됩니다. 아무리 종교운동이라고 해도 자기가 하면 안 됩니다. 여호와께서 하시는 대로 이용당해야 되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해야 되고,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대로 불을 갖다가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안됩니다.

조금 다른 것은 어떻겠습니까? 다 같은데 조금만 다른 것입니다. 성경과 조금 다른 것, 즉 다른 복음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1장 6-8절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조금 변했지만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백 가지 가운데 한 가지만 틀려도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조금만 다르게 해도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 원짜리 돈에 노인이 한 명 있는데, 이 사람은 세종대왕이라고 써놓았습니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수염이 몇 백 개나 될 것 같은데, 그 수백 개 가운데 수염이 한 개만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개만 없으면 만 원짜리를 구천 원에 써 줍니까? 수염 몇 백개 중에 한 개가 없는데 구천 원에 안 써주겠냐는 말입니다. 구천 원으로 쓸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그러면 반 값인 오천 원으로 써 줍니까? 다만 수염 한 개만 없는 것인데, 반 가격으로 써 줍니까? 그 수염 한 개 없는 것을 가져다주고 오천 원짜리 물건 살 수 있습니까? 못삽니다. 그러면 십 분의 일, 곧 천원으로 써달라고 하면 이것을 천원으로 쓸 수 있습니까? 백원으로도 못쓰고, 일원으로도 못씁니다. 못쓸 뿐만 아니라 어떻게 됩니까? “이런 것 어디서 났느냐? 경찰서로 좀 가야 되겠다. 안 되겠다. 가만 보니까 가서 수사 좀 해야 되겠다. 이 돈을 누구한테 받았느냐? 그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면서 잡아갑니다. 그 수염 몇 백 개 가운데, 수염이 하나만 없어도 그것은 돈이 아닙니다. 돈이 아닌 것을 놓으면 십원이라도 됩니까? 복음도 그렇습니다. 조금만 다르게 만들어놓으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성경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저주 받습니다. 이제 그 위조수표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감옥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도리어 감옥에 가야 되고 처벌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성경대로만 우리가 전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시작하여 성경대로 끝나야 됩니다. 성경에서 조금이라도 가감하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고 도리어 저주 받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저주 받습니다. 바울이 전해도 저주받고, 천사가 한다고 해도 저주 받
습니다. 바울이 이적기사를 얼마나 많이 행했습니까? 바울을 통해서 병이 얼마나 나았습니까? 바울이 손수건을 환자에게 놓으면 벌떡 일어났는데, 그래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는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어긋나면 망합니다. 성경에서 시작해서 성경까지 가다가 성경에서 끝나야 합니다. 성경에서 어긋나면 안 되고,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해야 됩니다. 성경에 어긋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또 마귀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것도 있고, 마귀로부터 오는 것도 많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분별해야 됩니다. 똑같은 것 같습니다. 똑같은데 무엇으로 분별합니까? 성경을 가지고 분별해야 됩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성경책을 놓고 맞느냐 안 맞느냐 분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분별합니까? 아까 그 수염 하나 없는 만 원짜리의 경우 들여다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원판을 딱 가져다가 놓고 비춰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지 그냥 따로 봐서는 모릅니다. 따로 봐서는 수염이 열 개가 없어도 모릅니다. 그것이 없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누가 수염을 세어보고 돈 씁니까? 그러나 원판인 진짜 돈을 가져다
놓고 비춰보면 없는 것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성경에 가져다가 비춰보면 이것이 맞는지 아닌지 확실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아닌 것은 전부 무조건 다른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옳다고 하시는 것을 성경이 맞지 않고 한다면, 그 성경은 거짓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데, 무엇 하려고 믿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아닌 것은 전부 다 아니라고 해야지, 이 말씀에 더하면 저주받고 감해도 저주받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성경 아닌 것을 하나님께서 용납하실 수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호와의 명하지 않은 다른 불, 곧 다른 성경운동, 성경에 맞지 않는 기도, 성경에 맞지 않는 예배, 성경에 맞지 않는 교회진리, 교회운동, 성경에 맞지 않는 열심, 성경에 맞지 않는 성령운동, 성경에 맞지 않는 이적기사는 전부 다 잘못된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저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죽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벌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에는 당장 죽이지는 않아도 다른 불을 드리는 사람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또 하나님의 모든 말씀대로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말씀에 어긋나서 하기 때문에 말씀대로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맞지 않은 신비주의 운동은 열심은 있으나 성경에 맞지 않는 말씀대로 되지 않은 열심입니다. 밤새도록 열심히 기도해도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또 입신해서 천당에 갔다 왔다고 해도 성경대로 맞지 않는 것은 여호와의 불이 아니고 다른 것입니다. 성경은 여호와의 말씀이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왔으면 성경에 맞겠는데, 성경에 안 맞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입신해서 천당에 갔다 온 사람이 와서 천당에 가보니까 아파트 공사를 한다고 합니다. 또 그다음에 천국이 아주 많이 좁아졌다고 하고,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춤추고 다윗과 솔로몬 사이에서 잔치하고 왔다고 합니다. 또 에녹과 엘리야 외에 승천한 사람이 삼십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런 것이 전부 성경에 안 맞는 것입니다. 성경에 승천한 사람은 구약시대의 에녹과 엘리야 두 사람밖에 없는데, 삼십 명이 넘는다고 하기 때문에 성경위반입니다. 또 천국이 좁아서 아파트를 짓고 엘리베이터 타고 다닌다는 것도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잘못 믿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긴 가도 변두리 시골에서 천오백 년간 있으면서 훈련받고 보좌 가까운 데로 간다고 합니다. 그런 것도 성경에 안 맞는 말입니다. 전부 성경에 안 맞습니다.

성경에 안 맞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불이 아닙니다. 다른 불입니다. 그것을 분별을 해야 됩니다. 분별할 줄 모르면 다 잘못됩니다. 또 요새 신비주의 운동들이 여러 가지 많이 있는데, 그것이 성경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 언제나 성경말씀으로 판단을 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사람이 일백이십 년 살게 되어 있는데, 안 믿는 사람이 백이십 세 되기 전에 죽으면 귀신이 되서 백이십 세가 되도록 세상에서 왔다 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맞습니까? 성경에 그런 말이 없습니다. 이렇게 성경에 안 맞는 것이 다른 불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죽으면 즉시로 지옥에 가지, 지옥가지 않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사람이 일백이십 년 살게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노아시대 때 일백이십 년으로 정해졌다는 것은 일백이십 년 있다가 홍수로 심판하신다는 말씀이지, 사람이 일백이십 년 산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노아가 몇 세까지 살았습니까? 노아가 구백오십 세를 살았는데, 그 사람의 말이 맞다면 일백이십 세를 살고 죽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그 말씀은 일백이십 년 후에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백이십 년을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시대 후에 일백이십년 보다 더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그렇게 갖다 붙여서 일백이십 년까지는 귀신노릇하며 돌아다닌다는 말이 어
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은 것이 왜 귀신입니까? 귀신은 마귀입니다. 마귀가 귀신이지, 사람이 죽은 것이 귀신이 아닙니다. 성경대로 해야겠는데 성경을 표준으로 하지 않으니까 그만 여러 가지 이런 말 저런 말 하는 것, 곧 다른 불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불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반드시 벌하십니다.

신신학자들이 요새 다른 불을 드립니다. 그들의 종교운동은 성경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운동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운동은 신령한 나라 운동이고 영적구원운동인데, 신신학자나 해방신학자들의 운동은 세상운동입니다. 사회구원, 제도적인 해방입니다. 성경의 해방은 마귀에게서 해방이고, 죄 사함의 해방입니다. 영적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도적으로 해석해서 사회운동 하는 것은 다른 불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불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신 것도 아니고, 그것은 다른 것입니다. 다른 불을 드리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어긋나는 종교운동, 성경에 어긋나는 교회부흥운동이 있습니다. 교회부흥운동도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성경대로 돼야 합니다. 성경을 어기고 아무리 많이 모이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면 다른 불을 드리는데 오늘날 왜 즉시 망하지 않습니까? 본문의 나답과 아비후처럼 즉시 망해야 정신 차리겠는데, 다른 불을 드려도 그냥 놔두어서 즉시 망하지 않으니까 괜찮은 줄 알고 계속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혼은 벌써 망한 것입니다. 영적 면은 벌써 망한 것이고, 이제 조금 있으면 다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이 많으시기 때문에 신약시대에는 즉시 멸망시키시지 않으시고 지금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3-4절에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레미야 23장 21-22절에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갑자기 멸망하지 않는다고 해서 멸망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명하지 않은 다른 불, 곧 말씀에 어긋나는 교회, 어긋나는 교훈, 말씀에 어긋나는 기도가 많은데, 우리는 말씀대로 기도해야됩니다.

열심이 좋긴 좋지만, 성경대로 되지 않은 어긋난 열심은 다 무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열심히 했지만 지식을 따라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망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열심히 특심하지만 지식을 따라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서 10장 2-3절에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지만 성경지식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어긋난 열심은 아무리 열심이 있어도 그것은 다 다른 불입니다. 성경에 맞는 열심이어야만 합당한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역사가 그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다른 불이 요새 많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대로 하지 않은 기도생활과 열심, 종교운동과 교육, 성령운동이 다른 불입니다. 성경대로 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지 다 잘못된 것입니다. 다른 불입니다.

본문 2절에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고 하였습니다. 불이 삼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다 태워서 죽인 것이 아닙니다. 의복은 타지 않은 것을 보면(5절), 불에 다 타서 의복까지 다 불살라 죽은 것이
아니고, 불이 나와서 그들을 죽인 것뿐입니다. 바른 제사를 드리면 응답의 불이 되고, 바른 제사를 드리지 못하면 심판의 불이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다른 불을 드렸으므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본문 3절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잘못되면 먼저 심판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잘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먼저 돌아가고 먼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잘하면 복을 먼저 받고 잘못하면 벌도 먼저 받습니다. 가까이 있는 것도 먼저고, 잘하면 복도 먼저 받고, 잘못하면 벌도 먼저 받습니다.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 하나
님의 역사가 특별히 나타납니다. 잘하면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로 나타나고, 잘못하면 심판의 역사로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말하니까 아론이 잠잠합니다. 아들이 죽었으므로 어떻게 할 줄 모르고 있습니다.

본문 4-6절에 “모세가 아론의 아자비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 밖으로 메어 가라 하매 그들이 나아와 모세의 명대로 그들을 옷 입은채 (제사장의 옷을 입은 채로 죽었다는 말입니다.) 진 밖으로 메어 내
니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아서 너희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케 하라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의 치신 불로 인하여 슬퍼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잘못하면 그 죄를 회개할 뿐이지 인정으로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의 불로 죽었는데, 그 죽음으로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인정으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으로 하면 안 됩니다. 다만 무엇을 슬퍼하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하는 것을 탄식하고 회개하면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낮춰야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인정으로 기울여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정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2. 술 마시지 말라고 하심

본문 8-11절에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
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술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말씀하신 것을 보고 ‘나답과 아비후가 술 먹고 회막에 들어간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론의 두 아
들, 나답과 아비후가 술을 먹고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고 회막에 들어 갔다가 다른 불을 드리게 되었고 그래서 죽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전부 다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술 먹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맑은 정신, 똑똑한 정신, 분별하는 정신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바로 서서 제사해야 합니다. 술 먹고 흐리멍텅해져서 이것이 옳은지 저것이 옳은지 얼떨떨해서 분별하지 못하고 다른 불을 드리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 먹지 않아야 됩니다.

잠언 23장 31절에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포도주는 보지도 말고 술 취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한 잔 먹어도 취하는 것입니다. 안 취하는 것 같아도 한 잔 마시는 것이 취하는 것입니다. 한 잔에 안 취하면 백 잔에도 안
취하고 만 잔도 안 취합니다. 백 잔도 한 잔씩 먹는 것입니다. 한 잔에 안 취했으면 또 한 잔 먹고도 안 취합니다. 또 안 취하면 한 잔 또 먹어도 안 취할 것입니다. 이렇게 한 잔에 안 취하면 열 잔에도 안 취하는 것입니다. 열 잔도 한 잔씩 먹어서 열 잔을 먹은 것이기 때문입
니다. 또 백 잔도 한 잔씩 먹어서 백 잔을 먹은 것입니다. 그러나 백 잔을 먹으면 취합니다. 왜냐하면 한 잔을 먹을 때부터 조금씩 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잔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술 취하면 안 됩니다. 포도주는 먹으라고 하였습니까? 포도주를 보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먹지 말라고 하였으면 먹지 말아야지, 그것을 먹으면 성경 위반 입니다. 그러면 정신이 맑지 못하고 죄가 들어올 때에 그것을 바로 깨닫지 못합니다.
요한계시록 17장 2절에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하였는데, 그 포도주는 무엇입니까? 세상에 취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포도주와 같이 달콤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주의에 취하여서 세상에 빠지고 도취가 되어서 그냥 제 정신 없이 나갑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마신 자가 제사를 바로 드리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합당한 제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세상 포도주에 취하여서 분별력이 없어집니다. 이것이 옳은지 저것이 옳은 지 모르고,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심령이 죽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에 도취되면 안 됩니다. 어느 것이든지 도취되면 안 됩니다. 무엇에 도취되면 주일도 못 지키고 주일날 일하기 때문에 예배에 못 나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것에든지 도취되면, 믿는 일을 제대로 못 할 것입니다. 도취될 필요가 없습니다. 믿는 사람은 무엇에 취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제사를 바로 못 드립니다. 여호와 앞에 바른 제사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술 취하면 분별력이 없어집니다.

3. 소제와 화목제의 응식(應食)에 대한 명령

본문 10-11절에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 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고 하였습니다. 분별력이 있어야 가르칠 수가 있지, 무엇에 도취되면 분별력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것에 도취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세상 것이 재미가 있어도 거기에 도취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믿음을 지킬 수가 있고, 하나님께 제사를 바로 드릴 수가 있습니다.

본문 12-15절에 “모세가 아론과 그 남은 아들 엘르아살에게와 이다말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드린 화제중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하니 너희는 그것을 취하여 누룩을 넣지 말고 단 곁에서 먹되 이는 여호와의 화제중 네 응식과 네 아들의 응식인즉 너희는 그것을 거룩
한 곳에서 먹으라 내가 명령을 받았느니라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희생 중에서 네 응식과 네 자손의 응식으로 주신 것임이니라 그 든 뒷다리와 흔든 가슴을 화제의 기름과 함께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 지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너와 네 자손의 영원한 응식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소제나 화제 중에 아론과 그 아들들, 곧 제사장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 있는데, 흔든 가슴과 뒷다리를 가져다가 정결한 곳에서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4.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근신함

본문 16-20절에 “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는지라 그가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가로되 이 속제죄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뇨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그 피를 성소에 들어오지 아니하였으니 그 제육은 너희가 나의 명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할 것이니라 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 제육을 먹었더면 여호와께서 어찌 선히 여기셨으리요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라서 없앴다고 하였습니다. 속죄제는 주로 불살랐습니다. 속죄제 희생의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을 제단에 불사르고 남은 것을 다 진 밖에서 불살랐는데(레4:11-12), 남은 것 가운데서 제사장이 먹는 것도 있습니다(레 6:26). 그런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였느냐고 하니, 아론이 대답하기를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 제물을 먹었더면 여호와께서 어찌 선히 여기셨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라고 한 것을 보면, 제사 드린 것이 분명합니다. 다른 불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속죄제와 번제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또 아론이 대답하기를 “그 속죄 제물을 내가 먹었더면 여호와께서 어찌 선히 여기셨으리요”라고 하였는데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고 한 것은, 언제나 하나님께 근신하는 태도는 좋은 태도이 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근신하는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방종, 방탕, 방심부주의, 불경건과 같은 것은 다 하나님 앞에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근신하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언제나 경건한 생활을 하려고 힘쓰고,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 하지 않으려 해야 합니다. 바로 하려고 힘쓰는 생활은 먹을 것을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하려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근신하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근신하는 태도가 좋은 태도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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